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5화 우리 학회도 준비해야지 (1)
외과 전체를 본의 아니게 하루에 무려 두 번이나 들었다 놨다 해 버린 수혁은 이제 병원이었다.
운전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바루다의 보정 덕에 교통 법규와 운전 수칙을 100% 지킬 수 있는 그는 늘 그렇듯 아주 깔끔한 주차를 마치고 운전석에서 빠져나왔다.
안대훈, 김성진 그리고 하윤과 함께였다.
안대훈과 김성진이야 언제나처럼 씩씩했다.
오전에 회진 돌고, 응급실 환자까지 둘이나 받아 놓고 점심엔 남의 학회에 다녀온 참이었지만 그럼에도 지친 기색 하나 엿보이지 않았다.
‘아씨……. 나 어떡해?’
반면에 하윤은 평소와 같기는커녕 전에 없던 열병을 앓고 있었다.
속으로 뭔가 이럴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을 이어 나갔더니만 글쎄 아까는 수혁과 손주 재롱 잔치까지 봤다.
물론 머릿속에서.
“자, 그럼……. 커피 한 잔씩 사서 위로 갈까? 그사이에 온 건 아빠가 다 해결했을 거 같긴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네! 제가 바로 사 오겠습니다!”
“제가 교수님 전용 원두 따로 들고 있는 게 있으니 같이 가겠습니다!”
“어……. 그래, 씩씩해서 좋네. 그럼 우리는 바로 위로 간다?”
안대훈과 김성진은 충성 경쟁인지 광기인지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유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카페를 향해 달렸다.
수혁이 맛있는 걸 좋아하긴 해도 커피에 있어서는 그렇게까지 까다롭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커피는 그냥 카페인만 많이 들어 있으면 그만인 것을……. 우매한……. 쯔쯔.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맛알못 그 자체라는 걸 알았다면 저럴 필요까지는 없을 텐데.
둘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수혁은 아무리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맛있는 커피 한 잔이 주는 여유를 잃지 않는 멋쟁이 그 자체였기 때문에 ‘어’ 하는 순간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수혁은 하윤과 둘이 남게 되었다.
수혁이야 지금 당장은 별생각이 없는 상태기에 역시나 별생각 없이 말했다.
“뭐 해? 엘리베이터 타야지.”
“네? 아, 두, 둘이요?”
“하나 더 있어?”
[제가 있긴 하죠.]
그에 반해 하윤의 반응은 평소와 확연히 달랐다.
이걸 분석해서 알려 줘야 할 바루다는 몹쓸 드립이나 날리고 있었다.
수혁의 촉?
이건…….
그냥 의료용이라고 보면 되었다.
다른 분야에서는 쓰레기 그 자체였다.
“아, 아뇨. 네네. 제가 누를게요.”
“아.”
“아앗!”
허나 될 놈은 된다던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다가 하윤의 엄지손톱을 눌러 버렸다.
[좀 이상한데……?]
그제야 바루다는 하윤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라면 하하하고 웃고 넘겼을 사람인데…….
지금은 어째서인지 얼굴이 홍당무처럼 바뀌어 버리지 않았나?
게다가 아까 엄지손톱 누를 때 느껴진 바에 의하면 심장 박동이 대략 120회로 크게 증가해 있었다.
월경 등으로 인한 혈액 손실은 아닐 터였다.
애초에 심장박동이 늘어나야 할 만큼의 손실이 있다면 그건 질환의 영역이지 않나.
무엇보다 심박출량 자체가 증가해 있었다.
체온도 올라가 있고.
얼굴만 아니라 다른 곳의 말초혈액도 확장된 것으로 보였다.
[아픈가?]
‘아파? 그럼 안 되는데. 하윤이…… 아프면 나 대훈이, 김성진 선생 둘하고만 다녀야 해.’
[뭔가 차이가 있는 겁니까?]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지, 인마……. 하윤이는 이렇게 이쁜데 우리 두 선생은…….’
[무슨 소린지 몰라야 하는데 차이가 있긴 있군요. 왜 둘하고만 돌아다니는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답답하죠?]
‘그렇다니까.’
남녀 간의 감정으로 분석이 처음부터 향하진 못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경험이 없으니까.
게다가 바루다나 수혁이나 의학적인 추론에 훨씬 능하다 보니 자연스레 분석은 자꾸만 이쪽으로만 향하고 있었다.
