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50화 (1,150/1,303)

1150화 외과 학회 (2)

‘저 양반이 지금 뭐래는 거야?’

‘의학에 관한 건 다 물어보라고……?’

‘외과에서 내과 교수 불러 주니까 자존감이 아주 비대해졌나 보지?’

‘자존감 수업이라도 듣나?’

‘이 정도면 정신과에서 고액 과외라도 받는 모양인데.’

‘거참……. 이거야……. 점잖게 있기가 어려운데.’

몇몇 교수들이 수혁의 말에 인상부터 썼다.

애초에 그런 그룹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웅성거림은 딱 한쪽에서만 확산되고 있었다.

별 상관은 없었다.

컨펀런스룸이 워낙 큰 데다가, 수혁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발표를 할 수 있는 인재가 되어 버린 지 오래라 그랬다.

“알도스테론 혈증이 고혈압을 일으킨다고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그러지 않을 수도 있어요. 사실 혈압이 올라가는 기전은 상당히 복잡하거든요? 그 과정을 다 이해하지 못한 채 외우기만 하면 이렇게 오진이 발생하게 됩니다.”

게다가 오늘 강의는 쉬웠다.

오해하기 쉬운 질환에 대한 강의라니.

이거야 뭐…….

‘후반전 강의가 좀 어렵지.’

[그러니까요. 아니 수술법에 도움이 되는 강의도 부탁한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나도 모르겠는데……. 장준혁 교수님이 그냥 수술 영상 보면서 느낌만 전달하라고 했어.’

[느낌이라……. 과학자라는 사람들이 느낌이라니. 역시 외과는 상종 못 할 것들이군요.]

심지어 속으로 딴생각을 하면서도 가능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숙덕거리는 것이, 그것도 어느 한 지점에서만 그러는 것이 뭔 방해가 되겠나.

나머지는 그저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레지던트들은 완전히 선망하는 눈을 하고 있었다.

젊은 교수들도 비슷했다.

물론 몇몇은 질시 어린 눈을 하고 있었지만…….

원래 질투란 감정은 부러움에서 발로하는 것이지 않나.

‘질투는…… 내 숙명이지…….’

[그런 말 입 밖으로 내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그 정도로 사회성이 없진 않아.’

[호오.]

바루다의 방해는 좀 치명적일 수 있었지만…….

이미 해결한 케이스에 대한 단순 열거만 하고 있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결코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흔들림뿐이었다.

“즉 의학 추론의 과정은 결국, 완전한 배경지식을 습득해 나가면서 더더욱 정확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완전한 배경지식이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는 그러합니다. 앞으로 의학이 더 발달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때문에 중요한 것은 단정 짓지 않는 태도입니다. ‘혈압이 낮으니까, 알도스테론은 상관이 없을 거야’라는 생각을 지우는 데서 출발하셔야 합니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합니다.”

수혁의 강연을 듣고 있던 안대훈이 열렬한 기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하윤과 김성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건 비단 외과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그랬다.

기존에 내린 판단에 대한 의심.

검사 결과에 대한 의심.

더 나아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무엇에 대한 의심.

일반적인 진단 과정에서는 불필요하지만…….

적어도 그 일반적인 진단 과정에서 걸러지지 못한 질환이라면 저러한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다.

‘말로만 들어 봐야…… 별 소용 없지.’

‘우리 통합진료센터에서 굴러 봐야 체득하게 되는 진리…….’

‘후후. 이 불운한 것들. 이수혁 교수님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데 그 밑에서 수학하지 못하다니. 어찌 보면 최악 아닌가!’

의외로 안대훈, 하윤, 김성진 순이었다.

뭐, 조금의 과장은 있겠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수혁의 강의를 듣는다고 해서…….

또 그 강의를 듣고 어느 정도 마음에 울림이 있다고 해서 바로 할 수 있게 되는 일이 아니라서 그랬다.

의심의 과정은 어떻게 보면 자신을 깨는 과정이기에 그랬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혁조차 이게 숨 쉬듯 가능하게 된 것은 바루다 덕이라 할 수 있었다.

