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42화 (1,142/1,303)

1142화 자선 모임 (5)

‘화장실에 가서 빠졌나…… 왜 이렇게 안 와?’

건설사 사장은 여전히 힐끔거리며 원래 딸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벌써 1시간은 훌쩍 지났다.

뿐만 아니라 슬슬 무질서하게 이루어지던 연회는 끝이 날 시간이었다.

이제 곧 MC가 나와서 오늘 모임의 취지에 대해 얘기하고, 가장 중요한 행사를 시작하게 될 터였다.

다름 아닌 모금인데…….

그때는 아무래도 한 사람만 가서 사인하는 거보다는 가족은 다 가서 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았다.

‘전화도 안 받네?’

급한 마음에 연락을 취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전화가 안 되었다.

‘설마?’

건설사 사장은 자신도 모르게 천장을 올려다봤다.

말이 천장이지 실제 사장 눈에 비추는 것은 호텔이었다.

그래, 여긴 호텔이었다.

보통 예약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겠지만…….

이수혁 교수라는 사람은 몰라도 자기 딸은 VIP이지 않나.

회사 임원 모임이라든지, 최소 가족 모임이라도 하면 나가는 돈이 수백 이상이었다.

호텔 입장에서는 그런 이들을 위해서라면 늘 방을 준비해 놓기 마련이었다.

‘이런 미친. 맞네. 맞네!’

방을 잡고 올라간 게 아니고서야 대체 왜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단 말인가.

물론 같이 온 여자는 그럼 어디로 간 건가 하는 의문이 남기는 하는데…….

만약 비서 같은 역할이라면 아래서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기이한 상상 속에 사장은 더 참지 못하고 밖으로 향했다.

그러곤 호텔 컨시어지 직원을 물고 늘어졌다.

“없어요?”

“일단 규정에 맞지 않는…….”

“내 딸이라니까! 나 몰라요?”

“그…….”

그러다 잘 안돼서 더 높은 사람이 나왔다.

보통 더 높은 사람은 권한이 더 많기 마련 아닌가.

그 말은 규정을 좀 어길 수도 있다는 건데…….

“없는데요?”

“없어요?”

“네.”

“현금은…….”

“현금 결제는 금일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호텔은 신용카드로만 결제를 받습니다. 사장님.”

“으음…….”

하긴, 모텔도 아닌데 현금을 받겠나.

방을 어찌 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신원 보증을 아예 안 한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었다.

근데 그럼 대체 어딜 갔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때쯤, 사장의 눈에 호텔 로비 앞으로 줄지어 늘어서 있는 차량이 들어왔다.

아마 발레파킹 대기 차량일 터였다.

오늘처럼 VVIP들이 많이 온 날은 으레 이러했다.

‘차…… 차 타고 갔나!’

그 생각이 딱 든 사장은 미친 사람처럼 입구 옆에 있는 발레파킹 직원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곤 마구잡이로 물었고, 뒤따라온, 규정을 좀 어겨도 되는 윗사람의 도움으로 수혁의 차량이 벌써 2시간 전에 빠져나갔음을 깨달았다.

2시간.

2시간이면…….

거의 상상 가능한 모든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시간이지 않나.

손에 힘이 쫙 빠져나가는 것에 더해 다리에도 힘이 쫙 풀렸다.

그렇게 미끄러져 무너지려는 찰나에 전화가 왔다.

박익비.

딸이었다.

“어어, 너! 너! 어디야!”

“어…… 나.”

급하게 물으니 돌아오는 답이 좀 이상했다.

말투가 이상하다고 해야 하나?

어딘지 모르게 축 처져 있는 느낌이었다.

딸을 그렇게 키웠나?

아니다.

아주 어릴 때야 자수성가하느라 그렇게까지 챙겨 주지 못했다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로는 말 그대로 최고의 교육을 해 주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신경을 쓴 게 있다면 딱 부러지는 성격이었다.

“너…… 뭐야. 무슨 일 있어?”

외간 남자랑 가서 물기 어린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이게 보통 일일까?

사장은 자신이 아는 모든 힘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경찰, 변호사, 검사, 국회의원 등등.

뭔 일이라도 생겼다면, 최선을 다해 매장을…….

