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화 우하윤도 달린다 (1)
남친이 쓰러졌다.
딱 봐도 그렇게까지 건강해 보이는 사람은 아니긴 했다.
다리가 다쳐서는 아니었다.
그냥……. 사람이 좀 약해 보이지 않나?
빈말로도 강하다는 말은 하기 어려운 인상이었다.
‘어휴……. 너무 무리하긴 해.’
원래 데이트라는 게 꽤나 시간을 소비하는 일이지 않나?
물론 데이트에 ‘소비’라는 단어를 쓰는 게 좀 이상한 일이긴 한데…….
아무튼, 수혁은 진료 보는 시간이나 공부하는 시간을 줄이는 대신 자는 시간을 줄였더랬다.
먹는 시간이야 급한 상황 아니고서야 늘 제대로 먹었다 보니 그 밥을 같이 먹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어서 그리 줄지 않았는데, 참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근데 내가 뭐 본다고 해서 오빠가 덜 보려나……?’
그러진 않을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수혁이 환자 보러 뛰어다니는 게 무슨 의무감 때문은 아니지 않나.
그냥 지가 좋아서 빨빨거리면서 뛰어다니는 것일 뿐이었다.
전엔 좀 헷갈리긴 했다.
아무리 사람이 진료 보는 것을 좋아해도 정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보다 깊은 교제를 하게 된 지금은 단언할 수 있었다.
‘내 남자친구는 좀 이상하다…….’
이수혁은 이상한 인간이라고.
슉.
사돈 남 말 할 처지는 아니긴 했다.
우하윤도 이상하기로만 따지면 뭐 만만찮게 이상한 사람이라서 그랬다.
지금도 그랬다.
남자친구이자 교수이자 부센터장이 쓰려진 마당에 다트나 던지고 있지 않나.
탁.
그것도 최선을 다해서 던졌다.
하윤은 그렇게 날아가 꽂힌 다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음……. 신경과.”
“괴질이 많은 병이지. 언제 가도 꽝은 없는 곳이라고나 할까?”
결과를 본 안대훈, 김성진, 김인수와 같은 통합진료센터의 진짜 충신들이 껄껄 웃었다.
웃는 꼴이 대단한 악당들 같아 보이긴 했지만 틀린 소리는 또 아니긴 했다.
확실히…….
신경과는 좋은 과였으니까.
-모든 과에서 보다가 잘 이해가 안 되는 증상이 발생하거나 하면 원래는 신경과로 보내곤 했지.
수혁과 이현종이 인증할 정도로 좋은 과였다.
그렇다 보니 하윤은 만족감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곧장 신경과로 향했다.
하윤이 마지막 선수라 가능한 일이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각기 자기가 뽑은 과로 향하고 있었다.
신경과를 뽑은 사람은 하윤뿐이었기 때문에, 같이 걸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원래 같았으면 수혁이랑 같이 걸어야 하는데, 그 인간이 쓰러졌으니 뭐 혼자 걸어야지 어쩌겠나.
‘아무리 봐도 감긴데……. 검사하느라 몸살 된 거 같네.’
하윤은 그렇게 혼자 걷다가 이내 수혁이 입원하게 된 통합진료센터 한구석을 돌아보았다.
보통 어려운 환자 또는 안 좋은 환자가 입원하는 곳인데 아무래도 센터 내 사람이다 보니 특혜 아닌 특혜를 베푼 상황이었다.
물론 밖에서 보기에 그런 것이고 수혁 입장에서 보면 딱히 그렇게 느껴지지도 않을 터였다.
세상에 열나는 사람 목구멍, 똥구멍에 내시경 꽂는 게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란 말인가?
거기에 CT에 갖은 피검사에…….
원래 대학 병원 입원하면 환자 상태가 잠깐이나마 더 안 좋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수혁이 딱 그짝이었다.
실로 VIP 신드롬의 전형이라 할 수 있었다.
‘아니……. 원장님은 그래도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했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태화 의료원에 상당히 적대적이었던 우창윤이 했던 말이었다.
애초에 아선 병원 사람들에게도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니 꽤 정확한 평가라고 봐야 옳을 터였다.
‘그랬던 사람이 이제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린 거지…….’
손수 소변줄을 꽂아 버릴 줄이야.
뭐…….
