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6화 집회 (7)
수혁은 고민에 빠진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의사들을 보면서 슬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들 열심이지 않나.
어떻게 보면 같이 사람 생명을 살려야 하는 동료들이니만큼 든든한 느낌도 들었다.
물론 그런 성숙한 감정만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거 진짜 이렇게 보여 주면 맞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니. 그럴 리가 있나.’
[악취미…….]
‘너도 즐기고 있잖아?’
[그건 그렇죠.]
‘흐흐. 우리 아빠가 왜 이러는지 알겠다니까.’
그는 이현종을 떠올리고 있었다.
가는 학회마다 파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한때 이현종을 학회에 참석 못 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아주 진지한 토론이 있기도 하지 않았나.
처음엔 그냥 풍문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진짜였다.
무슨 카지노에서 프로 도박사 막는 것도 아니고…….
‘야 뭐 같아?’
‘글쎄……. 일단 혈중 알라닌이 엄청 증가해 있는데?’
‘엄청이라기엔…… 애초에 정상 수치가 높은 애 아니냐?’
‘아…… 그러네…… .비율로 따지면 오히려 클루타믹산이 더 높네.’
‘아씨…….’
‘대체 뭐지…….’
물론 수혁은 그냥 그렇게만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이거야 뭐 누구 고문하는 것도 아니고…….
별 의미가 없지 않나?
스튜어드가 멀쩡한 상태였다면 또 모르겠는데, 지금은 그것도 아니었다.
아까 털썩 주저앉아 버린 스튜어드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소변에서 많이 배출되는 아미노산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시는 것이 더 빠를 겁니다. 혈중 농도는 아무래도 신장을 통해 배설된 다음의 농도다 보니 어느 정도 보정이 되어 있어요.”
“아하!”
해서 힌트를 던졌다.
조금이라도 감을 잡고 있던 사람이라면 상당히 결정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만한 힌트였다.
하지만 감을 잡으려면 배경지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여전히 사람들의 반응은 오리무중에 가까웠다.
“아르기닌하고…… 라이신이 엄청나게 배출이 되는데…….”
“그러니까요.”
대개는 이러고 말았다.
‘그러니까요?’를 ‘그래서요?’라고 바꿔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여기 모인 사람 중에는 대가가 무척이나 많았다.
가령 이번에 수혁에게 진료를 부탁했던 소아과 의사가 그랬다.
비록 선천성질환을 자주 보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워낙에 이곳저곳에서 의뢰를 많이 받아 온 탓에 소아과 질환이라면 두루두루 볼 수 있는 사람이 된 지 오래였다.
무엇보다 이현종처럼 의학을 업으로만 삼은 것이 아니라 취미로도 삼은 사람이다 보니 아무래도 남들에 비해서는 사고의 영역이 훨씬 넓을 수밖에 없었다.
“아르기닌과 라이신…… 둘 다 diabsic 아미노산이지. 흐음…… 그게 혈장에서는 간신히 정상치 안에 들어갈 정도로 줄어들어 있고, 대부분은 다 빠져나가고 있어.”
“으음…… 그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굳이 의학적으로 따져 보자면 lysinuric protein intolerance……. 즉 라이신 계열 단백을 해결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건데…….”
“그런 질환도 있습니까?”
“모르겠어. 적어도 난 처음 보는 걸세.”
덕분에 수혁의 힌트만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아마 혼자였다고 해도 도달하기는 했을 터였다.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렸을 테지만…….
하여간, 그런 소아과 의사를 보면서 수혁도 조금 놀랐을 지경이었다.
내과로 치면 거의 이현종급에 해당하는 고수를 보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세상은 넓구나…….’
[그러니까요. 솔직히 저는 여기 스튜어드만 보고 엄청 후진 병원인 줄 알았습니다.]
‘그랬으면 뉴욕에서 이만한 명성을 얻어 낼 수 없었겠지.’
[그건 그렇죠. 적어도 미국에서는 명성과 실력이 상당히 잘 연결이 되는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메사추세츠 병원이나 메이요 병원도 완전 명불허전이었지…….’
수혁은 그렇게 감탄하면서 조금 더 기다렸다.
혹시 더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서였다.
하지만 그건 좀 지나친 기대였다.
도달해야 할 지점을 모르고 있는데 어찌 끝까지 갈 수 있겠나.
소아과 의사도 애초에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나아가려고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나머지들의 난상 토론도 주의 깊게 들어 보았지만 결론에 가까워지기는커녕 점점 더 멀어지는 듯한 느낌만 들었다.
결국, 수혁은 다시 입을 열어야만 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실은 즐기고 있었다.
“자 여러분. 저기 소아과 과장님만 정답에 가까워지고 나머지 분들은 오히려 혼란스러워하는 거 같아서…… 이만 제가 정리를 해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심한 잘난 척이었다.
아니, 어떻게 봐도 그렇다고 느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 만한 사람은 적어도 이 자리에 없었다.
하나 있었는데, 그는 이제 침몰한 난파선이 되었으니 얘기할 거리도 되지 않았다.
“자, 잘 보시면 혈장에서의 농도와 소변에서의 농도가 가장 차이가 나는 아미노산이 세 가지 있습니다. 아르기닌과 오르티닌 그리고 라이신이죠. 이 세 가지 아미노산을 우리는 dibasic, 즉 염기성 아미노산이라고 부르죠. 한 가지 군에 해당하는 아미노산이 모두 혈장에서는 적고, 소변에서는 높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무엇을 의미할까?
뭘 의미하지?
뛰어난 이들은 알 듯 말 듯 한 느낌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감히 입 밖에 낼 만큼 확신하진 못했다.
아니, 그 전에 자신이 뭔가 입을 놀려서 수혁의 설명이 지연되는 것이 싫었다.
