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4화 개인 과외 (6)
“저거…… 우리 딸 아닌가……?”
운전대를 잡고 있던 우창윤이 긴가민가하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아내는 뭔 소리냐는 얼굴로 앞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방금 누군가랑 포개져 있다가 일어나서는 툭툭 쌓여 있던 눈을 털어 내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우하윤이었다.
‘부딪쳤나?’
누군가와 그토록 부딪쳐야만 연애를 하겠다고 하더니만 드디어 사건이 터진 건가 싶었다.
고대했던 일이긴 했다.
우창윤 내외 모두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내고 있는 만큼 딸도 어서 빨리 결혼해 이 행복을 누리길 바라 와서 그랬다.
헌데 이게 또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원래 생각처럼만 움직이지는 않는 법 아니던가.
한편으로는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거…… 이렇게 빨라?’
‘요즘 애들은 무섭구나.’
사실 우하윤도 이제 곧 서른이니 요즘 애들이라는 표현이 알맞지는 않지만, 원래 부모가 볼 때는 예순 먹은 자식도 애 아니던가.
말도 안 되는 인연을 고집하느라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하지 않고 있던 하윤이 갑자기 집 앞에서 외간 놈이랑 뒹굴고 있으니 마음이 착잡했다.
그래서일까?
우창윤은 저도 모르게 딱 그 앞에 차를 세우고 있었다.
밤이 긴 겨울이니만큼 헤드라이트도 켜져 있었다.
그 바람에 수혁과 하윤은 난데없는 빛 세례를 맞아야 했다.
오히려 뭐가 이렇게 빛을 비추고 있는지는 보이지도 않았다.
“뭐야?”
“글쎄요? 근데 괜찮으세요?”
“어? 어어. 어우, 술이 확 깬다.”
수혁은 뒤통수부터 해서 목덜미를 따라 들어간 눈 때문에 말 그대로 각성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보던 하윤은 일단 눈부터 털어 주었다.
속으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빛은 또 뭐야.’
후광 효과라고 하나?
원래 상대가 지닌 어떤 힘이나 직위 또는 지식 등과 같은 것에 의해 본래의 매력보다 더한 것을 느낄 때 이런 말을 쓰는 법인데, 지금은 진짜로 후광이 비쳐 오고 있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안대훈이 가끔 선보이던 짝퉁 후광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렬했다.
‘흐으음…….’
이렇게 보니까 또 좀 잘생긴 거 같기도 했다.
사실 진짜 후광 효과도 없는 게 이상한 인간 아닌가?
늘 곁에 있다 보니 체감이 안 될 뿐, 수혁은 그의 어마어마한 능력을 제외하고도 이제는 가진 게 많은 사람이었다.
우선 나이 31살에 이미 부센터장인 것도 그렇고 그가 지내는 오피스텔도 그렇고 별로 쓸 일도 없이 모아 둔 돈도 많을 것이고…….
물론 하윤은 그런 것에 흔들릴 만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벌써 오늘 하루 세 번이나 부딪쳤다 보니 본격적으로 수혁에 대한 관계 재고에 들어가게 되었다.
[수혁.]
그런 하윤의 고민은 고스란히 수혁에게도 전달되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루다에게 그랬다.
그는 이제 분석 전문가 아닌가.
심지어 하윤은 수혁과 바루다에 있어 최측근으로 인식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분석의 정도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응?’
[우하윤이 좀 이상합니다. 수혁을 뭔가 다른 눈으로 보고 있어요.]
‘나만의 착각이 아닌 거야?’
[아, 어쩐지 뇌 연산 능력이 좀 준다 싶더니만 이게 술 때문이 아니라 망상 때문이었군. 그래, 어디까지 갔습니까?]
‘손주 보고 있었어.’
[음.]
바루다는 수혁의 말에 뭐라 하려다 말았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분석과 망상이 어느 정도 일치하고 있어서 그랬다.
높은 확률로 우하윤 또한 연애의 가능성을 돌려 보고 있을 터였다.
[따지고 보면 둘만큼 잘 맞는 사람도 없긴 할 겁니다.]
‘오오……?’
