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화 대비 (2)
안대훈, 김인수가 최선을 다해 수십 명에 달하는 3년 차들을 대상으로 구제 강의에 한창인 시각에 수혁은 간만에 홀로 응급실로 향하고 있었다.
통합진료센터의 두 펠로우가 시간을 낼 수 있다는 건 이미 정규 시간은 다 끝났단 말이지 않겠나.
그렇다 보니 복도에 오가는 사람들의 수도 현저히 줄어 있었다.
애초에 코비드 사태 이후로 면회 문화가 많이 사라져서이기도 했는데, 그렇다 보니 몇 안 되는 이들도 대부분은 의료진들이었다.
“어, 안녕하세요. 교수님.”
“아, 네.”
“응급실 가시는 거예요?”
“어…… 그렇죠. 아무래도.”
“역시…… 저도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 아는 얼굴이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교수 임용이라도 받은 사람들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태화 의료원처럼 거대한 병원엔 해마다 펠로우로 오는 사람들만 해도 엄청 많았다.
거기에 더해 6개월 단위로 연수 오는 해외 의사들도 꽤 있었는데, 지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꽤’라는 단어를 쓰는 데 좀 켕기는 구석이 있을 만큼이나 민망한 숫자였지만…….
이젠 굉장히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내과 쪽은 뭐 어마어마했다.
-아직 통합진료센터에서는 해외 연수를 받고 있지 않습니다.
안대훈을 비롯한 여러 펠로우 그리고 임상 강사인 김성진까지 돌아가면서 이 답변을 대체 몇이나 했을까.
얼마나 많았던지 중반쯤 지나고 나서는 그냥 받을까 싶기도 했더랬다.
하지만 이현종의 교육 철학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야. 아직 시기상조야. 지금은 제대로 된 제자들 키우는 데 집중해야지. 얘네가 다 크고 나면…… 그때는 모르겠는데 지금 와 봐야 부스러기나 얻어 갈 거야. 당장 얘네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맨날 헷갈리는데, 무슨 해외.
맞는 말이지 않나.
수혁이 생각해도 이번에 받은 인원들부터 제대로 키우는 게 맞았다.
고맙게도, 병원에서도 보통 1년짜리 TO로 제한을 두기 마련인데 센터에 한해서는 전원 2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지 않았나.
이미 실력이 일취월장하긴 했지만…….
제도적으로 뭐가 잡히려면 아직 멀었기 때문에 이대로 나가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것이 뻔해 긴장하고 있었는데, 병원에서 그렇게 해 주고 있다 보니 참으로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통합진료센터로 가지 못한 해외 연수는 그대로 다른 내과 분과로 이어져서 지금 병원엔 말 그대로 의사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전혀 모르겠는 얼굴인데…… 파이팅이 넘치는군요.]
‘그러니까 말야. 사실 대훈이랑 다닐 땐 이럴 일도 거의 없으니…….’
[그 녀석이 사전에 다 차단을 하니까요.]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모르겠습니다. 그건…… 이미 의사 레벨이 아니에요.]
‘그렇지? 그런 거 같아.’
다만 수혁은 평소에 전혀 못 느끼고 있었다.
왜냐.
안대훈의 철저한 경호 때문이었다.
미국에서조차 일말의 틈을 허하지 않은 그의 마크는 당연히 텃밭이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 훨씬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오늘은 어디 간 거야.’
[시험 때문에 강의 간다고 했잖아요.]
‘아, 맞네. 뭐…… 이번엔 나름 좀 어렵긴 할 테지.’
[그럴 겁니다. 우리는 진짜 난이도 조절 최선을 다해서 냈는데, 나머지가 좀 미쳤던데요?]
수혁이 무슨 원수 달고 사는 것도 아니고, 어디 모자란 사람도 아닌데 그런 조치가 필요한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잘 보면 수혁만큼이나 일상생활에 있어 공을 들이지 않는 인간도 드물었다.
원래 교수란 사람들이 대개 그렇긴 했다.