“하윤아.”
“네, 네.”
[목소리도 떨리네. 몸이 진짜 안 좋은 모양입니다.]
해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엘리베이터에서 물었다.
수혁이야 늘 타던 엘리베이터에 탄 기분이었지만 하윤은…….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는 하윤의 긴장도를 더더욱 끌어 올리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더해 단둘이었다.
하필 오늘따라 창문 달린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폐쇄형 엘리베이터를 탔다.
거울이 달려 있는 데다가 문 쪽도 반질반질하니 반사가 아주 잘 되었다.
다시 말해 어딜 둘러봐도 수혁이 보인단 말이었다.
‘목소리가 원래 이렇게 좋았나…….’
그에 더해 엘리베이터 특유의 효과로 인해 살짝 목소리가 울렸다.
타고난 목소리도 좋은데, 바루다로 인해 늘 보정도 받고 있는 몸 아닌가.
성대에 무리가 안 가는 선에서, 타고난 모양에서 제일 듣기 좋은 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수혁은 꽤 매력적이라 할 수 있었다.
“잠깐 이리 와 봐.”
“네? 네? 여기 병원…….”
“어, 그러니까.”
“어어!”
“열은……. 좀 뜨끈하긴 한데 열까지는 아닌데.”
그런 상황에서 수혁은 손등으로 하윤의 이마에 열을 체크했다.
의사씩이나 되어서 이런 게 말이 되나 싶을 수도 있을 터였다.
손등의 온도도 모르고, 이마의 온도도 모르는데 뭔 놈의 온도를 제대로 잴 수 있겠나.
하지만 수혁은 가능했다.
그는 바루다 덕에 늘 자신의 온도를 알 수 있고 거기에 더해 닿는 물체의 온도 또한 유추가 가능했으니까.
[37.3. 혹시 모르죠. 아프기 시작한 걸 수도.]
의학적으로 정상 체온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열은 아니다.
37.8도부터 열이거든.
그 이하는 생리적으로 닿을 수 있는 온도이기에 이렇게 정의를 내려 두었다.
실제로 하윤은 지금 몸이 아픈 건 아니지 않나?
“몸이 안 좋은 거 같아?”
“그……. 아뇨.”
원래의 하윤이었다면 좀 헷갈리더라도 이런 질문을 듣자마자 아, 나 몸이 안 좋구나 했을 텐데…….
지금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억지를 부리기엔 너무 감정이 명확했다.
‘교수님……. 좋아합니다.’
단순히 바라던 이상형이 특이했을 뿐, 멍청한 사람은 아니지 않나.
아니, 오히려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한번 인지하고 나니 절대 헷갈리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해져만 가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따 한 번 더 열 재 보자. 힘들면 말하고.”
“어……. 네.”
“그래. 커피 말고 물 마실래?”
“아……. 그건 그게 좋겠어요.”
여기서 카페인을 더 붓는다?
각성 효과는 좋다.
하지만 심장은?
더 빠르게 뛰었다가는 진짜 부정맥이라도 온 기분이 될 것 같았다.
“그래, 앉아 있어.”
“네에.”
친절하기도 하지.
사실 교수란 존재가 어떠한 존재인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아빠, 우창윤만 봐도 그랬다.
나름 헐렁한 편이지만…….
그래도 교수는 교수다.
어릴 때 의국 행사 때 가서 본 아빠는 그야말로 권력자 그 자체였다.
“흐음……. 아빠 어디 갔지?”
“아……. 센터장님 지금 응급실로 가셨어요.”
“응급실이요? 심장?”
“아마도요. 근데 급해서 온 건 아닌 거 같았어요. 그냥 너무 어려워서 보낸 느낌……?”
“그게 느낌으로 알 수가 있어요?”
“이현종 교수님 표정만 보면 알죠. 급한 거면 일단 표정이 좀 화가 나요. 근데 사람 목숨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어렵기만 한 거다? 그럼 신바람 그 자체죠.”
“아……. 맞는 거 같네요.”
“제가 교수님이랑 벌써 20년이 넘었어요.”
수간호사는 씨익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근데……. 이수혁 교수님……. 교수님은 더 뻔하답니다.’
아마 사람 보는 눈이 더 발전해서도 있을 거다.
수간호사로 살다 보면 별의별 사람들을 겪게 되기에 그랬다.
