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8화 3년 연속? (4)
“저, 실례지만.”
침묵을 깬 것은 최우식이었다.
처음 봤을 땐, 당뇨 카테고리에 잘못 넣었나 싶었더랬다.
그러다 혈당이 높다고 할 때는 아, 당뇨구나 싶었더랬다.
그래, 이런 식으로도 증상이 생기는구나 하고 있었는데…….
‘MRI는 왜……?’
신경과가 왜 나와?
문제가 어려운 것을 떠나서 그냥 이 일련의 흐름이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우리는 내과 문제를 내러 온 것이지 신경과 문제를 내러 온 것이 아니지 않나.
물론 수혁이야 워낙에 대단한 사람이다 보니 뭔 과든 간에 다 해결이 가능하겠고 이론적으로는 그런 인재를 키우는 게 이상적이긴 하겠다만…….
현실적으로는 안 되지 않겠나.
“네.”
용기를 내어 물었더니 수혁은 역시나 차분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이거 질환명이 뭔가요?”
“아. MRI 소견을 봐도 모르는구나.”
“그……. 네. 부끄럽게도 그렇습니다.”
“어려운 질환은 아니에요. 여기 보면 해면 정맥동이 부풀어 있다고 했잖아요?”
“아, 네.”
해면 정맥동이 뭐더라.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또 모르겠다고 하면 수혁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몰라서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기 보면 뇌 신경들이 연루가 되어 있고요. 부은 형태를 보면 옆으로 밀어내는 형태의 염증입니다.”
“아……. 그렇군요. 와, 그림 잘 그리시네요.”
“뭐……. 그런 편이죠.”
“아니, 진짜 사진 같아요.”
심지어 수혁은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연필로 MRI를 모사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있자니 소견 하나 해석 못 하는 자신이 너무 하찮게 느껴져서 그만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옆을 돌아보니 우창윤 교수는 무심한 얼굴이었다.
‘다 이 정도는 되나 보구나! 역시 교수…….’
대단하다 싶었다.
물론 우창윤도 최선을 다해 침착을 가장하는 중이었다.
‘미친……. 이런 건 천재라는 말로도 설명이 안 되잖아. 눈앞에서 보고 그려도 이렇게는 못 하겠네.’
자신도 모르게 쌍욕을 내뱉을 뻔했다.
꽤 자주 상식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 온 것이 수혁이기는 한데…….
이건 진짜 선을 너무 많이 넘은 느낌이지 않던가.
하지만 우창윤은 최선을 다해 참고 있었다.
“되게 전형적인 모습이에요. Tolosa-Hunt 신드롬이라고……. 여기 안구 보면 튀어나와 있죠. 지금은 경미해서 별 증상이 없을 수도 있는데 이게 슬슬 아파집니다. 그리고 동시에 안근 마비도 생기고요. 그에 더해서 특징적인 증상이 바로 3차 신경 마비와 더불어 나타나는 청력, 시력의 저하입니다.”
“아…….”
처음 들어 봤다.
톨……. 뭐?
그래도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했었는데 이렇다니.
자괴감에 빠졌다.
당연히 이번에도 우창윤을 봤는데, 이번에도 우창윤은 무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건 알지.’
처음부터 알았다고 할 수는 없을 터였다.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으니까.
근데 그건 우창윤의 잘못이 아니었다.
적어도 우창윤 교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건 그냥 이 질환이 악랄하게 설계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 진단명에 대해서는 문제가 좀 심심할 거 같고요. 드물긴 하지만 워낙 중요한 질환이라서요. 특히 우리나라처럼 방치된 당뇨가 많은 나라에서는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질환이기도 합니다.”
“아……. 그렇군요.”
드물지 않다라.
그럼 한 1%는 되려나?
뭐 그런 생각을 했다.
배경지식이 아예 없다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보니 그랬는데…….
우창윤은 좀 느낌이 달랐다.
‘100만 명 중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질환이 드물지 않은 건가……? 하긴 뭐……. 우리나라가 요새 당뇨가 많이 늘고 있긴 하지……. 그것도 숨은 당뇨가.’
