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0화 헬프 (3)
뚜벅뚜벅.
수혁은 이비인후과 전공의 4년 차 장규선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수혁이나 늘 그렇듯 동네 마실 나가는 모양새……. 그러니까 참으로 여유로운 모습이었지만, 장규선은 그럴 수가 없었다.
가능하겠나?
금세기 최고의 천재라는 말까지 듣고 있는 수혁을 뒤에 두고 있는데.
‘이거 진짜 그냥 2형 섬유종증이거나 하면 어쩌지.’
담당 교수하고는 얘기가 안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담당 교수는 이 환자를 정확히 알지도 못한다고 봐야 했다.
조영상…….
환자를 안 본다거나 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귀 파트에서 제일 젊은 교수다 보니 혹사당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고통스러워 보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좋으니까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나.
‘처음에 펠로우한테 입원시켰고……. 퇴원시키면서 내가 교수님한테 살짝 말씀드렸는데 씹으셨고……. 다시 입원시킬 때 말했지만…… 제대로 보진 않았지. 그 상태에서 여기 오는 게 맞는 건가.’
지금은 교수를 패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 찝찝한 느낌…….
이비인후과는 분명 좋은 과지만 마이너 과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한계점이 있었다.
이비인후과 영역에서는 다른 어떤 과의 의사들이 덤벼도 다 이길 수 있지만, 영역을 벗어나게 되면 아예 하나도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장규선은 담당 환자가 심근경색이 온 적이 있는데, 뻔히 심전도를 제때 뽑아 놓고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옆에 있던 중환자 담당 내과 애들이 난리였고.
‘그때…… 그 느낌이 지금도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윤이라는 걸출한 동기가 있고 또 그 동기가 워낙에 털털한 편이라 친하게 지내고 있다 보니 어느 정도 경각심이 있었다.
환자를 볼 때, 내과만큼의 경험이나 지식이 쌓이지는 않더라도 어떤 촉만큼은 살아 있다는 말이었다.
그 촉 때문에 여기까지 온 셈인데…….
막상 병동에 남의 과 교수를 끌고 갈 생각을 하니 아니, 생각이 아니라 실제로 끌고 가고 있다 보니 마음이 좀 그랬다.
이게 맞나 싶었다.
띵동.
그러거나 말거나 뒤따르는 이들의 푸시 때문에라도 장규선은 쉬지 못하고 계속 걷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고, 또 걸었다.
“어……. 장 선생님?”
병동에 있던 이들, 즉 간호사들이 장규선을 보면서 인사하다가 말고 멀뚱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원래 치프가 되면 뒤에 뭘 좀 달고 다닐 수 있었다.
특히 맨파워가 딸리는 마이너 과 치프의 위세는 실로 대단해서 실습 나오는 학생들이나 인턴은 교수나 펠로우가 아니라 치프가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저 뒤에 계시는 분들이 학생이나 인턴은 아닌 거 같은데……?’
하윤은 그래 인턴 정도로 봐줄 수도 있었다.
진짜 백번 양보해서 수혁까지도 뭐……. 그래, 어리게 봐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안대훈과 김성진을 보면서 인턴을 어떻게 떠올리나.
딱 봐도 40은 훌쩍 넘은 것처럼 보이는데.
게다가 저 조합은 이제 태화 의료원에서 유명했다.
“이, 이수혁 교수님. 여긴 어쩐 일이신지.”
이비인후과 병동의 수간호사쯤 되면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마침 회진 시간이기도 하고, 원래 아침 시간이 퇴원 수속이니 뭐니 해서 병동이 한창 바쁜 시간이기도 해서 나와 있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애들만 있으면 또 이게 대응이 어설플 수 있지 않겠나?
물론 그렇다 해도 오늘 처음 마주할 교수가 다른 과 교수…… 그중에서도 이수혁일지는 몰랐다.
“환자 때문에 왔죠, 저야. 하하. 어려운 환자가 하나 있던데요.”
“어려운……. 아, 그.”
수간호사는 바로 아까 간호사 인계 회의에서 장규선이 관여하고 있다는 환자가 하나 있다는 걸 기억해 냈다.
