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3화 외과 학회 (5)
“그거…… 스톡홀름 신드롬 같은 거 아니겠습니까?”
우하윤, 안대훈 그리고 김성진과 함께 남들의 부러워하는 시선을 즐기고 있던 태화 의료원 외과 레지던트가 아주,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태화 외과…….
교수님…….
김승규…….
보통은 이런 식의 연상만 되겠지만 사실 태화 외과에도 썩 괜찮은 사람들은 많았다.
애초에 태화라는 기업이 사람을 허투루 뽑는 곳이 아니지 않나?
‘그래……. 나도 펠로우 선배 좋아했던 적이…… 있지.’
레지던트까지야 뭐 워낙에 풀이 좁다 보니 성적만 보고 뽑는다지만 교수부터는 그 외에 다른 여러 가지를 봤다.
실력이 압살하는 경우라면야 다 필요 없겠지만, 다들 열심히 하는 의사들인데 그들끼리 차이가 나면 또 얼마나 나겠나.
그다음에 들여다봐야 하는 건 조직에 보탬이 될 만한 사람인지였다.
여러 가지 요소가 있을 텐데, 호감 가는 외모도 있었다.
“스톡홀름 신드롬이요?”
“네네. 그……. 인질범한테 호감을 느끼게 되는! 극한의 상황이니까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레지던트도 힘든데 펠노예. 아, 죄송. 펠로우는.”
하지만 얼굴에 넘어가면 안 된다.
교수도…….
사람은 사람일 터였다.
그래, 잘 찾아보면 어딘가 인간다운 면도 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대학 병원에서 어디 인간으로 남기가 쉽다던가.
우선 첫인상에서 호감 주는 교수가 드물기도 하거니와…….
그 호감도 3월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박살이 나기 마련이었다.
“아……. 아뇨. 저희 교수님은 진짜 좋아요.”
“아, 네. 저런.”
태화 외과 레지던트가 저런……. 쯔쯔 하다가 안대훈에게 뒷덜미를 잡혔다.
나름 김승규에게 의학만 배운 게 아니다 보니 빠르게 빠져나가려 했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눈이 마주치자마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허업.”
“그 혀를 망령되이 놀리지 마시오.”
“그……. 네.”
진짜 미친놈이란 생각에 하염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기묘한 침묵이 찾아왔는데, 하윤의 내면은 침묵은커녕 요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으으음……. 이게……. 설마.’
설렌다.
수혁에게 호감이 있다고 하자마자,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지금껏 잊고 있던 아니, 애써 이성이 억누르고 있던 수혁의 장점이 마구잡이로 떠오르고 있었다.
비단 의학적인 소양만은 아니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런 건 이성이 억누른 적도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있는 장점이란 건 대개 이러했다.
물을 건네주기 전에 따다 주는 편이라든지,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상냥하게 군다든지, 옷을 잘 입는 건 결코 아니지만 적어도 지저분하게 입는 건 아니라는 거…….
‘진짜 별거 아닌데, 이거……. 이런 사람 꽤 있지 않았나?’
간혹 차 얻어 탈 때 방향제 냄새가 취향인 거, 흘러나오는 음악이 그럭저럭 세련된 거, 발음이 또박또박해서 무슨 말을 해도 알아듣기 쉬운 거.
‘아닌가……. 이게 다 해당되었던 사람은……. 없었던 거 같기도 하고……?’
안 그럴 것 같은 순간에 이상한 개그 치는데 그게 웃긴 거, 직함만 보면 칼도 안 들어갈 것 같은데 내 앞에서 한 번인가 두 번쯤 울었던 거, 술만 먹으면 얼굴 새빨개져서 혀 꼬부라지는 거.
‘이게 장점인가? 긴가민가한데…….’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흔하디흔한 특성들일 터였다.
하지만 어떤 이에겐 특별해 보일 만한 특성이기도 했다.
그것보다는 이미 특별해져 버린 누군가의 일반적인 특성이라는 말이 맞겠지만.
아무튼, 결코 특별하지 않은 두 명이 우연찮은 기회에 서로의 특별함을 발견하고 그로 인해 상대가 실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발견하는 과정…….
어떤 감정에 대한 정의 아니던가?
하윤은 서른이 되고 나서야 그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하윤아. 뭐 하냐. 이제 병원 가야지.”
