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4화 이수혁 (2)
“이거…….”
수혁이 보여 준 것은 흰줄숲모기의 사진이었다.
말 그대로 흰줄이 다리와 몸통에 걸쳐 그어져 있는 모기였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이나 혹은 강원도에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익숙할 수도 있었다.
흰줄숲모기라고 하면 낯설겠지만, 아디다스 모기라고 하면 느낌이 올 테니까.
보통의 모기들보다 훨씬 독한 놈이라고 인지하고 있을 텐데…….
“이거……. 네, 기억나요. 물렸어요. 근데…… 전에도 이놈한테 물린 적이 있는 거 같은데……?”
환자는 유심히 그 모기 사진을 살피고 있었다.
사실 그뿐 아니라 김성진 또한 사진을 보고 있었다.
암만 봐도 그가 군의관 시절, 즉 GOP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봤던 그 모기 같아서 그랬다.
“교수님, 이거 위험한 거예요?”
김성진의 말에 수혁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한국이 살기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감염병을 잘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알게 되기 마련이었다.
치안만 좋은 게 아니라 병에 있어서도 상당히 안전한 나라 아닌가.
“우리나라에도 이 모기가 있죠. 흰줄숲모기라고 하는데……. 일본이나 대만에서도 관찰이 됩니다. 근데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얘가 딱히 옮기는 질환이 확인된 적이 없어요. 뭐 아주 드물게 뎅기 정도? 하지만 통계에 잡히지도 않을 만큼 드물기 때문에 크게 의미는 없죠.”
“아…….”
같은 모기라 해도 지역에 따라 옮기는 바이러스가 다를 수 있다는 걸, 이 자리에 있던 이들은 처음 알았다.
모기 매개 질환이라고 하면 그냥 그 모기가 옮기는 병인갑다 할 뿐이지 않겠나.
하지만 모기 매개 질환에서 중요한 건 단순 모기만이 아닌 그 지역의 기후와 풍토병이었다.
그리고 한국은 각종 전염병이 번지기가 그리 쉬운 곳이 아니었다.
사계절이 이토록 뚜렷한 나라가 또 어디 있겠나.
적응하기 힘든 건 사람뿐 아니라 바이러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대한민국 무기의 신뢰도가 전 세계 제일이라는 말이 있겠나.
아무튼, 그렇다 보니 어지간한 감염병은 죄 사멸하는 편이었다.
예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관상수로 키우는 부레옥잠 또한 전 세계적으로는 악명 높은 생태계 교란종이다.
어마어마한 번식력과 더불어 호수 전체를 가려 버려 물고기를 비롯한 생태계를 망가뜨리기 때문인데, 대한민국의 겨울만은 견디지 못해서 해마다 다 죽어 버린다.
“하지만 남미는 얘기가 완전히 다르지.”
“그럼 뎅기일까요?”
“뎅기열도 무섭지. 하지만……. 뎅기열은 이미 두 번이나 음성이야.”
“아……. 맞다. 그랬죠. 어? 말라리아도 음성이고……. 딱히 나온 게 없었지 않습니까?”
“그래, 그랬지.”
이제 대한민국은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국제화 사회였다.
당장 주변만 봐도 해외여행 다녀와 본 사람이 한 번도 다녀와 보지 않는 사람보다 많지 않나?
그러한 연고로 여러 가지가 변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는 병원도 끼어 있었다.
태화 의료원 응급실에도 열대 질환 세트가 있을 정도였다.
문제가 있다면 아직은 미흡하다는 점이었다.
“근데 이런 병들만 있는 게 아냐.”
“황열?”
“아니, 그건 아선에서 음성이었지.”
떠들어 대던 김성진 대신 안대훈이 답했지만, 이번에도 꽝이었다.
남은 건 하윤뿐이었지만…….
하윤이라고 해서 뭔가 제대로 된 답을 내놓긴 어려워 보였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질환이 대한민국에서 진단된 경우가 아직 없으니까.
뭐 수혁 모르게 진단을 내렸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케이스 리포트를 쓰지 않았겠나?
썼는데도 수혁이 모를 확률은 거의 제로라 해도 좋았다.
“그럼 대체 뭘까요?”
