1226화 다음은 조태진 너다 (3)
예전의 바루다였다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을 말이었다.
뭐 그래 봐야 바루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긴 했지만.
수혁이 싫어할 만한 소리를 인지하게 만드는 것도 이젠 한계가 있었다.
바루다가 수혁에게 익숙해지는 만큼이나 수혁도 바루다에게 익숙해지지 않았나.
원하면 바루다가 내는 그 어떤 자극도 확 줄여 버릴 수 있었다.
애초에 수혁은 자신이 원하면 이제 감각 공유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보니 원하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바루다와의 갑을 관계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었다.
물론 아직 수혁이 맛있는 걸 먹으면서 이건 감각 차단이니 하는 발상은 하지 못하긴 했다.
바루다 혼자 걱정하고 있는 것이긴 한데, 그래서 가만히 두는 건 아니었다.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는 겁니까?]
‘아니. 그냥…… 뭐, 고집이지. 다만.’
[다만?]
‘경과가 이상해. 아무 치료도 받지 않은 채로 골수이형성증이 무려 6개월이나 지속된 건데…… 그런 것치고는 꽤 상태가 좋지 않아?’
[뭐…… 그렇긴 한데, 원래 골수이형성증이라는 게 워낙 임상 양상이 다양하지 않습니까?]
태화 의료원에 있다 보면 같은 질환에서조차 나쁜 경과를 밟는 경우를 더 보게 되는 편이었다.
좋은 경과를 밝고 있거나 치료가 된 경우엔 다른 병원 또는 집으로 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너무 큰 병원에만 있다 보면 나쁜 쪽으로 통계가 쌓여 왜곡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었다.
물론 수혁이 저지르기엔 너무 초보적인 실수였다.
‘그렇지. 하지만 그걸 고려해도…… 잘 봐 봐. 환자 골수를 봐 봐.’
[아……. 음. 확실히 여기서 보이는 점수랑 환자 상태랑 약간 안 맞긴 하네요.]
‘어……?’
[왜요?]
‘염색이 안 돼서 모르겠는데…… 잠깐. 잠깐만…….’
[아. 혹시 이거?]
‘어어. 이거 뭐야. 이건 골수이형성 증후군하고 전혀 상관이 없는 병변이잖아.’
[그렇네요? 이게 뭐지? 아티팩트(Artifact, 인공적인 오류)인가?]
바루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생각보다 슬라이드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실수나 오류 같은 것들이 꽤나 있는 편이니까.
하지만…….
누누이 말하지만 여긴 태화다.
게다가 같은 소견이 어느 한 곳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검사 결과에 올라온 거의 모든 슬라이드 사진에서 보이고 있었다.
실수 따위가 아닌 실제로 있는 병변이라는 뜻이었다.
“음!”
수혁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입을 다물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음이 아니라 좀 이상한 음절이 튀어 나갔을 상황이었다.
환자는 물론이거니와 이 새끼들 또 이러네 내지는 오늘은 또 어떤 케이스를 해결할까와 같은 생각을 동시에 품고 있던 담당 간호사도 깜짝 놀랐다.
특히 간호사의 놀라움이 좀 더 컸다.
벌써 몇 번이나 수혁이 이적을 본 적이 있어서 그랬다.
이적이라는 게 뭐 매번 같으리란 법이야 없긴 하겠지만……
하여간에 이랬던 적은 없었다.
“왜…… 왜 그러시는지?”
그럼에도 먼저 나선 것은 역시 간호사였다.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그 또한 당황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대신해 나섰다는 얘기였다.
“아…… 아뇨. 일단은. 흐음.”
“어…… 네.”
그럼에도 별 보람은 없었다.
수혁이 간호사가 아닌 환자를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기 시작해서 그랬다.
‘뭐지…… 질문하기 전에 짓는 표정 같은데…….’
간호사는 혈종이지만 이미 집회에도 몇 번 나간 바 있는 수혁의 열성 팬이었다.
처음과는 달리 집회가 말만 집회일 뿐, 컨퍼런스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몇 번을 나간다 한들 이상하단 생각 따위는 들지도 않았다.
