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0화 개인 과외 (2)
‘이거…… 모르고 맞았으면 죽었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 남짓 흘러갔을 따름이었다.
사람에 따라 공부 한 시간이 아주 긴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하윤에게는 그럴 수가 없었다.
하윤은 전교 1등만 들어갈 수 있는 태화 의과 대학에서도 1등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 말은 곧 공부에 있어서만큼은 인이 박이다 못해 그냥 통달한 수준이라는 사람이라는 건데…….
“하윤아, 너 어디 아프냐?”
“아, 아뇨.”
“근데 왜 얼굴이 이렇지. 정신이 없어 보여.”
“아, 그…….”
“오늘은 이만할까? 시간이 좀 없긴 한데.”
수혁의 말마따나 정신이 나가 있었다.
너무 어려워서 그랬다.
아니, 어려운 것도 어려운 건데 아예 예상을 빗나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지엽적인 부분은 또 아니었다.
확실히, 여기서 문제가 나온다면 명분이 있을 터였다.
이 감염증들이 최근 무서운 기세로 늘어나고 있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당뇨에 있어 그리 유리한 인종이 아닌 한국인에게 최근의 식습관 변화와 생활 습관 변화는 치명적이어서 그랬다.
‘쉬, 쉴까.’
명분이 있다고 해서 어려운 것이 쉬워지는 건 아니었다.
그럴 수가 있나?
천하의 하윤조차도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허나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이게 1호…… 그 뒤에 몇 개가 더 있을 거야.’
상대는 이수혁.
숫제 괴물이지 않나.
저 머릿속에 뭐가 들었을지 궁금해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또 어떤 어려운 문제들이 들어 있을까.
‘코비드…… 무조건 나온다. 아니, 신종 감염병에 대한 개괄이 나올 수도 있어.’
그 생각을 하자마자 동기들과 했던 난상 토론과 아버지를 비롯한 여러 교수들의 당부가 떠올랐다.
-이수혁…… 말이 안 통하는 친구지. 조태진 통해서 언질 넣어 보려고 했는데 그 자식도 알고 보니 미친놈이더라고?
-이현종 교수님 말은 듣는다는데 무슨 소용인가. 이현종이 원조인데.
-신현태 원장? 그 사람 예전에는 괜찮았는데 요새는…… 이수혁 얘기만 들리면 눈알이 돌아. 그리고 무조건 너 통해서 청탁하라는 말을 하더라고. 그건 또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
-오직 너만이 대한민국 내과를 구원할 수 있다……
어찌나 비장하던지 하윤은 무슨 독립운동이라도 하러 가는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그때는 이 양반들 되게 오버한다고 생각했는데…….
‘보건복지부…… 당신들 지금 큰 실수하는 거야…… 진짜로…….’
그냥 천방지축으로 노는 사람 하나 자유롭게 풀어 준다는 생각을 했을 텐데…….
이건 천도 108성의 요괴 또는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 급의 사건이었다.
적어도 의료계에서는 그랬다.
“아, 아뇨. 할 수 있습니다!”
해서 하윤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수혁이나 잘됐다 싶었다.
하윤 정도면 가르칠 맛이 나는 녀석이기에 그랬다.
‘이해한 거 같지?’
[네. 확실히. 안대훈이 머리 빠질 정도로 노력하는 타입이라면 하윤은 천재 타입입니다.]
‘좋아. 우리의 미래는 밝구만.’
[그렇죠. 아마 전국 어디를 뒤져봐도 우리만큼 인재 풀이 좋은 곳도 없을걸요.]
수혁과 바루다는 본인들이 그 찬란한 미래에 위협이 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후후 웃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뭐 궁금한 부분이 있어?”
하윤이 기다렸던 말은 아니었다.
알아서 딱딱 먹여 줘도 시원찮을 판에 카테고리까지 물어야 한다니.
‘하지만 저도 준비를 해 왔습죠.’
허나 하윤이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코비드 사태가 아주 난리도 아니었잖아요?”