“아, 네. 가야죠.”
약간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여긴 학회다.
그것도 외과 학회.
“그……. 화이팅입니다!”
“네네. 와……. 저는 그런 사람 처음 봤어요!”
“처음? 그……. 우리 장 교수님.”
“거긴 바람이잖아.”
“아, 맞네. 둘이 나이 차가 20살도 넘게 나지?”
“그래, 거긴 바람이기 전에 진짜 스톡홀름 신드롬일걸…….”
주변에 있는 놈들 모두 이게 응원인지 아니면 놀리는 건지 알 수 없는 반응만 보이고 있었다.
내과였으면 좀 달랐을 터였다.
내과의 수혁에 대한 이미지는 아예 다르니까.
외과도 레지던트들은 어느 정도 수혁에 대한 호감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불모지였다.
회개가 필요한 곳이다, 이 말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난 교수님 사랑하니까.”
“마음만은 나도 지지 않을걸.”
그런 생각에 안대훈과 김성진이 하윤을 거들고 나섰다.
둘이 수혁에게 연애 감정을 품어 봤다면 너무 이상한 일 아니겠나.
거기에 그치지 않고, 둘은 수혁이 연애가 가능할 거라 여기지 않았다.
신현태가 이런 생각을 알게 되면 김성진은 몰라도 안대훈은 때려죽이러 오겠지만…….
안대훈에게 수혁은 정말 신 그 자체였다.
근데 연애라니?
대체 누가?
감히?
‘으음……. 나랑 다른 거 같은데……’
그 진심이 외과에게는 전해졌다.
해서 내과는 저런 개드립을 치는구나 하고 넘어가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한테 호감이 있다고 했는데 너무 냉소적인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 아직 대학 병원 생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자평하면 되었다.
대학 병원에서는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그냥 다들 존경하는 사람인데 그 표현을 사랑이라고 한다고 하면 오히려 이해가 된다고 할까?
아마 평소의 하윤이었다면, 그녀도 잠시 헷갈리다가 대훈과 성진의 말을 듣고 나면 아, 맞네 그런 감정이네 했을 터였다.
‘아냐, 이건 그런 게 아냐……. 교수님을 존경하지. 존경하는데……. 좋아하기도 하는 거 같아.’
시발.
어쩌지?
난 레지던트고, 이수혁은 교순데?
‘어……? 그러고 보니까, 나 레지던트고 이수혁 교수님은 교순데…….’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둘이 벌써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술도 한잔했다.
진짜 한 잔만 했고, 그 외에 아무 일도 없긴 했지만…….
자, 위에 세 가지 일만 열거하고 찬찬히 살펴보자.
‘잉……. 설마 이수혁 교수님……?’
그 사람 나 좋아하나?
그런 건가?
“어, 교수님 오신다.”
그런 생각을 얼마나 했을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니, 흐르긴 했나?
정신이 없었다.
옆을 보니 안대훈과 김성진은 여느 때처럼 충성심 가득한 얼굴로 VVIP룸에서 나오는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지금껏 하윤도 그랬을 터였다.
감정은 조금 달랐을는지도 모르겠지만…….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야 차이가 뭐 있으면 얼마나 있었겠나.
“오늘 고마웠어.”
“아닙니다, 교수님. 언제고 불러 주세요.”
“아니, 학회보다는 수술방에서 보자고. 오늘 보니까 확실해지는데, 난 더 발전할 수 있을 거 같아.”
“저도 사실 환자 보는 게 더 좋긴 합니다. 케이스 어려운 거 있으면 주시고요.”
“그건 걱정 마. 내가 학회 전체를 쥐어짜서라도 줄 테니까.”
하윤이 평소와는 조금 다른 얼굴로, 그러니까 약간 빨라진 심장박동과 확장된 모세혈관과 그로 인해 들뜬 체온으로 수혁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수혁은 김승규와 흉계를 꾸미고 있었다.
아마 대화를 자세히 듣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도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을 터였다.
방금 김승규가 학회 명찰을 들고 쥐어짰거든.
말이 명찰이지, 매우 질긴 비닐 소재기 때문에 금세 다시 펴져야 하는데…….
힘이 너무 세면 소재의 특성조차 무시할 수 있는 걸까.
알루미늄 캔이라도 된 것처럼 그대로 찌그러져 있었다.
