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5화 두경부외과 (3)
“아니, 아니! 잠깐만!”
가네다 마즈히로는 너무 놀라서 일단 소리부터 질렀다.
그리곤 다른 이들, 그러니까 수두룩 빽빽하게 들어와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허나 허사였다.
‘이 사람들……?’
그냥 그럴 수 있다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어어어어!”
안대훈이라고 했나?
대머리 놈이 어느 틈엔가 달려들어서 자신의 몸을 틀어쥐고 있었다.
주짓수라도 배운 건지 뭔지 쥐는 힘이나 기술 등이 보통이 아니었다.
나름 일본에 있을 때 유도를 배운 몸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제압당한 상황이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물론 그 전에 이미 마음이 꺾여 버렸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지 않던가.
근데 꺾였다.
뭐…….
꺾여도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있긴 한데……
“어어어어어어!”
의사가 가운 입고 와서 바지 벗기고 있는데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당황해서 소리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예 없었다.
“아니, 이거 진료하려고 하는 거예요.”
“어어어어어!”
“왜 이래. 한국어 잘하시는 거 같더니.”
“어어어어어!”
다들 모여 있던 와중에 갑자기 바지를?
환자는 발버둥을 쳐 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이전 같았으면 하윤도 바로 이 사람이 왜 이러는지 알아차렸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 통합진료센터 인간들 때문에 오염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해서 하윤은 무려 환자가 열 번 넘게 어어어어어!를 외치고 나서야 왜 저러는지 알아차렸다.
‘아……. 저거 나 때문이로구나.’
자기 빼고 다 남자다.
환자도 남잔데…….
지금 바지를 내리려고 하고 있지 않나.
수혁이 이제 와서 머리가 휘까닥 했을 리는 없을 테니, 저 안에 든 것을 봐야 진단이 될 거란 확신이 있을 터였다.
의사가 진료 때문에 그러는 건 당연한 일인데……
‘거참. 사람이 촌스럽구만?’
환자가 의사가 여자라는 것 때문에 저러다니.
“휴.”
하윤은 아쉬움에 한숨을 푹 쉬고는 앞으로 나섰다.
그러니까 환자에게로 나섰다는 얘기다.
누누이 말하지만 이전의 하윤이었다면 굳이 자신이 진료에 나서지 않아도 되는, 지금처럼 의사가 환자를 숫제 둘러싸고 있다고 해도 좋을 만한 상황에서는 굳이 이러지 않고 그냥 뒤로 물러나 줬을 터였다.
하지만 하윤은 주변에 워낙에 미친놈들만 있는 환경에 지나치게 오래 노출이 되고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줘야 했다.
아무튼, 하윤은 수혁의 손놀림을 도우면서, 동시에 더더욱 경악하고 있는 환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도 의사입니다.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그…… 어어어어어!”
그러곤 이렇게 똑 부러지게 말을 해 주었다.
별 소용이 있진 않았다.
환자도 알긴 알지 않겠나?
하윤이 의사라는 거, 그리고 진료를 위해서 뭔가 보여 줘야 할 때도 있다는 것 정도는 다 알았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싫었다.
왜?
‘아니, 나…… 나…….’
상스러운 말일 수도 있는데 X진국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나?
일본은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훨씬 성적으로 개방된 나라였다.
자만추라는 말이 이제야 유행하는 한국에 비해 20년은 더 앞선 상황이다, 이 말이었다.
가네다 마즈히로…….
한류 덕에 한국으로 넘어오기 전에 여자친구를 많이도 사귀었더랬다.
한국 기준으로 보면 문란하다는 표현까지 쓸 수 있는 삶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좀 병이 있긴 있었다.
“어어어어!”
“이러니까 더 수상하네. 일본어 되는 사람 없어?”
“저 됩니다.”
“이제부터 내가 당신 성기를 보겠습니다, 라는 말을 좀 해 봐.”
“아……. 네.”
짬과 광기에 밀려서 뒤에 있던 장종우가 손을 들고 나섰다.
