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72화 (1,072/1,303)

1072화 본격적으로 (1)

스튜어드는 이게 뭐지 하고 있었다.

분명 자기 심복인 알버트가 맞았다.

번호도 확인했고, 목소리도 맞다.

근데…….

“너 뭐라고?”

“불경하게 자식, 자식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니…….”

뭘 잘못 처먹었나?

갑자기 왜 이래?

물론 간혹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할 때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듯한 느낌은 있었다.

아무래도 같은 병원 내에 백인만 있는 것도 아니니,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은 하고 있었다.

자신과는 달리 알버트는 아직 자신의 자리에서 일가를 이루었다고 보기엔 많은 무리가 있는 녀석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더더욱…… 내 말을 잘 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

미국이라고 하면 무조건 실력 우선주의일 거 같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그 실력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오히려 보수적이었다.

소개가 없이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보면 되었다.

이게 비단 이직이나 취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병원에 자리한 상태에서도 그랬다.

즉 거의 대부분의 연구 펀드 따오는 일이나 심지어 환자 소개받는 일까지도 인맥이 어느 정도 주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리고 스튜어드는 아직까지는 그 자리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그…….”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다, 이건데…….

‘그래. 얘가 어디가 아픈가 본데.’

그런 얘기는 나중에 차차 하면 될 일 아니겠나.

천천히 얘기하다 보면 심경의 변화도 돌아올 것이고 다 제자리로 돌아올 터였다.

대한민국에서 당했던 개망신도 언젠가 다 보상이 될 것이라 믿고 있던 만큼, 스튜어드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 그래. 아무튼. 닥터 리. 지금 어디에 있지?”

“저희 병동에 있습니다.”

“거기……? 암?”

“네.”

“음.”

진료를 보러 간 건가……?

암……?

거기 어려운 환자가 있던가?

있긴 있을 터였다.

이곳 마운트 사이나 병원은 전 세계에서 어려운 케이스란 케이스는 다 몰리는 그런 곳이니까.

확실히 한국 수준에서 보면 어려울 텐데……

‘이제는 인정해야지.’

수혁은 만만한 동양인이 아니었다.

어쩌면 속은 백인일 수도 있다, 뭐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먼 조상 중에 백인이 있었다거나 하는.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완연한 동양인이었고, 그래서 스튜어드는 여전히 그 옹졸한 마음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 어디 간대? 집으로…… 호텔로 가나?”

“아, 아뇨. 계속 환자 보신다고 하는데요.”

“아, 그래?”

아까부터 묘하게 존대를 하는 알버트가 거슬렸다.

아마 평소였다면 버럭 화부터 냈을 테지만 지금은 무리였다.

뭔가 좀 이상하니까.

스튜어드 본인도 완전 정상은 아니었다.

컨퍼런스 중간부터 기억이 희미했다.

유선결핵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였다.

“으음…… 그럼 말이야.”

하여간, 스튜어드는 이번 일을 위해 미리 뿌려 둔 연락망에서 건진 것들을 뒤적거렸다.

각 과에 자신의 무시무시한 인맥을 활용해서 어려운 케이스를 모아 왔더랬다.

정신이 없던 와중이었음에도 해냈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저놈을 깎아내려야 자신의 상처 받은 자존심이 회복될 거 같아서 그랬다.

“환자를 볼 생각이라 이거지?”

“네. 그런데요?”

“내가 케이스 받아 왔는데, 그 환자들을 보는 건 어떤가.”

“네에……?”

반면 알버트는 이 치졸한 인간이 또 무슨 꿍꿍이속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도 뭐 아주 좋은 인간은 아니었는데 요새는 아무리 봐도 좀 많이 이상한 인간이 되어 버리지 않았나?

해서 네에 라는 말을 끝으로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으려니 옆에서 벌써 환자에 필요한 추가 검사 및 치료에 대한 처방까지 싹 마친 수혁이 다가왔다.

“누구예요?”

“아…… 그, 스튜어드입니다.”

알버트는 흠칫 놀라며 수화기 부분을 가리고 말했다.