“소장의 종양은 미지의 영역이죠. 어떻게 보면 참으로 다행입니다. 들여다보기 가장 힘든 장기 중 하나가 소장인데……. 여긴 그렇게까지 치명적인 악성 종양이 잘 생기지 않고, 심지어 모든 종양의 유병률 자체가 낮으니까요. 사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또 영양소를 흡수하면서 점막의 손상과 탈락 그에 따른 재생산이 이루어져야 하는 장기라는 걸 감안하면 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김승태 교수를 도왔던 사례였다.

인의 대학교 쪽에서 격렬한 반응이 잠시 있었다.

김승태 교수가 워낙에 감동을 받은 나머지, 외과 그랜드 라운드에 올린 덕이었다.

그냥 들으면 이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자세한 내막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기적이었다.

‘저걸…… 수술방에서 한 전화만으로 진단했다, 이거지…….’

‘정말…… 어떻게 저렇지? 사람이?’

‘오죽하면 김승태 교수님이 납치해 오고 싶다고 했을까?’

‘근데 그랬다간 김승규 교수님한테 살해당할걸.’

진짜 살해만 아니면 납치했다.

사람 하나 온다고 병원 수준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 건 어불성설인 시대가 왔지만.

그게 이수혁 정도면 가능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의 업적이었다.

“하지만 운 좋다고 그냥 넘어가는 건 안 됩니다. 우리는 의사니까요. 공부 엄청 해야 해요. 적어도 우리는 이걸 헷갈려하면 안 됩니다. 물론…… 이 케이스에서 보인 사례, 지방세포육종은 너무 드물긴 하죠? 이럴 때는…… 흐음.”

수혁은 발표를 하다 말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원래 어물어물하던 놈이 이러면 답답함이 느껴지겠지만, 수혁같이 유려한 발표를 이어 나가던 사람이 이러면 답답함보다는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왜 그러지? 뭐지? 이러한 종류의 의문이.

게다가 지방세포육종이라는 아예 처음 들어 보는 질환을 들었으니 더더욱 그럴 만했다.

수혁을 미친놈 보듯 하던 교수들조차 지금은 그 화술에 홀려 오직 궁금증만을 느끼고 있었다.

“김승태 교수님처럼 그냥 제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답입니다. 의심만으로 상황 해결이 안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악성인지, 양성인지 모르겠는데 어쩌겠습니까? 수술 방침이 아예 달라질 텐데요. 시간이 있다면 천천히 찾아봐도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제게 물어보세요. 저는 대개 답을 압니다.”

“와.”

“패기.”

“미쳤다.”

그다음 이어지는 말은 진짜 패기 미쳐 버린 말이었다.

의심이 들었는데 그래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고, 시간이 없으면 자기한테 물어보라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이어졌던 발표와 정반대되는 말이기도 했다.

의심하라고 해 놓고서 정작 자신은 자신에 대한 의심이 없다는 듯 말하지 않나?

물론 수혁은 이에 대한 해명을 굳이 내놓지 않았다.

대신 화제를 돌렸다.

“자, 그럼…… 이건 사실 좀 고민이 되던 주제였습니다. 외과 수술에 도움이 될 만한 강의를 해 달라고 하셔서……. 저는 진단과 치료 계획 수립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지만, 수술은 문외한이거든요.”

듣기에 따라 잘난 척 같기도 하고 또 겸손한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헷갈리는 말의 연속이었다.

물론 더 듣다 보면 헷갈릴 수 없게 되긴 했다.

“다만 여러 교수님들께서 제 가르침을 듣고 수술이 진보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으로 봐서 제 수술에 대한 인사이트 또한 상당한 수준이라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내과학처럼 이론적으로 정리한 건 아니다 보니 체계적인 강의는 아닐 겁니다. 그냥 보면서 느껴 보세요.”

결국, 내가 짱이다 이 말이었다.

‘저 새끼 저거.’