“아, 그렇지. 지난 1년간 뭐…… 앞으로 몇 년간 엔데믹으로 자리 잡는 동안에도 일부 영향이 있을 거고.”
“그런 게 지속적으로 생길 거라고 하셨죠?”
“아주 높은 확률로 그렇지. 앞으로 내과 의사하려면 이쪽은 기본적으로 들들 파고 있어야지.”
그놈의 기본적으로 파야 하는 부분이 왜 이렇게 많은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하윤은 동의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앞으로 다가올 감염의 미래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해야 할 사람들은 다름 아닌 그들, 내과 의사일 테니.
“그 전반적인 내용이 좀 한눈에 안 들어와서요.”
“좋은 질문이야. 이거에 대한 답은…… 흠.”
수혁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꽤 여러 명의 레지던트들 그리고 펠로우들이 눈에 띄었다.
미국에 다녀오느라 여독이 쌓였을 안대훈 또한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오히려 시험에 대한 부담이 없다 보니 순수한 지식에 대한 탐구 느낌으로 들을 수 있어서 그랬다.
“몰래 듣지들 말고 와서 듣고 싶으면 들어. 그림 그려야 하니까…… 가까이서 들어야 할 거야.”
수혁은 그렇게 말을 마친 후, 종이를 꺼내 또다시 명강의를 시작했다.
듣다 보면 이게 과연 의학 강의인가 싶을 정도로, 수혁은 이 문제를 폭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기후 위기는 물론이고 개발 도상국의 발전에 따른 문제 및 인구 문제 등등 다루지 않는 분야가 무엇인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이것도…… 모르고 맞았으면 죽었다.’
하윤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들은 바가 있는 데다가, 사실 하윤은 수혁의 감독하에 같이 논문도 쓴 적이 있는데도 그랬다.
그사이에 뭔가 더 발전한 느낌이었는데 아마 느낌만은 아닐 터였다.
눈앞의 이 괴물 같은 교수는 이미 최정상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면서도 꾸준히 공부하고 있었다.
그것도 제일 열심히.
‘진짜…… 진짜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윤은 수혁의 천재성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다음 질문을 이어 나갔다.
다행히 여러 사람들, 그것도 석학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브레인스토밍을 해 놨기 때문에 질문의 퀄리티는 상당했다.
수혁의 입맛에도 딱 맞을 정도로 그랬다.
“오…… 너 정말 트렌드 잘 읽는구나. 그래, 항암제의 개념이 바뀌고 있지. 그에 따라 케이스도 바뀌고 있어. 예전에는 1차 암이니 2차 암이니 하는 단어들이 되게 생소한 단어들이었잖아?”
“그, 그렇죠.”
있는 말이긴 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직후 2차 세계대전이 있다는 말을 그때 사람들이 들었다면 기분이 어땠겠나.
방금 온 세상을 불태우고도 남을 만한 대전쟁을 치렀는데 이만한 전쟁을 또 한다고 하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을 터였다.
게다가 워낙에 드문 일이었기에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리에 맞기도 했다.
허나 일은 벌어졌다.
“암이 생겼다는 건…… 어떤 세포의 억제기가 손상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하지만 정상 면역을 가진 사람에서는 그 세포를 반드시 포착해서 없앨 수 있어. 추정치에 불과하지만 우리와 같은 사람들도 지속적으로 이 세포를, 그러니까 암 세포를 없애고 있다고 봐야겠지.”
“맞습니다.”
섬찟한 얘기가 될 텐데, 그렇다고 해서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우리 몸에는 꾸준히 암세포가 생겨나고 있지만 그게 암이 되지 않는 건 우리 몸이 그것들을 끊임없이 죽여 없애고 있는 덕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노화에 의해 암 세포화 되는 세포의 수도 늘지만, 그만큼 경계체계도 느슨해지기 때문에 암이 느는 것이지?”
“네.”
“이건 통계치고…… 이제 암 환자 개인을 들여다보자.”
“네, 교수님.”
한때 의학은 통계를 기반으로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룩해 왔더랬다.
