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30화 (1,130/1,303)

1130화 학회 초청 (4)

‘왜…… 답변이 없으실까.’

외과 학술 이사는 혹 자신의 메일에 공손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나 해서 여러 번 확인했다.

메일을 보낸 지 무려 1시간이 지났고, 40분 전에 확인도 한 거 같은데 답변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실 대학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치고 메일 확인에 비해 답 메일이 늦은 사람이야 태반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았지만, 지금 학술 이사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저 하염없이 연구실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다.

보통 이쯤 되면 비서가 좀 말려야 하겠으나, 비서 또한 넋이 나간 지 이틀째였다.

“이봐.”

“네, 넵!”

“너무 놀라지 말고…… 나도 놀라잖아.”

“죄송합니다…….”

“죄송은…… 내가 미안하지. 근데 계약 위반은 아닐세. 우리 계약서 잘 보면 김승규 교수님에 대한 경고가 있어. 사실 나쁜 사람은 아닐 건데…… 아마 아니겠지? 아무튼, 얼굴만 보면 나도 모르게 공포가…….”

“이해합니다, 교수님…… 사실 저도 비서 일, 이거 미국 가기 전에 잠깐 하려는 건데……. 전에 태권도 했었거든요. 나름 사범인데 이렇게 놀라다니.”

교수와 비서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상당히 끈끈했는데, 사선을 넘은 전우들끼리만이 공유할 수 있는 어떤 감정이 뒤섞여 있어서 그랬다.

오버하는 거 아니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하는 놈일수록 김승규 교수 앞에 서는 순간 바짝 얼기 마련이었다.

세상엔 사람의 이해를 벗어나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중에서도 김승규의 얼굴은 완연한 불가해의 영역에 있다고 보면 되었다.

“찾아봬야 할까?”

“메일 벌써 5통 보내셨죠?”

“어.”

“음…….”

메일의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말투만 점점 더 공손해지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이제는 공손하다기보다 숫제 비굴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거 같긴 하지만…….

아무튼, 김승규의 복심이라면 가는 게 맞을 거 같았다.

게다가 생각해 보면 장준혁과 김승태라는 신진 교수들 중에서는 아주 잘나가는 분들이라 할 수 있는 분들도 강력 추천한 마당이지 않나?

비서야 계약직이다 보니 딱히 외과 학회에 정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어제를 기점으로 해서 마음가짐이 좀 달라졌다.

이 정도 일까지 겪었는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가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모셔? 에이…… 교수 만나러 가는 건데, 뭐.”

“어제도 교수님이 오신 겁니다…….”

“음. 설마…….”

“검색해 보기도 겁나네요. 어떤 분인지…….”

“소문은 익히 들었지.”

천재라는 말도 당연히 도는데, 그것보다는 오히려 괴물이라는 평이 더 자자했다.

괴물이라.

평소라면 좀 다를 텐데, 어제 김승규를 봐서 그런가 자꾸만 그 얼굴만 떠올랐다.

“떨지 마십쇼.”

“그, 그래. 같이 가는 게 좋겠군…….”

“네. 저도 용기를 내 보겠습니다.”

“좋아. 가세.”

태권도 사범인 비서 또한 크게 다른 상황은 아니다 보니,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차량에 탑승했다.

그러곤 태화 의료원으로 향했다.

칠성이야 뭐 바로 근처 아니던가.

괜히 사람들이 강남 살기 좋다고 하는 게 아니었다.

초대형 병원 중 무려 세 개가 차 타고 20분 거리에 있었다.

“또?”

그렇게 금세 도착한 둘이 센터 내로 들어서는 순간에도 수혁은 진료 중이었다.

아니, 진료라기보다는 상담 중이라고 해야 옳았다.

“네, 교수님.”

“이상하네…… 요새 외과에서 왜 그러지?”

“오히려 느린 거 아니겠습니다. 교수님의 지식과 지혜를 이제야 받아들이고 있지 않습니까?”

“으음. 그렇게 생각하면 또……. 맞는 말인 거 같기도 하고.”

가까이서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면 바로 끼어들었을 터였다.

하지만 먼발치에서 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대머리 쪽이지?”

