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5화 이현종과 김인수 (2)
석좌교수?
그게 무슨 소용인가?
환자 심장이 멈췄는데.
이럴 땐 그저 제일 먼저 사태를 인지한 사람이 올라타서 누르는 게 제일이었다.
다행한 것은 이현종이 그나마 골프는 열심히 해서 팔의 근력이 썩 괜찮다는 점이었다.
체중도 뭐 나이에 맞게 천천히 증량해 온 덕에 누르는 힘도 괜찮았고.
“헥. 헥.”
물론 지치는 건 또 다른 얘기였다.
나이는 속일 수 없다 보니, 게다가 명색이 심장내과 의사이니만큼 딱 정해진 만큼 누른 만큼 금세 지쳐서 밑으로 내려왔다.
“리듬.”
“아.”
“눌러!”
교대로 올라간 것은 김인수였다.
그 또한 뭐……. 딱히 운동하는 게 있거나 하진 않았다.
사실 대학 병원에서 일하면서 따로 운동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나?
김인수가 뭐 운동에 미친 사람이라면 모르겠는데…….
원래 진짜 미치려면 하나에 미쳐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김인수는 의학에 이미 미쳐 버렸기 때문에 운동에까지 미칠 정신은 없었다.
“으허.”
해서 한 바퀴 돌자마자 나뒹굴게 되었다.
“잠깐!”
다음으로 뛰어오른 건 장종우였다.
뭐 몸 상태로만 보면 김인수나 장종우나 도긴개긴.
해서 잔뜩 긴장한 채 팔을 펴려는데, 이현종이 외쳤다.
“돌아왔어.”
“아…….”
“일시적일 거야. 에크모! 흉부외과 콜해!”
“아, 네!”
헉헉대는 김인수 대신 다음 타자로 나서려고 몸 풀고 있던 이태원이 전화를 걸었다.
예전 같았으면 쓸데없이 좀 묻기도 하고 했을 거다.
흉부외과랑 이현종은 사이가 아주 안 좋으니까.
지금도 안 좋긴 했다.
여전히 이현종은 그의 상징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피피티 화면, 즉 흉부외과 의사들이 메스 들고 뛰는 동안 심장내과 의사들이 화살 쏴서 심근경색을 잡아낸다는 화면을 여기저기서 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흉부외과는 수혁의 은혜를 지나치게 많이 받아 버린 몸이었다.
더군다나 에크모다, 에크모.
“어딥니까!”
체외막형 산화 장치(ECMO,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언제 쓸까?
사람 죽었을 때.
또는 죽을 거 같을 때.
“여기! 지금 간신히 돌아오긴 했는데……. 부정맥 있을 때마다 아미오다론 넣고 했는데도 안 돼. 리도카인까지 넣었는데 심정지야 지금은.”
“아. 그럼…….”
“곧이야. 또 멈춘다.”
“경색입니까?”
“아니, 아냐. 심혈관 멀쩡해?”
“네?”
“짐작 가는 바가 있어. 있는데 아직은 모르겠으니까 일단 묻지 말고 빨리 꽂을래?”
“네네. 알겠습니다!”
그런 상황이니만큼 흉부외과에서는 나는 듯이 도착해 환자를 이송했고, 삽시간에 에크모에 연결했다.
이렇게 말하니까 되게 수월하게 이루어진 거 같겠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심정지!”
“비켜!”
이송하다가 한 번.
“심정지!”
“아후!”
꽂으려다가 한 번.
무려 두 번이나 더 멈췄다.
아까까지 해서 세 번 전부 이현종이 제일 먼저 발견했고 당연히 그가 제일 먼저 위로 올라타 눌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김인수로서는 자연히 이현종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자라날 수밖에 없었다.
여러모로 그렇지 않나?
일단 환자가 이상하다 판단되었을 때 바로 심혈관 중재실로 갔다.
귀신같은 솜씨로 혈관 문제는 아니라는 걸 감별했고, 그 와중에 심정지 상황까지 제일 먼저 발견하고 눌렀다.
그리고, 이 심정지가 절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닐 거라고 판단하고는 즉시 에크모를 불렀다.
‘대체 어떻게?’
뭔가 비어 있다.
심장이 멈췄었다고 해서 즉각 에크모를 연결하진 않으니까.
