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3화 학회 초청 (7)
툭
박리라고 하면 칼로 뭘 벗겨 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모든 박리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많은 경우에서는 뭉툭한 기구로 툭툭 밀어서 벗겨 내는 게 보통이었다.
레이어를 잘 구분한 채로 밀면 칼로 미는 것만큼 더 잘 밀리기도 했다.
피야 뭐 애초에 구분된 영역이니 거의 안 났고.
‘흐음…… 진짜…… 이건 재능인가.’
배를 열고 하는 것이라면, 사실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사실 의사라면 레이어 보는 것이 익숙하기 마련이니까.
물론 내과 의사가 외과 의사만큼 익숙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다 열어 놓고 하면 가능하긴 했다.
허나 지금은 복강경.
일단 복강경 카메라가 3D가 아니라 2D다 보니 입체감이 훅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헷갈린다 이 말일 텐데, 수혁은 별 어려움 없이 박리를 하고 있었다.
속도가 빠르진 않았는데 그게 뭐 어려워서라기보다는 느낌에 대해 고민하느라 그런 것 같았다.
[수혁, 아니지. 이렇게 해야지.]
‘그런가? 넌 근데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
[보는 건 데이터화해 뒀죠. 느낌은 그걸 토대로 넣고 있고, 지금 실시간으로.]
‘굉장히 어려워 보이는 작업인데…….’
[천재죠.]
‘사람이 만든 건데 천재라는 게 맞냐?’
[그럼 인재. 사람이 내린 재능이라고 할까요?]
‘뭐가 되었건…… 이거 느낌이…….’
[암은 아닐 거 같습니다. 유착된 것을 뜯는 느낌이지, 침범한 조직을 뜯는 느낌은 아닌 거 같습니다.]
물론 수혁 혼자서 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수혁이 손이 꽤 좋은 편이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험을 뛰어넘을 수준은 아니지 않겠나?
바루다의 보정이 없었다면 지금쯤 실수 몇 번은 했을 게 뻔했다.
심지어 그와 동시에 느낌을 분석한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허나 바루다와 함께인 수혁에게 불가능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그래, 그렇게 들으니까…… 확실히 그런 거 같아.’
[그렇죠? 일치된 조직을 뜯는 느낌은 아니에요. 하지만 느낌일 뿐입니다. 확신을 갖고 말하기엔 아직 데이터가 적어요.]
‘어차피…….’
수혁은 박리를 하다 말고 옆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넋 나간 얼굴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박신영 교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분이 알아서 판단할 거야.’
[하긴, 그렇군요. 수술에 있어서 최종 결정권자는 우리가 아닌 박 교수죠.]
‘그렇지. 우리는 어디까지나 조언을 위해서 들어온 거야.’
[네. 아무튼…… 아, 이거 엄청 딴딴하네.]
수혁은 그렇게 박 교수를 힐끔 바라본 찰나를 제외하고 몇 분인가 더 박리를 진행했다.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섬유화가 진행되어 있어서 밀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그렇게 아주 단단한 느낌을 받게 되었을 때, 수혁은 손을 뗐다.
“여기까지만 할까요? 지체되는 거 같아서.”
“네? 아뇨. 아닙니다. 아주 잘하고 계셨어요.”
박신영 교수는 바로 그 기구를 받아 드는 대신 일단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제아무리 평정심의 달인이라는 박신영조차 금세 마음을 가라앉히기란 어려울 거 같았다.
“느낌은……?”
“느낌이요. 섬유화가 진행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섬유화라면…….”
“염증으로 인한 유착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 조직이 뚫고 나와서 옆을 침범한 느낌은 아니었어요.”
사실 박신영 교수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보기에도 유착으로 보여서 그랬다.
물론 이런 정황상 증거를 가지고 확신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수단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군요. 일단…… 한번 제가 다 해서 떼 보고 또 만져 보도록 하죠.”
“그러시죠. 옆에서 보겠습니다.”
“네.”
그렇게 짤막한 대화를 마친 박 교수는 기구를 넘겨받았다.
