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51화 (1,151/1,303)

1151화 외과 학회 (3)

“그, 그.”

“저, 저.”

“어, 어.”

유창하게 떠들어 대던 세 교수는 그 자리에서 합죽이가 되었다.

이건 그냥 본능이었다.

어쩌겠나.

호랑이가 눈앞에 나타났는데.

아마 고대 사회였다면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을 터였다.

“뭐라고?”

그러나 다행히 이 시대는 현대 사회.

문명화가 진행되어도 한참 진행된 사회이지 않나.

그중에서도 특히 대한민국은 치안이 좋기로 유명한 나라였다.

덕분에 교수 중 그나마 시니어라고 할 수 있는 이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 저, 수술이 좀 그렇지 않습니까.”

“뭐가 그래.”

사실 나이만 따져 보면 김승규나 이 교수나 거기서 거기였다.

60 넘어가면 다 친구라지 않나?

일방적으로 누구는 반말하고 누구는 존대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특히 그 공간이 학술장이라면 더더욱 그러한 법인데, 김승규가 상대라면 어쩔 수 없었다.

“그…… 저거 봐요. 수술이…… 내과 교수가 일부러 레지던트 정도 되는 놈 수술을 가지고 조리돌림하고 있지 않습니까?”

“레지던트 정도 되는 놈이라?”

“그래요. 아니…… 저저.”

시니어 교수는 애써 고개를 단상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여전히 수혁의 강연이 한창이었다.

“보시면…… 여기서, 피가 좀 나죠? 많이 나는 건 아닌데……. 피할 수 있는 출혈이었어요.”

“저거 보세요. 아니, 저기서 왜…… 왜 피가 나냐고.”

말이 강연이지, 사실상 수술 장면 장면에 대한 꼬투리 잡기 수준이었다.

재미가 없거나 억지스럽게 느껴지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확실히 그래 보였으니까.

무엇보다 수혁이 제시하는 대안이 그럴싸했다.

아니, 수술하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는데, 그가 이리저리 방법을 바꾸다가 결국 수혁이 제시한 대안으로 가는 걸 보면 확실히 그게 정답이었다.

“피가 날 수도 있지. 수술하는데. 사람 몸에 칼 대는데 피가 하나도 안 나는 게 정상인가.”

“그렇긴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너무하다…….”

“네, 너무하죠.”

바로 저런 걸 기대하고 부른 것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 이 교수가 말한 대로 재생 중인 영상은 조리돌림 중이었다.

‘저것도 존나 잘하는 거야, 새끼야…….’

0.5 배속이라서 보이는 거지, 아마 정상 배속이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를 놈들이 태반일 터였다.

이건 예상 같은 게 아니라 그냥 확신이었다.

‘어? 이 새끼들……. 내가 인마 저 때도 세계 최고였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지 않겠나?

김승규는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세계 최고였다.

근데 그걸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해?

‘이놈들이야…….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말이니 그렇다고 치고……. 확실히 이수혁 교수……. 저 새끼는 물건이라니까.’

이수혁…….

확실히 대단한 놈이었다.

몸만 성했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납치해서 외과에서 키우고 싶을 정도였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그랬다.

내과…….

거기서 뭐 하나?

백날 천날 머리 굴려 봐야 결국, 튀어나오는 치료 계획이라는 건 약 쓰거나 수술 아닌가.

진짜 의사라면 직접 수행을 해야지, 뒷구녕에서 떠들어 대는 건 영 아니었다.

“자, 그럼. 제 조언에 따라 교정이 된 상태를 보겠습니다.”

그 중간중간에도 수혁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에 따라 김승규 앞에 있던 시니어 교수의 탄식도 이어졌다.

용기를 좀 얻었는지 김승규의 등장과 함께 딱 닥치고 있던 나머지 교수 둘도 탄식을 보태었다.

“에휴……. 외과 망신은 저 새끼가 다 시키네.”

“내과 놈이 봐도 이상하게 보이는 걸 외과 의사란 놈이 하네.”

