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1화 집회 (2)
“이게…… 이게 무슨 일이지.”
소화기내과 의사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라 할 수 있는 마운트 사이나 병원 강당을 보고 있었다.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사람이란 게 원래 너무 놀라면 이렇게 되는 법이었다.
“어제 말이랑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소화기내과 의사의 호언장담을 믿고 그냥 마음 편하게, 둘레둘레 시간 맞춰서 온 기생충학 교수 또한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아니…… 오늘 여기서 콘서트가 있나……?”
“병원에서요? 아, 자선 행사를 하나?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요.”
“네네. 아마 그럴 겁니다. 소아과 병동은 그런 거 자주 하니까.”
둘은 그렇게 한참을 어버버 하고 있다가 마침내 나름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 냈다.
그래, 이건 말이 안 돼도 너무 안 된다.
이게 무슨 국제 학회급 규모의 학회도 아니고 사실상 집담회 아니었던가.
뉴욕 시티와 그 근처 병원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 교류도 하고 친목 도모도 하는 그런 모임이다, 이 말이었다.
물론 아무 도시가 아니라 뉴욕이다 보니 그 위상이 어지간한 학회를 씹어 먹을 수준이긴 했지만…….
어차피 여기서 교류하는 의견은 전부 공유가 되기 때문에 일부러 현장까지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네요. 저기 누군가 둘러싸여 있습니다.”
“아아. 엄청 대단한 스타인가 보네요. 의사들이…… 어지간히 유명한 사람이 아니면 잘 알지도 못할 텐데.”
“그러니까요. 하하. 누구지. 설마…… 크리스마스 즈음인데…….”
“머라이어 캐리요? 에이, 설마. 아무리…….”
“저희 병원이 돈이 많지 않습니까. 게다가 소아과 병동이라고 하면 대부분 암 병동이다 보니 셀럽들도 돈부터 바라고 오진 않아서요.”
“아아.”
하여간,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확실히 인파에 둘러싸여 얼굴도 안 보일 지경이 된 사람이 하나 있었다.
“키에에에!”
“이수혁!”
“저 교토에서 찾아왔습니다! 학회 차 왔다가……!”
누군가 궁금해지지 않겠나.
아무리 삭막한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라 해도 눈앞에서 연예인을 볼 기회가 있다고 하면, 은근슬쩍 궁둥짝을 움직이게 되기 마련이었다.
설령 갔는데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좋았다.
이따 동료들한테 가서 자랑할 수 있을 테니.
노래가 뭐냐느니 하는 곤란한 질문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동료들도 하나도 모를 테니까.
“저, 저 태화 사람입니다! 뉴욕 센터……!”
“아니, 마운트 사이나 병원 사람도 아닌 사람이…….”
“먼저 오신 거 알았으면 가서 사인부터 받았을 텐데요!”
하여간, 누군가 해서 왔더니 뭔가 좀 이상했다.
‘뭐지?’
방금 이수혁이라는 이름을 들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병원에 미러볼 조명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는데 어디선가 번쩍번쩍하고 있었다.
그것도 천장 쪽이 아니라 바닥에서였다.
문제는 그걸 어디선가…….
그러니까 어제 이 병원에서 본 거 같다는 점이었다.
‘안대훈……?’
그게 끝이 아니라, 방금 봤다.
안대훈을.
잘못 봤을 리는 없었다.
안대훈 같은 사람은 거기 있으면 반드시 눈에 띄게 마련이니까.
세상천지 어디를 가야 저 비슷한 사람을 다시 볼 수 있겠나.
만약 그렇게 된다면 평행 우주라 확신해도 좋을 터였다.
‘그렇다면……? 이게 진짜로……?’
소화기내과 의사는 너무 놀라서 점프까지 했다.
마치 예수님을 보기 위해 뽕나무에 올랐던 삭개오라도 된 듯 최선을 다했다.
그러자 메시아 아니, 수혁의 얼굴이 보였다.
늘 그러하듯 기가 막힌 위치를 선정해서 빛을 뿌려 주는 안대훈 덕에 수혁은 자못 성스러운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심지어 이런 상황이 익숙한 건지 아니면 그냥 대범한 건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굉장히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유명한가? 미국에서도?’