아마 장종우도 이전의 장종우였다면 수혁이 요청한 대사가 너무 폭력적인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겠지만, 이제는 다 틀린 마당이었다.
김인수가 다트 만들 때 신나서 옆에서 용접하던 놈이 달리 무슨 생각을 할 수 있겠나.
해서 그대로 읊어 주었다.
한국어로는 아직 그런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환자는 무척 놀랐다.
아니, 올 것이 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왜, 왜!”
“봐야 하니까. 아, 됐다. 무슨 힘이 이렇게 세냐.”
머리로는 납득이 안 됐는데 몸이 납득을 했는지 아니면 안대훈이 기술을 건 게 드디어 먹히기 시작했는지 아무튼, 손에서 힘이 쭉 빠져 버렸다.
그렇게 바지가 쑥 내려가 버렸다.
“흠.”
“흐으음.”
바지뿐만 아니라 팬티도 한 방에 내려가 버렸다.
그러자 마침내 수혁이 타겟하고 있던 환자의 장기 또한 눈에 들어왔다.
“장갑.”
“네.”
김성진은 옆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장갑을 건넸다.
바지 붙잡을 때부터 다 예상해서 그랬다.
성기 또는 항문.
이 두 기관은 사실 굉장히 약한 기관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어떤 질환이 있을 경우 꽤 영향을 자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의료진들에게 많은 힌트를 주기도 하고.
고마운 장기라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맨손으로 만질 수 있을 만큼 고마운 건 또 아니다 보니 장갑이 필요했다.
“자아…….”
환자는 이제 마음이 완전히 꺾여서 포기한 상황이었다.
슬램덩크의 명언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포기하면 편해.
진짜로 그럴 줄은 몰랐다.
눈물도 안 나왔다.
“흐음. 역시.”
수혁은 성기 옆면으로 궤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파요?”
“네? 마음은 아픕니다.”
“아니, 제가 지금 건든 부분.”
“네? 모르…… 모르겠는데요?”
“그렇군.”
통증이 없는 궤양이다.
동시에 혀의 궤양과 경부 림파절…….
그리고 지금까지 했다는 치료 등을 수혁은 그 자리에서 종합하기 시작했다.
[지인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테로이드성 연고를 발랐다고 했죠?]
‘그거 불법 아니냐? 남의 약 쓰는 거?
[이미 바른 걸 어쩝니까.]
‘그건 그렇지. 하지만…… 아무튼, 스테로이드를 발랐음에도 전혀 호전이 없었지.’
스테로이드를 왜 주의해서 써야 하는가.
약이 너무 좋아서 그랬다.
약이 진짜 세다 보니 심지어 암에서도 일부 효과를 보일 때가 있었다.
허나 감염병으로 인한 병이라면, 오히려 효과가 없거나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매독.”
수혁의 입에서 진단명이 툭 튀어나왔다.
아직 매독 진단을 위한 혈액 검사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었다.
뭐…….
외래다 보니 수액을 달면서 피를 뽑은 것도 아니다 보니 아예 검사를 나가지도 않았다.
그저 외래 진료실에 접수가 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 근데 수혁아.”
매독이라는 진단명을 들은 신현태가 앞으로 나섰다.
아무래도 감염내과지 않나.
원장 노릇 하느라 최근에 진료에 좀 신경을 못 쓰고 있다고는 해도, 어찌 되었건 감염내과 공부는 소홀히 하고 있지 않았다.
사실 신현태 정도 되면 잠시 소홀히 한다고 해서 대가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하지는 않을 터이긴 했다.
“네.”
“매독이랑 혀의 병변은 따로 아닐까? 사실 일본…… 요새 20대라면 매독 걸렸다는 게 그리 특별한 일은 아냐. 환자분 생긴 것도 그렇고 준수하시니…… 열 배도 넘게 늘었거든, 일본은.”
“저도 그건 봤어요. 그리고 삼촌 말대로 별개의 소견일 수도 있죠. 하지만…….”
“하지만?”
신현태의 말에 수혁이 답하기 전에 조태진이 나섰다.
그 또한 혈액종양내과 의사이지 않나.
