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8화 혼내 주러 왔습니다만 (7)
“아.”
“이런.”
“그런가…….”
“확실히…….”
대장 내시경이 변 때문에 실패했다는 소견에서 이게 암이었으면 막히지 않았겠냐는 말로 이어지는 논리.
너무도 당연한 논리인데 영상이 보여 주는 소견에 속아 있던 이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그저 충격으로 다가왔다.
애초에 그걸 이어 볼 생각조차 못 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미친……. 이건……. 진짜 괴물이잖아.’
발표를 맡았던 의사는 충격에 빠지는 것을 넘어 거의 두려움에 빠져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소한, 지극히 사소한 단서들에서 이렇게까지 뽑아낼 수 있다니.
아까 유선결핵을 맞춘 것도 대단하긴 했다.
그게 설령 수혁이 직접 맞춘 거였다고 해도 대단하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그건 우리도 어렵다고 생각했던 케이스였어. 근데 이건……. 이건 전혀 의심도 못 했는데…….’
허나 방금 수혁이 짚어 둔 부분은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의심치 않았던 것이 바뀌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단지 발표 자리에 있던 이 말고도 모두가 다들 입을 벌리고 수혁을 바라보게 되었다.
회심의 일격을 냅다 약점에 대고 꽂아 넣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고요하네.]
‘좋다. 혼자 떠들기 딱 좋은 분위기야.’
[그렇죠. 후후. 잘하셨습니다.]
‘갈까.’
[네.]
물론 수혁은 거기서 멈출 생각은 전혀 없었다.
여기서 멈추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정답을 맞혀야지.
내시경도 못 한 케이스이니만큼 정답까지 갈 수 있는 가능성이 크게 떨어지기야 하겠지만, 그건 일반인들 기준에서의 얘기였다.
수혁은 이미 한참 전에 정답지에 닿았다.
“암이 아니라고 하죠. 그럼 저 맹장 벽에 나타난 변화는 염증 또는 감염 때문일 겁니다. 급작스럽게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복통 또한 그렇고요. 그렇게 가정을 하고 환자의 지난 입원 병력을 봅시다. 당시 약은 항생제를 썼습니다. 일반적인 1세대 세파가 잘 안 듣자 3세대로 올렸고, 다른 대증적인 치료를 병행하면서 호전이 되었습니다.”
수혁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 첫 페이지에 있는 이질이란 진단명을 가리켰다.
옆에는 괄호 치고 의증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그 말은 곧 대변검사가 되었건 뭐가 되었건 확진된 적은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진단이 틀렸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설사란 치료가 잘못되어도 호전이 될 가능성이 높은 병이기에 그렇습니다. 실제로 콜레라 같은 병도 그렇지 않습니까? 딱 콜레라를 타깃으로 한 치료가 없어도, 대증 치료만 제대로 해 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호전이 되죠. 물론 콜레라는 자연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만…….”
수혁은 딸깍 지팡이를 짚었다.
그러자 수혁의 말에 의해 몽롱한 눈으로 콜레라를 떠올리고 있던 방 안에 있는 모두가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렸다기보다는 수혁을 직시했다.
무언가 주제가 전환될 것이라는 걸 직감하면서였다.
수혁이 그렇게 이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멘…….’
대훈에게는 이 모든 시간이 예배 시간처럼 느껴졌다.
교주가 아니, 신이 직접 왕림해서 인도하는 그런 예배.
목적이 찬양이 아니라 잘난 척에 있다는 것이 차이이긴 한데.
아무래도 다 괜찮았다.
어차피 뭐…….
수혁이 좋다면 아무래도 좋은 것이 안대훈이니까.
“이런 경우는 대부분 사실 원래 감염을 일으키지 않는 병원균에 의한 감염인 경우가 더 많죠. 자, 이렇게까지 가정을 해 보면 더 명확해집니다. 혹시 아는 사람?”
수혁은 거기까지 말하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딱히 알 거란 생각을 해서는 아니었다.
그냥 잘난 척을 하기 위함이었다.
“으음.”
“흐으음.”
당연하게도 이번에도 역시나 신음과 탄식만이 잇따랐다.