뭔가 핀트가 좀 어긋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뭐라 할 생각도 들진 않았는데 확실히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당뇨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해서 그랬다.
숨은 당뇨라니.
이게 대체 말이나 될 법한 소린가?
치료만 제대로 하면 거의 병이 없는 사람과 차이가 없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걸 몰라서 픽픽 쓰러지고 있다는 건, 어찌 보면 의료 체계에 전반적인 구멍이 뚫렸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당연히 단 음식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캠페인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젊은 인구, 보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인구에서 진단 노력을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었다.
‘그래……. 이런 건 뭐…….’
해서 우창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100만 분의 1 정도의 유병률을 갖는 질환 케이스가 문제에 선정이 되었는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치료를 어떻게 할지 묻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아……. 치료요. 네, 치료가 중요하긴 하죠.”
“치료를?”
이번에는 우창윤도 참지 못했다.
왜냐.
이 질환이 진짜 악의적인 질환이거든.”
“네.”
“치료에 스테로이드가 들어가잖아…….”
“그렇죠. 그래서 더더욱 놓치면 안 되죠. 스테로이드만 쓰면 증상은 금세 좋아집니다. 제 생각에 아마 여기 안구돌출이 미약하게 나온 것도 이 전에 쓴 스테로이드 때문일 겁니다. 다만 당뇨 환자에서 발생하는 질환이니만큼, 혈당 관리를 하지 않으면 고혈당으로 인해 심하게는 사망에도 이를 수 있죠.”
“그러니까 말야…….”
혈당 얘기 주야장천 해 놓고 답지에 스테로이드가 있으면 다들 그거부터 날로 먹는 오답이라고 생각하고 빗금 치지 않을까?
우창윤의 생각은 이러했다.
최우식도 그랬다.
하지만 수혁의 생각은 좀 달랐다.
“이번 문제의 취지가 앞으로의 문제의 방향성에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지…….”
“당뇨는 정말 중요한 질환이에요. 뭐 저희가 다른 과 의사들이라면 몰라도 되겠죠. 내과에 물어보면 되니까. 하지만 내과 의사라면 적어도 당뇨와 같이 주요 질환에 대해서는 a부터 z까지 다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국민 건강을 사실상 전부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아……. 그건 진짜 맞긴 한데.”
수혁이라고 해서 왜 내과 의사로서의 자부심이 뿜뿜 하지 않겠나.
도리어 가장 뛰어난 내과 의사이기 때문에 제일 자부심이 뿜뿜 한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그리고 우창윤이나 기타 다른 내과 교수들도 만만치 않은 이들이었다.
특히 국민 건강을 사실상 전부 책임지고 있다는 말이 그들의 가슴을 울렸다.
심지어 딱히 곁에 있지도 않았던 이들조차, 그러니까 그냥 먼발치에서 다른 문제 내다가 흘려들은 이들조차 돌연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그래, 그렇지!
“에이, 문제 다시 내.”
“나도!”
“이거 이거……. 질 수 없지.”
“젊은 친구가……. 아주 말을 멋지게 하는데? 이현종 교수님 아들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정신이 아주 올바르게 잡힌 친구였어.”
빈말로도 널찍하다고 볼 수는 없던 곳이라 그랬을까?
문제 내는 곳은 삽시간에 광기에 휩싸여 버리고야 말았다.
그렇게 난이도는 점차 올라가고 있었는데, 이제 최우식조차 컨트롤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교, 교수님. 심장……. 이건 좀.”
“뭐. 뭐!”
“아니…….”
“사람이 언제 죽는지 아나?”
“네?”
“심장이 멈추면 죽는다네. 이게 이렇게 중요한 질환이에요!”
“아니……. 그건 맞긴 한데…….”
“맞는 거 같으면 조용히 있어!”
이현종이야 애초부터 컨트롤이 불가한 사람이었다.
그런 인간이 지금 아들과 주변 인간들로 인해 더 붐 업이 되었으니 이걸 뭐 어쩌겠나.