“자, 우선 환자의 임상 경과를 보자. 환자분, 모기 언제 물렸어요?”
“어……. 거의 비행기 타기 전날인가? 그날인가?”
“그렇군요. 역시. 그리고 여기 오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이틀 정도 되었나요?”
“네, 거의 그쯤…….”
수혁은 이미 진단을 내렸기 때문에 약을 주었다.
페티딘.
실제로 통증이 있는 경우라면 이 정도 마약성 진통제로 의존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을 넘어 케이스 리포트 감이라고 보면 되었기 때문에 별 부담 없이 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환자는 확실히 아까보다 훨씬 편해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환자는 태화에 오길 잘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3일째 되는 날부터 통증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 전에는 아무 증상이 없었나요?”
“아, 아뇨. 좀……. 몸이 불쾌했습니다.”
“그래요. 그리고 응급실에 가서 검사했을 때 혈액검사에서는 딱히 이상이 없었죠?”
“아……. 그런가요?”
“네. 그랬습니다. 방금 질문은 여기 의사들에게 한 거예요.”
“아, 네네.”
환자도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의사들도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확실히 처음 간 병원에서 한 검사에서는 이상 소견이라고 해 봐야 CRP 그러니까 급성 염증 소견 좀 뜬 것 말고는 뭐가 없었다.
그렇게 심하게 뜬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그 검사 결과만 놓고 보면 진통 소염제를 처방했던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다음 검사에서도……. 사실 눈에 띌 만큼 이상한 건 없었어. CRP도 심하게 올라가진 않았고. 다만 하나의 경향성을 보이지.”
“경향성이라고 하시면……?”
제자들은 수혁의 말을 경청했다.
펠로우, 임상강사뿐만 아니라 레지던트들도 다들 그랬다.
어차피 자신들이 하는 추론은 의미가 없을 거 아닌가.
위에서 까였는데 밑에서 뭘 하나?
김성진, 안대훈이라고 하면 레지던트들에게 있어 어지간한 교수들보다도 똑똑한 사람으로 인지되는 이들이었다.
그들도 모른다면 이제 남은 건 그저 듣는 것뿐이었다.
“여기 보면 백혈구 수치에서 림프구가 조금씩 줄지?”
“아……. 네.”
이것도 봐라.
준다고 하니까 그런갑다 하는 것이지, 아니었으면 그냥 넘어갔을 터였다.
왜?
딱히 뭐 붉게 표기된 것도 아니거든.
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정상 범위 안에 있다, 이 말이었다.
더 환장할 것은 지금 수혁이 말하는 뉘앙스로 미루어 보건대 심각한 질환인 거 같은데…….
이거 말고도 다 정상 소견이라는 점이었다.
“이대로 좀 더 지나면 림프구가 붉게 표기될 만큼 줄어들 거야. 그러면서 동시에 호중구가 증가해 있다거나 또는 혈소판이 감소해 있는 소견은 없지?”
“네, 경향도 안 보이는 거 같습니다.”
“그래. 만약 뎅기라면. 그러니까 이렇게 통증과 발열을 일으킬 수 있고, 모기가 옮기는 병인 뎅기열이라면 호중구도 증가했을 거고 혈소판도 감소했을 거야.”
“아…….”
“특히 이런 식으로 증상이 심하다면 당연히 그랬어야 하지. 근데 아니야. 그렇다면 뎅기보다는 다른 제삼의 질환을 의심해야겠지. 하지만 임상에서는 심지어 이 질환이 호발하는 지역에서도 뎅기로 오진하고 치료하는 경우가 많아.”
“아……. 그렇군요……. 아…….”
“이 병의 이름은…….”
마치 ‘너의 이름은’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뜸 들이다가 말한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치쿤구니야’야. 들어 본 적 있는 사람?”
수혁의 말에 다들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 고개를 끄덕이거나 자신 있게 네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럴 만했다.
정말 드문 병이긴 하니까.
특히 대한민국에서 보기란 더더욱 어려운 병이었다.
“어…….”
오히려 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분은 들어 보셨군요?”
“그, 네. 재작년인가 유행했다고…….”
“네, 돌고 도는 병입니다. 이번에는 그런 보도 들어 본 적 없으세요?”
“없습니다.”
