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화 우리가 활약해야 해! (3)
“토젼이요……?”
“네, 토젼.”
안대훈의 말을 들은 전공의, 그러니까 환자의 주치의는 자기가 잘못 들었나 하고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토젼이라니…….
꼬이는 거 아닌가?
어디가 어떻게 꼬였다는 거지?
“충수돌기 토젼이요. 아까 보신 거 아니에요?”
“아……. 보긴 했는데…….”
저건 그냥 염증 아닌가?
다행히 수술 끝나고 다음 수술 시작하기 전에 시간이 좀 있어서 자세히 보았더랬다.
헌데 아무리 봐도 염증 소견 말고는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보니 딱히 다행으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봐도 봐도 모르겠으니…….
‘이게 안대훈이 아니라 다른 놈이면 개소리한다고 하겠는데…….’
안대훈.
명실공히 이수혁 교수의 수제자이지 않나.
망할 놈이 쓸데없이 똑똑해서 문제였다.
“그…… 교수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급해요. 혈관 문제라, 이거 늦어지면 경색이 심해지면서 터질 거예요. 예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빨라요.”
“아…….”
“급합니다. 다음 수술로는 들어가야 할 거예요.”
“네네. 알겠습니다.”
허나 급하다는 말을 듣고 나니 불만이 급격히 사라졌다.
다른 과도 아니고 외과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워낙에 급한 상황을 많이 보지 않았나.
조금 늦는다고 뭐가 어떻게 되나? 하기엔 진짜 죽는 환자를 너무 많이 봤다.
죽지는 않더라도 굳이 겪지 않았어도 될 만한 합병증을 겪는 환자는 정말 많이 봤고.
“교수님.”
해서 레지던트는 전화를 끊자마자 지정의 교수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어……. 환자 벌써 내려왔어?”
외과는 힘든 과다.
레지던트뿐 아니라 교수도 힘들다.
그렇다 보니 전화에 답하는 음성이 참으로 피로해 보였다.
기운이 하나도 없다고 해야 할까?
“아, 아뇨.”
“그럼? 설마 환자 안 좋니? 이상하다? 수술 잘됐는데?”
“아,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뭐야, 인마. 급한 거 아니면 이따 말하면 되지.”
“그…….”
갑자기 온 전화에 드는 생각이 이따위 것들뿐이니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수술이라는 게…….
외과 의사에게 필수적인 것인 동시에 걱정되는 것이라 그랬다.
이게 참 하다 보면 문제가 안 생기기가 어렵지 않겠나?
해서 한숨과 함께 답을 한 건데 그건 아니라니 목소리가 한결 풀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객관적으로도 듣기 좋은 목소리가 된 건 아니었지만.
“임한영 환자 있지 않습니까?”
“임한영……?”
“어제 응급실 통해서 입원했던 충수돌기염 환자요.”
“아, 아아. 걔 왜? 너무 힘들대? 그래도 어쩌겠냐. 걔 말고는 다 암 환자 아니면 80 넘은 노인인데. 애가 참아야지.”
교수는 짜증 내는 대신 좋게 타일렀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한데, 또 힘들어하는 게 이해는 가서 그랬다.
애를 키워 보니 애 아픈 거 보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지 않던가.
허나 레지던트는 답답해졌다.
‘아니……. 딴소리만 하시네.’
슬슬 다음 환자 내려올 때가 되었다.
톱니바퀴 돌아가듯 하는 대학 병원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부르면 그 일 하러 가야 한다는 뜻인데, 교수란 사람은 내내 이러고 있으니 이 어찌 답답하지 않을 수 있겠나.
아무튼, 서둘러야만 한다는 생각에 레지던트는 방금 안대훈에게 들었던 내용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아니, 걔가 충수돌기염이 아니라 충수돌기 꼬임일 수 있어서요.”
“꼬임……? 정말이야?”
사실 말을 하면서도 꼬임? 그게 뭔데라고 할 거라고 생각했다.
설마하니 충수돌기 관련한 질환 중에 자신이 아예 듣도 보도 못한 질환이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해서 그랬다.