심장에 관한 온갖 희귀병들이란 희귀병은 다 들어가고 있었다.
“교수님……?”
“뭐, 뭐요!”
“아니…… 이건…….”
“사람이 언제 죽는지 아시오?”
“왜 또 이러십니까?”
“암에 걸렸을 때! 아니, 암에 걸렸는데 놓쳤을 때!”
“그……. 그건 대부분 맞죠.”
“그럼 조용히 해요.”
조태진?
그는 언제든 기회만 주어진다면 미쳐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인간이지 않나.
오늘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옆에 수혁이 날뛰고 있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까.
혈액질환에서도 온갖 이상한 질환들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개중에는 수혁조차 처음 보는 질환이 있었을 정도였는데, 그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사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비단 이 과들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들어와.”
세종시에 돌아온 최우식 서기관은 곧 차관의 호출을 받았다.
왜 부르는지도 몰랐다.
아니,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온갖 미친놈들에게 시달리다 보니 정신이 훅 나가 버려서 그랬다.
“아, 네.”
“이 자식 이거 정신이 나갔네.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차관은 그런 최우식을 보며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곤 최우식이 이번 문제 제출 위원으로 모셨던 이들의 명단을 다시 한번 내려다보았다.
“햐…….”
몇 번을 봐도 감탄과 탄식이 마구 쏟아져 나올 정도로 대단했다.
아니, 어떻게 요주의 인물로 표기해 놓은 인물마다 다 부를 생각을 한 거지?
한때, 그러니까 차관이 아직 현장에서 구르던 때에는 이현종 이 사람 혹시 간첩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던 적도 있었더랬다.
낸 문제를 보니까 숫제 대한민국 의료를 사보타주하려고 낸 거 같아서 그랬다.
실제로 그해 내과 전문의 시험 난이도는 역대 최악을 찍었고, 아직 서기관이었던 차관은 정강이를 두들겨 맞았다.
다행이라고 해도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엔 군사 정권 시절이다 보니 바로 조작에 들어가서 합격률 30%였던 것을 85%로 올려서 사상 초유의 내과 의사 부족 사태는 막았다.
‘조태진…… 이 새끼도 차세대 또라이고……. 신현태…… 얌전한 척하는 미친놈이고……. 우창윤…… 야망 있는 미친놈이고…….’
그 후로는 그럼 위기가 없었나.
그럴 리가 있나.
유독 내과 의사 놈들이 그런 건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거의 해마다 이상한 놈들이 배출되고 있었다.
그걸 다 모아 놨으니…… 어떻겠나.
“문제 초안 있지?”
“네.”
“그거 줘 봐.”
“네? 유출은 안 됩니다.”
“이 새꺄. 내가 미쳤어? 유출을 하게? 그리고 내가 결재 안 해 주면 그 문제 내지도 못해.”
“교수님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오늘 문제 진짜 잘 뽑혔습니다.”
“어……. 그래.”
심연을 가까이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심연에 물들게 된다더니.
최우식이 딱 그 짝이었다.
소신이 있어도 반기를 들 정도는 아니지 않았나.
의사 출신 공무원이, 특히 특별직이 아닌 행시 출신 공무원이 극히 드물던 시절에 나온 후배다 보니 이뻐했는데 오늘 드디어 미쳐 버렸다.
“주기나 해 봐.”
“아, 네.”
“이거 한번 풀어 볼래?”
하여간, 차관은 문제지를 받아서 옆에 있던 친구들에게 건네주었다.
동네 친구는 아니고, 어엿한 교수들이었다.
충북대 의대 교수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건 풀지.”
“풀어 봐. 미친놈들이 낸 거라.”
“음. 으음……?”
“어렵지?”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내가 난생처음 네 간첩설에 동의하게 되는데……. 야, 이건.”
“그래. 몇 개나 맞힐 거 같아?”
“절반?”
“탈락이네.”
교수도 떨어지는 문제를 들고 왔다.
“흐흐.”
차관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