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0화 복수요? (5)
“어……”
안으로 들어가자, 우선 장강명의 입에서부터 탄식이 나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혁이 말한 대로여서 그랬다.
‘정말로……. 크론 같아. 아니, 크론은 아니다…….’
크론이라면 자갈길처럼 쭉쭉 패인 병변들이 있을 터였다.
허나 아이의 장은 궤양들이, 그러니까 아프타성 병변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여기저기 출혈도 있었다.
이렇게 되면 설사가 멎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한 달?
아니, 그 전부터도 아마 변이 묽었을 터였다.
절대……. 요사이에 발생한 병은 아니다.
“어머니, 아이 원래 변을 잘 보는 편이었나요?”
“아…… 아뇨. 설사를 좀 자주 했었어요. 근데, 그래도 아파하진 않아서…….”
아직 병변에 대한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어머니의 얼굴은 심각해져 있었다.
문외한이 보기에도 아이의 장은 심상치 않았기에 그랬다.
일단 멀쩡한 장이 저렇게 궤양이 있을 리는 없지 않겠나?
게다가 피까지 나 있다.
이건…….
“괘, 괜찮은 건가요?”
“흐음…….”
수혁은 즉시 답을 하는 대신 생각을 정리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바루다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면역질환이라고 봐야 할 텐데……. 전형적인 양상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지. 자가면역질환은 적어도 20대 이상에서 잘 발생하니까. 남아라고 해도 그래.’
[그렇다면 역시 선천성 질환을 염두에 둬야 할 겁니다. 지금까지 관찰된 아이의 소견을 정리합니다.]
바루다는 주르륵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올 만큼이나 긴 문제 목록을 불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혁은 한눈에 그것들을 다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머릿속으로 품고 있던 것들이 태반이었기에 그랬다.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설사와 로타바이러스야. 로타 밑에 붙은 진단명은 이질 의증이었지. 이질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의심할 만한 질환은 아니지.’
[맞습니다. 그에 대해 적절한 항생제 치료까지 했고 또 우유 알레르기까지 의심해 식사 조절까지 했지만 전혀 효과는 없었습니다.]
‘선천성 면역 오류……. VEO-IBD의 전형이야.’
[그렇습니다. 거기에 더해 아이는 림프절 비대에 비장 종대에 폐렴 병력까지 있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가능한 질환은 하나뿐이야. 별로 좋진 않은데……. 그래도 시도해 볼 수 있는 치료가 있으니 다행이네.’
[항생제로는 절대 치료가 안 되는 병이니, 더 다행이죠. 시간 끌어 봐야 아이도 보호자도 고통만 더 오래 받았을 겁니다.]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을 떴다.
장강명은 이미 안에 집어넣었던 내시경을 뺀 후였다.
그러곤 언제나처럼 수혁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환이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뭐야?’
뭐냐?
뭐냐고 이거.
왜 애한테 이런 병변이 나타난 거지?
장강명은 지금 당장에라도 소리 지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아마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면 달려가서 수멘이라도 외치고 있었을 터였다.
원래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수혁과 한 번 두 번 엮이게 되면서 점점 더 궁금증에 시달리게 되어서였다.
“아이의 병은 보다 정확히 하려면 유전자 검사를 해야겠지만……. 아마도 CASPASE 8 결핍으로 보입니다. 꽤 희귀한 면역질환입니다.”
“으음.”
들어도 모르겠다.
그게 뭔데 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허나 장강명은 놀라운 인내심으로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뭔가 알고 있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의미심장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보호자는 그런 장강명을 보면서 역시 나이가 지긋한 데다가 내시경도 잘한다 싶더니만 실력이 대단하구나 싶어서 감탄했다.
[개뿔도 모르는군요.]
‘응. 이 사람은 왜 맨날 이러지?’
[모르겠습니다. 알고 보면 자존감이 무척 낮은 거 아닐까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그 증거라고 들었습니다.]
‘누구한테?’
[정신과 오진승이요.]
‘아……. 그분. 자존감에 관심 많지. 내가 보기엔…….’
[그분도 딱히 높아 보이진 않아요. 그래서 파고드는…….]
수혁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척 보면 척이었으니까.
다만 수혁은 그런 사람을 굳이 끄집어내서 망신 주는 취미는 없었기 때문에 그저 말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어차피……. 진단명 떠올렸을 때부터 아무도 모를 거라 여기고 있지 않았나.
안대훈이나 이현종이 있으면 또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그저 혼자 떠들어야만 했다.
“CASPASE-8이 뭔지는 아시죠?”
질문도 별 의미가 없었다.
아마 장강명이 경험이 일천했다면 여기서 당황했을 테지만…….
‘답을 기대하지 않는구나. 이미 알아, 이놈은……. 내가 모른다는 걸.’
장강명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연하죠. 세포 사멸을 시작하는 FAS 경로의 분자죠. 이게 결핍이 되면……. 멀쩡하지 못한 림프 증식이 일어납니다.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가장 희귀한 자가면역 림프 증식성 증후군 중 하나가 바로 이 카스파제-8 증후군입니다.”
“그렇지.”
추임새도 넣었다.
본인도 모르게였는데, 지가 넣어 놓고는 좀 놀라서 수혁을 바라보았다.
수혁은 눈으로 선 넘지 말라고 말하곤 입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휴우…….’
혹시 여기서 그래서 뭔지 알아요? 라고 했으면 개망신 아닌가.
언제부터인가 모르겠는데……. 센터 내 다른 녀석들도 왈랑왈랑 따라붙어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수혁은 자기 자랑하기 바빠서인지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딱히 장강명을 뭐라고 하지 않고 말만 바쁘게 하고 있었다.