그렇기에 바루다도 수혁의 말을 거들어 주었다.
순수한 마음에서였다.
하윤도 생긴 것만 빼고 보면 사실상 일반인 범주에 들기보다는 수혁이나 안대훈 쪽 아니던가?
하윤이 이 말을 들으면 진짜로 정색하고 화낼 가능성이 높기는 하겠지만 뭐 어쩌겠나.
바루다는 감정을 배제하고 데이터만을 이용한 분석에 능한 녀석 아닌가.
이놈이 그렇다고 하면 거의 그렇다고 보면 되었다.
이전에야 뭐 워낙 데이터가 부족한 데다가, 그나마 쌓여 있던 데이터도 수혁의 것만 있다 보니 오류가 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때의 바루다가 아니었다.
“저기.”
언제까지고 행복한 망상을 돌리고 싶었지만, 세상이 뭐 그리 두겠나?
어느새 우창윤이 내려서 다가가고 있었다.
“그…….”
평소 그답지 않게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젊은 나이에 아선 기조실장을 꿰찬 사람이니만큼 늘 당당했지만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일단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하윤이 원하는 사람이지 않겠나?
그런 사람이라면 아주 높은 확률로 끝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사위 될 사람…… 지팡이……?’
우창윤도 망상킹이다 보니 사윗감이라 점지하고 훑어보고 있었는데 어쩐지 낯이 익은 지팡이가 눈에 들어왔다.
뭐지?
하면서 보니, 진짜로 본 적이 있는 지팡이였다.
“그…… 어?”
뭐지 뭐지 하면서 얼굴을 보니 이수혁이었다.
‘내 딸이 이수혁과……? 이게 대체…… 뭐지?’
수혁에 대한 감정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잘될 거 같은 유망주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지금은 우창윤마저 여러 번 당했을 만큼의 거물이 되지 않았나?
윗선에서는 최선을 다해 부정하고 있지만 우창윤은 알고 있었다.
이수혁이 건재한 이상 아선은 아니, 다른 그 어떤 병원도 태화를 넘을 수는 없었다.
오죽하면 자기 딸인 하윤에게조차 무조건 태화의 통합진료센터에 남으라고 했겠나.
‘스승으로서도, 의사로서도 좋은 사람이지, 이수혁은. 하지만…… 남편감으로는…… 이 새끼 이거 미친놈이란 소문이 너무 파다하던데?’
무조건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수혁과 엮이면 밝은 미래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헌데 이렇게까지 엮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앗. 안녕하세요. 우창윤 교수님.”
그런 우창윤을 향해 수혁은 늘 그러하듯, 밝고 순수한 얼굴로 인사했다.
옛말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지 않나.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참. 하. 그…… 그래요. 안녕하세요.”
예전 같았으면 반말이 서슴없이 나갔을 텐데.
요즈음 수혁의 위상 때문인지 뭔지 존대가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그랬다.
혹시 이 새끼들이 남의 집 앞에서 키스도 했나 해서 입술을 중점적으로 살피고 있던 와중임에도 그랬다.
‘코비드 이후로는 그냥 뭐……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게 됐지?’
사람은 원래 대부분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 강해지기 마련이었다.
그중에서도 우창윤처럼 젊은 나이에 출세한 사람은 더더욱 그런 성향이 강하지 않겠나?
안 그러려고 해도 본능이 이끌고 있었다.
그냥 존대만 하는 게 아니라 고개도 살짝 굽신거리고 있었다.
아직 차에 있던 아내로서는 환장할 지경이었다.
‘저 새끼가 오늘 분위기 좋게 데이트하고 잘하고 와서 왜 저러는 거야?’
아니, 남의 귀한 딸하고 뒹군 놈을 봤으면 뭐 하는 놈인지 호구 조사부터 할 일이지 왜 저러고 있단 말인가.
대체 언제부터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고.
덜컥
보다 못한 아내가 내려서 다가갔다.
그러다 수혁을 확인했다.
분연히 일어나던 때의 기세는 간곳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
“아,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니, 아니지! 사모님.”
“아…… 네. 그…… 어쩐…… 아니지. 그, 차라도 한잔하실래요?”