“정말 기대가 되는군요.”
“이번 달 안에 5개 보내 주지.”
“그럼 저도 이번 달 안에 수술방에 적어도 한 번은 들어가겠습니다.”
“설마 처음부터 끝까지?”
“그래야죠.”
“그럼 5개 더 보내겠네.”
“역시 교수님이 최곱니다.”
“흐하하하.”
김승규는 말 그대로 호탕하게 껄껄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아까 발표가 한창일 때는 솔직히 말해서 좀 언짢았다.
교정 전에도 김승규는 최고였으니까.
아마 그 생각이 없었다면, 그러니까 진짜 최고가 아니었다면 바로 성질을 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그다음엔…….’
이번에 성장하면서 느꼈다.
한계인 줄 알았던 지점 너머에 다다르면서, 간이식의 역사 또한 한 발자국 정도는 더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그렇다면 이다음은 어딘가.
백강혁.
그는 외과 의사의 등불이면서 동시에 절망이라 할 수 있는 존재 아닌가.
얼치기가 아니고서야, 그의 수술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이후라면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승규?
그는 평생, 말 그대로 평생을 보일락 말락 하는 강혁의 후미등을 뒤쫓아왔다.
‘그다음엔 백강혁의 영역이야. 거기로……. 죽기 전에 갈 수 있을까.’
뼈를 깎는 인고의 세월이었다.
나 좋다는 사람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한눈팔 시간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실력도 엄청 늘었다.
모르는 놈들은 세계 최고라고 해 줄 정도로.
하지만 백강혁은 그동안 더 멀리 가 버렸다.
미친놈이 일흔이 넘어도 여전히 실력과 기량이 늘었다.
‘나도 늙어 가고 있는데……. 최대한 빨리 도달해야 해. 그럼 죽어도 여한이 없어. 이 자식과 함께라면……. 가능할 수도 있어.’
불가능한 꿈이었다.
하지만 수혁과 함께라면.
감히 자신과 눈을 마주하고 또랑또랑 떠들 수 있는, 이 괴물 녀석과 함께라면 한 번쯤은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이 오면, 요새도 간혹 어떻게 알았는지 걸려 오는 번호로 전화를 걸 생각이었다.
마침내 최고가 되었으니까, 당신이 그렇게 말하던 봉사나 한번 같이 가 보자고.
“음. 갈까?”
노인의 상념은 복잡했고, 젊은 수혁의 걸음은 가뿐했다.
쌓인 세월이 적은 만큼 고민도 적어서 그랬다.
애초에 수혁 자체가 너무 긍정 회로만 돌리는 놈이기도 했고.
오죽하면 모쏠인데도 불구하고 사귄 줄 알고 있었겠나.
“네, 교수님.”
“가시죠.”
“네에…….”
그렇다 보니 자신을 반기고 있는 세 충신의 반응이 평소와 조금 다르단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셋 중 가장 활기찬 편인 사람의 목소리 끝이 죽어 가고 있다는 걸 못 알아챈다는 게 말이 되나 싶을 수도 있었다.
더욱이 수혁은 바루다가 있으니.
하지만 늘 그렇듯 핑계는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수혁과 바루다의 핑계는 합당한 편이었다.
[휴, 이제 좀 쉽니다?]
‘어 잘했어. 그래도 성과가 미쳤잖아?’
[그러니까요. 김승규가 보내오는 케이스는……. 진짜 장난이 아니었죠?]
‘그랬지. 개꿀이지. 수술방 하나 들어가고 10개……. 게다가 김승규 교수님 수술은 가끔…….’
[소름이 돋죠?]
‘어. 그……. 백강혁? 그 사람 느낌이 날 때가 있었어.’
[뭐……. 아주 잠깐이죠. 그러고 보니 백강혁 그 사람은 대체 뭘까요?]
‘모르겠어. 태화 외과 교수들 보면……. 다 대단한 사람들이라잖아. 근데 백강혁, 그 사람하고 비교하면 다…….’
[응, 비교도 안 되죠. 흐음……. 급한 건 아니겠지만, 그 사람 수술을 한 번 더 보면 이번엔 뭐가 더 알아낼 수 있는 게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 뭐. 기회가 있겠지.’
수혁과 바루다는 괴물과 천재 그 너머 어딘가에 있는 이에 대해 얘기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