“그럼 제가 그쪽 방역 당국에 알려야겠네요. 환자분이 유행의 시초일 수도 있어요.”
“아…….”
“아무튼, 검사를 일단 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좀 불편하시겠지만 진단을 빌미로 약을 안 드리거나 하진 않을 테니, 일단 안심하세요.”
“네, 네! 감사합니다.”
환자가 이렇게 반응할 수 있는 건 그가 치쿤구니야라는 병을 알고 있어서도 그렇긴 하지만, 그보다는 약이 들어가면서 정신이 돌아와서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 만큼, 환자는 아주 대만족이었다.
‘어휴……. 그렇게 아프더니만…….’
약 하나 들어갔다고 이렇게 다르다니.
그런데 뭐?
마약?
진짜 할 수만 있다면 싹 다 고소하고 싶었다.
“치쿤구니야 항체 검사랑 치쿤구니야바이러스 Reverse Transcription-Polymerase Chain Reaction (RT-PCR) 나가 보지.”
그렇게 환자가 혼자만의 만족감에 들떠 있는 동안 수혁은 처방부터 내렸다.
확인하는 데까지 시간이 꽤나 걸리긴 할 터였다.
그렇다면 그냥 그걸 기다려야만 할까?
보다 효과적인 증상이 없을까……?
나름 감염내과 짬밥이 있는 김성진이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항생제나 다른 치료는 어떻게 할까요?”
“아……. 별 의미 없어요. 아직 백신도 없고, 약도 제대로 없어요. 그냥 쉬면서 수액 치료하면서 증상에 대한 치료하는 게 다예요. 뎅기열은 아니니까 그나마 약 쓸 때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를 쓸 수 있는 게 다행이죠.”
“아…….”
“그리고 모기장을 쳐야 합니다. 뭐……. 벌써 모기가 있을 것 같진 않은데, 저 사람을 문 모기가 다른 사람을 물거나 하면 여기서도 번질 수가 있어요.”
“아, 아! 네!”
평소라면 이렇게까지 빠릿빠릿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바로 작년까지만 해도 코비드였지 않나.
전염병이라고 하면 경기를 일으킬 만했다.
해서 응급실에는 때아닌 모기장이 쳐졌다.
환자는 좀 어리둥절해했지만 뭐가 되었건 아까처럼 아프진 않았기 때문에 흡족해하는 표정이 어디 가진 않았다.
“일단 해결됐네. 아휴, 이 사람 이거 엄청 고생했겠어. 하필 인상이 저래 가지고 더 그랬지.”
“그러니까 말입니다.”
“김승규 교수님도 그렇지만 다들 얼굴만 보고 범죄랑 엮지는 말자고.”
“네, 교수님.”
수혁은 그 환자를 보면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수혁도……. 의심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난 맞혔잖아.’
[제 덕분에요.]
‘응, 뭐. 어쩌라고.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와…….]
그렇게 잘난 척을 한 후, 센터로 돌아간 일행은 초조한 얼굴의 의사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모르는 얼굴은 아니었다.
내과 의사들이었으니까.
다만 익숙한 얼굴도 아니긴 했다.
입원 전담의라는 조금은 생소한 부서의 의사들이었다.
“박 선생님? 여긴 어쩐 일이에요?”
물론 수혁은 바루다 때문에라도 병원 사람들의 얼굴을 익히고 있었기에 바로 알아보고 인사까지 할 수 있었다.
“아, 교수님. 좀 이상한 환자가 있어서요.”
“오……. 어디요?”
“사실 환자는 아니고.”
“네?”
“저기 저 친구입니다.”
어딘가를 가리키길래 고개를 돌려 보니 마스크를 낀 의사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콜록, 콜록.”
발작적인 기침을 하고 있었다.
소리만 들어도 꽤 심했고 또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성대가 이미 상했다.
“의사예요?”
“네. 동료입니다.”
“으음…….”
입원 전담의라…….
그렇다면, 저게 병원에서 옮았을 가능성이 있단 얘기였다.
[예후가 좋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젊잖아. 체형도 괜찮고.’
[그것만으로 단언하기엔…….]
‘그것도 그래.’
어느새 수혁의 머릿속에서는 치쿤구니야란 병명이 옅어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