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6화 우리도 와 줘야지 (3)
대사의 부인은 그 스스로도 꽤 이름을 날리는 저명인사였다.
ESG라는 말이 대세가 되기 전부터 이미 사회 공헌을 위한 자선 단체를 운영하면서, 미국 내 유수의 기업이나 가문 또는 신흥 부호에게서 후원을 받아 세계 각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온 사람이라는 것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모습이라면.
그 이면에는 남편의 정치적 후원을 위해 미국이 진출하고 싶어 하지만 쉽지 않은 지역에 대해 먼저 자선 행위를 함으로써 도움을 준, 실로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모든 것 이전에 미국 내에서 상당히 명망 있는 집안 출신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멍한 얼굴로 ‘어?’라는 단어를 생판 모르는 사람 앞에서 내뱉는 건 당연하게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진드기……?”
“진드기랑 두드러기랑 연관이 있나……?”
하지만 놀랄 일도 아니었다.
왜?
뒤에 서 있던 의사들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드기는 야외 활동이 잦은 아동 또는 성인에게서 상당한 문제를 일으키곤 하는 녀석들이긴 했다.
하지만 대개 급성질환이지 않나.
지금 아이가 보이는 증세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모두가 그렇게 당황한 얼굴로 웅성거리고 있는 가운데 수혁이 입을 열었다.
“아직 놀랄 만한 타이밍은 아니에요. 진드기에 물린 것과 증상 발현의 선후 관계는 미약한 연결 고리일 뿐이에요, 아직은.”
말은 상당히 겸손한 편이었다.
아니, 어찌 보면 유보적이기까지 했다.
허나 표정만은 매우 당당했다.
대사 부인이야 의사 특유의 자신감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머지의 생각은 좀 달랐다.
‘이 자식……. 내 아들……!’
‘이번에도……?’
이현종과 이기자는 역시 이수혁인가 하고 있었다.
수혁이 이런 얼굴을 하고서 허튼소리 했던 적이 있던가.
물론 진단이 잘 안 되었던 적이야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상당한 논리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논리에는 적어도 의사들이 배울 만한 점 한두 가지 정도는 들어가 있었다.
“혹시 아이가 바닷가에 놀러 간 적은 있나요?”
그런 생각을, 그러니까 기대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수혁의 질문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좀 어려운 종류의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쿵저러쿵 입을 놀릴 만한 놈은 아예 없다 보니 뒤는 조용했다.
대사 부인은 의사와 대화 중이었으니 질문이 이상하네 어쩌네 할 여유가 없지 않겠나?
더군다나 방금 진드기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답하기만도 바빴다.
“네, 네. 물론이죠.”
“바닷가에 놀러 가시면 주로 어떤 음식을 먹나요?”
“어……. 아무래도……. 해산물? 남편이 고기를 좋아하긴 하는데, 뷔페를 가니까요, 대개는.”
“그럼 바닷가에 놀러 갔을 때, 아이의 증상이 발현한 적이 있나요?”
“어…….”
이번엔 답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사 부인은 인간이지 바루다가 아니니.
이미 기억 속에 차곡차곡 가족 여행의 추억을 쌓아 놨다고 하더라도, 그걸 끄집어내어 분석하는 건 아예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수혁은 이러한 일에 상당히 익숙했기 때문에 차분히 기다릴 수 있었다.
[그냥 검사를 해 보면 제일 빠른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하지만 뒤를 봐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어.’
[잘난 척하려고?]
‘그것도 있지.’
[부정하지 않는군요. 근데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지루할 틈은 없었다.
수혁은 바루다라는, 아주 말이 잘 통하는 인공지능 깡통을 데리고 있었으니.
아무튼, 수혁은 미심쩍어하는 바루다를 향해 답을 해 주었다.
‘김다현 회장님하고 현태 삼촌이 딱 봐도 중요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일부러라도 이런 식으로 하라고 했어.’
[아……. 아! 미국 대사면 높은 사람이겠죠?]
‘잘은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을까? 아무나 보내진 않을 거 아냐.’
[속이 시커멓군요, 수혁.]