환자가 너무 젊어서?
아니다.
그럴 수가 없다.
그런 식으로 말랑하게 추론을 이어 나가는 사람이었다면 절대 저기까지 오르지 못한다.
‘무엇을 의심하고 있는 거지?’
김인수로서는 절대로 비어 있는 지점을 채울 수 없었다.
열심히 하긴 했다.
공부도 일도.
하지만 이현종과는 도저히 채울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기 마련이었다.
그걸 벌써 채웠을 정도면 수혁이지 김인수겠나.
‘뭡니까? 교수님.’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뭐 타격을 입거나 하진 않았다.
배우려고 와 있는 거지 뭐.
그러니 지금 김인수가 집중하는 건 이현종의 움직임 자체였다.
수혁도 그렇지만 이현종도 완전한 천재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설명을 하건 뭘 하건 좀 띄엄띄엄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수혁은 잘난 척하기를 워낙에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더 나은 편이었다.
제대로 잘난 척을 하려면 상대가 자신의 추론을 얼마간이라도 따라와야 하지 않겠나?
해서 수혁은 열심히 설명을 해 주는 편이었다.
‘뭐냐고!’
안타깝게도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수혁이 아니라 이현종이었다.
나중 되면, 그러니까 상황 다 정리되고 나면 설명이야 해 주긴 하겠지만…….
나중이지 않나.
지금 당장 궁금했다.
“아까 abga 나간 거 어찌 나왔지?”
“아, 네. 여기.”
이현종이 뭐 상대 답답해하는 거 보면서 신나 하는 변태는 아니지 않나.
게다가 아직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오히려 안 좋아졌다.
걸어 들어오…… 진 못했겠지만 아무튼, 환자나 보호자 둘 다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왔겠나?
그랬을 리가 없다.
얼핏 보이는 보호자의 넋 나간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직 다른 보호자에게 연락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어디라고 특정 지을 수 없는 허공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해 가…….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
당장 이현종만 해도 눈앞에서 수혁이가 쓰러지거나 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나.
저 정도가 아니라 울부짖고 있을 수도 있었다.
모르겠다.
이현종에게 수혁은 정말 특별한 아들이니까.
“음…….”
그런 생각과 함께 이현종은 혈액 검사 결과를 봤다.
원래 이렇게 CPR을 하게 되면 중간중간 계속 피를 뽑아 가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촘촘히 검사가 이루어져 있었다.
태화 의료원이 뭐 허투루 하는 병원이 아니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젖산 산증이 있네. pH가 7.11이야. 중탄산 나트륨 수고, 다른 혈액 검사 옳지. 간 수치 어떤지 봐 봐.”
“간이요……?”
“그래, 간.”
심근 지표가 아니라 간?
마지막 CPR은 여기 있는 인원들만이 아니라 CPR 팀에서도 같이 시행했던 참이었다.
내과야 스스로도 아주 잘 한다고 하지만, 뭐든지 맨날 하는 사람들이 제일 잘하는 법 아니겠나.
태화 의료원은 별관, 암센터, 본관 이렇게 세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서 CPR 팀을 운영 중이었다.
워낙 환자가 많은 병원인 데다가 각 환자들의 중증도도 높다 보니 CPR 상황이 많이 발생하는 곳이라 필요하기도 하고 또 가능하기도 한 제도였다.
이들은 모두 응급실 소속으로 말하자면 CPR의 스페셜리스트들이었다.
머리로 아는 것과 그 머리에 든 대로 정확히 움직일 수 있는 건 천양지차라는 걸 이들의 존재가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처음 도입할 때는 메이저 과, 소위 말하는 생명 다루는 과의 반발이 있었더랬다.
돈 때문이 아니라 우리 무시하냐는 식으로.
하지만 시행한 지 몇 해 지나고 보니 통계가 말해 주고 있었다.
이 제도가 시행되고부터 확실히 CPR 이후 돌아오는 경우가 확 늘었다.
“여기 있습니다.”
그 팀의 일원, 그러니까 응급실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 이현종이 달라던 자료를 주었다.
뭐 어쩌겠나.
상대는 직급도 나이도 위다.
게다가 명망도 아주 높은 사람이었다.
