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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1215화 (1,215/1,303)

1215화 우하윤도 달린다 (3)

주치의, 그러니까 신경과 레지던트는 고뇌하기 시작했다.

‘검사가 필요하다라…….’

힐끔 하윤을 살펴보면서였다.

이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퍽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의사라고 하면 다들 공부 잘했으니 다 자신감 넘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할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다 전교 1등 하던 애들 모아 놓은 곳인데 어찌 우열이 갈리지 않겠는가.

오히려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알게 된 만큼 자존감이 쭉쭉 떨어지는 시기가 바로 의대생 시기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떨어진 자존감을 밖에서 영 엉뚱한 방식으로 채우려 드는 놈들이 만드는 것이 바로 의대생에 대한 세간의 편견이었고.

‘하씨……. 말이 존나 논리적인데……?’

아무튼, 그렇게 떨어진 자존감이 그럼 대체 언제 회복이 되는고 하면 바로 레지던트 고 연차 때였다.

그나마 한 과에서는 제일 높아지다 보니 아는 것도 제일 많아져서 그랬다.

물론 그것도 상대적일 뿐이긴 했다.

레지던트들끼리나 잘 아는 것이지, 교수랑 비교하면 한참 모자랄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러한 것을 감안했을 때 눈앞의 우하윤이라는 사람은 말 그대로 자신감이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 옆에 있는 것들은…… 죄 괴물이니까.

이수혁, 이현종까지 갈 것도 없었다.

‘안대훈, 김인수……. 김성진…….’

통합진료센터에 좀 더 많은 사람이 있긴 하지만 해당 연차의 중심을 말해 보라고 하면 이 셋이다.

유명인들이지 않나?

물론 이 셋이 병동 투어를 다니거나 하는 것으로 유명해진 것은 아니었다.

다니긴 하지만 이수혁, 이현종 부자처럼 정기적으로 다니는 것은 아니기에 그랬다.

다만, 이 셋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는 통합진료센터 정기 총회의 주최자였다.

센터에서 해결한 케이스들을, 그중에서도 특히 수혁이 해결한 케이스들을 씹고 뜯고 맛보는 총회인데 그 총회 내용이 진짜 좋아서 이제는 내과뿐 아니라 다른 과에서도 시간 나면 가 보게 되는 원내 최고라 해도 좋을 컨퍼런스가 되었다.

그걸 교수도 아닌 이들이 이끌고 있다니…….

실로 괴물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우하윤이 라이징 스타라는 말이 있지.’

레지던트는 그들에게 인정받은 사람이라면, 자기가 뭐라고 인정을 안 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수혁교 신자급의 광신도는 아니더라도, 총회에 정기적으로 나가는 사람이라서 더더욱 그랬다.

뭐가 되었건 통합진료센터 사람들의 우수함에 마음속 깊이 감복하게 된 지 오래였다.

“알겠습니다. 어떤 검사를……?”

그렇다고 해서 어떤 검사든지 다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는데…….

답하고 나서야 알았다.

뭔 검사를 할는지도 듣기 전이었다는 사실을.

“아, 네. 일단……. 아까 말씀드렸듯이 신경 말단의 칼슘 채널을 건드리는 병이잖아요?”

“네네. 이해했습니다.”

사실 아까까지는 정확히 이해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환자 병력에 대한 내용이야 알고 있었다고 해도 그 외의 추론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져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어서 그랬다.

허나 다시금 보다 쉬운 말로 듣고 나니 확실히 이해가 됐다.

그래, 원인이 뭐가 되었건 간에 신경 말단을 건드리는 병인 모양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신경과 레지던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확인한 하윤은 여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그것부터 확인해야죠. P/Q형 voltage-gated calcium channel 항체에 대항 검사를 시행하겠습니다.”

“네? 그런 검사가…… 있어요?”

“잘 시행하진 않는 검산데 있어요. 원래는 질본 같은 곳에 의뢰해서 진행하던 검산데, 다행히 우리는 통합진료센터 출범하면서 어지간한 희귀질환에 대한 검사는 다 구비하고 있거든요? 바로 할 수 있어요.”