허나 예상과는 달리 교수의 반응은 꽤 날카로웠다.
“어……. 네.”
얼떨떨한 마음에 그렇다고 하자, 교수의 질문이 쭉 이어졌다.
“어떻게 의심하게 됐는데?”
“통증의 정도가 발생한 시점에 비해 너무 심해서요. 초음파 소견도 심하고…….”
“어제 한 거? 그건 나도 봤는데……. 심하긴 했어도 이상하게 여길 정도는 아니었잖아?”
“아, 방금 또 했습니다.”
“방금? 어떻게? 아니, 아니야. 어디 있는데, 사진?”
“네, 기록에 붙여 놨습니다.”
“기다려 봐. 끊지 말고.”
엄청 급해 보였다.
수술하는 과 특유의 촉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거……. 급하게 안 보면 큰일 나는 병인가 본데……?’
교수쯤 되면 어지간한 일에 있어서는 여유가 넘치기 마련이었다.
특히 태화 의료원 외과 교수들은 그 정도가 더했다.
날마다까지는 아니더라도 정기적으로 김승규의 얼굴을 봐야 하지 않던가.
좋건 싫건 담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부작용으로 버티지 못하고 나가 버리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교수는 그걸 견딘 사람이었다.
“이런 시발……. 그렇네? 왜 이렇게 빨라? 게다가…….”
하여간, 교수는 진료 기록에 뜬 사진을 확인하자마자 욕설부터 내뱉었다.
특히 안대훈이 표시해 놓은 부분을 봤을 땐 쌍욕까지 내뱉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명백한 소견이 있었으니까.
이건 꼬였다…….
“야! 애 내려!”
“네? 다음 환자는요?”
“양해 구하든지 해야지! 이러다 애 죽어! 아니, 죽지는 않더라도…….”
“어어……. 네네, 알겠습니다!”
죽는다고 했다.
이 교수가…….
담이 크다 못해 부은 것 같은 사람이 쫄았다.
그럼 그를 모시는 입장인 레지던트는 어떻게 되겠나.
덩달아 쫄 수밖에 없었다.
안 쫄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니겠나.
“네?”
안대훈은 아직 환자 옆에 있었다.
담당 간호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해는 안 가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곧 부를 겁니다. 내려갈 준비 하시죠.
안대훈이 이런 식으로 공수표를 날려 놨는데 그럼 어쩐단 말인가.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그 인자한 미소라니.
병원에서 보기는 무척 힘든 표정이었다.
어디 종교 시설에나 가야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미소였다.
그대로 따다 조각하면 불상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헌데 전화가 왔다.
“지금 내려요!”
그것도 비명과 함께.
“그러니까 임한영 환자 내리라는 거죠?”
“네네! 그렇다니까? 지금 수술 안 하면 환자 죽는대요!”
“네에……?”
아파하긴 하는데, 그렇다고 죽을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설익은 판단은 아니었다.
외과 병동 간호사가 겪는 일을 다 나열하면 아마 토할 사람 여럿일 테니까.
그만큼 험악한 삶을 살게 된다 이 말인데…….
“내려요!”
“아, 알겠습니다.”
그런 삶 속에서 단련된 촉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지만…….
레지던트가 비명 지르고 있는데 그럼 어쩐단 말인가.
머릿속으론 저 방 환자 하나 이미 내렸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일단 아래서 어떻게 할 거란 생각으로 환자를 내려보냈다.
“같이 가시죠. 제가 더 자세한 설명을 해 드려야 할 거 같으니까요.”
“아……. 네, 정말 감사합니다.”
다행한 일은 일단 이 환자와 보호자는 불만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좋아할 거다.
처음에 수술 시간 배정에는 실수가 있어 보이긴 하겠지만 하여간, 나이 지긋해 보이는 사람이 와서 친절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진료를 보아 줬으니까.
그 결과로 예정된 시각보다 훨씬 일찍 내려가게 되기도 했고.