간호사도 간호사지만 레지던트들 또한 대학 병원 생활을 하다 보면 바닥의 바닥을 보여 주기 마련 아닌가.
거기에 더해 환자들?
내과는 심각한 환자가 너무 많다 보니 평소의 그 사람이 아니라 죽기 직전의 그 사람을 보게 되다 보니 더더욱 보는 눈은 늘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보다는 이수혁이라는 사람이 진짜 투명한 인간이라서가 더 큰 이유이긴 했다.
‘흐음……. 오늘 좀 묘한데……?’
해서 이수혁 관찰하기가 요즘 키우는 취미가 되었다.
헌데 오늘은 예외였다.
우하윤…….
‘저 완벽에 가까우신 분이 오늘 웬일이야?’
뭔가……. 뭔가다.
일단 얼굴이 벌겋다.
거기에 더해 이수혁 교수를 힐끔거리고 있다.
사실 이미 시니어급 이상의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저 둘이 묘하다는 말이 나돌고 있긴 했다.
병동 간호사와 의사들은 거의 한 가족 아닌가?
일이 있으면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게다가 이들은 인생의 선배들.
어찌 보면 당사자들보다 초기에는 더 해당 감정에 대해 잘 알 수도 있었다.
‘으응……? 이거……?’
지금 웃었다.
수혁과 눈이 마주치자 자신도 모르게 웃었어.
재빨리 표정을 고치긴 했지만 어림없지.
본인 연애 경력까지 다 하면 로맨스 드라마 골수 마니아까지 더해 수십 년이다.
‘이건 사랑인데……?’
어느새 수간호사는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수혁과 하윤을 향해.
그사이 커피가 배달되었고, 수혁은 그 커피를 받아먹으면서 하윤에게 물었다.
“아, 하윤아. 넌 물 마신다고 했지. 이거.”
그러곤 아까 떠다 놓은 물을 건넸다.
“아, 감사…… 합니다.”
그 사소한 배려에 떨리는 동공.
수간호사는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수혁?]
바루다도 이제 캐치했다.
‘왜?’
[뭔가 이상합니다, 하윤이.]
‘크게 아픈 거 같아?’
수혁은 아니었다.
영 이상한 소리나 하고 있었다.
그 반응에 바루다는 그냥 다 엎을까 하다가 참았다.
수혁도 행복할 권리라는 게 있지 않겠나?
게다가 어디서 봤는데, 첫사랑은 99% 실패한다고 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우하윤이 수혁을 좋아하는 거 같습니다.]
‘뭔 소리야, 새꺄.’
[실실 웃으면서 그런 말 하지 마십쇼.]
‘내가 웃었어?’
[솔직해지라고.]
‘근거는? 나 심각해. 제대로 말해.’
수혁의 마음도 중요한 거 아니냔 말이 나올 수도 있지만…….
바루다는 그딴 거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수혁의 감정을 어찌 모를까.
[아까 말했던 모든 신체 징후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도 나타날 수 있는 징후입니다.]
‘어……. 그렇긴 하지. 그런 추론이 가능하지.’
[거기에 더해 눈을 자꾸 마주치고 저도 모르게 웃고 그 미소를 얼른 지우는 것……. 이건 신체적 질환에서는 보이지 않는 소견이죠.]
‘아, 방금.’
[네, 그렇죠.]
‘으읏.’
[네, 지금 수혁이 보이고 있는 모든 징후가 지금까지 하윤이 보였던 징후와 같습니다. 한 가지 이상한 건……. 대체 왜 갑자기 왜 이러냐는……. 수혁? 지금 의식 잃으면 안 됩니다.]
‘어휴.’
[그래, 잘하네. 일단 심장이 너무 뛰니까 잠깐 화장실 간다고 하세요.]
‘어어.’
수혁은 부리나케 화장실로 향했다.
안대훈이 부축하겠다는 걸 말리고서였다.
그렇게 간신히 도착한 화장실에서 수혁은 일단 한숨부터 내쉬었다.
띠링.
그때 문자가 왔다.
수간호사였다.
들여다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었다.
-다 알고 있어요. 도와드려요?
뭘 알고 있다는 걸까.
티가 났나?
-티가 이보다 더 나기도 어려우니까, 콜?
-콜.
어쩐지 오늘은 될 것 같았다.
뭔가…….
뭔가 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