“아……. 그렇구나…….”

하윤은 조금 이해한다는 얼굴이 되었다가 다시 얼이 빠져 버린 레지던트를 보다가 이내 환자쪽을 돌아보았다.

환자야 뭐…….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거의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지금 당장은 이해시킬 필요가 없어서 그랬다.

중요한 것은 검사할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인데, 그건 차고 넘치게 달성한 참이었다.

“거기에 더해……. 이 LEMS가 갑자기 나타날 리는 없지 않겠어요?”

“아……. 그렇죠. 아무래도. 아무리 자가면역질환이 있던 사람이라고 해도…….”

하윤은 어떤 검사를 하자고 해도 할 것 같아진 환자를 두고서, 아주 자연스럽게 슬쩍 멀어졌다.

신경과 레지던트는 처음엔 이 사람이 왜 팔뚝을 잡아끄나 하다가 심각해진 하윤의 얼굴을 보자마자 저항 없이 슥 끌려갔다.

‘뭔가 안 좋은 병이 동반되어 있구만…….’

느낌이 딱 왔다.

대학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좋건 싫건 비극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

“대개는 Small cell lung Ca랑 연관이 있어요.”

그렇게 끌려갔다고 해 봐야 환자와 아주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의학 용어로 말했다.

그리고 레지던트는 이 사람이 왜 이러는지 딱 알 수 있었다.

‘소세포성 폐암…….’

폐암.

예전과는 달리 암도 슬슬 정복까지는 아니더라도 해 볼 만한 병이 되어 가고 있지 않나?

하지만……. 여전히 걸렸다 하면 예후가 좋지 않은 암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폐암이었다.

소세포성 폐암은 비소세포성 폐암과 구분되는 다른 암이지만, 이놈도 폐암이다 보니 예후가 좋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물론 100% 그렇게 단정 짓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확인을 해 봐야 해요.”

“알겠습니다. 그럼 흉부 CT를 찍어야 할까요?”

“찍는 김에 PET CT도 아예 같이 예약하죠.”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흐음…….”

“표정 일단 푸시고요. 환자 봐요.”

“아, 아아. 네. 선생님.”

폐암이라는 말에 웃을 수 있는 의사가 있겠나?

만약 그렇다면 이상한 놈일 터였다.

그렇더라도 굳이 환자 앞에서 얼굴 굳히고 있는 것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환자들은 의사들의 얼굴에 영향을 아주 강하게 받기 마련이었다.

해서 주치의는 하윤의 말에 따라 간신히 웃음기를 띠고는 환자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

“검사는 다 진행해 보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검사가 막 힘든 것은 없을 거예요.”

“아……. 네, 부탁…… 드립니다.”

조금 걱정을 하면서였다.

아닌 게 아니라 환자가 약간 까다로운 편이라서 그랬다.

허나 하윤의 기깔나는 설명 덕분에 환자는 이미 마음이 확 기울어 버린 상황이었다.

해서 별 저항감 없이 하윤이 말했던 검사를 모두 받기로 결정했다.

피검사야 결정이 되자마자 바로 나갔고, 영상 검사도 CT는 다행히 빨리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금세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들 하하호호 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아이구.”

뒤늦게 영상 내용을 듣고 뛰어온 교수부터가 이마를 짚었다.

영상에서 전방 종격동에 커다란 덩어리가 보여서 그랬다.

“이거……. 소세포암이라고?”

교수의 말에 하윤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폐가 아니라 종격동이라면 아예 다른 걸 생각하는 게 맞을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럼 뭘까?”

처음부터 교수가 있었던 것이라면 분위기가 이렇게 유하지 않았을 텐데, 이미 어느 정도 하윤의 말이 맞다는 증거가 다 나온 다음이다 보니 유하다 못해 의존적이게까지 느껴졌다.

하윤은 머릿속으로 수혁을 떠올리면서 답했다.

‘오빠랑 봤던 케이스에서…… 토의 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었지.’

주로 소세포암이긴 했다.

하지만 ‘주로’라는 말이 붙었다는 건 아닌 경우도 있긴 하다는 얘기 아니겠나?