그러곤 꾹꾹 밀다가 섬유화가 너무 심한 지점에 이르러서는 작은 가위로 자르기도 했다.
툭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그렇게 흠집을 낸 다음에는 다시 미는 것으로 박리를 진행했다.
물론 모든 부분에 있어서 미는 방식의 박리가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지점에 이르러서는 낫 모양의 칼을 쓰기도 했다.
덜렁
그렇게 시간이 더 지나자 담낭이 간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배 후면으로 떨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담낭관까지 자른 것은 아니어서 그랬다.
공장으로 들어가는 부분과 간에서 나오는 부분.
그 부분에서 뭔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묶은 박신영 교수는 곧 절제에 들어갔다.
그러곤 배 안에 꽂혀 있던 트로카 하나를 뽑아내면서 동시에 비닐 백에 담은 담낭을 꺼냈다.
보통은 그렇게 끝이겠지만, 지금은 진단이 안 된 상황이지 않나.
“꺼내 봐.”
“네. 교수님.”
해서 박 교수는 펠로우에게 담낭을 꺼내서 직접 볼 것을 지시했다.
곧 담낭은 비닐 백에서 빠져나와 환자 배 위에 놓인 철제 플레이트 위에 놓였다.
일단은 다들 성급하게 만지는 대신 지켜보았다.
수혁도 한창 절제술이 진행될 때는 잠시 뒤에 빠져나와 있다가 다가왔다.
‘어때 보여?’
[담낭이군요.]
‘그게 다야?’
[저라고 해서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수혁…… 일단 연애 조언도 잘 못 하잖아요.]
‘어, 그렇지. 근데 왜 너의 무능을 얘기하는데 내가 슬퍼지는 걸까?’
[잘 생각해 보면 이유가 나올 겁니다.]
수혁은 바루다와 생산성 없는 대화를 하면서도 일단 잘려 나온 담낭의 형태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음.”
그렇게 좀 있으려니 일단 박신영 교수가 담낭을 집어 들고는 만져 보았다.
정말이지 한참을 만졌다.
쪼물딱거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집에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이 있는 시니어 간호사는 말랑이 만지는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하여간, 그 정도로 열정적으로 만져 대던 박신영 교수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해서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어…….”
그러다 이제는 숫제 탄식을 터뜨리고 있었다.
수혁으로서는 이런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암인가?’
[만져서 안다고요? 사이코메트리도 아니고.]
‘근데 표정이…….’
그런 생각을 쭉 이어 나가기 전에 박 교수가 수혁이 아닌 펠로우에게 건넸다.
“만져 봐.”
“네. 교수님.”
상명하복의 산지가 외과이지 않나.
펠로우는 영문도 모른 채, 그러나 열과 성을 다해 담낭을 쪼물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박신영 교수보다는 조금 뒤늦게 고개를 갸웃거리더니만 똑같이 탄식을 터뜨렸다.
그다음엔 레지던트에게 주어졌는데 역시나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였다.
“교수님. 교수님도 만져 보시죠.”
마지막으로 수혁이 만지게 되었다.
이 양반들이 다 왜 그러나 하는 얼굴로, 수혁은 감각을 일깨운 채 담낭을 만져 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알 수 있었다.
‘담관의 벽이…… 부드러워. 생각보다는…… 훨씬 부드럽지?’
[네. 암이었다면…… 그러니까 담관에 악성 종양이 있었다면 이것보다는 훨씬 단단했을 겁니다.]
‘그리고 만져지는 종양이 아예 없어. 담낭 안에도, 담관에도.’
[그렇군요. 아…… 그렇군. 이런 종양이 없다면 악성 종양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나 배웠다. 좋은데?’
[좋군요. 언제 써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수의학 공부했던 것도 써먹었으니 언젠가는 반드시 필요한 날이 오겠죠.]
‘그러니까. 어떤 병의 치료는 외과적인 치료가 필수적이기도 하잖아.’
[그렇죠. 내과가 더 발전하면 뭐…… 외과의 일이 없어지긴 하겠지만요.]