일단 아래서 알아서 뭔가를 해 주지 않나?
더욱이 대학 병원이라는 곳은 엄혹한 진짜 사회에 비하면 훨씬 안온한 곳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수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어려웠는데 그중 최고봉이 수혁이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특히 아빠는…… 무슨 심장내과 전문의도 못 맞힐 거 같은 걸 내고 있더라.’
[이현종뿐입니까. 조태진도 뭐…… 아니, 3년 차들이 무슨 암만 봅니까?]
바루다가 있어서 더 그랬다.
인공지능 주제에 자아도취에 빠진 놈이 옆에서 조잘거리고 있다 보니 애초에 좀 우쭐거리는 성향을 타고난 수혁으로서는 점점 더 그렇게 되는 수밖에 없었다.
“이게 아마 이수혁 교수님이 관여한 문제일 거야.”
“아…… 미친…… 뭔 신드롬이요?”
“Tolosa-Hunt-Like syndrom…… 이라는 건데. 관리가 안 되는 당뇨…… 그러니까 진단이 되지 않은 당뇨에서 잘 발생해.”
“잘 발생한다고요?”
바루다와 수혁이 서로의 얼굴에 금칠하고 있는 사이, 강의실은 술렁이고 있었다.
안대훈의 추정 때문이었다.
말이 추정이지, 안대훈이야말로 수혁 전문가이지 않나.
만약 학위가 있다면 이미 박사 학위를 받았을 거란 말이 있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안대훈은 수혁에 대해서는 감히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 인간이기에 그가 하는 말의 신뢰도는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었다.
“100만 분의 1 정도지.”
“아니……! 이런 미친!”
“어허. 말을 가려 하도록 해.”
“그치만…… 그치만 이건…… 이번 시험 취지가 흔한 질환을 절대로 놓치거나 두루뭉술한 치료하게 되는 케이스를 막기 위함이라면서요.”
그런 안대훈조차 방금 3년 차의 항변에 대해 뭐라 할 말이 많지는 않았다.
‘좀…… 심하긴 하시지…….’
이번 시험이 전반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다.
높은 확률로 이게 열화판일 것이라는 걸 감안해 보면 그야말로 말이 안 되는 수준이라고 보면 되었다.
이현종이 냈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 문제들을 봐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이수혁이 낸 문제는 그 차원을 달리하고 있었다.
“그건 내가 대신 사과하마.”
해서 안대훈은 굳은 얼굴로 정수리를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아…….”
원래 사람이 살면서 남의 정수리를 보게 되는 경우가 아주 많을 수는 없지 않나.
그중에서도 안대훈과 같은 두발 상태의 정수리를 보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그리고 그런 드문 경우는 상당한 힘을 갖게 되기 마련이었다.
‘그래, 이걸로 넘어가자…….’
물론 안대훈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수혁을 위해서라면 더한 치부도 숨기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인간이지 않나.
때문에 그는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언젠가 수혁에게 들었던 내용을 보다 쉽고 간단하게 가공해서 3년 차 앞에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주제는 당연히 Tolosa-Hunt-Like syndrom였다.
더럽게 드물기도 하고 더럽게 어려운 케이스이기도 했기 때문에 다들 초집중 상태가 되었다.
그래도 이수혁이랑 같은 병원인데 그가 낸 문제를 다 틀리면 좀 그렇지 않나?
애초에 다 맞힐 거란 기대는 없지만…….
하나는 맞히고 싶다는 열망이 그들의 집중력을 가열 차게 이끌어 내고 있었다.
드르륵
그 시간 수혁은 응급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나는 적당히 잘해서 냈고, 남들은 개판으로 냈다고 생각하면서였다.
“야야! 뭐 하냐!”
“여기 손 좀!”
“빨리, 빨리 들고 와!”
응급실은 역시나 야단법석 그 자체였다.
하루 이틀 이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혁은 자박자박 걸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요청한 부분부터 처리할까.’