아이는 이제 바로 수술할 거란 생각에 무서운지 울상이 되었지만, 보호자는 웃고 있었다.
그렇게 내려간 안대훈 일행은 수술 대기실에서 곧 레지던트를 마주할 수 있었다.
레지던트는 원래 지금 순서인 환자와 실랑이 중이었다.
“간단한 수술 하나만 하고 바로 들어가실게요.”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환자는 딱 봐도 병색이 완연한 것이 암 환자 같았다.
그런 사람이 자기 앞에 간단한 수술 하겠다는 말을 어떻게 평화롭게 납득하겠나.
해서 뭐라고 하고 있으려니 어쩐지 눈이 부신 느낌을 받았다.
안대훈이었다.
“환자분.”
말투만 들어서는 아미타불 같았다.
하지만 분명히 환자분이라고 했기에 답했다.
“네? 뉘신지…….”
“저 아이가 앞서 수술받을 아이입니다.”
“애? 애예요?”
“네. 이제 막 만 열 살이 된 아이죠.”
“어…….”
암 환자는 태화 의료원에 암 외에 다른 환자가 있을 거란 생각을 당장 떠올리지 못했다.
보통 애라고 하면 암 말고 다른 질환을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태화에 입원한 암 환자에게는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본디 대학 병원이라는 곳이 그렇지 않나.
온갖 비극이란 비극은 한데 모아 버무린 곳이라 해도 좋았다.
눈에 띄게 수그러든 환자를 보면서 안대훈은 말을 이었다.
‘아마 교주님이라면 솔직하게 말씀하셨을 거야.’
수혁을 떠올리면서였다.
안대훈이 수혁이었다면 아마 그대로 했을 터였다.
하지만 말하는 사람이 달라지면 반응도 크게 달라지지 않던가.
안대훈은 그러한 사실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대외 이미지를 아주 신경 썼다.
공부해 보니 사이비로 매도되는 집단일수록 그런 게 필요해서 그랬다.
“아이가 지금 수술 안 받으면 오늘을 무사히 넘기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안대훈의 말에 레지던트가 조금 당황했다.
그 정도인가? 싶어서 그랬다.
하지만 교수도 죽을 거라고 했으니 과장은 아닌 거 같았다.
무엇보다 안대훈이 자기 환자도 아니고 남의 환자한테까지 와서 거짓말할 이유가 어딨단 말인가.
“아……. 그럼……. 양보하겠습니다.”
암 환자는 선한 사람인 데다가, 본인이 아픈 만큼 남도 아플 수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보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암이라는 질환이 몇 시간 더 지체된다고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서이기도 그랬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에유, 애가 안됐네.”
덕분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아이는 그대로 수술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안에 들어가자 놀랍게도 교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그랬다.
레지던트가 뭐 열심히 하는 애긴 한데, 그만큼 우수한 애인가 싶었다.
충수돌기 꼬임 즉 비틀림은 무척 드문 병이고, 일개 레지던트 수준에서 의심할 수 있는 질환은 아니었다.
“아……. 안대훈 선생이구나.”
“아, 네. 교수님.”
“과연, 내 이상하다 싶었지.”
헌데 들어서는 사람을 보니 안대훈이 있었다.
그제야 납득할 수 있었다.
교수는 수혁교의 일원이라 그랬다.
뭐, 교의 일원이라기보다는 수혁을 인정하는 팬클럽의 일원이라고 해야겠지만.
안대훈과 조태진은 멋대로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아무튼, 배를 열어 보니 실제로 충수돌기가 꼬여서 경색이 일어난 참이었다.
이대로 좀만 더 두었다가는 터졌을 것이고 그랬다간 죽지는 않아도 어마어마하게 고생을 했을 것이 뻔했다.
“고마워요, 안 선생.”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죠.”
“통합진료센터 사람답네. 하하.”
“하하. 그렇긴 하죠?”
안대훈은 이것으로 수혁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었다는 생각에 즐거워졌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놈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지금쯤이면 여기저기서 이적이 벌어졌어야 하지 않겠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안대훈의 기대는 기대만으로 끝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