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9화 3년 연속? (5)
“흐흐흐흐.”
너무 어이가 없던 나머지, 차관은 한 번 더 웃었다.
그리곤 자신이 애정 하던 부하 직원 녀석을 쏘아보았다.
말이 부하이지…….
사실상 까마득한 후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 친구 진로 결정 과정에서 차관이 얼마나 도왔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이 새끼…….’
문제를 어렵게 낸다는 게 사실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니긴 했다.
허들이 올라간다는 건 그만큼 그 허들을 넘어선 이들의 질이 올라간다는 뜻이니까.
만약 대한민국의 의료 시스템이 개발 도상국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극단적으로 그 수준을 끌어올리려 한다면 뭐 의미가 있을 터였다.
‘지금이 코비드 사태 이전도 아니고…….’
사실 의료계 사람들은 일부 이상한 사람들을 빼면 다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의료 수준이 가히 전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걸.
의료라는 것이 최선두 분야는 기술집약적인 산업이지만 사실 중추를 이루는 것은 노동집약적인 사업이라서이기는 한데…….
하여간, 대한민국 살다가 해외로 나갔을 때 가장 불편해지는 것 중 하나가 의료라는 건 비단 의료계 사람들이 아니어도 느낄 터였다.
그 와중에 코비드가 터지고 환자가 폭발하게 되었을 때, 대한민국 의료 수준이 느낌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걸 모두가 알게 되었다.
일단 백신만 있으면 그걸 놔 주고 감시할 수 있는 의료진은 방방곡곡에 널려 있었다.
또 환자가 폭발하던 시점에서조차 의료 인프라는 무너지지 않았다.
장례식장이 부족할 정도로 시신이 넘쳐 나게 되었던 뉴욕과 비교해 보면 정말이지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근데 뭐 하러 이렇게 내냐고…….’
차관은 잠시 한숨을 쉬었다.
문제가 정도껏 어려운 수준이었다면 뭐 그래 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아, 다시 봐도 모르겠네. 검색도 못 하겠어. 뭔지 아예 감이 안 잡히네.”
옆에 있는 교수 친구 놈 셋이 이제는 숫제 토의를 하고 있음에도 문제가 잘 안 풀리고 있었다.
심지어 한 놈은 네이버 검색창을 띄워 놨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진행이 잘 되는 거 같지 않았다.
이쯤 되면 이건 문제가 아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심판?
그래, 심판이다.
지금 눈앞에서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르고 멀뚱히 앉아 있는 이 후배 놈은 아무 죄 없는 내과 레지던트들에게 국가의 준엄한 심판을 내리려 하는 중이었다.
‘미친놈…….’
예상을 했기에 다행이었다.
아마 여느 때처럼 제2 차관도 다른 일 하다가 그냥 날아들어 온 낙하산 인사였다면 이런 문제를 받아 들고도 별생각 없이…….
아니, 상당히 높은 확률로 일 열심히 하네 하고 결재 도장 쾅 찍어 버렸을 터였다.
“최우식 서기관.”
“네. 차관님.”
“우리 교수님들 보고 있으면 뭔가 잘못된 거 같은 느낌이 오긴 오는 거지?”
“아……. 네, 조금.”
차관은 이제 문제를 덮어 버리고, 최우식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뭔가 싸한 느낌은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완전히 돌아 버린 건 아니란 얘기였다.
“내가 그랬지? 이현종, 조태진, 신현태에 우창윤……. 거기에 류마 또라이, 신장 또라이, 알러지 또라이, 소화기 또라이 다 섞으면 진짜 걸작 하나 나올 거라고? 매년 한 명씩 있었어. 그게 두 명일 때 합격률이 80%대를 찍었었다고. 근데 전원이 또라이면 어떻게 되겠냐.”
“10%……?”
“지금 내가 보니까 10%도 높게 잡은 거 같은데?”
“음……. 그럼 어쩌죠……? 바꿔야 할까요?”
“이제 와서 문제 바꾼다고 하면 그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거 같냐?”
차관은 이번에도 또 어이가 없어져서 후후 웃었다.
원론적으로 보면 보건복지부가 교수들에게 갑인 건 맞았다.
심평원 뒤에 있는 기관이다 보니 일단 삭감이라는 칼을 휘두를 수 있지 않나?