‘그거…… 이과 조영상 교수가 잠깐 보고 좀 이상하다고 위로 올렸는데…….’
그리고 이미 장규선 손을 떠나 조영상을 넘어 그 위에 계신 세 시니어 교수에게 얘기가 들어갔다는 것도 떠올렸다.
그중에서도 정광호 교수가 관심을 보였더랬다.
수술의 천재라 자부하는 그는, 신경외과 협진 수술에서도 혼자 어지간히 떼고 나올 정도의 실력자였는데 이 케이스가 딱 봐도 좀 어려워 보이지 않던가.
신경초종이 되었건, 2형 섬유종증이 되었건 간에 직접 손을 대려고 하는 게 딱 느껴졌다.
‘그거 장규선 선생한테 얘기 안 했다고 했지.’
어젯밤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레지던트들은 오히려 당직 말고는 다 퇴근한 이후의 일이었다.
이런 말 하면 꼰대 같지만, 이전 같았으면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디 교수가 있는데 레지던트가 퇴근을 해?
하지만 법은 지엄한 법.
전공의 한정으로 주 88시간 노동 제한이 생기면서, 이런 일은 이제 비일비재해졌다.
그나마 시니어 교수들은 집에 더 일찍 가는 경우도 많았지만, 조영상과 같은 젊은 교수는 그러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펠로우?
펠로우는 이제 완전한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완연한 펠노예가 되었다.
‘근데 이렇게 왔네……. 뭐……. 이수혁 교수님이 수술할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내가 카바 쳐야겠다.’
수간호사는 시니어 간호사에게 다른 교수들 오면 대강 알려 주라고 말한 후, 수혁을 따라나섰다.
“제가 안내하죠.”
“아……. 수간호사님이요?”
“멀리서 오셨는데요, 하하.”
쓸데없는 소리 하면 막기도 해야 하고…….
또 환자 컨트롤도 해야 하고…….
어?
수간호사 말고 이거 누가 하겠나.
그녀는 잠시 장규선을 째려보다가 이내 앞으로 갔다.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서 환자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환자는…….
전에 입원했을 때와는 아예 인상 자체가 달라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때는 어지러워하기는 해도, 다른 증상은 난청 정도만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안면마비에 두통도 있을 뿐 아니라 걷는 것도 좀 어설퍼졌다.
물론 다 어지럼증이 심할 경우에 동반될 수 있는 증상이긴 했다.
실제로 수간호사는 이런 환자를 본 적도 있었다.
이비인후과에서만 수십 년을 있었는데 아무렴 그런 경험 하나 없겠나.
하지만 장규선은 생각이 많이 다른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소문이 점점 무성해져만 가고 있는 수혁을 데리고 왔을 리가 없었다.
‘과연 뭘 더 알아내려나?’
이비인후과뿐만 아니라 영상의학과에서도 신경초종 또는 제2형 섬유종증을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가 뭐 후진 병원이라면 모르겠는데 태화이지 않나.
이게 틀릴까?
‘확실히 양성 질환은 아니군…….’
[네,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아마 수간호사가 지금 수혁의 생각을 들었다면 퍽 당황스러웠을 터였다.
수간호사의 생각을 정면에서, 완전히 부정하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근거 없이, ‘이건 어려운 케이스여야만 해’ 하는 긍정 회로를 돌리고 있는 건 결코 아니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수혁은 병실 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이미 진료를 시작한 참이었다.
시진.
눈으로 보는 것.
‘급격한 체중 감소가 있어. 이걸 왜 놓친 거야?’
[모르겠습니다. 이게…… 그 마이너 과의 한계일까요?]
‘모르겠네…….’
눈대중이라고 퉁 치기엔 수혁의 눈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정확하지 않던가.
그런 그가 보기에 환자는 처음 입원했을 때 당시 기록된 무게에 비해 이미 3.5kg가량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고작해야 일주일인데 3.5kg이 빠졌다.
이건…….
절대 정상적인 체중 감소는 아니었다.
그사이에 굶었다고 해도 이건 어려웠다.