그저 수혁의 제자들이라는 사람들조차 이토록 대단하구나 싶기만 했다.
물론 집회긴 해서 수혁의 일화에 관한 얘기도 있긴 했다.
그 덕에 간호사는 수혁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표정이나 말투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전 같았으면 그런 걸 언급하자마자 사이비인가? 싶어졌을 텐데, 지금은 안대훈만 아니라 우하윤에 더해 김인수, 김성진 등이 가세해 훨씬 세련된 방식을 택하고 있어 그런 일은 없었다.
“환자분.”
“어…… 네.”
“혹시 코비드 사태 겪으면서 면역력에 관심이 깊어지셨나요?”
지금이다.
어떻게 보면 무당 같아 보이기도 한…….
지금까지와의 맥락과는 전혀 무관한,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날카롭고 동시에 구체적인 질문.
이런 게 바로 수혁의 트레이드마크다.
간호사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면서 환자를 돌아보았는데, 역시라고나 할까.
환자 또한 놀란 상태였다.
아까 ‘음!’을 들었을 때보다도 훨씬 놀란 상태였다.
간호사야 자세한 연유는 몰랐지만, 적어도 왜 놀랐는지는 알 것 같았다.
‘깊어졌구나.’
맞혔을 거다.
이런 걸 대체 어느 순간에 알아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이 자꾸 반복된다면 누구라도 안대훈처럼 될 것 같단 생각은 들었다.
“그…… 네.”
“역시. 많이들 그러시죠.”
하여간 수혁은 다 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진짜 무당인가 아니면 점쟁이 빤쓰라도 입었나 싶은 상황이었다.
“그럼 관련한 영양제도 드시고 계시나요?”
“아……. 네. 추천해 주는 걸로…….”
“어떤 영양제죠? 정확히 알고 계시나요?”
수혁은 물어보면서 환자 침대 옆에 있는 캐비닛을 슬쩍 바라보았다.
옷가지들도 있긴 한데 제일 눈에 띄는 건 여러 전자 장비들이었다.
그것들이 그냥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게 아니라 가지런히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이런 것 하나만으로 유추하는 건 무리가 있겠지만, 바루다의 데이터에 따르면 보통 이런 사람들이 다른 것들도 잘 정돈하는 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 네, 여기.”
역시.
환자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가 먹고 있는 영양제들이었는데, 제법 많았다.
그중에서 수혁이 집중한 것은 역시나 아연이었다.
“아연을 따로 드시고…… 아니, 원래도 종합 비타민 드시고 계셨네요?”
“아, 네. 근데 이게 더 좋다고 해서.”
“흐음.”
거기에 더해 종합 비타민에 따로 인터넷에서 구매한 것으로 보이는 건기능 제품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아니, 최근 추세에 따라 거의 모든 영양제엔 아연이 들어 있었다.
‘뭐…… 면역력과 연관이 있다는 보고가 있긴 하지. 난 딱히 면역력이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대표적인 사람 불안감에 기대는 마케팅이죠. 이런 거 겁주면서 팔아먹는 놈들이 나쁜 거죠.]
‘먹어서 나쁠 건 없는데…….’
[그것도 정도껏 먹을 때의 얘기죠.]
함량을 계산해 보니 환자가 먹는 아연이 매일 거의 40mg이 넘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아연 보충제를 한국에서 시판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파는 걸 직구한 탓이었다.
임산부들 중에서도 아연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 먹으라고 만든 것을 일반인이…….
심지어 평상시에 꽤 밥도 잘 챙겨 먹었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먹었으니 어떻게 되었겠나.
당연히 아연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갔을 거다.
보통은 괜찮긴 할 텐데, 너무 많이 들어가게 되면 이게 부작용이 있다.
“아연이 좋긴 한데 너무 많이 먹으면 좋지 않죠. 혹시 손발의 감각은 어떠세요?”
“어……. 조금 이상해요. 근데 그건 피곤해서……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지만, 아마도 아연 때문일 거예요.”
“아연이……?”
환자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가,
“아니, 그럼……? 저……?”