“놀랍게도 아닌 거 같습니다.”

“오…… 생긴 게 그렇게 박력이 있으시진 않으시네.”

“근데 분위기가…… 원래 내과는 저렇습니까?”

외과야말로 도제식 교육의 산실 아니던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장에 위 연차는 하늘, 아래 연차는 바닥이라는 문구를 적어다가 붙여 놓고 있을 지경이었다.

사실 뭐 병원 내 모든 과가 다 그렇긴 했다.

그래도 내과 같은 과는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부분이 아무래도 큰 만큼 수직적인 분위기가 제일 덜한 편이었다.

‘아니, 절대 아니지.’

학술이사는 종교적인 위엄마저 느껴지는 광경에 잠시 눈을 감았다.

김승규 종류의 무서움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도 충분히 무서웠다.

뭐야, 저게?

“가실까요.”

안대훈뿐만이 아니었다.

김성진은 가운을 벗어 수혁이 가는 걸음에 던지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는데, 수혁이 그걸 밟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전처럼 이러지 말라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이럴 필요는 없어요.”

“어찌 이리 관대하실까…….”

“하하.”

반쯤은 체념한 탓이긴 했다.

[그래. 어차피 하지 말라고 해 봐야 지들 멋대로 계속 더 심해지는데 그냥 이렇게 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조인 하윤은 어쩌고 있냐고?

이제 수혁과 부쩍 더 가까워진 하윤은 돌림판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외과에서 알아서 연락이 온 덕에 이걸 돌릴 필요가 없어져서 그랬다.

그냥 넣으면 모르겠는데, 이번 돌림판은 전용함도 있는 게 보기에 좀 이상했다.

음각과 양각으로 통합진료센터와 이수혁의 이름을 새긴 원목 상자…….

무언가 신성하기까지 했다.

“어어.”

“아씨. 놓쳤네.”

맨날 보는 사람들도 이럴 때면 선뜻 다가가기가 어려운데 처음 보는 사람들은 어떻겠나.

더군다나 다른 병원, 심지어 한번 된통 당한 적이 있는 칠성 사람들이었다.

원장부터 해서 여럿 물먹은 탓에 수혁을 포함한 통합진료센터에 대한 인상은 거의 악에 가까웠다.

그런 이유로 어버버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수혁이 사라져 버렸다.

해서 둘은 뒤늦게 일행을 따라나섰다.

부리나케 걸었지만, 낯선 공간에서 빨리 걸으면 뭐 얼마나 빠르게 걸을 수 있겠나.

“그…… 이수혁…….”

“아, 저쪽이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놓쳐도 지나는 이들의 도움을 늘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눈에 띄는 일행이기도 하지 않나.

가장 젊으면서 동시에 가장 머리 좋은 교수.

칠성의 프락치였다가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임상 강사.

달리 수식어가 필요 없는 안대훈.

이쁘고, 착하고, 똑똑한데,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느라 사실상 모솔로 더 유명한 1년 차 펠로우.

덕분에 좀 느려도 어찌어찌 따라잡고 있었다.

“여긴가.”

그사이 외과 병동에 도착한 수혁은 또 다른 외과 교수와 마주하고 있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이수혁 교수님.”

김승규 사단 중에서도 직계로 분류되는 인물이었다.

장준혁도 간담췌이긴 한데, 눈앞의 교수는 주로 이식을 도맡아 하는 편이다 보니 직계 제자라 해도 무리 없을 터였다.

수혁은 박신영 교수의 인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네, 교수님.”

존경심을 담은 채였다.

김승규 얼굴을 바루다의 보정도 없이 견딜 수 있는 사람이라면 존경의 대상이 될 만하지 않겠나?

“그런데 어쩐 일이신지.”

간이식 파트는 사실 진단이 크게 의미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소화기내과 간 파트를 포함해 여러 과에서 이미 간이식 말고는 방법이 없을 거라고 확정이 난 환자들이 오는 곳이지 않나.

이식 자체가 더 중요한 일이다, 이 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간이식이 수술 중 가장 어려운 수술이라고 하면 여기저기서 말들이 나오겠지만, 제일 어려운 수술 중 하나라고 하면 아마 다들 수긍할 터였다.