[그런 모양입니다. 젊은 의사들은…… 나무위키라도 본 걸까요?]
‘아…… 그런가? 그거 영어 문서도 있긴 하던데…… 아무리 그래도 그걸 보나?’
[저도 이해는 잘 가지 않습니다. 물론 안대훈, 조태진 등이 감수를 맡아서 케이스 부분은 꽤 공부할 만하게 꾸려져 있긴 합니다.]
어느 정도로 잘되어 있냐면, 안대훈에게 국내 유수의 의학 서적 출판사인 군자에서 연락이 왔을 지경이었다.
이거 잘 정리해서 내면 내과 의사들의 필수 서적이 될 수 있을 거란 말을 하면서였다.
-갈!
수혁 생각에는 꽤 좋은 의견이었던 거 같았지만, 정작 안대훈은 직원 면전에 대고 갈부터 외쳤다고 들었다.
-감히 복음을 돈 받고 팔려 하다니! 미구니가 끼었구나! 사탄이 들렸어!
출판사 직원이 혼비백산해서 달아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조태진이 조금이라도 말려 주는 시늉이라도 했다면 좀 나았겠지만, 그 또한 도긴개긴인 사람 아닌가.
전해 들은 수혁도 정상은 아니었다.
‘수혁교는 기독교 계열 이단일까 아니면 궁예와 같은 토속 이단일까……?’
[그런 게 궁금합니까?]
‘복음은 기독교고 미구니는 궁예가 쓰던 단어 아냐?’
[그렇게 들으니까 저도 좀 궁금하군요. 기회가 된다면 안대훈의 머릿속을 좀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수혁에 의해 성장하고 있는 바루다 또한 미친 지 오래다 보니, 둘은 정말이지 엉뚱한 부분에 궁금증을 품고 있었다.
“하하. 네네. 사인해 드려야죠.”
“감사합니다!”
“아…… 공부의 비결이요? 사실 그게 제일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대부분은 그냥 됩니다.”
“아…… 역시 나 같은 건…….”
“하지만 여기 안대훈 선생을 보십쇼. 다소 평범한 재능을 타고났지만 놀라운 집념으로 천재를 뛰어넘었습니다. 대가로 무언가를 바치긴 했지만…….”
“아, 그렇게까지는…… 저도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늘 그러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건방짐과 자부심 어딘가를 넘나들면서였는데, 여기 모여든 이들은 그야말로 수혁의 제자를 자청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다 받아 주었다.
‘소생…… 유튜브 자막 달기를 참으로 잘했나이다.’
그 구름 떼 같은 군중을 보면서 안대훈은 한층 가벼워진 잔고를 떠올리면서도 벅참을 느끼고 있었다.
-응? 자막……?
-네, 이수혁 교수님의 가르침을 사해 만방으로 뻗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아니…… 대훈아.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그렇지. 그런데. 얘, 나 교수야. 나이만 따져도 인마 너네 막내 삼촌급은 되겠다.
-노려본 것은 죄송합니다만…… 실망스럽군요. 진심이 아닌 겁니까?
-아니, 아니. 하자. 하자! 근데 왜 이렇게 비싸?
-의학 용어를 다 제대로 번역해야 하다 보니 이게 비싸네요.
-아.
자막 단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다.
돈도 돈인데 그거 감수도 해야 했다.
안대훈조차도 가끔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그간의 모든 고생이 다 보상받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아이오와에서도 왔구만. 후후후. 좋아, 좋아!’
뉴욕이라는 도시가 원래 학회나 기타 모임의 산실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거의 매주 사람들이 와 있다고 봐도 무방했는데, 그렇게 온 인간 중 수혁의 팬들이 이만큼이나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봐도 대단한 일이었다.
“혀, 현장 등록…… 등록 여기서 하셔야 합니다!”
그 바람에 집담회 대행사 직원은 진땀을 뻘뻘 흘려 대고 있었다.
원래 하던 행사는 기껏해야 집담회 수준 아니었던가?
헌데 지금 몰린 인원이 거의 50명은 되었다.