그중 하나가 B세포 림프종이었다.

그게 꼭 종격동에 생기리라는 법은 없지만…….

“흉선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거든요?”

흉선, 즉 가슴샘은 대표적인 면역 기관이고, 그중에서도 림프 기관이지 않나?

종격동, 그중에서도 흉선에서 발생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아무래도 B 세포 림프종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흉선에서 기원한 B 세포 림프종 가능성이 높아 보여요.”

“아……. 그럼 그게 좀 나은 거 같은데? 맞나?”

“네, 아무래도 그렇죠. 폐암보다는 훨씬 낫죠. 그래도 치료를 빨리 받아야 하는 건 맞겠지만요.”

“그건 그렇지. 협진 내야겠네.”

“네, 협진은 제가 내도록 하겠습니다. 혈종만 내면 되는 게 아닐 거 같아서.”

“아……. 그렇게까지 해 줄 거야?”

“네. 뭐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역시…… 통합진료센터야.”

신경과 교수는 하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환자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한숨을 쉬면서였다.

절로 나오긴 할 것 같았다.

괴질이었다가 진단이 된 것은 너무 기쁜 일이지만…….

하필이면 진단이 된 병이 너무 심각한 병이지 않나.

‘에이……. 그래도……. 이 선생 아니었으면 더 지체될 뻔 했네. 이제 펠로우 1년 차라고 들었는데…….’

찝찝한 기분을 뚫고 나오는 건, 역시 하윤에 대한 감탄이었다.

펠로우 1년 차에 대한 평가는 아무래도 교수 입장에서 내릴 때 더 박할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

헌데 이렇게 잘할 줄이야?

뭐 교수도 아직 환자가 입원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렇지, 1, 2주 내에 진단을 내리긴 했을 터였다.

그렇다고 해서 하윤의 대단함이 퇴색되는 건 아니었다.

LEMS라니.

듣고 난 다음이니까 얼추 떠올릴 수 있는 것이지, 아까 알고 있던 것만 생각해서는 절대 닿을 수 없는 질환명이었다.

적어도 자기 역량으로는 그랬다.

‘어떻게 가르치길래 그러지? 우리 애들을 보내기는 좀 그렇고……. 교수법이라도 배워 볼까?’

교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윤이 작성하고 있는 협진 노트를 들여다보았다.

흉부외과 쪽으로는 조직검사를, 혈종 쪽으로는 세부 워크업 및 향후 치료 계획을 의뢰하고 있었다.

어찌나 똑 부러지게 적는지 이 정도면 의뢰받는 입장에서도 기분이 오히려 좋을 거 같았다.

협진이라고 하면 일 하나 늘어나는 것이니만큼 설마 그러려고 싶긴 한데…….

그런 생각이 들 만큼이나 잘했다, 이 말이었다.

“으으음…….”

그렇게 제자들이 하나둘 활약을 하고 있을 때쯤, 수혁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이게 뭐냐.’

딱 정신을 차리자마자 발견한 것은 소변줄이었다.

수액 때문인지 물처럼 맑은 소변이 줄줄이 빠져나가 주머니로 모여들고 있었다.

마치 정신이 해리된 듯 약간의 이인감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만큼 눈앞에 벌어진 상황은 현실감이 부족했다.

‘나 혹시 머리 또 다쳤나?’

[아뇨. 다친 건 다른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

[이거 신현태가 꽂았습니다.]

‘왜……? 나한테 무슨 원한 생겼나?’

[그렇지 않아도 지난 행적을 꼼꼼히 살펴봤는데 딱히 그럴 만한 일은 없습니다. 그냥 이 사람들이 미친 거예요.]

‘아……. 왜 이렇게 힘들지, 근데.’

[아까 정신 없을 때 미다졸람 맞아서 그렇죠. 애초에 잠이 부족했던 상황이라 푹 자던데요? 저도 열 때문에 정신 없었고.]

수혁은 넋 나간 얼굴로 소변줄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발견한 이현종이 다가왔다.

“복수하고 싶어?”

영 이상한 말을 하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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