“나 수술해야 한대.”

“어? 뭔…….”

근데 수술?

뭔 수술을 해?

설마.

“했니?”

“뭘?”

“아니…… 아닌데. 그건 그날 수술할 필요는 없는데…….”

“뭔 소리야, 엄마.”

“아니, 아냐.”

좋지 못한 생각이 들었다가, 영 엉뚱하다는 딸의 반응에 다시 생각을 해 보니까 사리에 맞지 않는 생각이었다.

해서 대강 둘러댔다.

그러는 사이에 물 밀듯 밀려오던 분노는 대개 의문으로 변해 있었다.

대체 얘가 뭔 소리를 하는 걸까?

아니,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아무튼, 수술해야 한대. 이수혁 교수님이…….”

“그 새끼가 뭔 짓 했어?”

“응? 새끼라니, 무례하게. 잘못 들었어? 이수혁 교수님이라고.”

“어…….”

뭔가 나쁜 일은 아닌 걸까?

근데 웬 수술…….

아.

설마.

“둘이 드라이브하다가 사고 났어? 교수님은. 교수님은 다쳤어?”

“아까부터 자꾸 뭔 소리야. 일단 태화 의료원으로 와. 나 검사 좀 해야 한대.”

“어? 아니, 얘. 무슨. 아씨.”

건설사 사장은 급작스럽게 끊겨 버린 전화를 두고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받질 않았다.

‘어떻게 한다……. 정말 가?’

간다고?

병원을?

사장은 자신도 모르게 행사장을 돌아보았다.

사실 이미 약정은 했다.

후원 금액이 한두 푼도 아닌데 당연히 회계적으로 검토를 하고 진행해야 하지 않겠나.

저기서 하는 건 다 요식 행위다 이건데…….

그 요식 행위가 핵심일 때도 있었다.

기사도 저기서 찍힐 사진으로 나고…….

‘그게 문젠가?’

딸내미 수술받는다지 않나.

뭔 검사도 받는다고 하는데, 갑자기 이렇게 주말에 수술이 결정되었다면 필시 큰일일 터였다.

해서 건설사 사장은 쉬고 있던 기사를 불러 태화 의료원으로 곧장 향했다.

그사이 수혁은 영상 하나를 띄워서 박익비에게 보여 주고 있었다.

아직 병실까지 배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아까보다는 사정이 훨씬 나았다.

침대를 받긴 받아서였다.

그래 봐야 응급실이고, 다 열려 있는 공간이다 보니 마냥 편하진 않았지만.

“자, 이거 보시면은…… 보이시죠?”

“아, 네.”

“이게 이제 환자분 배를 찍어서 가로로 잘라서 보여 준다고 보면 되거든요? 내려가다 보면…… 여기 등 쪽으로 보이는 동그란 게 신장이에요. 이쪽이 오른쪽, 이쪽의 왼쪽.”

“아, 네…….”

혼자 멀뚱히 있었다면 힘들었을 테지만, 그런 게 아니다 보니 나름 괜찮았다.

특히 수혁이 설명을 워낙 잘해 주어서 나름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왼쪽 신장 위에 보면 오른쪽하고는 다르게 덩어리가 하나 보이죠?”

“아…… 네. 이게…… 혹시 암인가요?”

“아, 아뇨. 암은 아닙니다. 그냥 양성 종양인데, 이게 알도스테론이라는 애를 분비하고 있어요. 아까 원래도 알도스테론이 높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게 보통 식염수를 주사하고 나면 줄어들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보이질 않았어요. 그 말은 곧 어디에서인가 강제적으로 분비를 하고 있다는 건데…… 보통은 여기예요.”

“아…… 그럼 저는 알도스테론이라는 게 계속 나오는 종양이 있는 거네요. 아까 말씀하신 수술은 그거 제거하는 걸 말씀하는 거고요.”

“네. 보통 이렇게 알도스테론이 높으면 한 3분의 1에서 저칼륨혈증이 발생하고, 3%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압이 정상인데 딱 여기에 걸린 거죠. 그래서 그냥 시행하는 단순 건강검진에서는 전혀 이상이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아…….”

박익비가 똑똑한 것도 한몫했다.