아무리 봐도 수혁이 스튜어드를 탐탁지 않아 할 것이 분명해서 그랬다.

누구라도 그러지 않겠나?

미친놈인데.

“아, 그 사람.”

하지만 수혁은 딱히 별 관심이 없었다.

미친 사람이라기보다는 멍청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해 있어서 그랬다.

물론 좀 마음에 안 들기는 하는데 그래서 뭐 어쩌겠나.

계속 볼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좀 불쌍하다 싶기만 했다.

알버트는 그런 수혁의 말에 생각보다 온건한데? 라고 하면서 말을 이었다.

어쩌면, 그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케이스 모아 왔다는 말에 화를 낼 것 같진 않다고 여기면서였다.

“그…… 스튜어드가 환자 케이스를 모았다고 하는데요. 어려운 걸로.”

“오, 진짜요? 좋은 사람이었네?”

“네?”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극적인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같은 병원에 있던 사람들이 봐도…….

좀 그런데, 명백히 타깃으로 있던 수혁은 어떻겠나 싶었는데 이렇게까지 나온다니.

‘진짜로…… 성인인가…….’

알버트는 속으로 감복하면서 다시 수화기를 가렸던 손을 치웠다.

“네, 좋다고 하시는데요?”

“좋대?”

“네.”

“그…….”

그 말에는 스튜어드도 놀랐다.

아까부터 계속 함정을 파고 있고, 모를 것 같지 않은데 자꾸 끌려 들어오고 있지 않나.

물론 사람의 마음은 거울 같은 거라 지가 그런 생각을 품고 있어서 더더욱 그렇게만 느껴지는 것이긴 한데…….

하여간, 오겠다는데 오지 말라고 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해서 스튜어드는 그들의 전공과는 좀 동떨어져 있는 곳으로 수혁을 불렀다.

“어…… 자네는 왜 왔나?”

“오늘 제가 에스코트하기로 했습니다.”

“에스코트……?”

가이딩도 아니고 에스코트?

어째 하는 짓이 점점 점입가경이었다.

하지만 남들, 그것도 수혁과 안대훈과 같은 적 앞에서 속내를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스튜어드는 대범하게 껄껄 웃었다.

‘저 자식 눈이 좀 이상하게 튀었는데.’

[알버트가 우리에게 붙은 게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나 본데요.]

‘하여간…… 멍청한 데다가 쫌생이네. 원래 뛰어난 의사가 나타나면 다 경배하고 싶고 그러는 법이거늘.’

[음.]

바루다는 방금 다소 종교적인 발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러한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수혁을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별 반응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싶기도 했다.

옆에 맨 안대훈, 조태진 같은 놈들이 붙어서 하루 종일 온갖 야단법석을 피우는데 변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긴 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하여간, 스튜어드는 둘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소아 병동이었다.

“선생님……?”

알버트는 당황한 얼굴로 스튜어드를 불렀다.

이 병원에 온 지 이제 무려 5년도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와 보지 않았던 곳이어서 그랬다.

그만큼 알버트가 게을렀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올 일이 없었다.

왜?

내과 의사가 대체 소아과를 올 일이 뭐가 있겠나.

스튜어드도 내심 그에 대해 양심의 찔림을 느끼고 있었지만 놀랍도록 무표정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왜. 그냥 어려운 환자 보는 거 좋아하는 분 아닌가? 원래도 과를 안 가린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소아는…….”

수혁이 보기엔 이 대화야말로 웃기지도 않은 것이었다.

실제로 소아는 수혁이 자신 있어 하는 분야였기에 그랬다.

다만 그렇게 자주 보지 않는 것은 아픈 아이들을 본다는 것 자체가 좀 힘든 일이라서 그랬다.

특히 예후가 좋지 않은 병을 진단 내릴 때는 수혁 본인이 선고를 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더더욱 찝찝했다.

“아, 닥터 스튜어드.”

병동 스테이션에는 소아과 의사가 무려 셋이나 있었다.

셋 다 표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환자 상태는 별로겠군.’