1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수혁은 외과 사람들이 왜들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고 탄식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전에 쌓인 비슷한 종류의 데이터가 없어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단련된 추론 능력은 중간에 비어 있는 데이터가 있다 해도 별 어려움 없이 뛰어넘을 수 있기에 그랬다.
“종양이 아니군요. 수술은 여기서 종료해도 되겠는데요?”
“아…… 네. 종양이 만져지질 않습니다. 확실히. 하.”
수혁의 말에 박신영 교수는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자, 잠깐.”
그렇게 수술을 종료하려던 찰나, 누군가 끼어들었다.
지금까지 엿듣고 엿봐서 모든 돌아가는 사정을 다 꿰고 있던 학술 이사였다.
잠깐 시간이 나서, 또 수혁에게도 잘 보이고 싶어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장준혁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지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뭐…….
한창 수술 도중에 끼어드는 것도 아니고 다 끝나서 말 거는 거야 뭐 그럴 수 있었다.
“음?”
모자 쓰고 마스크 썼는데 누가 누군지 알 게 뭐란 말인가.
박신영 교수는 학술 이사라는 생각은 못 한 채 빤히 바라보았다.
수혁은 달랐다.
“우리 병원 사람 아닌데?”
그는 모든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나.
게다가 실시간으로 분석도 할 수 있었다.
“네? 뭐야. 뭐야, 당신!”
박신영은 김승규의 제자다.
의술만 배웠을까?
아니다.
침입자라는 생각에 봉합을 펠로우에게 맡기고 아주 자연스럽게 메스를 들었다.
“아, 나 하, 학술 이사!”
“어어. 나 장준혁이야. 학술 이사님이셔.”
“아.”
물론 휘두르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장준혁이 나서서 말려서였다.
그렇다고 해도 해명은 필요했다.
“왜……?”
“지인이시래.”
“네에?”
박신영의 얼굴에 깃들어 있던 의문은 전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까지 올 정도면 지인 정도가 아니라 아주 친밀한 사람인데…… 이상하네. 어떤 연결 고리가 있지?’
사회적으로 자연스레 형성되었을 것 같진 않았다.
“어어, 지인인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뭔가 묻고 싶은 게 많은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눈앞의 학술 이사는…….
이사 아니라 회장도 할 만큼 연륜이 있는 교수는 뭐라고 해야 할까.
‘왜 이렇게 흥분을 했어? 장갑은 왜 꼈고?’
능숙한 손길로 무균법으로 장갑을 낀 채였다.
“한 번만 만져 보지.”
“이걸요?”
“그래. 제발. 제발!”
“그…… 그래요.”
이런 사람이 뭐 망가뜨리진 않을 거 아닌가.
해서 그러라 했더니 심각한 얼굴로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탄식도 하고, 감탄도 하고 그랬다.
그러더니 수혁을 보면서 고개를 숙였다.
“교수님. 저 외과학회 학술 이사 서준규입니다. 부디 저희 학회에 와 주시죠. 위명은 많이 들었습니다만…… 이 정도로 뛰어나신 분일 줄 몰랐습니다. 이 류모…… 감명받았습니다.”
속으론 김승규를 떠올리고 있었다.
‘아니, 이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면 찾아올 필요가 없잖아? 그냥…… 어? 언질만 했으면 내가 다 알아봤지…… 이렇게까지…… 이건…….’
무식한 놈이 쳐들어와서 청탁인 줄 알았지 않나.
이런 분인 줄 알았으면 학술 이사부터가 버선발로 뛰쳐나왔을 것이다.
“이잉…… 그게 스팸이 아니었나?”
“스팸이요?”
“메일 보내셨어요?”
“네. 아. 스팸인 줄 아셨구나.”
“말투가 좀 장난스럽길래요.”
“자, 장난이라뇨. 제가…… 아니, 아닙니다. 아무튼, 부디 와 주십쇼.”
“뭐…… 어려운 일은 아니죠. 그 메일 대로면 제가 날짜랑 시간 고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네네.”
“좋죠.”
다행한 것은 수혁이 학회 참석이라면 거의 오케이라는 점이었다.
불행한 것은 이현종과 같이 거의 깡패라는 점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