이 정도 설명에 배경지식 없이 잘 따라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하여간, 칼륨이 주요 전해질이거든요. 우리 몸의 균형을 잡아 주는…… 그게 모자라니까 근육에 힘이 안 들어가고 피곤했던 거예요. 저리기도 하고.”

“지금 이거로 보충을 해 줘서 제가 좀 나은 거고요?”

“네. 하지만 이거로는 치료가 되지 않으니…… 수술로 완전히 제거를 해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마침 외과 쪽에 제가 잘 아는 교수님들이 꽤 있어서요.”

수혁은 톡을 내려다보았다.

그냥 외과 당직 레지던트에게 좌측 부신에 대략 직경이 1.7cm 정도 되는 알도스테론 생성 선종이 있는 환자가 있으니 수술 가능한 사람이 있겠냐고 물었을 뿐이었다.

한데 일단 김승규한테 전화가 왔다.

-오늘? 오늘 할 거야?

응급은 아니다.

그러니 오늘 할 필요는 없었다.

-네? 굳이…….

-굳이 하겠다는 거지. 알았어. 애들 풀게.

-네?

그러나 김승규는 하고 싶었는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보통 사람 같으면 당연히 다시 전화해서 정정을 해 주었을 테지만…….

상대가 김승규이지 않나.

제아무리 수혁이라고 해도 굳이 다시 전화를 걸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그냥 있었더니 장준혁을 비롯한 외과 거의 전원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해 줄 수 있다.

근데 하필 나와 있어서 그러니 좀만 기다려 주라.

뭐 이런 식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특히 분과도 아닌데 설치는 사람은 다 조용하고 제일 잘하는 사람이 누구냐 했더니 한 사람이 지목되었다.

그냥 지목만 된 것이 아니라 단톡방이 개설되었다.

-잘해라.

-실수하면 죽어.

-이수혁 교수님 보고 계신데 부정 타게 죽어 라니.

-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지 못할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교수님. 5분 뒤 도착합니다.

거의 모든 교수가 지목된 교수를 두고 조리돌림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부담을 주면 잘하던 사람도 못하겠단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아무튼, 이러한 연유로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받게 된 박익비는 이게 다 수혁 덕분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일단 식염수를 맞고 나서부터는 지난 한 달 넘게 그녀를 괴롭히던 피로감이 사라졌다.

무엇보다 팔다리에 힘이 들어오니 움직이기도 한결 나았다.

당연하지만 기분도 좋아졌다.

‘흐으음…… 진짜 멋있긴 하구나, 능력 있는 의사는.’

병원을 안 가 본 게 아니었다.

시차 적응이라고 하기엔 너무 힘들었기에 그랬다.

미국 처음 갔다 온 거면 몰라도 몇 번 갔다 왔는데 이런 건 처음이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잘한다는 병원 또 소개받은 병원 모두 아무도 원인을 잡아내지 못했다.

그냥 좀 쉬라고 했다.

혈액검사 하라는 얘기도 처음 들었다.

오늘 여기서.

“아이고, 이수혁 교수님! 아, 이분이 지인분이시구나.”

“네, 근데 오늘 수술하시게요?”

“검사 결과 받았습니다. 괜찮던데요?”

“마취과랑 얘기가…….”

“마취과요?”

“네.”

“김승규 교수님이 과장님하고 직접 통화했습니다. 그때부터 기다리고 있다고…….”

“아.”

김승규가 거기에도 전화를 했구나?

그랬다면 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모든 것이 정규와 같이 흘러간다면 굳이 수술 미뤄서 좋을 것도 없었고.

“그럼…… 환자분 가실까요? 수술 설명은 가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위험할 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할 거고…… 무엇보다 이수혁 교수님이 옆에 계시면 뭐 걱정 없죠.”

“아…… 네.”

더군다나 환자도 협조적이었다.

증상 확인부터 진단 그리고 치료 계획까지 빠짐없이 설명을 이미 다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수혁이 간단한 수액 처방을 하고 나서부터는 몸이 완전 달랐다.

이게 명의지 달리 어떤 게 명의란 말인가.

해서 수술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건설사 사장은 간발의 차로 응급실에서 딸을 놓쳤다.

“벌써 들어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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