“학회에 문의해서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전문의 못 따게. 아니, 태화는 대체 수술을 어떻게……. 아.”

그러다 살짝 선을 넘었단 생각에 뒤를 돌아보았다가, 김승규의 분노 어린 눈을 보고는 고개를 내리깔았다.

‘아니……. 아끼는 제자인가?’

가족인가?

싶을 정도로 격렬한 반응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응? 제자들 중에 마음에 차는 놈이 있냐고? 가끔 있지, 10년에 한 번? 대부분은……. 아휴. 때려서 키우는 거야, 패서!

학회가 끝나면 무조건 회식이 열리기 마련이었다.

학회라는 것이 배움을 나누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사실 교류의 장이기도 하지 않나?

대학 병원 의사, 특히 외과 의사들의 삶이란 것은 혹독하기 이를 데 없기 마련이다 보니 이럴 때 아니면 반가운 얼굴을 마주칠 일도 없었다.

더 나아가 연륜이 쌓이게 되면, 바로 그 회식 자리에서 펠로우 자리가 나오고 또 로컬 외과 병원 과장 자리가 나오고 하는 법이었다.

하여간, 내키지는 않아도 김승규도 부를 때가 있는데 그때 김승규가 했던 말이 바로 저러했다.

‘당연하지……. 저 사람 눈에 감히 누가 차겠나.’

전설?

아니, 신?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야말로 외과의 절대적인 존재라 할 수 있는 백강혁이 인정한 사람이 김승규다.

실제로 잡아가려고 하다가, 그래, 간이식도 필요한 분야지 하면서 놓아줬다는 소문도 있고.

그런 인간의 눈에 차는 사람이 많으면 벌써 대한민국 외과가 전 세계 탑 먹지 않았겠나.

‘근데 쟤는 못하는 거 아닌가……?’

실력으로 눈에 들었다고 하기에, 영상 속 사람은 많이 모자라 보였다.

처음 봤을 땐 잘하는 줄 알았는데 보면 볼수록 영 꽝이랄까?

여기 안에 있으면 잡아다가 두들겨 패고 싶을 지경이었다.

내과에게 빌미를 주었으니.

“여기 보면 확실히……. 군더더기가 없어지고 있죠. 뭐, 살짝 망설임이 있긴 한데 0.5 배속이라 그래 보이는 것이지, 실제로 흘러가는 시간은 초 단위도 아닙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뒤이어 들려오는 수혁의 말이 좀 이상해서 고개를 다시 들었다.

김승규의 눈을 마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보니 동공이 흔들리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런 불완전한 시야로 보기에도 지금 재생 중인 수술은 실로 대단했다.

0.5 배속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정확했다.

무엇보다 두 번 움직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출혈이 거의 없죠? 불필요한 출혈은 아예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갑자기 잘하네?”

“그러니까.”

사실 아까 영상도 수혁의 말만 없었다면 아무도, 말 그대로 아무도 문제를 잡아내지 못했을 터였다.

수혁이 너무 정확하게 짚어 내는 바람에 아하, 저 새끼 못하는구만 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칭찬을 마구 늘어놓기 시작하니 어떻게 되겠나.

결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완벽해 보이기만 했다.

“뭐지?”

“진짜 배우고 저렇게 됐다고?”

앞에서 떠들어 대는 걸 듣고 있는 김승규로서는 그저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 새끼들아……. 아까 그렇게만 해도 인마, 니들보다 훨씬 잘해. 아니, 견줄 사람도 없다고…….’

물론 영상으로 보니까 확실히 늘었다는 것이 보일 정도로 차이가 났다.

이렇게까지 비교해 본 적은 김승규도 없다 보니 새롭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원래 자기가 스스로 생각할 때랑 남들 말로 들을 때의 느낌은 사뭇 다른 법이었다.

대개는 후자가 같은 내용이라도 기분이 나쁠 가능성이 높았다.

“다른 사람 아닌가?”

“그러니까요. 앞에 거는 병신인데.”

거기에 더해 욕까지 나오면 뭐…….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나빴다.

