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76화 (1,076/1,303)

1076화 접수 (1)

“스튜어드 말입니다.”

“어, 닥터 스튜어드? 그 사람 왜.”

수혁이 소아과를 포함해 정형외과, 신경외과까지 다 뒤집어 놓고 간 날 저녁.

그러니까 수혁은 안대훈의 빈틈없는 준비 덕에 브로드웨이에서 알라딘 뮤지컬을 VVIP석에서 보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

이번 모임을 주도한 닥터 알버트는 저도 모르게 굳게 닫힌 문 쪽을 돌아보았다.

나름 고급 식당인 데다가 룸까지 딸려 있는 곳이니만큼 이쪽에서 요청이 있지 않은 한,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을 터였다.

스튜어드나 그의 일당으로 통하는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따지고 보면 닥터 알버트가 그의 일당 중 상당히 핵심을 차지하고 있긴 했지만…….

‘그 사람은 질투심인지 뭔지에 돌아 버렸어. 원석도 아니고……. 눈앞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을 보고도 그럴 수 있나?’

알버트는 고개를 한번 털고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 사람…….”

“그 사람? 너한테는 스승 같은 존재 아냐? 재계약하려고 해도 스튜어드가……. 너 무슨 일이 있구나?”

그의 말에 이 새끼가 왜 갑자기 저녁 먹자고 성화를 부렸나 하고 있던 다른 의사가 급작스럽게 관심을 보였다.

나머지 인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분과는 다르지만 다 비슷한 처지라서 그랬다.

분명 미국의 의사는 확실히 한국보다 대우가 좋을 수 있는 건 맞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운도 좋고 실력도 좋아야 했으며 무엇보다 인맥도 좋아야 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그러한 이들 중에서도 나름 정점에 선 이들이라 할 수 있었다.

월 스트리트가에 있는 괴물들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맨해튼 멘션에 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이들.

그만큼 스튜어드와 같은 이들의 줄이 중요했다.

“그게 한국 갔다 와서 좀 이상해졌다는 말 들어 봤지?”

“아…… 어. 좀 이상하다고는 하더라. 거기서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걸까.”

“나도 그게 궁금했거든? 같이 가셨던 교수님은 워낙 인격자라 남 얘기를 아예 안 하시니까…….”

“아, 그 심장내과? 그렇지. 심장내관데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말야.”

심장내과가 다 이현종 같은 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반적으로 성격이 좋은 건 아니었다.

처음엔 좋았다 하더라도 나중에까지 그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라.

365일 24시간 응급에 시달려야 하는 사람이 성격이 좋으면 이 세상에 왜 다툼이 있겠나.

허나 이들이 말하는 인격자, 즉 스튜어드와 함께 한국으로 갔던 이만큼은 어느 정도 예외였다.

그 덕에 스튜어드는 본인의 추태가 널리 퍼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물론 정작 당사자인 스튜어드는 딱히 고마운 걸 모르고 있었지만, 아무튼 그랬다.

“근데 이번에 이수혁 교수라고……. 알아? 태화 출신.”

“아, 그 사람. 코비드 때 엄청나게 활약했잖아. 난 당연히 감염내과 의사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더라? 태화에서 의도적으로 키운다는 말이 있잖아.”

“나도 그렇게 들었지. 그렇게 믿었고.”

태화에서 키운다.

그들의 업적을 한 명에게 몰아서 스타를 만든다.

그래서 태화에 무슨 유익이 있을까?

똑똑해 봐야 의사들 아닌가.

정치적인 고려는 이들에게 있어 너무 어려운 일이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한 사람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일들을 다 해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근데 이번에 보니까 아냐. 그냥 천재야.”

“야, 우리도 천재야.”

알버트는 자기 앞에서 하하 웃는 동료를 바라보았다.

사실 그가 지금껏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그리고 그가 보여 주고 있는 활약상을 보면 천재라는 말이 그리 어색하게만 들리진 않았다.

아마 어제까지만 해도 천재라는 데 일말의 부정도 하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진짜……. 진짜를 봤어.’

하늘이 내린 인재.

천재를 논하려면, 이수혁 정도는 되어야 할 거 같았다.