얄팍하게 아는 사람들이야 저 새끼 순 나쁜 새끼래요 하지만 막상 제자들은 이현종을 존경한다는 걸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응급실이야 스승과 제자로 엮일 만큼의 유대 관계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현종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보니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음. 올랐군.”
“오를 수…… 어?”
“많이 올랐지?”
“네. 이게, 기저 질환이…….”
“있었을 거 같나?”
“아뇨, 없었을 거 같긴 하네요.”
CPR 상황은 심장이 멈춘 상황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당연히 간 수치가 오를 수 있었다.
간에도 피가 안 가고, 그렇게 되면 간세포가 파괴되는 건 당연한 얘기니까.
하지만 이렇게까지, 그러니까 정상 수치의 5배까지 오르는 경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뭔가 간 수치를 건드린 게 있을 거란 얘기였다.
“보통은 독이 이렇게 만들지.”
“독…… 이요? 독살이란 말입니까?”
“의도는 없었을 거 같은데.”
이현종은 아까, 환자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렸다.
환자의 입가에서 뭔가 익숙한 냄새가 났었더랬다.
그때부터 그걸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왜?
이현종도 이기자 교수가 끓여다 준 것을 먹은 기억이 있어 익숙했을 뿐이니까.
‘콤부차…….’
허브 제품의 대표 격이라고 해도 좋은 제품일 터였다.
그만큼 흔하게 먹는 제품이기도 한데, 문제가 있다면 이러한 허브는 약으로 쓰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독으로 쓰일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사람마다 편차가 너무 커서 일반화하기가 어려웠다.
정말 안전하고 효과가 좋은 것들은 벌써 다 약제화해서 현대 의학에서 쓰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그렇게 하고 남은 부스러기 같은 것들을 이제 와서 천연이니 뭐니 하면서 마치 진짜 건강을 위하는 제품인 양 홍보하고 팔아먹는 것인데…….
‘이게 범인인지 아닌지는 몰라. 하지만, 논문을 보면 꽤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보고가 있었지.’
꼭 콤부차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용량과 효능을 정확히 알기 어려운 모든 약은 이럴 때 범인으로 의심해야 했다.
해서 이현종은 후 하고 한숨을 한번 쉬고는 환자 보호자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환자는 에크모에 의해 생을 부지하고 있었고, 보호자는 그 환자를 차마 보지 못한 채 넋이 나가 있었다.
지금 눈앞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얼굴이기도 했다.
뭐…….
뭐가 되었건 지금은 그냥 두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의사는 공감해 주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어야 하니까.
“보호자분.”
“어…….”
“보호자분.”
“아, 네.”
해서 이현종은 억지로 상대를 무의식의 세상에서 데려와 이것저것을 묻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콤부차 만들여 먹였죠? 이러지는 않았다.
다른 기저 질환이 더 중요했으니까.
“혹시 학생이 어디 아픈 데가 원래 있거나 하진 않았어요?”
“네?”
“약 먹어야 하는 질환이 있었냐는 뜻입니다. 고혈압, 당뇨 같은 거.”
“아, 아뇨. 비염……? 근데 그것도……”
“비염, 그거야 뭐. 달리 약 먹는 건 없었다는 거죠?”
“네.”
“영양제는요?”
“영양제도 딱히……. 아직 뭐 먹으라고 해도 챙겨 먹질 않아요. 자취하면서 살도 빠지고 했던데 아…….”
어머니의 넋두리와 함께 이현종은 가방에 챙긴 보온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 안에 아마 콤부차가 있지 않을까?
약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게 분명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몸에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서 먹는 건데, 약은 아니라고 생각하다니.
그럼 그 안에 있는 화학 물질은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래서 뭐라도 좀 주셨나요?”
“아……. 한약 같은 거요? 아뇨.”
“꼭 약 아니더라도요.”
“아. 콤부차요.”
“콤부차. 그거 이 친구가 처음 먹어 본 거예요?”
“아, 네. 저도 얼마 전부터 먹기 시작했어요. 이게 건강에 좋다고 해서.”
“뭐, 대개는 그렇죠.”
이현종은 씁쓸한 얼굴로 웃으며 몇몇 질환을 떠올렸다.
‘간부전, 호흡부전, DIC…….’
다 콤부차 먹고 실려 온 환자들이 보였던 증상이었다.
그중엔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