거의 다 고형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두경부암을 주로 보는 사람은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외한은 아니었다.
“근데 경부 림프…… 아까 네가 만지면서 있다고 한 곳 말이야. 그거 설암일 때 먼저 번지는 곳 아니야?”
“그것도 맞죠. 하지만, 원래 림프절은 감염이 있을 때 더 잘 붓죠. 원인과 별개로 부을 수 있습니다.”
“아, 그건…… 그렇군.”
아니, 문외한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무려 경부 임파선을 만지는 것만 봐도 임파선 레벨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지식을 쌓고 있었다.
통합진료센터에 들어오지는 못할지언정 공부는 다방면으로 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학회 일원이다 보니 뭐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심지어 자기 분야 환자를 볼 때도 이 얕지만 폭넓은 지식이 어떻게든 도움이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도 했다.
“자, 이제 중요한 것은 매독에 대한 검사 및 조직 검사입니다. 생긴 건 아무리 봐도 암같이 생기긴 했어요.”
“아.”
수혁의 말에 이미 실의에 빠져 있던 환자가 바지춤을 다시 올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탄식만 내뱉었다.
“하지만 암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매독의 경우…… 무통성 궤양이 특징이긴 하지만 그로 인한 궤양이 입에 생기는 경우엔 반대로 통증을 일으키는 궤양이 생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가? 근데 매독이 왜 입에 생겨?”
이번에 입을 연 것은 이현종이었다.
최근에 이기자 교수와 결혼을 하긴 했지만 거의 평생을 모쏠로 살아 온 사람 아닌가.
이기자 교수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긴 해도 여전히 남녀 간에 벌어지는 일에는 무지한 편이었다.
차라리 야동이라도 봤다면 모르겠는데…….
이현종은 젊은 시절부터 노년 시절에 이르기까지 의학만 들들 판 사람이었다.
그 외에는 먹는 것과 골프만 했다.
“아.”
수혁은 잠시 당황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야동도 필요하긴 하지?’
[아니……. 여기서 그런 논리가 나온다고?]
속으로는 바루다에게 역공을 가하면서였다.
“그…… 구강성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
“구강성교……?”
“형은 좀 뒤로 빠질래. 이따 자세히 알려 줄 테니까.”
“아니……. 나 무시하지…… 무시하지 마…….”
이현종은 처음 듣는 단어는 아니지만 상당히 낯선 단어에 의해 풀이 죽었고, 그대로 뒤로 떠밀렸다.
애초에 좁은 진료실 안에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수혁이 얼굴도 안 보이는 위치까지 떠밀리는 데까지 거의 순식간이었다.
“환자분, 입으로도 하시죠?”
“그…… 여기서 그런 얘기를 해야 하는 거죠?”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후, 수혁은 환자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환자는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진 상황이었다.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의사가 진료하는 거니까.
“그, 환자분. 부끄러워하시기 전에 일단 팬티는 올리시죠.”
“으아아.”
환자는 그제야 자신의 몰골을 깨닫고 바로 팬티를 올렸다.
그러고 나서야 의사들이 지금까지 내내 아주 진중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혼자서 부끄러워하고 북 치고 장구 치고 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 말이었다.
해서 환자도 비로소 진중한 얼굴이 되어 자신의 지난날을 떠올릴 수 있었다.
‘입으로도 해 봤냐고?’
해 봤지.
안 했겠냐?
“했습니다…….”
“역시.”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기뻐하고 자기들끼리 파이팅할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좋아. 백정환 교수님께 말씀드리고 바로 조직검사부터 하지. 피검사 나가고…… CT도 찍고.”
“아, 정환이는 내가…….”
“구강성교도 모르는 사람이. 내가 할게. 원장이 간다.”
그리고 막 저렇게 축제처럼 서로서로 손들고 나설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드르륵.
환자의 생각과는 별개로 벌써 외래 문이 열리고 아까 들어와 있던 의사들이 우르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백정환 교수님!”
“여기 암 아니고 매독!”
“구강!”
이 지랄을 하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