아마 높은 확률로 알버트는 그가 죽는 날까지 두 번 다시는 진짜 천재라 할 만한 사람을 보지 못하리라.

“아니, 그 정도가 아냐. 잘 들어 봐.”

“뭘. 야 음식 식어.”

“음식이 문제야? 내가 다 살 거야. 술도 시켜.”

“오, 그럼 얘기가 좀 달라지는데……. 뭐든지 돼?”

“그건 안 되지. 100달러 미만으로 시켜.”

“그것도 좋지.”

알버트는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대단했던 수혁의 추론을 입에 담았다.

“응……?”

“그게 말이 돼?”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이 우매한 것들.

머글 같은 놈들.

“이건 단지 시작에 불과해. 컨퍼런스 때 보여 줬던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진짜 미쳤어.”

“맹장 암으로 의심되던 환자를 단지 그 정도 단서만 가지고 아메바 종으로 진단을 했는데…… 그게 시작에 불과하다고?”

알버트의 말에 조금 전까지 우리도 천재 운운했던 녀석이 안경을 벗었다.

그래 봐야 또렷하게 보이던 것이 흐릿하게 보이게 되는 효과밖에 없겠지만, 뭐 아무래도 좋았다.

놀라움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일 테니까.

“그래. 그건 아무것도 아냐……. 소아과에서 요청이 왔어. 정확히 말하면 스튜어드가 소아과 쪽 환자를 물어 온 거지.”

“소아과를 왜? 우리는 내과잖아. 뭐 내과적인 질환이 의심이 된 건가?”

“아니, 그런 게 아냐. 스튜어드가 그 이수혁 교수를 미워해. 뭔가……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

“싸웠나? 스튜어드가 좀 싸가지 없을 때가 있잖아.”

알버트는 싸가지란 말에 동료를 바라보았다.

새삼스럽게 그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 그렇겠네.’

인종차별주의자인 스튜어드가 이 동료에게 어찌 대했겠나.

안 봐도 뻔했다.

지금 그런 얘기를 하는 건 별 의미가 없는 데다가 굳이 기분 나쁘게 할 생각도 없어서 알버트는 그저 가볍게 동조만 하고 넘어갔다.

“그렇지. 싸가지 없지. 근데 그런 건 아닌 거 같아. 이수혁 교수는…….”

이수혁은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것도 딱 소아과 환자 물어 왔을 때 그랬다.

아직도 이게 대체 무슨 뜻이었는지는 이해가 잘 안 갔다.

다만 지능이 불가해한 영역에 있는 만큼 그의 감성 또한 이해 불가능한 범주에 있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분은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더라고. 오히려 칭찬도 했어. 일방적으로 미워해. 아무래도 한번 실력으로 개처발린 모양이야.”

“그래? 스튜어드……. 그 새끼 싫긴 한데 그래도 실력은 꽤 괜찮은 놈 아닌가……?”

“어, 그렇지. 그러니까 나도 밑에서 참고 있었지.”

마운트 사이나 병원 그리고 뉴욕의 의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단지 정치력만 있어서는 안 되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본연의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란 얘기였다.

당연하게도 스튜어드 또한 상당한 실력자였다.

저 멀리 캔자스에서 알버트가 찾아왔을 정도로.

“근데 이수혁 교수랑 비교하면……. 비교하는 게 실례야.”

“그 정도…… 라고? 아니, 확실히 방금 건은 대단하긴 한데. 우연히 자기가 봤던 환자랑 비슷했을 수도 있잖아.”

동료의 반응에 알버트는 자신도 모르게 안대훈을 떠올렸다.

첫인상은 그냥 이상한 사람이었다.

머리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머리 없는 사람은 마운트 사이나에 더 많았으니까.

단지 그렇게까지 광을 내고 다니다가 적재적소에 빛을 반사시키는 사람은 처음 봤다.

-불신자들이 곧 답답하게 느껴질 겁니다.

그런 사람이 불신자 운운할 때는 진짜 어이가 없었다.

이 사람이 미쳤나 싶었는데, 지금 실감하고 있었다.

‘이 무엄한 새끼.’

자신도 모르게 화를 벌컥 낼 뻔했다가, 알버트는 이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더 들어 봐. 소아과야. 너 트리플 에이 신드롬이라고 들어 봤어?”