[그래야죠. 뭐…… 별거 아닐 거 같긴 한데요.]
‘그렇긴 하지? 이비인후과……. 흐음.’
[마이너 과가 과인가요. 내과가 진짜지.]
속으로 또 남들한테 말하면 안 될 만한 생각을 하면서였다.
“아, 교수님.”
도달한 곳은 C구역이었다.
대개 위급한 환자보다는 진료 시간이 끝나서 응급실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역이었고, 당연히 수혁으로서는 거의 올 일이 없는 곳이기도 했다.
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으려니 수혁을 부른 사람이 다가와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네. 아휴, 이게…… 사실 교수님 불러야 하는 일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좀 그래서.”
“네네. 보시죠.”
이비인후과 의사는 꽤 멋쩍어하고 있었는데, 그럴 만도 한 상황이긴 했다.
외래에서 보다가 좀 이상해서 응급실로 보낸 케이스여서 그랬다.
심지어 초진 후 열흘도 더 지난 상황이었다.
‘55세 남환……’
[처음엔 중이염으로 진단 후 항생제, 슈도에페드린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5일 후에도 전혀 호전은 없었지.’
[네. 그렇게 본원으로 전원이 된 후 스테로이드로 치료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호전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혁은 환자를 바라보면서 이미 들었던 정보를 떠올렸다.
당연히 옆에 있던 이비인후과 의사도 입을 열었다.
“양측 돌발성 난청 같은 경우엔 진짜 잘 들여다봐야 하거든요. 이게 예후가 정말 안 좋을 수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멀쩡히 듣다가 갑자기 양쪽이 안 들리게 되면…… 아휴.”
앞에 당사자인 환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비인후과 의사는 딱히 목소리를 줄이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그저 눈을 멀뚱히 뜨고 있을 뿐이었다.
무슨 말인지 아예 듣지 못하고 있다, 이 말이었다.
“난청 수준은 어떻죠?”
“거의 전농입니다.”
“전농이라면…….”
“이대로면 환자는 소리를 아예 듣지 못하게 됩니다. 회복이 안 된다면 보청기를 써도 못 들을 거예요. 아마도…….”
“인공 와우를 받아야겠군요.”
“네, 그렇죠. 근데 그게 정말 보통 일은 아니라서요.”
그래, 왜 불렀는지 알 거 같았다.
사실 소리라는 게 아주 중요한 감각이지 않나.
그저 다른 과 의사들은 이 소리를 못 듣는 것이 주된 호소 증상이 아닌 환자들만 보다 보니 체감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수혁은 해당 영역에 대해서도 진료를 많이 하지 않고 있다 뿐이지 공부는 게을리하지 않고 있어서 난청으로 인한 폐해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뭐…… 이명도 생길 것이고. 이명이 생기면 우울증도 생기겠지. 하지만 역시 제일 심각한 것은.’
[치매죠. 소리라는 감각 자극이 줄어들게 되면 치매 유병률이 극적으로 올라갑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확실히…… C 구역에 있는 게 합당해 보이지 않는데?’
[그러니까요. 역시 과마다 깊이 들어가면 그들 나름의 심각함이 있긴 하군요.]
해서 둘은 아까보다 좀 더 적극적인 태도가 되었다.
어차피 찰나의 순간이었기 때문에 이비인후과 의사는 그저 말을 이어 나가고 있을 따름이었다.
“게다가…… 이게 사실 편측 난청. 그러니까 한쪽만 갑자기 떨어지는 경우엔 거의 특발성 난청입니다. 아시죠? 신경이 관에 끼여서.”
“아, 네. 그렇죠.”
“그래서 스테로이드를 쓰는 건데…… 지금 이 환자는 반응이 없죠. 더군다나 양측 청력이 모두 크게 떨어져 있습니다. 아예 다른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원인이라면…….”
“모르죠. 그걸 묻기 위해서 교수님을 부른 겁니다.”
“아하.”
그렇게 공이 넘어왔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환자에게 아까보다도 더 가까이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