다행히 이 병원 사람들이 절반은 되었지만…….
그것만 해도 평소 인원 정도가 되었다.
“아, 얼마죠?”
“그…… 100달러입니다.”
“100달러. 밥도 줘요?”
“식권은 따로 받고 있습니다. 30달러입니다.”
“왜 이렇게 비싸?”
“그…….”
“아, 아. 이수혁 교수님 초빙해서 그렇구나. 그럼 인정이지.”
“그…….”
집담회 대행사 직원들은 지레짐작으로 쿨하게 거금을 내고 들어가는 이들을 보면서, 스튜어드의 말을 떠올렸다.
-해외 연자도 오는데 다르게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니, 아니. 초청 연자이긴 한데…… 그냥 오는 거예요. 비행기도 자비로 부담했어. 별거 아닌 사람이야.
이게 별거 아닌 거면 대체 누가 별거지.
혹시 미국 대통령 정도는 되어야 인정할 맛이 나는 그런 이상한 타입이었나?
하여간, 발등에 불이 떨어져 버렸다.
대접을 소홀히 할 수 있겠나?
평소 연자대로 할 수 있냐, 이 말이었다.
그랬다간……
‘야, 일단 저기 앞에 붙은 사람들은 뭐야.’
‘모르겠습니다. 정장 입은 애들이 왔는데…….’
저 인파에게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수모를 겪을 거 같았다.
무엇보다 저 사람, 보통 사람이 아닌 게 분명했다.
양복쟁이 여럿이 오늘 아침부터 여기저기 배치되어서 자발적으로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지 않나.
처음엔 병원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이제야 이수혁의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 동양 사람들이라 그게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퍼즐이 맞아 가는 느낌이랄까.
‘뭐지……? 태화 쪽 의전이 원래 저런가?’
‘아, 아뇨. 전에 원장이라는 사람도 학회 강연 왔었는데.’
‘아…… 그 이상한 사람?’
‘네. 그 사람 때는 뭐 없던데요?’
‘흐으음…… 그럼 원장보다 위라는 건데…… 뭐지?’
‘왕족일까요?’
‘야, 한국에 왕이 어딨어.’
‘없어요?’
‘이 무식한…… 거기 대통령…… 어? 거기 대통령 이씨인가?’
‘모르겠는데요.’
직원들은 하등 쓸모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빨리 이 돌발 상황에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스튜어드한테 추가금 필요할 거라는 말해 두고. 어지간하면 우리도 하루 이틀 본 사이니 그냥 하는데 이건 좀 너무 하잖아.”
“네네.”
“아, 실례가 많으십니다.”
“아, 네.”
그 와중에 그렇지 않아도 알아보려고 했던 양복쟁이 하나가 다가왔다.
딱 봐도 쓰리피스 정장을 맞춰 입은 데다가 나이도 지긋하고, 무엇보다 걸음걸이부터 당당한 것이 보통 놈은 아니었다.
“이수혁 교수님이 저희 태화 일가분이셔서요.”
“뭔 소리예요?”
“재벌 총수 일가라고요. 너네로 치면…… 그래 이사장 아들.”
“왓?”
“저는 태화 그룹 뉴욕 지부장이고요. 아무튼, 그냥 행사 진행만 하시면 됩니다. 모시는 건 저희가 할 테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네네. 그. 아이고.”
그래서 좀 긴장했더니 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수혁이 찐이었다.
재벌 총수라니.
이전까지만 해도 소유와 경영이 엄격히 분류된 미국에서는 이런 말이 이해가 잘 안 갔지만…….
러시아의 올리가르히들이 뉴욕에 와서 돈을 써 대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부터는 점점 이해도가 쌓이고 있었다.
아, 저게 견제받지 않는 회사의 주인들이 행할 수 있는 이적이구나, 뭐 이런 걸 느끼고 있단 말이었다.
“스튜어드 이 미친놈이. 뭐 별거 아냐?”
팀장은 이를 으득 씹고는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쟤네가 알아서 한다고 했지만, 그렇게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여기서 잘하면…… 태화도 열린다. 안 그래도 걔네 뉴욕 진출하려고 애쓰던데…….’
위기는 곧 기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