거기에 더해 국가 연구비 책정에서도 아무래도 입김을 불어넣을 수밖에 없고, 더 나아가 각 정책을 시행하는 데도 그랬다.
다른 분야와는 달리 의료 분야는 일정 부분 강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서 의료계는 전반적으로 국가 시책의 영향을 어마어마하게 받을 수밖에 없으니.
허나, 그게 일방적인 관계냐?
그럴 수는 없었다.
‘전문가 의견 없이……. 어떻게 의료 정책을 만들어…….’
의료 분야는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분야와 구별되는 차이점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교수가 해당 분야 최고 현업 전문가라는 점이었다.
일례로 경영학 교수님이 경영을 제일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나?
법학과도 그렇고?
헌데 의대는 아니었다.
의대 교수는 그 분야 최고였다.
임상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연구 쪽으로도 그렇다 보니 권위만 있는 게 아니라 실제 지식과 경험이 어우러진 최강의 전문가들인데…….
아무리 정책이라는 것이 표심을 생각해야 하고, 그 표심을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좌지우지하는 것이라지만 겉에 드러나지 않는 자잘한 정책에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더 중요하기 마련이었다.
‘괜히 고집부리고 말 안 듣다가 난리 나는 경우가 태반인데 비협조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그때는 재앙이지…….’
더 나아가 의료 정책은 사실 의대 교수들도 그 수혜를 받는 것이다 보니 자기 이익만 생각하긴 어려웠다.
더군다나 사실상 이익 집단이라기보다는 자존심과 명예로 똘똘 뭉친 집단이다 보니 무조건은 아니라도 대개 올바른 말을 하기 마련이었다.
“아뇨, 가만히 있지 않을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이거 대강 각색을 해 봐.”
“네? 각색해서 내면 모를 수가 없는데요.”
“아니, 각색해서 몰래 뿌려. 3년 차 커뮤니티 있잖아. 거기 끈 없어? 너 의사잖아.”
“있긴 있습니다. 아……. 그렇게…….”
“그래, 그렇게 하라고. 그렇게라도 안 하면 가뜩이나 지금 내과 전문의가 안 나오는데……. 국방부부터가 문제야. 거기 벌써 공문 보내온 거 알지?”
정부 부처 간 공문이다 보니 뭐 쌍욕이 있거나 하진 않았는데 어조만 보면 욕을 먹은 느낌이 들었다.
요약하면 제발 지랄하지 말고 문제 쉽게 내라 이거였다.
“아……. 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아, 자네 취지는. 이거 좋지. 자네들 생각은 어때.”
“아니, 뭐……. 내가 봐도 이런 거 다 아는 인재들이 나오면 우리나라 걱정 없지.”
차관은 간신히 문제를 몇 개를 풀어 놓고는 넋 나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교수를 보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차관도 의사다 보니 문제를 보면서 좀 감탄하긴 했다.
뭔 수능 언어영역 문제도 아니고 지문이 너무 성의 있게 적혀 있었다.
심지어 그 안에 담긴 내용이나 흐름도 자연스러웠다.
그래, 이거 풀 수 있으면 우리나라 의료는 앞으로 더 도약할 수 있긴 할 거다.
확실히 다른 나라에 비해 오진율이나 이런 게 줄겠지.
아무리 현대 의학이 발전했다지만 여전히 개개인의 역량은 중요하니까.
“그래서 내가 뭐라고 안 하는 거야. 근데 갑자기 이렇게 나오면 안 돼. 자네 어쩌면 청와대로 갈 수도 있어.”
“아……. 그건 좀.”
“자네만 아니라 나도 가야 해. 그러지는 말자. 나 무서워…….”
“네네.”
“각색 작업할 사람은 내가 이미 수배해 놨어. 아주 말이 잘 통하시는 분들이지.”
“아…….”
“근데 지금 보니까 쉽진 않겠네. 문제가 뭐 이리 어려워, 이거.”
“그……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잘하려고 한 거잖아. 들어가 봐. 나는 고생해 줄 내 친구들 밥이나 사 줘야겠다…….”