“확실히 실력이 늘었네.”

“저런 피드백을 근데 내과 의사가 어떻게 하는 거지……?”

“눈이 좋나?”

“흐음……. 아까운 인재네.”

다행인 것은 이 꼰대 셋 말고, 주변에 다른 이들의 반응은 좀 다르다는 점이었다.

한없이 긍정적이었다.

개인의 능력에 대한 칭찬도 있었지만 역시 저 드라마틱한 실력 향상에 대한 칭찬이 더 많았다.

아무래도 학회고 또 모인 이들이 교수다 보니 이미 자기 실력에는 확신이 있는 상태라 그랬다.

물론 말은 안 해도 속으로는 자기도 저 과정을 거치고 싶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긴 하겠지만…….

“자……. 그럼 이 수술 영상에 도움을 주신 김승규 교수님께 감사를 올리면서 발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있으신 분 계십니까?”

웅성웅성하는 분위기 속에서 드디어 질문 답변 시간이 찾아왔다.

잔뜩 벼르고 벼르던 이들이 손을 번쩍 들려는 순간, 뇌리에 스치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김승규 교수.

해서 들려던 손을 애매한 지점에서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말이 생각이지, 방금 들었던 말을 복기하는 데 그쳤다.

‘수술 영상에 도움을 줘……? 그게 그럼 김승규였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들은 허공을 허우적거리고 있던 손을 부리나케 내렸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까지 순발력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랬으면 운동을 하지 않았겠나?

불행하게도 유난히 굼뜬 인간 중 하나가 바로 김승규 앞에 있었다.

안 그래도 운동 신경이 떨어지는데 하필 김승규 때문에 더더욱 긴장을 한 탓도 있었다.

해서 여전히 손이 애매한 지점에 머물러 있었고, 바루다를 탑재한 수혁의 눈에 바로 잡혔다.

[저 사람 조질까요?]

‘어, 그래. 표정이 아까부터 안 좋았지?’

[네, 상위 일 프로 안에 듭니다.]

‘조지자.’

애초에 수혁과 바루다가 그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던 탓이기도 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수혁이 마냥 착한 놈은 아니지 않나?

특히 학회장 문만 들어서면 이현종 때문인지 뭔지 더더욱 인성이 더러워졌다.

“거기, 네. 김승규 교수님 앞에 계신 분.”

딱 짚어서 골랐다.

“어, 네.”

얼떨결에 걸려 버린 교수가 어버버하고 있으려니 김승규가 학회 진행 요원에게 마이크를 받아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자, 해 봐. 뭐가 궁금한 거야?”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 말도 건넸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교수는 김승규가 늘 그렇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생각이 없었다.

더 나아가 너무 긴장한 탓에 사실 강의 끝났다는 말밖에 못 들었다.

김승규 운운하는 건 귓가에 울렸으되, 머리로 전달이 되지 못했다.

“그 수술에 대한 피드백 말입니다. 그거……. 나중에 면밀히 살피면서 한 겁니까? 제가 봤을 때는 외과 레지던트들 영상 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많은 영상을 대상으로 한 것 같은데?”

“흐흐.”

뒤에서 김승규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무섭긴 한데…….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해 안 되는, 좀 미친 사람들 있지 않나.

“아……. 아닙니다. 교수님 영상입니다.”

“교수? 태화에 저런 함량 미달인 교수가 있어요?”

“함량 미달이라……. 자잘한 오류가 있을 뿐, 전체적인 수술 결과는 아주 좋았는데요? 게다가 보셔서 아시겠지만 수술도 이거 쉬운 거 아닙니다. 간이식이에요. 이걸 하는 레지던트가 어딨어요.”

“아……. 아, 그렇네. 그래도, 보니까 문제가 많지 않습니까!”

“으음. 그……. 교수님.”

수혁은 원래 좀 더 갈구고 싶었다.

말로 갈구고 싶었다는 얘긴데…….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네, 왜 그러시죠?”

“뒤를 좀…….”

“응?”

흉신악살로 화한 김승규가 그의 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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