아니, 지금도 통계는 여러 학문에 있어서 필수라 할 수 있는 개념이었다.
이 개념이 잡히지 않았던 동안 인류는 의학이라는 미명하에 수없이 많은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나?
허나 너무 커다랗게만 보다 보니 오히려 개인을 등한시하게 되는 시기도 있었다.
이제 그 점을 다시 되돌아보기 시작한 마당이었다.
“암이 생겼어. 그 말은 이미 이 환자의 감시 체계는 느슨해져 있다는 얘기겠지? 또는 다른 사람보다 암 세포 생성이 더 흔하다는 말일 것이고.”
“그렇습니다.”
“원론적으로…… 다른 암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돼. 즉 이미 생긴 암은 다른 암의 위험 요소야. 동의하지?”
“네. 맞습니다.”
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살짝 비애감에 젖었다.
‘대체 이 세상에 왜 암 같은 병이 있는 걸까?’
몹쓸 질환이라고 하면 뭐, 다들 몹쓸 병일 터였다.
하지만 자주 보는 놈들 위주로 공포심을 갖게 되기 마련 아니겠나?
특히 내과 의사들에게 암이란 놈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젊은 의사들이 이 암이 자기 생애에 정복되기를 바라고 있을 정도로.
허나 지금으로써는 바람일 뿐이었다.
“지금까지는 별문제가 되지 못했어. 왜냐면…….”
“2차 암이 생길 만큼 오래 사는 환자들이 적었으니까요.”
“그래. 다행히 1차 암에서 오래 살아남는 암들은 대개…… 그 원인이 명확해. 유전자 레벨보다는 어떤 생활 행태와 연관이 있는 경우가 많지.”
“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엔 위암이나 대장암이 그렇겠죠.”
“그렇지.”
짜고 맵게 먹는 식습관은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적어도 위만 생각해 보면 그리 좋은 쪽은 아니었다.
“유전자 레벨에서 문제가 생기는 암이 아무래도 더 심각한 경우가 많아서 그렇기도 했는데…… 이제는 항암제가 워낙에 많이 발달했지?”
“네, 맞아요. 이제 뭐…….”
면역 항암부터 해서 카 티 세포니 뭐니 하는 것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지 않나.
심지어 카 티 세포 치료만 해도 그 범위를 확장해 나가고 있는 데다가, 단점도 빠르게 극복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전보다 생존율이 팍팍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래서 오래 살아남아. 그 때문에 면역이 떨어진 상태에서 오래 사는 사람들이 늘었지. 먼저 나타난 변화는…… 기회 감염의 증가야.”
“네. 그렇죠. 확실히 어마어마하게 늘었죠.”
“그 후로는, 그러니까 더 오래 살아남게 되니까 2차 암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어. 앞으로는 이쪽이 어쩌면…… 1차 암 못지 않게 중요한 영역이 될 거야.”
“맞습니다.”
면역이 떨어진다는 건, 감시 체계가 더 느슨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특히 이전 세대 항암제들은 면역 세포, 암세포를 가리지 않고 죽였기 때문에 면역 저하가 더 극심했기에 이러한 추세도 더 심했다.
다행히 이젠 면역 항암제가 각광 받게 되면서 환자의 면역 세포를 이용한 치료를 이용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어느 정도 개선이 되긴 했지만…….
“그럼 여기서 중요한 게 뭘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수혁의 질문이 툭 찌르고 들어왔다.
“어…….”
들으려고 왔는데 질문이?
하윤은 그녀로서는 참으로 눈에 띄게 당황한 채 어버버거렸다.
수혁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하윤을 바라보다가 바루다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자꾸 시비 걸지 말고. 하윤이랑 잘될 생각도 있는 거 아닙니까?]
‘있긴 한데 희망이 있는 거냐?’
[거의 없죠.]
‘개새끼야…….’
수혁은 그렇게 욕설로 대화를 마무리한 후, 그러면서도 하윤을 향해서는 웃어 주었다.
“예측이지. 누가 2차 암이 생길지. 예측하는 시스템이 필요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