“아, 네네. 영광입니다.”
하여간, 그렇게 수혁은 얼떨결에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이현종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너 설마 이것도 예상한 거야?”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 그런 인간이 있겠나?
그랬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다.
미친놈 취급하다가 경찰에 신고했지.
차 부쉈을 때 이미 범죄니까.
‘예상을 했겠냐? 그럼 내가 제갈량이지.’
신현태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인성이 그나마 나은 사람인 만큼 솔직하게 모른다고 하려다 이내 말았다.
‘아니지? 이때 아니면 내가 언제 형 앞에서 잘난 척을 해?’
오늘 일을 돌이켜 보면 다 계획대로 된 것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애완견처럼 졸졸 따라다니게 된 이현종 보는 맛도 꽤 쏠쏠했더랬다.
해서 신현태는 후후 웃으며 답했다.
“당연하지.”
“와…… 이 자식. 천잰가?”
“아무튼,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다 했어.”
“그렇군…… 근데 여기 쓴 돈은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긴. 왕자님이 주신 돈으로 한 건데.”
“응?”
“생각해 봐라. 왕자님은 아내가 한 명만 있는 것도 아니고…… 어? 이리저리 로맨스란 로맨스는 다 즐기고 사는데 수혁이는…… 얼마나 안타깝겠어.”
“아하. 그래, 그렇게 생각해 보니까 이해가 되는군. 왕자님한테는 푼돈이겠네.”
“푼돈은 아냐. 이만큼 썼는데?”
“으응……?”
이현종은 신현태에게 정확한 가격을 듣고서 눈을 크게 떴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너무 큰 돈이지 않나?
이 돈이면 수혁이가 연구하려고 했던 것도 진행 가능할 거 같은데?
“그만큼 우리 왕자님이 수혁이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지.”
“그렇군…….”
둘이 그렇게 쑥덕대는 사이, 수혁은 이제 우하윤 집에 가서 앉은 참이었다.
그냥 앉기만 한 게 아니라 차와 다과도 대접받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 연산 범위를 넘어갔어요.]
수혁뿐만 아니라 바루다까지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우창윤이 입을 열었다.
“그…… 그래…… 둘이 언제부터…….”
“네? 아니, 아직은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어어, 아빠. 아직 아냐.”
“아직……?”
아니라고는 하지만 아직이라는 말에 꽂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어쩌다가……?”
“그게. 이렇게…….”
“세 번을 부딪쳐?”
“네.”
“으음.”
거기에 부딪쳤단다.
세 번이나!
‘이수혁이 사위라?’
우창윤은 이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시기의 문제일 뿐이지 이놈이 자기 집안에 발길을 들이게 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 엄한 새끼 데리고 오는 것보다는…….’
수혁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수혁은 이미 검증된 사람이지 않나.
무엇보다 수혁의 깔끔한 사생활은 이미 화제가 된 지 오래였다.
소위 홈마라 하는 것들이 24시간 밀착 취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과 집 외에는 가는 곳이 식당밖에 없었다.
공부.
그리고 먹는 것만 취미라는 얘기였다.
‘이런 놈하고 사는 게 재미가…… 우리 하윤이는 재밌을 거야.’
대화가 잘 통해야 할 텐데, 그건 걱정할 일이 없었다.
원래 내과 의사란 족속들은 머리통에 의학만 꽉꽉 들어찬 인간들이 태반 아닌가.
병원에서는 물론이고 집에서도 환자나 질환 얘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란 얘기였다.
“그, 그래요. 으음. 그…… 그래. 집에는 어떻게 가요.”
“아, 차가 망가져서 택시 불러서 가려고 합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제가 데려다줄게요. 어차피 내일 또 볼 텐데.”
“내일요? 아, 시험.”
“네. 그 얘기도 좀 해 봐요. 보건복지부에서 뭔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사윗감이 아니라면 모르겠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됐다면?
‘걍 제대로 조져 보자. 다시는…… 다시는 우리 사위 못 부르게.’
우창윤은 그리 좋지 못한 생각을 품고서 말을 이었다.
“본격적으로 해 보자고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