“아이의 병력을 보면……. 모유 외에 우유 단백질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어린이집에서도 우유를 먹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죠?”
“아……. 네. 그래서 제가 좀 고생을 했죠.”
요새는 분유도 종류가 워낙에 다양하게 나오고 있고, 그중에서는 환자의 경우처럼 특정 영양소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을 위한 분유도 있긴 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은가?
안 그대로 될 수 있으면 모유 먹이고 싶은 것이 엄마 마음인데 일반적인 분유를 먹으면 아픈 모습까지 본 마당이라면…….
엄마는 희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수혁이나 바루다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어쩌겠나?
그렇게까지 비합리적인 애정까지 품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모성애인 것을.
“그 외에 입원 치료가 필요할 만큼 심각한 폐렴도 3번이나 겪었고, 어린이집에 나가면서부터는 보다 빈번한 질환을 앓았습니다. 거기에 설사도 있었습니다. 그에 따른 약간의 성장 장애도 있었죠. 증상에 비해 이만큼이나마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보호자분의 유별난 보살핌 덕분이라고 봐야겠죠.”
수혁은 보호자를 칭찬했다.
장강명에게는 의외의 일이었다.
이 인간이 누군가를 칭찬하는 건 꽤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단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칭찬에만 인색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입바른 소리를 하나? 그것도 아니었다.
‘진짜로…… 고생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모양이로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장강명은 그제야 보호자를 다시 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어마어마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확실해 보여서 그랬다.
아이를 키워 본 입장에서는 존경심마저 일었다.
그냥 키워도 힘들긴 하거든, 애라는 건.
그만큼의 감정적인 보상도 주긴 하지만…….
“거기에 더해 제가 관찰해 보니 아이는 만성 축농증이 있고, 경부 임파선 비대와 비장 종대가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을 종합해 보면 카스파제-8 증후군의 전형적인 모습과 일치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장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었는데 내시경 결과도 카스파제-8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카스파제-8.
모여든 사람들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터였다.
당장 장강명부터 그랬다.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질환이지만 그 사례를 다른 누구도 아닌 수혁의 입을 통해 직접 듣고 있지 않은가.
귀를 기울이고 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이었다.
“물론 보다 정확한 것은 유전자 검사를 해 봐야겠지만 다행히 아이의 성장 상태를 보건대 아주 심각한 형태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면역 결핍에 의한 증상에 대해 적절한 치료를 하면서 면밀히 추적 관찰을 한다면 그래도 예후가 나쁘진 않을 거라는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수혁의 마지막 말에 보호자가 눈물을 흘렸다.
장강명은 그 보호자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알 것 같아서 오히려 슬퍼졌다.
선천성 질환, 그중에서도 면역 질환에서 예후가 나쁘지 않을 거라는 얘기는…….
‘그게 꼭 예후가 좋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냐…….’
성인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선천성 질환만큼은 여전히 현대 의학에 있어서도 난관에 해당하는 질환이지 않은가.
거기에 더해 면역 질환은 성인에서 발생하는 경우에도 대개 난치성 경과를 걷기 마련이었다.
그 두 개가 합쳐진 이 병이라면 대체 어떻겠나.
‘뭐……. 굳이 내가 초를 칠 필요는 없겠지…….’
그렇다고 해도 유전자 변이에 의한 어떤 대사 물질이나 전구물질에 대한 치료제가 있다면 희망을 품어 보겠지만…….
수혁의 말에 따르면 증상에 따른 치료가 최선이라지 않나.
이건 아무리 좋게 생각해 봐도…….
‘제기랄.’
장강명은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아이를 이뻐했던 그가 소아과를 택하지 않았던 이유를 지금 막 다시 실감하고 있었다.
성인의 아픔이라고 해서 그 정도가 덜한 건 아닐 거라는 것 정도는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인간은 감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아직 세상을 알지 못하는 저 어린 친구가 지금 고통받고 있고, 또 앞으로 걸을 길도 만만치 않을 거라는 걸 생각하면.
그 길에 줄 수 있는 도움이 제한된다는 걸 생각하면 입맛이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럼 보호자분, 이따 이송 요원과 같이 오시면 됩니다. 제가 의견 다 남겨 놓을게요.”
“아……. 감사합니다.”
“네. 소아과 측에 제가 아는 교수님이 있으니 도움받을 수 있을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장강명에 비하면 수혁은 멀쩡해 보였다.
허나 속을 들여다보면 아주 그렇지만도 못했다.
‘이런 걸 보면 난 운이 좋았던 거 같단 말이지.’
보육원에 홀로 앉아 시간을 죽이던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불행과 불운과 같은 단어도 같이 떠올렸더랬다.
하지만……
대학 병원이라는 곳이 지나칠 만큼이나 많은 비극이 모여드는 곳이라서 그럴까?
여기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도리어 운이 좋았다는 생각만 들었다.
말 그대로 아프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닐까 싶어진다, 이 말이었다.
[날 탑재하고 있으니 운이 좋은 거 맞죠.]
‘하긴, 그것도 그렇네.’
[뭐……. 저 아이도 유전자학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으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집은 잘사는 거 같으니까. 어떤 치료든 감내할 수 있겠지.’
[일단, 돌아가죠. 이현종이 아무리 괴물이라고 해도 감염 질환에 있어서는 이제 수혁만 못합니다.]
‘그렇긴 해.’
수혁은 보다 걸음을 빨리했다.
그 시각 이현종은 바루다의 우려와는 달리 불명열 환자 하나를 잡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