한 가지 다행이라 할 수 있는 점이 있다면, 이런 식으로 간이 건강 검진이 완료되었다는 점이었다.
지금 당장 아픈 것에 대한 검사라고 하면 정말이지, 죄 쓸데없는 짓거리에 불가하겠지만…….
좋게 생각하면 건강 검진을 미리 당겨서 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야 했다.
당사자인 수혁도 그렇게 생각해 줄는지는 모르겠지만.
“어……. 어떻게 오셨어요?”
딴생각을 하면서도 하윤은 신경과를 향해 빠르게 걸었다.
실습 학생 때부터 거닐었던 공간이다 보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통합진료센터에서 일하게 된 순간부터 병원 지리 익히는 것 또한 기본 업무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센터장이나 부센터장은 딱히 별말이 없었지만, 그 밑에 놈들이 워낙 호들갑이 심한 놈들이다 보니 거의 자동으로 익히게 되었다.
“아, 통합진료센터 우하윤입니다.”
하윤은 자신을 향해 물어온 병동 간호사에게 경찰 배지라도 되는 듯 통합진료센터 명찰을 보여 주었다.
그걸 본 간호사들의 표정이 조금 묘해졌다.
‘아…….’
‘누구지?’
‘새로 들어온 펠로우 같은데…….’
‘아니……. 병동 투어는 이수혁, 이현종만 하는 거 아니었어?’
통합진료센터로 협진을 내는 건 이제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게 된 지 오래였다.
도움받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도움을 받는 게 현명한 일 아니겠나?
게다가 이수혁이나 이현종이나 실로 괴물 같은 실력을 자랑하는 이들이다 보니 협진에 대한 답 또한 거의 항상 정확했더랬다.
하지만……. 소위 병동 투어라는 이름으로 자리한 이 랜덤 환자 보기는 아직까지도 말들이 좀 나오는 편이었다.
그나마 이수혁, 이현종이 직접 나서는 경우라면 훨씬 나을 터였다.
‘뭔 펠로우 1년 차가…….’
‘뭘 안다고? 그냥 전문의 아냐?’
‘그러니까 말야. 아무리 통합진료센터라고 해 봐야 이제 2달째 아닌가?’
‘그래도……. 눈치 챙겨. 거기 센터장이랑 부센터장 둘 다 자기 제자 챙기는 데는 선수다.’
‘하긴…….’
‘이상한 데서 사람이 좋단 말이지.’
허나 그 둘이 아닌 이들에 대한 신뢰도는 아무래도 낮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그 둘이 이상하게 뛰어난 것이니까.
암만 통합진료센터 시스템이 좋고 또 둘의 티칭 마인드가 좋다고 해도 사람에게는 엄연히 자기 한계라는 게 존재하는 법 아니겠는가?
물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하윤을 적대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간호사들뿐만 아니라 신경과 쪽도 그랬다.
‘이수혁 교수님 여친…….’
‘진짜로?’
‘몰라, 그런 말이 있던데.’
‘헐……. 왜?’
‘밥 같이 먹고 그런다던데.’
‘거기 너무 바빠서 그런 거 아냐? 안대훈, 김인수, 김성진도 다 따로 밥 먹을 텐데.’
‘너 왜 발작하듯 그러냐? 너 설마 이수혁 교수님 좋아하냐?’
‘어, 좋아하는데?’
레지던트들 사이에서 슬슬 돌기 시작한 소문 때문이었다.
의학과 결혼했다던 수혁이 연애를 시작했다는 그런 소문이었는데…….
그저 흘려 넘길 만한 소문은 아니라는 게 정설이었다.
단둘이 밥 먹는 빈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해서 그랬다.
“여기 컴퓨터 좀 써도 되죠?”
“아……. 네. 얼마든지요.”
뭐 그런 얘기를 레지던트 주제에 펠로우 앞에서 떠들 만큼 개념이 없거나 담력이 강한 인간은 없었기 때문에 스테이션은 그저 조용했다.
덕분에 하윤은 컴퓨터 하나를 차지한 채 환자 일보부터 들여다볼 수 있었다.
‘오빠는 그냥 이렇게 보다가 이거다 하고 가면 이상한 케이스가 나오고 그러던데…….’
수혁의 진료 능력도 능력이지만 하윤이 진짜 신기하게 여기는 쪽은 오히려 이쪽이었다.
마법이나 다름없는 능력 아닌가?