하루에 500kcal를 줄여서 먹는다고 해도 일주일에 500g 빠지는 것이 고작 아닌가.
“환자분, 안녕하세요. 통합진료센터의 이수혁입니다. 여기 장규선 선생이 도움을 요청해서 왔는데……. 제가 진찰을 좀 해 봐도 괜찮을까요?”
“아……. 이수혁 교수님. 물론…… 물론입니다.”
목소리.
아까까지만 해도 좀 애매했다.
성대는 생각보다 쉽게 손상받는 장기이니만큼, 건조해지는 것만으로도 목소리가 변할 수 있기에 그랬다.
하지만 좀 길게 답하는 것을 보니 단지 건조해진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건…… 마비다.
마비가 동반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목에도 덩이가 좀 있군…….’
[뭘까요, 이거?]
‘모르겠어. 확실한 건 악성 같은데…….’
[악성은 확실하죠. 수술이 가능할는지……. 그게 중요할 텐데.]
‘수술이 필요 없는 병이어야 할 거야. 진행이 너무 빨라.’
[그렇긴 합니다. 만약 수술로 제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환자는…….]
이 정도로 빠른 암인데 수술이 필요한 고형암 종류의 암이라면 환자는 죽는다.
수혁이 뛰어난 의사라는 것은 별로 상관이 없을 터였다.
세상엔 여전히 불치병이라는 게 여기저기 존재하니까.
“환자분, 잠시 검진을 해 보겠습니다.”
“네, 네.”
수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신경학적인 검사를 시행했다.
확실히 하지의 감각이상이 있었고, 그에 더해 통증도 있었다.
연하곤란도 있고, 성대마비도 있고.
전반적으로 뇌신경 쪽이 많이 망가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 더해 하지의 운동실조는 아무래도 소뇌의 영향인 듯했다.
그 말은 아까 보았던, 그러니까 MRI에서 보았던 병변들이 그대로 증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뜻이었다.
양성 질환에서도 뭐 종양이 있는 부위에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100% 다 나타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악성이다.
그것도 주변 조직을 파괴하는 종류의 악성.
“영상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아……. 네.”
“환자분, 잠시만요.”
“네…….”
악성이라는 확신을 가지고서 수혁은 병동으로 돌아와 영상을 틀었다.
그러자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정확히 말하면 보이긴 했지만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면 신경초종하고 굉장히 비슷하지만……. 선형의 조영증상이 있고 또 결절 외의 조영증강이 있군요.”
“음……. 이게 의미가 있는 소견일까요?”
“대개는 그렇지 않습니다만, 저 환자는 증상과 소견상 악성이 의심됩니다. 그렇다면 이 소견은 완연한 악성 소견이죠.”
“아……. 조직검사를……!”
“아뇨, 이건 원발성 병변은 아니에요. 이건 전이예요. 그렇다면……. 원발성 병변부터 찾는 것이 급선무일 겁니다. 이 부위에서 조직검사를 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잖습니까.”
“아.”
하긴, 머리통에 있는 병변을 조직검사하는 건…….
언제나 위험한 법이었다.
“일단 흉부, 복부 CT부터 찍어야 합니다. 다행히 저희 센터는 좀 여유가 있으니까 바로 찍죠.”
“어, 그.”
어깃장?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잠시 끼어든 것은 역시나 수간호사였다.
다른 교수들까지 다 관심이 있는 환자를 이렇게 설명도 없이 다른 검사를 한다는 데 대해 본능적인 공포 같은 것이 있었다.
“환자분께 설명하고 찍겠습니다. 침습적인 검사도 아니고, 이거 급해요. 환자분 진행이 너무 빠릅니다.”
“아……. 네. 그 연락은…….”
“연락이야 드리시죠. 지정의가 알아야죠.”
“네, 교수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간호사는 그렇게 양해를 구하고 조영상에게 전화했다.
돌아오는 답은 다음과 같았다.
“이수혁 교수님?”
“네.”
“어어, 일단 그대로 하시고……. 제가 지금 갈게요. 수, 수멘.”
“네?”
“아니, 아닙니다.”
조영상.
그는 이미 예전에 전도당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