‘김승규 교수님이 보내던 것들도 다 남들한테 강탈해 온 것들 아니었나?’

해서 수혁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박 교수를 바라보았다.

박신영 교수는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인 후, 말했다.

“최종 진단이 나온 상태가 아니거든요. 이식이 확정된 것도 아니고. 일단 영상을 한번 보시죠.”

“아, 네.”

“켜는 동안 환자 설명을 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박신영 교수는 언뜻 보기에 군인 같은 모습으로 환자 브리핑을 했다.

약간 어색했지만, 외과 교수 중에선 이런 사람들이 꽤 흔한 편이긴 했다.

애초에 그렇게 빡센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견디기 어려운 삶이라 그랬다.

내과에서도 환자들이 많이 죽어 나가는 편이라 하지만, 외과는 그야말로 자기 손끝에서 환자가 죽었다.

그 스트레스에 더해 수술로 인한 물리적인 힘듦까지 견디는 사람이 일반인의 범주에 속해 있을 리가 없었다.

“환자는 68세 남자입니다. 황달과 지방 변을 주소로 왔는데…… 발생 시간을 잘 몰라요.”

“네? 그건 왜죠?”

“원래 약간……. 인지 기능이 떨어져 있던 것 같습니다. 정신과 협진 봤는데, 치매 초기 같다고 해요. 오랜만에 찾아온 아들이 보고 데려온 케이스입니다.”

“아. 응? 구정 때는요?”

“아들이 미국에 있어요. 안 그래도 구정 때 통화하다가 좀 이상한 거 같아서 왔다는데, 그렇잖습니까. 미국에서 한국이 가깝지가 않으니.”

“그렇죠. 하긴.”

학회 참석이 잦은 편인 의사들은 거의 매년 미국을 왕복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쉽게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

수혁을 비롯한 통합진료센터 인물들은 왕자님과 김다현이라는 절대적 후원자 덕에 비즈니스를 탄다지만, 나이가 들수록 13시간 이상 걸리는 비행에 이코노미석 이용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마련이었다.

“아무튼, 환자는 고혈압, 당뇨가 있어요. 관리는 동네 병원에서 하고 있다고 했는데…… 혈압은 그나마 괜찮지만, 당뇨는 잘 안되고 있습니다.”

“흐음…….”

“치매 탓인지, 아니면 애초에 그냥 처방이 잘못되었는지는 알 수 없어요. 다만 내분비내과 쪽에서 인슐린 추가하자마자 조절이 잘되긴 합니다. 그 외에는 전립선비대증이 있고, 다른 질환은 없어요. 뭐…… 근데 혼자 사는 노인이다 보니 자기 몸 상태에 대해 잘 모릅니다. 아들이야…… 미국에 있었으니 더더욱 그렇고요.”

“그렇군요. 흐음…….”

좋지 않다.

병원 가면 자꾸 질문을 해 대니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가장 많은 감별 진단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바로 이 문진이었다.

과거력만 제대로 알아도 수혁 레벨에서는 어지간한 진단이 되는 편이었다.

“혈액검사부터 해 보니까 빈혈이 있고요, 빌리루빈이 8.01로 크게 증가해 있습니다. 얼굴만 보셔도 황달이 보이니까, 당연한 일이긴 하죠.”

수혁이 설명을 들으며 검사 결과를 보니, 그 외에 간 수치도 팍 떠 있었다.

항간에 암 지표로 알려져 있는 암배아 항원 수치는 2.2ng/ml, 혈청 CA 19-9는 42U/ml로 상승해 있었다.

[이것만으로 암이라 단정 짓는 건 어렵습니다만…….]

‘영상을 봐.’

CT에서 간 내부에 있는 관이 확장이 되어 있었고, 담관의 벽 두께 또한 증가해 있었다.

간문맥도 병변에 의해 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담관암?”

“네, 일단 진단은 그런데…… 제가 좀 찝찝해서요.”

“어떤 점이요?”

“환자 본인 진술은 증상 발생이 며칠 전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치매 환자 말이라지만, 아무리 봐도 좀…… 본인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아서.”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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