이내 다소 어색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뭘 더 먹어서 생긴 증상이라면 쉽게 나아질 것 같아서 그랬다.
물론 의료인도 아닌 데다가, 사실 의료인이라 해도 다 알 수 있을 만큼의 내용도 아니다 보니 괜찮을 거란 확신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게 미소인지 뭔지 모르겠는 표정만 짓고 있었다.
“네, 골수 이형성증은 아닙니다. 경과가 좀 이상해서 다시 봤는데, 역시 아닙니다. 마침 아연도 많이 드시고 계시니…… 확실해진 셈이죠. 근데 이런 걸 대체 어떻게 사는 거예요?”
“아……. 직구요. 개인 통관 번호 있으면 살 수 있는데…… 이상하게 미국 약이나 이런 게 용량이 엄청 높더라고요.”
“그렇군요. 역시 직구구나. 괜히 막아 두는 게 아니라서요. 불합리한 부분도 있지만, 이런 건강 관련한 건 아무래도 좀.”
“아, 네네. 제가 주의하겠습니다. 그럼……?”
“일단 끊어야죠.”
“아, 네.”
“그리고 구리를 드셔야 합니다.”
“네?”
아연 얘기하다가 구리?
뭔 소리지?
환자는 나만 이상한가 싶어서 간호사를 돌아보았다.
간호사 또한 이상하단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황당해서였는데, 마냥 그러고만 있기도 어려웠다.
이번엔 수혁이 간호사를 보면서 말하기 시작해서 그랬다.
“아, 이참에 검사를 좀 나가죠. 아연과 구리 수치를 보겠습니다.”
“아……. 네.”
훈련받은 게 어디 가는 건 또 아니다 보니, 간호사는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바로 혈액검사에 필요한 주사기와 혈액검사 통 등을 들고 왔다.
그사이에도 수혁의 설명은 지속되었다.
“아연이 너무 많이 들어가게 되면 우리 몸은 항상 같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기 때문에 이 아연을 제거하기 위해 장에서 메탈로티오네인(금속결함 단백질)이라는 물질을 더 많이 만들어 냅니다. 아연과 붙는 성질을 가진 물질인데 그렇게 해서 배설이 되게끔 하는 거죠.”
“아……. 네.”
“근데 문제는 이 메탈로티오네인에 구리가 더 잘 붙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메탈로티오네인이 과도하게 늘어나게 되면 구리만 사라져요. 우리 몸에서 제거하려고 했던 아연은 그대로 있으니 메탈로티오네인을 더 만들고, 그럼 구리가 점점 사라져서 구리 결핍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허어……. 그런…… 그렇군요.”
“그리고 구리가 없어지면, 생각보다 구리가 우리 생존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원소거든요. 신경 쓰지 않아도 보통은 충분한 양을 먹게 되니 딱히 강조는 안 하지만, 막상 이렇게 결핍이 되면 빈혈과 호중구 감소, 설사, 감각 이상 등이 생길 수 있어요. 골수 억제도 되는데, 지금 환자분의 골수가 딱 그렇게 보입니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제가 그렇게 힘들었군요.”
세상에 보기엔 건장해 보이는 성인 남자가 흙 포대 하나 못 옮긴다는 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란 말인가.
근데 못 했다.
너무 무거워서.
“네, 그렇습니다. 다행히…… 아주 커다란 병은 아니에요. 그냥 아연을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생긴 일종의 해프닝입니다.”
“그럼…… 그럼 저 나을 수 있는 건가요?”
황당해서 처져 있던 환자가 해프닝이라는 말에 비로소 어떤 확신이 들어 소리쳤다.
목소리엔 희망이 가득 차 있었다.
수혁은 그런 환자의 모습에 엔도르핀이 잔뜩 분비되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냥 고개만 끄덕이진 않았다.
당연하게도 훌륭한 의사답게 훌륭한 설명도 더해지고 있었다.
“주로 신경 증상, 그러니까 감각 이상이 오래가는데 그건 그리 심하지 않으니까요. 한 달 안에 싹 나을 거예요.”
“아…….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