어서 빨리 이 수수께끼와 같은 케이스의 정답을 듣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신장에서 재흡수가 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확인되지 않지만 사실 장에서도 흡수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염기성 아미노산의 결핍이 일어납니다. 그중 오르티닌과 아르기닌의 결핍은 요소 회로의 기능 장애를 유발하여 글루타민과 알라닌의 분해를 저해합니다. 아까…….”
수혁은 그들의 바람대로 했다.
망설임 없이 쭉쭉 설명을 이어 나갔다.
강연이라기보다는 강의라고 해야 맞을 정도로 명료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수혁은 침몰한 스튜어드를 돌아보긴 했다.
“좌장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고암모니아 혈증의 원인 중에 요소 회로 기능장애가 있었죠.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대개의 요소 회로 기능장애의 경우 단백질을 많이 먹으면 심해지게 되는데…… 이 환자의 경우에는 오히려 염기성 아미노산의 결핍에 의해 증상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예 단백질은 피하는 것만으로는 아주 효과가 없습니다. 물론 전체적인 단백질 섭취가 줄게 되면 증상이 훨씬 덜하게 되긴 하겠지만 말이죠.”
아까 그가 침몰했던 질문에 대해 얘기해 주기 위함이었다.
이번에는 진짜 먹이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기 위해 한 말이었는데 듣질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별 소용은 없었다.
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지금까지 해 온 것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계속 먹이는 거 아닌가 싶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에 대해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수혁의 반응이 정당하다고 생각해서는 아니었다.
스튜어드가 당하는 것이 고소해서도 아니었고.
아까까지만 해도 그런 감정이 주를 이루고 있던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지금은 그저 수혁의 이어질 말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또 라이신의 결핍이 더 중요한데…… 이것이 결국 다른 필수 아미노산 흡수의 저해를 초래하게 되어서 결과적으로 성장 부전과 골 성숙의 지연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 환자의 경우엔 그렇게까지 두드러지지 않는데, 심한 양상의 환자는 이로 인해 골다공증이 발생하게 되고 잦은 골절에 시달리게 됩니다.”
아……
그렇구나.
뭐 이런 반응들이 잇따랐다.
물론 수혁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쭉 이어지고 있었다.
“이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은 바로 y+LAT1 단백의 유전적 장애입니다. 다들 처음 들으실 것이고 그러한 사실에서 유추하실 수 있듯 굉장히 드문 질환입니다. 지금까지 케이스 리포트를 통해 발표된 케이스 수는 대략 120예 정도입니다. 이중 절반가량이 핀란드에서 발생했고, 핀란드에서의 유병률은 무려 6만 명 중 하나입니다. 이 또한 흔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죠?”
오…….
핀란드에는 이런 게 흔하다고?
나는 처음 알았네.
이런 질환이 있는지도 몰랐어.
원인이 뭐지?
‘후후.’
[후후후.]
‘후후후후.’
[후후후후후.]
죽죽 감탄이 이어지고 있었다.
충분히 예상했던 바였다.
당연하지 않나?
이렇게 특이한 유전 질환은 극히 드문 법이었다.
전 세계적으로는 드문데 한 나라에서만 호발한다니.
뭔가 원인이 있을 터였다.
그들 사이에서만 도는 이상한 유전자가 있다든지, 혹은 다른 지역에서였다면 많이 죽어서 사라졌을 유전자가 지역의 식문화 특성 때문에 살아남았다든지 하는.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치료겠죠? 진단이 되어도 치료가 안 되면…… 뭐 아주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질환의 경우에는 식이 및 약물 요법으로 성장 촉진 및 고암모니아 혈증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 아이의 경우에는 이미 자체적으로 식이 조절이 어느 정도 되었기 때문에 정신지체는 피했으니 이대로 쭉 이어 나가되, 성장 지연을 해결해 주면 되겠죠.”
수혁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배를 가리켰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배라기보다는 허리 뒤쪽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아미노산이 재흡수되지 못하고 빠져나가고 있는 신장이죠. 장은 애초에 흡수를 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흡수 자체는 문제가 될지언정 장의 구조에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신장.
이 질환에 있어서 신장은 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있었다.
말 그대로 단백뇨를 계속 보고 있는 셈이지 않나.
이걸 어떻게 잘 관찰하면서 최대한 신장 기능을 유지하는가가 이제 이 질환의 예후에 있어서 핵심이라 할 수 있었다.
“신장은 다칠 수가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제때 진단을 하게 되면 다른 합병증은 거의 대부분 조절이 되기 때문에 환자의 예후를 극적으로 끌어 올릴 수 있죠. 흠.”
수혁은 말을 마치고 시계를 돌아보았다.
이번에 너무 열을 올리면서 설명을 했더니 벌써 시간이 다 되었다.
‘뭐…… 괜찮았지?’
[네. 여기서 만족하시죠. 지금 보니까 여기서도 또 팬 여럿 생긴 거 같은데요.]
‘안 그래도 약간 무서운 얼굴로 나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많아…….’
[마치고 만나 주시죠. 저 사람들 뒤에 있을 어려운 환자들을 떠올려 보십쇼.]
‘오…… 그렇게 말하니까 너무 신나는데.’
수혁은 후후- 하면서 자리로 돌아갔고 곧 우레와 같은 박수가 이어졌다.
여전히 좌장은 뻗어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일이니만큼 상당히 특이한 광경이라 할 수 있었다.
학회 대행을 맡은 팀장은 잠시 이마를 짚었지만, 정작 학회 참석인들은 딱히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멋대로 학회 세션을 종료하고 수혁과의 개인적인 질의응답 시간을 만들고 있었다.
점잖게 표현해서 질의응답이지 제대로 표현하면 그저 팬 미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