차관의 말이 끝나고 나서야 놀러 와 있던 교수들은 자신들이 실은 놀러 온 게 아니라 수배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신감에 사무치는 얼굴로 노려보는 친구들에게 차관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소고기 먹자.”
“하…….”
“이런 망할. 이거 진짜 어려운데…….”
그렇게 최우식 서기관이 사고 쳐서 들고 온 문제의 각색이 시작되었다.
차관은 그 과정을 보면서 그나마 내가 있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대응을 하지 못했다면 이거 진짜 어떻게 됐겠나?
허나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했다는 것을 이내 알게 되었다.
“야,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차관은 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친구에게 다가갔다.
교수란 놈들이 사실 좀 그렇지 않나.
항상 바쁘고…….
지들 일이 제일 중요하고.
‘소고기도 사 줬는데!’
세상엔 이런 말도 있지 않나?
호의는 돼지고기까지다.
소고기를 얻어먹었다면 그건 뭔가 대가성 혹은 뇌물이다.
억울하진 않았다.
진짜로 뇌물 비슷하게 준 거거든.
근데 아무 성과가 없었다 보니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달려갔다.
당연히 병원에서는 난리가 나 버렸다.
차관이 온다는데 뭐 난리가 안 나나.
게다가 화가 잔뜩 났는데?
“뭐, 새꺄.”
“어…….”
허나 정작 장본인인 친구 교수 놈들은 당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얼굴을 보면서 깨달았다.
눈이 퀭했다.
다크서클도 내려앉아 있고.
뭔가 어마어마한 고생을 하는 거 같았다.
“이 문제들 이거……. 이 새꺄……. 이거 레퍼런스 잡고 뭔 질환인지 알아내는 게 쉬울 거 같냐?”
“아…….”
“그리고 인마. 이거 각색……. 각색을 안 걸리게 해야 하는데……. 케이스가 너무 드물어서 우연의 일치로 안 보이게 하려면 아예 다른 케이스 리포트를 찾아야 해.”
“아…….”
“하, 이 새끼 이거 어떻게 하지? 오늘 그냥 차관 하나 없애 버릴까?”
“아…….”
세 친구 모두 악에 받친 얼굴로 차관을 노려보고 있었다.
손에 들린 게 다 닳아 버린 시험지라서 망정이지 그거 말고 좀 단단한 거였다면 벌써 맞아 뒤졌다.
“어…… 근데.”
미안한 건, 이제 슬슬 진짜 각색이 나와야 한다는 점이었다.
왜냐?
시험이 2주도 안 남았는데…….
아직도 못 풀고 있잖아.
이거 빨리 풀어야 불쌍한 애들이 공부하지.
“언제까지 될까……?”
“뭐?”
“얘 지금 뭐래?”
“죽여?”
“아니……. 시험 봐야 해. 진짜로…… 지금까지 한 것만이라도 좀 줘 봐.”
“아직 70% 정도밖에 못 했는데?”
“나머지 30%는 시험날까지 할 수 있나 모르겠다.”
“하아, 시발…….”
해서 달랬더니 70% 분량만 돌아왔다.
‘이걸 다 맞히면 합격이군.’
다 맞혀야 한다.
말이 되나?
그리고 반응을 보니 나머지 30%는 나오려면 진짜 오래 걸릴 거 같았다.
“그, 그래도 일단 줘 봐.”
어쩔 수 없다.
국방부에서는 그리고 청와대에서는 100% 합격을 원하고 있지만…….
이렇게 되면 80% 정도 합격률만 되어도 최선일 터였다.
다행히 그에 대응할 논리는 있었다.
3년 제로 바꾸면서 뒤늦게 충격이 있는 거 같다 등등.
말도 안 되는 개소리라는 건 누구보다 차관이 제일 잘 알고 있었지만…….
“이거라도 풀게.”
“그래.”
“근데 이번에 진짜 어쩌냐?”
“내가 보다 보니까 이거 진짜 큰일 났어.”
친구들도 큰일 났다고 하고 있었다.
차관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이 된 채로 각색된 문제 그리고 해설본을 들고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그걸 비밀리에 커뮤니티에 올렸을 때, 여러 댓글이 달렸다.
-이런 게 진짜로 나온다고요?
-이런 미친. 이런 걸 어떻게 풀어!
많이 열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격렬한 반응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