‘내가 아니라 다른 어른들이 그런 거지. 그리고 왕자님처럼 후원자라도 되어 주면 얼마나 좋아.’
[그건 그렇죠.]
바루다는 그 대답에 완전히 납득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왕자라니.
그 사람만큼 도움이 되어 주는 사람이 또 있던가?
“없었던 거 같아요. 확실히……. 없었던 거 같아.”
“그럼 다른 데로 놀러 갔을 때는요?”
“있다가 없다 했어요. 근데……. 흠. 확실히, 있었죠. 근데 바닷가에 간 적은 없었던 거 같네…….”
“흐음. 정황상 증거는 확실히 있는데……. 자, 그럼. 이번 증상에 대해 묻겠습니다. 아이 이름이……?”
“로버트예요.”
대사 부인은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이내, 아이의 이름을 묻자 애써 미소를 띠었다.
아이도 그런 엄마의 반응에 안심한 얼굴로 살며시 웃음을 지어 주었다.
“그래, 로버트. 이틀 전에 입원했지? 병원 생활은 안 힘들어?”
“아……. 아뇨. 괜찮아요. 다 친절하셔서.”
수혁의 환자 대하는 태도나 스킬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었다.
워낙에 많은 환자를 보기도 하지만, 그에 더해 바루다가 드디어 환자가 의사에게 느끼는 감정도 치료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깨달아서 그랬다.
그래 봐야 아직 그런 식으로 데이터를 돌린 지 오래되진 않은 상황이긴 했다.
바로 옆에 붙어 다니는 이현종의 확고한 철학 때문이었다.
-일부러 불친절하게 굴 이유는 없지만, 친절하고 무능한 의사가 되느니 불친절해도 유능한 의사가 되는 것이 낫다. 물론 난 친절하다.
마지막 말은 신현태가 맨날 비난하는 통에 변명하듯 늘어놓은 말일 뿐이었다.
뭐……. 객관적으로도 꽤 친절한 편이긴 했는데 어디까지나 이현종 입장에서의 친절이었다.
환자 입장에서도 그 친절을 온전히 받아들였을까?
알 수 없었다.
아마 그랬다면 고객의 목소리에 이현종 이름이 나오지 않았을 거란 신현태의 설득력 있는 추론이 있었다.
“그래, 다행이네. 이틀 전에 숨 못 쉬고 할 때는 많이 힘들었니?”
“어……. 네. 죽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주사 맞고는 바로 괜찮았어요.”
아이는 아직 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묻는 말에 또박또박 대꾸하는 것이 될성부른 잎 같았다.
수혁은 바루다와 함께 아이의 답과 기억력에 상당한 신뢰성이 있을 거란 판단을 하면서, 질문을 이어 나갔다.
“그렇구나. 그날 혹시 점심엔 뭐 먹었어?”
“점심이요?”
“응.”
“어……. 유치원에서 먹었는데……. 뭐더라.”
뭐 똘똘하다고 해도 아직 어린애이지 않나.
경험적 지식을 불러오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기 마련이었다.
워낙에 소아과 환자를 많이 본 까닭에 수혁은 별 당황 없이 기다릴 수 있었다.
그 전에 참을성이 좋은 편에 속하는 인간이기도 했다.
보육원에서 나고 자라다시피한, 그러니까 모든 욕구에 대한 결핍이 내재되어 있는 인간은 보통 그랬다.
물론 한번 서 있는 위치가 개변할 때 삶을 대하는 태도 또한 변하는 경우도 많기는 하겠는데, 수혁은 모두가 인정하듯 그 태도가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아! 소시지요. 아주 맛있었어요.”
“아……. 그리고?”
“그리고……. 친구가 젤리 나눠 줘서 먹었어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다고 들었는데, 벌써 친해졌나 보네?”
“네. 애들 되게 착해요.”
“그렇구나.”
수혁은 아이의 말에 일상적인 답을 해 주면서 머릿속으론 소시지와 젤리의 성분을 떠올렸다.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구만그래.’
[네. 두 음식 모두 아주 전형적인…… 알파-갈 함유 음식입니다.]
‘그래, 물고기나 조류에는 들어 있지 않으니 해산물을 먹을 때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도 하나의 증거가 되겠지.’