예상했던 부분이다 보니 수혁은 별로 기다리지도 않고 넘어갔다.
“하수 처리장에서 감염이 될 수 있고, 급성 감염 시 설사를 일으킬 수 있으며, 제대로 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을 시 종괴를 이룰 수 있는 병원균. 이렇게 해도 모를까요?”
모를 거다.
알 수가 없다.
아니, 알 리가 없다.
[역시 조용하군요.]
‘그러니까. 이게 좀 어렵긴 하지.’
[어차피 암이 아니라는 의심만 할 수 있으면 시간이 좀 더 걸려서 그렇지 진단까지는 일사천리입니다.]
‘그렇지. 하지만 그렇게만 말하면 멋이 없잖아.’
[그렇죠. 멋이 없는 건 죄입니다.]
후후.
수혁은 나지막이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아메바. 그중에서도 E histolytica가 제일 의심이 가는 범인입니다. 이 녀석은 심심치 않게 인간 아메바증을 일으키고 또 아메바성 이질의 임상 증후군을 일으키죠.”
“아……. 아메바…….”
“이런…….”
수혁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신음과 탄식을, 아까와는 조금 느낌이 다른 신음과 탄식을 뒤로하고 말을 이었다.
원래 설명을 늘어놓을 땐 망설이면 안 되는 법이었다.
쉬지 않고 탁탁 늘어놓아야 했다.
그래야 상대가 정신없이 감탄만 하게 되는 법이니까.
“그리고 이 E histolytica는 처음 이질 증상을 일으켰을 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았을 경우 수년 뒤에 아메바 종으로 이환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아메바 단일 감염 때문은 아니고 주로 이 아메바 감염으로 인해 발생한 점막의 탈락 등에 다른 세균이 이차적인 감염을 일으켜서라고 보입니다.”
그래서 쉴 새 없이 털었다.
당연하게도 다른 이들의 입에서도 쉴 새 없이 신음과 탄식 그리고 감탄이 뒤섞여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반응들이 수혁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더 빨리 입을 털 수 있게 되었다, 이 말이었다.
“이게 그나마 지금 이 환자 같은 경우에는 덜 헷갈리는 방식으로 소견이 나타난 편입니다. 원래는 간농양을 매우 잘 동반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전이암으로 오인될 수가 있습니다.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는 거 같은데……. 이 환자 지금 수술방으로 내려갑니까?”
“어…….”
“내려갑니까?”
“어, 네네. 별도의 연락이 없었어서.”
“그럼 전화하세요. 나머지는 내시경실 가면서 얘기하죠. 컨퍼런스 시간은 다 끝나 가는 거 같은데, 가실 분은 가셔도 될 거 같은데요?”
수혁은 극적인 순간에, 다 나올 것 같은 순간에 딱 끊으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스튜어드 때문에 반강제로 여기 끌려와 있던 이들의 표정이 표나게 바뀌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불만이 그득한 가운데 감탄을 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애타는 심정이 되어 있었다.
“아니, 같이 가죠. 금방 할 건데…….”
“그렇죠. 대장 내시경 제가 하면 되죠.”
“전화, 전화 안 하고 뭐 하냐?”
“아……. 나 외래네……. 아…….”
한 명을 제외한 모두는 잔류했다.
발표를 맡았던 의사는 난감해졌다.
부담이 된달까?
‘원래 이런 컨퍼런스가 아닌데…….’
하.
스튜어드.
개새끼.
저 새끼 때문에 이런 일을 하게 되었네…….
“하.”
그는 한숨을 토해 내고는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환자는 내려가진 않은 상황이었다.
이송 요원이 와 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오히려 잘된 일 아니던가.
“바로…… 내시경실로 가죠.”
“네? 수술방 아니고요?”
“계획이 바뀌었습니다. 환자분은 내려오면 제가 잘 설명드릴게요. 수술 안 해도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면 아마 납득할 겁니다.”
“아……. 네, 그건 그렇긴 하겠네요.”
막말로 몸에 칼 대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안 대면 좋지.
간호사는 그나마 안 하기로 했던 거 하게 된 상황이 아니란 점에 안도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일행은 그냥 바로 내시경실로 향했다.