그런 걸 고려해 보면 조태진이나 안대훈이 사이비 쪽으로 빠지는 것도 아주 우연은 아닌 것 같았다.
확실히 오컬트 취향이 강한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달까?
‘어…….’
그렇게 마음 한켠으로는 수혁을 떠올리면서 환자 일보를 드륵거리고 있으려니 눈에 들어오는 환자 하나가 있었다.
남자 41세.
6개월 된 양쪽 하지 쇠약을 주소로 내원 한 환자였다.
이렇게만 보면 뭐 사실 신경과 환자라고 했을 때 그리 특이한 환자는 아니긴 했다.
하지 쇠약이야 워낙 많이 보는 증상이지 않나.
하윤의 눈길을 끈 것은 과거 병력이었다.
‘페르테스병에 전신성 홍반성 루푸스에 쇼그렌까지……?’
무슨 자가면역질환 백화점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뭔 일이란 말인가.
‘근데 담배는 하루에 20개비를 피우네. 심지어 약도 안 먹어……?’
보통 저쯤 되면 관리를 좀 열심히 하게 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아프지 않은데 관리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아프면 다 관리하게 돼 있었다.
사람이란 그런 동물이니까.
‘진짜 특이한 사람이네…….’
헌데 이 사람은 이 정도로 아픈 건 그냥 참을 만했던 모양이었다.
‘입원은 어제……. 외래 통해서 했구나. 하긴 이상하긴 하지. 다른 병원 다니던 병력만 있고, 우리 병원은 처음이고. 흐음.’
하윤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수혁이라면, 이 자리에서 고민하는 것만으로 더 많은 정보를 파악할 수도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하윤은 아직 일반인에 불가하지 않은가?
그럼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환자를 직접 보는 것.
“어……. 환자 보시게요?”
담당 간호사가 다가와 물었고 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로서는 떨떠름할 수밖에 없었다.
펠로우라고 해 봐야 병원 사람들이나 알아보는 직급이지 않나.
환자들이 볼 때는 이게 레지던트인지 인턴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하필 하윤이 실제 어리기도 하고 또 나이에 비해서도 동안이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네.”
“그……. 좀 까칠하신데. 괜찮으시겠어요?”
“까칠할 수 있죠, 뭐.”
누가 봐도 교수 같은 사람이 와서 보면 환자들의 태도도 달라지겠지만, 이렇게 어린 사람이 오면 귀찮아만 할 수도 있었다.
해서 말을 해 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누누이 말해 온 것처럼 하윤도 좀 이상한 사람이라서 그랬다.
망설이기는커녕 그길로 환자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인사부터 날렸다.
“안녕하세요, 환자분. 통합진료센터 우하윤입니다.”
“어……. 어디요?”
“통합진료센터요. 진단이 아직 안 된 환자분을 보는 과입니다. 환자분 아직 제대로 된 진단이 안 되어 있던데요.”
“아……. 네, 그렇긴 하죠. 뭐 이것저것 보긴 하던데…….”
“네, 어떤 검사 나갔는지는 확인했습니다. 몇 가지 질문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아……. 네. 뭐……. 그래요. 근데 의사이긴 한 거죠?”
“네. 전문의입니다.”
“아……. 그래요. 그러시죠.”
하윤은 영 뜨뜻미지근한 반응에도 굴하지 않았다.
어차피 뭐 의사는 진료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나?
게다가 경험상 아무리 이렇게 나오는 환자라 해도 막상 의사가 뭐 시키면 다 하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생각보다 병원에서 환자와 의사 관계는 상당히 일방적이었으니까.
“한번 일어나 보실까요?”
“어……. 힘든데.”
지금도 봐라.
입은 투덜거리지만 벌써 일어났잖아.
‘서 있는 것 자체는 괜찮아 보여.’
하윤은 환자 상태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걸어 볼래요?”
“어……. 네.”
걷기 시작하자 이상 소견이 보였다.
골반이 휘청거린다.
근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증거였다.
그 외에 한 발로 서라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불안정해 보였다.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양쪽이 대칭적으로 약화되어 있었다.
‘흐음…….’
아까 봤던 신경전도검사와 환자의 병력 그리고 지금 관찰한 소견까지 더해서 보니 뭔가 떠오를 것도 같았다.
해서 하윤은 수혁이 그러는 것처럼 잠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