“응? 아니. 소아과를 내가 어떻게 알아. 그 소아과 선생님이면 알겠지.”

“모르시더라. 유니세프에서 의뢰 온 환자고……. 알지? 그런 환자 대부분이 좀 어려운 케이스인 거?”

“알지. 우리도 가끔 다른 단체 통해서 받잖아.”

마운트 사이나.

유태인 기금으로 운영되는 병원이니만큼 돈이 많았다.

돈만 많은 것이 아니라, 이미지 개선을 위해 이런저런 자선 사업도 꽤 하는 편이었다.

무엇보다 이 병원 설립자 중 하나가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였던 만큼 운영 방침 중 적어도 사회에 무언가 하나는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분명히 서 있었다.

“그분도 난색을 표하시더라고. 아니, 나도 옆에서 히스토리 듣는데 진짜 그냥 일반인 된 기분이더라고.”

“근데? 아니, 설마……?”

“그래. 그거 한 방에 진단했어. 아직 유전자 검사가 나가진 않았지만……. 검색해서 찾아보니까 맞는 거 같아. 다 맞아떨어져. 너무 희귀한 질환이라고 소아과 선생님도 놀라셨다고.”

“허……. 그게 말이나 되는 얘긴가……?”

“아직도 일러.”

“아직도?”

알버트는 어느새 서빙된 술을 한잔 마시고는 입을 놀렸다.

그의 말대로 아직 멀었다.

정형외과에서도, 신경외과에서도 해당 과 의사들조차 깜짝 놀랄 만큼 희귀한 질환을 놀랍도록 빠르게 진단해 냈다.

거기에 더해 치료 방침까지 감히 완벽하다는 말을 써도 좋을 정도로 내려 주었다.

“허.”

“허어어어.”

“그런 사람이 진짜 있구나. 무슨 마블 히어로 같은데?”

“머리통에 뭐가 있나……?”

“사람이 맞아?”

그걸 다 털었을 무렵, 그러니까 이미 밤이 깊어 오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불신자였던 다른 동료들 모두가 수혁에 대한 호기심을 품게 되었다.

그중 몇몇은 호기심 정도가 아니라, 숫제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

그 결과는 바로 다음 날 확인할 수 있었다.

스튜어드가 어거지로 만든, 그러니까 수혁을 엿 먹이기 위해 만든 컨퍼런스에 어제 알버트가 주최했던 술자리에 있던 모두가 참석했다.

딱히 알림이 없었음에도 그랬다.

“뭐지?”

스튜어드가 당황했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하도 된통 당해서, 오늘은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몰려오다니.

“뭐, 사람 많으면 좋죠.”

그런 스튜어드의 어깨를 수혁이 툭툭 두드려 주었다.

[어제 음식은 잊을 수가 없군요.]

‘알라딘은?’

[그것도 훌륭하긴 했지만, 솔직히 음식이 최곱니다.]

‘뭐……. 나도 부정하기가 어렵네.’

수혁은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환자를 잔뜩 봤지.

뮤지컬도 재밌었지.

맛있는 음식도 먹었지.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하루였다.

마무리로는 하윤의 도움을 청하는 전화까지 받았기 때문에 수혁의 지금 기분은 거의 날아갈 지경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웃고 있네. 하아……. 왜 이렇게 분하지!’

그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스튜어드는 알 수 없는 열패감에 물들 수밖에 없었다.

수혁과는 정반대로, 그는 어제 거의 최악의 하루를 보냈기에 그랬다.

굳이 ‘거의’라는 말을 쓴 것은 이미 최악의 하루를 한국에서 보냈던 바 있어서 그랬다.

아마 평생을 보내도, 그날보다 안 좋은 날은 없지 않을까.

‘아니, 없어야지…….’

스튜어드는 후- 하고 한숨을 쉬고는 기왕 온 애들을 돌려보내기도 뭐하고 또 시간도 됐고 해서 컨퍼런스를 시작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름 정신 승리를 잘하는 편이다 보니 혹시 하는 기대감도 품었다.

‘오늘은 어쩌면……?’

그와 동시에 수혁도 기대를 품었다.

‘오늘도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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