[하지만 넘어가고 있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그렇다고 보기엔…….]

‘병동이 조용하지.’

바이탈이 흔들리는 건 아닌 거 같았다.

그냥 진단이 안 되었거나 혹은 진단이 되었지만 예후가 좋지 않은 질환으로 판명이 났을 가능성이 있을 터였다.

물론 후자라면 수혁을 부르진 않았을 테니 전자일 게 뻔했다.

“어…… 왔나. 이게 유니세프에서 의뢰가 온 환자인데…… 영 어렵네.”

“그래, 그렇게 들었지.”

유니세프.

아이들을 위한 구호 재단 중 가장 거대한 단체이면서 동시에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단체이기도 하지 않나.

여기서 간혹 이런 식으로 제휴를 맺은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오곤 하는데 대부분 케이스가 어려웠다.

상대적으로 의료 인프라가 제대로 깔려 있지 못한 나라의 아이들이니만큼 조기 진단이 되는 경우가 없고, 그에 따라 같은 질환이라고 해도 선진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드문 경과를 밟는 경우가 많아서 그랬다.

거기에 더해 아예 희귀 질환이었다면 더더욱 어려울 터였다.

‘흐흐…….’

스튜어드는 여기서 겉으로 웃으면 너무 또라이 같아 보일 게 뻔해서 속으로 웃었다.

그래 봐야 티가 안 나는 건 아니었지만, 하여간, 소아과 의사는 별로 문제 삼지 않았다.

애초에 스튜어드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수혁…….’

수혁만 보고 있었다.

‘천재…… 진짜지.’

언젠가 수혁이 쓴 논문을 본 적이 있었다.

상당히 새로운 개념으로 접근한 논문이라 저자를 봤는데 한국인이라 관심이 갔다.

최근 들어 미숙아 관리에 있어 한국의 약진이 대단해서 그랬다.

이기자 교수라는 걸출한 사람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수혁과 같은 병원이었다.

‘그래, 한번 물어볼까. 알 거 같진 않지만.’

처음부터 스튜어드와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이건데.

그렇다고 해서 기대가 크거나 하지는 않았다.

수혁은 내과 의사니까.

“12세 여자, 구토가 자꾸 재발하고 삼킴곤란이 있어서 당시 봉사 나갔던 의사가 진료를 했는데 거기 현지 병원과 협조를 해서 검사를 했지만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네. 아, 환자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이야. 실제로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왔고 그 와중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잃었고…… 그쪽에서는 그로 인한 트라우마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네.”

소아과 의사는 설명하면서 동시에 협진 기록을 가리켰다.

정신과 쪽이었는데 과연 트라우마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

그에 대한 치료도 필요하다고 쓰여 있었는데 다만 신체화 증상, 즉 마음의 고통이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있진 않았다.

‘뭐…… 가능성은 있지.’

[그렇죠. 특히 구토와 삼킴곤란 혹은 발성 장애는 정신과 질환과 상당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요한 건 환자의 발육 지표야. 잘 자라고 있다면 기질적인 원인이 아닐 가능성이 올라가.’

[그렇죠.]

소아과 의사는 방금 수혁이 보았던 자료를 들여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여기서는 신체화 증상의 증거가 없다고 하는데…… 보면 일단 발육 지표가 정상이야. 아, 미국과 비교하면 좀 처지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자료를 두고 보면 오히려 큰 편이야.”

“아…… 그럼…….”

“그래서 우리도 정신과 쪽을 생각했는데 아이와 면담을 해 보니까 종종 기운이 없다고 하더군.”

“영양 상태는요?”

“처음 진료 시에는 영양 결핍 상태였다가 지금은 잘 관리가 되고 있는 거 같네. 근데 기운은 여전히 없다고 해.”

“흠.”

유니세프에서 구조된 환자.

수혁과 바루다로서도 처음 겪는 형태의 환자였다.

그래서 어려웠다.

‘뭐지?’

[직접 봐야겠는데요. 이것만 가지고서는 진단이 불가합니다.]

‘간만에 어렵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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