마침 소화기내과 의사가 있어서 그 안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소화기내과 의사가 이제 수혁을 귀빈으로 대우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수혁은 숫제 맨 앞자리에 자리할 수 있었다.
“오면 바로 하죠. 관장도 되어 있겠다……. 라인도 잡혀 있을 테니까요.”
“네네.”
“근데 아니면 어쩌죠?”
“그럼 수술을 해야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생각하는군요.”
“네. 그렇습니다.”
“하하. 대단하십니다.”
스튜어드였다면 비꼬는 투였겠지만 그런 뜻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딱 한 시간, 한 번의 발표로 여러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았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콧대 높기로 유명한 뉴욕의 마운트 사이나 병원에서.
실로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 냈다고 할 수 있는데…….
정작 수혁은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아메바 종이 어찌 보일지, 그거에만 신경이 온통 깔려 있었다.
‘맹장 아메바 종은 읽어 본 적이 없는데.’
[네. 나온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이번이 처음인가?’
[네, 희귀 케이스가 될 겁니다. 아마 그래서……. 영상의학과에서는 암이라고 판단을 했을 겁니다.]
‘아, 그쪽은 영상에서 암만 떠올리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렇죠.]
‘기대가 되는구만.’
수혁은 그렇게 후후 웃으면서 환자를 기다렸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어리둥절한 얼굴의 환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원래 수술방으로 향하려고 했던 만큼, 침대에 누워서였다.
“아 환자분.”
담당 의사는 아까 수혁에게 들었던 말을 대강 정리해서 환자에게 전했다.
말하면서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고, 예상대로 환자는 다 알아듣진 못했다.
괜찮았다.
“그래서 수술 안 할 수도 있다, 이거죠?”
“아, 네. 그렇습니다. 결과에 따라서요.”
“이건 수면으로 할 거니까 아프지 않고요?”
“네. 그렇죠. 푹 주무시고 나시면……. 나오셔서 결과 들을 겁니다. 시간은 한 30분 이내로 걸릴 겁니다.”
“그래요, 그럼.”
수술 안 할 수도 있다는 말은 매력적이었으니.
그렇게 흔쾌히 새우등 자세를 취한 채 옆으로 누운 환자는 곧 약물에 의해 잠이 들었고, 소화기내과 의사가 내시경을 집어넣었다.
직장, S상 결장, 하행 결장, 평행 결장 그리고 상행 결장에 이르기까지는 별 이상 소견이 없었다.
그러나 맹장에 딱 닿자마자, 모두가 탄성을 내질렀다.
“아…….”
“이거…….”
덩어리에는 궤양뿐만 아니라 위막도 있었다.
암 따위는 아니었다.
염증이었다.
아메바인지 아닌지는 조직 검사까지 해 봐야 알겠지만…….
하여간, 수술은 당장 필요 없어 보였다.
“바로 보죠.”
“바로요?”
“저 병리과만큼은 볼 줄 압니다.”
“아…….”
광오한 말이었다.
같은 내과도 아닌데 병리과라니?
하지만 이제 와 수혁에게 감히 그런 생각을 품을 수 있는 이는 단 하나뿐이었다.
정신이 나가서 이미 귀 막은 지 오래된 스튜어드.
그를 제외하고는 아, 이것도 되는구나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수혁은 해냈다.
“아메바군요.”
“아.”
“아메바 종이 맞습니다. 3주 정도 메트로니다졸 쓰시죠. 그럼 나을 겁니다.”
“아.”
“수술은 역시나 필요 없겠어요. 3주 귀에 CT와 내시경 해 보시고 결과 나오면 알려 주세요.”
“아, 네. 보고드리겠습니다.”
이제 발표를 맡았던 의사, 스튜어드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사람까지 완전히 넘어와 있었다.
보고라는 말까지 쓸 정도로.
‘오늘 오후에 환자 보는 거 도와 달라고 하면 도와줄 거 같지?’
-네, 뭐라도 할 거 같은데요. 근데…….
‘근데?’
-그 전에 이름은 좀 물어보세요.
‘아, 그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