[이것만으로 확신하는 것은 좀 위험하긴 한데…….]
‘확률이 얼마나 되는데?’
[여러 변수를 종합해서 계산하면.]
바루다는 그 성분과 환자의 증상 발생을 연관 지어 데이터를 분석했다.
[대략 80%.]
‘낮지 않네.’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겁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 진단인 만성 자발성 두드러기보다는 훨씬 설득력이 있습니다. 여전히 그 진단명일 가능성은 10%도 안 됩니다.]
‘불상의 두드러기가 5%니까, 뭐. 거의 의미가 없는 진단명이네.’
불상의 두드러기라는 건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가파르게 발전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현대 의학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질환은 많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면역과 관련된 것, 또 먹을 것과 관련된 것은 더더욱 그랬다.
한 가지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다면 예전처럼 무턱대고 환자의 정신력 탓을 하진 않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이제 무슨 19세기 일이 아니라 20세기 말에도 있었던 일이라는 걸 감안하면 확실히 현대 의학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아이가 아주 똑똑하네요.”
수혁은 섣불리 머리를 쓰다듬는 대신 그저 대사 부인을 돌아보았다.
문화적인 차이도 고려한 것이지만, 뭐가 되었건 병원에서 의사가 손으로 자꾸 어딜 만지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었다.
아무리 손을 잘 닦았다고 해도, 다른 어딘가에 닿았던 순간부터는 오염 물질이라고 치부해도 좋을 일이라 그랬다.
특히 태화처럼 커다란 병원엔 슈퍼 박테리아도 많았다.
비단 태화뿐 아니라, 큰 병원에서 오래 근무한 의사들을 잘 보면 얼굴을 손으로 만지는 습관이 잘 없는데 이러한 것에서 기인했다고 보면 되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큰 도움이 되었어요. 설명드리겠습니다.”
“아, 네. 혹시……. 녹음해도 좋을까요? 남편 때문에.”
“네,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대사 부인이 녹음 기능을 켜는 동안 잠시 기다려 준 수혁은 화면이 변하자마자 입을 열었다.
“일단 아이가 점심에 소시지와 젤리를 먹었다고 했죠? 이 음식들이 원인이 되었을 겁니다. 보다 자세하게 말씀드리자면, 아이는 돼지, 소, 사슴, 양고기에서 유래하는 젤라틴, 유제품 등에도 이러한 반응을 보일 수 있어요. 이유는 이들 식품에 함유된 갈락토스-알파-1,3-갈락토스……. 일명 알파-갈이라는 성분에 알레르기를 일으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 육류랑 연관이 있는 거예요?”
“네. 증상이 지속적으로 재발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육류 섭취 빈도가 적거나 그 양이 적은 동아시아에서는 같은 알레르기가 있다고 해도 증상 발현이 적어요. 하지만 미국은 대표적인 육류 소비 국가 중 하나인 데다가, 육류 가공품도 워낙 많이 먹죠?”
“그렇긴…… 하죠.”
고기 없는 식사를 상상할 수 있을까?
저소득층에서조차 문제가 되는 건 고기의 부재가 아니라 채소와 과일을 비롯한 신선 식품의 부재였다.
“근데 저희 부부는 전혀 문제가…… 그리고 사실 아이 누나도 있는데 걔도 멀쩡해요.”
“네, 선천적인 질환이 아니에요. 진드기에 물리고 나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가설이지만, 선후 관계는 명확히 증명되었죠.”
“아…….”
“간단히 말씀드리면, 진드기 타액에 알파-갈이 존재하고, 그에 대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다가 알파-갈 전체에 거부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는 가설이 있어요. 이게 1번이고, 두 번째는 타액에 이전에 진드기가 문 포유류 혈액이 있어서 이에 대한 반응이 일어난다는 가설입니다. 워낙 드문 병이다 보니 이런 식의 가설도 가능한 것이죠. 또는 뭐 진드기 타액에 알파-갈을 발현하는 박테리아가 존재한다는 가설도 있는데, 이건 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아무튼, 검사를 좀 해 보죠. 간단한 혈액검사면 됩니다.”
“아, 네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