‘발표 언제 끝나지? 질문으로 밟아 버리고 싶은데?’

‘근데 대체 누가 데려온 거야?’

‘몰라. 이번 학회 운영이 칠성이잖아. 그 새끼들 이상한 게 하루이틀인가.’

‘아니, 태화랑 칠성이랑 원수 아닌가? 왜 저랬대?’

‘몰라. 내과가 원수지, 외과는 아니긴 하지.’

불만이 있었던 이들의 불만이 최고조로 오르는 만큼, 그렇지 않았던 이들의 궁금증 또한 최고조로 올랐다.

“영상 보겠습니다.”

그렇게 수술 영상이 하나 재생되었다.

누구 수술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무영등에서 찍은 것인 데다가 확대까지 되어 있었으니.

다만 드문드문 비치는 손이 엄청 크다는 것 정도는,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알아차릴 수 있을 터였다.

“이건 제가 처음 들어간 수술 영상입니다. 그냥 제 느낌만 말씀드리자면…….”

제아무리 수혁이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해도 수술장에서 닥칠 줄은 알았더랬다.

완전 닥쳤다기에는 호오 음 기법이 발생해 버렸지만…….

아무튼, 여긴 수술방이 아니다 보니 고삐가 풀렸다.

“방금의 절개는 좀 더 수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영상은 약간 느렸다.

재생 속도 설정을 0.5 정도로 한 느낌?

그럼에도 여기서 뭘 더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대다수의 의사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여기서는 조금 빗나갔죠? 피가 한 방울 난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1mm 정도 아래로 쳤어야 할 텐데.”

“보비 쓸 때도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좋아요. 좋은데……. 여기. 피 딱 날 거 같은데 넘어갔죠.”

“박리는 대부분 좋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손으로만 미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렇게 질긴 부분은 칼로 살짝 툭 치면 오히려 피가 더 안 났을 겁니다. 그래 봐야 대세에 지장은 없겠지만요?”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을 아는가?

계속 같은 말을, 이 자리에서 권위 있어 보이는 사람이 하면 듣던 사람이 처음엔 아닌데? 하다가도 그런가? 하게 만든다는 뜻인데…….

그게 여기서 벌어지고 있었다.

‘으음…….’

‘시건방진…….’

‘태화 레지던트 수술인가? 자꾸 못한다고 하니까 못하는 거 같기도 하고?’

‘야, 집도의가 무슨 레지던트야.’

‘배 째고 들어가는 거야 보조도 하지. 넌 그렇게 안 가르쳐?’

‘아. 그렇지. 내가 퍼스트 잡고……. 으으음. 그러니까. 엉망인데?’

‘그러니까, 뭐 저런 놈의 수술을 가지고 와서 트집을 잡아? 태화에도 잘하는 놈들 좀 있는데?’

‘요새 장준혁이 미쳤더만. 그 새끼 예후 조작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야.’

분명 처음 절개 들어가는 걸 봤을 때만 해도, 레지던트들은 몰라도 교수들은 저거 대가다 싶었더랬다.

하지만 수혁의 지적이 워낙에 정확한 데다가 0.5 배속으로 보다 보니, 또 그 지적에 의해 단점이 잘 보이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치사한 놈이라는 투로 수군대고 있으려니, 뒤에서 그림자가 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여긴 밖이 아니니까.

천장이 엄청 높은 호텔 컨퍼런스룸인데 갑자기 그림자가 진다는 건…….

사실 밖에서도 구름 때문에 잠깐 그늘이 질 수는 있어도 이렇게 점점 그림자가 커지기만 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뭐…… 어.”

해서 교수 중에 제일 성질 급한 사람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망부석이 되었다.

“왜…… 어.”

그걸 보고 호기심이 돋아난 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망부석이 되었다.

“다들 왜…… 어.”

제일 높은 사람이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망부석이 되었다.

“더 얘기해 봐. 누가 수술이 엉망이라고?”

왜인지 모르게 언짢아 보이는 김승규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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