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4화 혼내 주러 왔습니다만 (3)
“네, 뭐. 띄우게.”
닥터 스튜어드는 이 새끼 죽어 봐라 하는 심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그의 똘마니 중 하나가 창을 띄웠다.
<우측 유방에 만져지는 종괴를 주소로 온 여자 42세 환자.>
제목은 이랬다.
‘흠.’
[유방암이면 너무 뻔하겠죠?]
‘그러니까. 함정일 거라고 했었지?’
수혁이라고 해서 아무 생각도 없이 온 것은 아니긴 했다.
그럴 수도 없었다, 사실.
신현태, 이현종, 조태진과 같이 그와 가까이 지내는 어른들이 매일같이 와서 스튜어드를 씹어 대고 또 조심하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과장 좀 보태면 매일이 아니라 거의 매 순간 그랬으니 머릿속에 인이 박이지 않으면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바루다까지 있다 보니 이놈이 어느 정도 데이터화를 해 둬서 더더욱 잊을 수가 없었다.
[네. 표정만 봐도 좀 수상쩍지 않습니까? 왜 저러지는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아니,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저러는 거야?’
[그러니까요. 도통…….]
‘도무지 모르겠네. 내가 한 게 있으면 그냥 틀린 거 잘 알려 준 게 다 아냐?’
[그러니까요. 배은망덕한 사람의 표본이네요.]
수혁은 이상하다 하면서도, 하여간, 상대가 함정을 팠다는 걸 인지한 채 발표를 지켜보았다.
말이 발표지 사실상 퀴즈나 다름없는 발표였다.
발표를 맡은 의사부터가 계속해서 수혁 쪽을 힐끔거리고 있지 않나.
“42세 여환, 내원 전일 옷을 입다가 우측 유방에서 만져진 종괴를 주소로 내원했습니다. 내원 당시 시행한 검진상 우측 유방 상 외측에 종괴가 있었습니다. 당시 사진입니다.”
“흐음.”
사진이 떡하니 떴다.
확실히 말한 대로 우측 유방의 상 외측에 종괴가 있었다.
있다는 걸 모르고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 만큼 작기는 했지만, 알고 보면 모를 정도로 확실히 존재했다.
“약간의 부종과 홍반이 동반되어 있었습니다. 액와 림프절 증상은 없었습니다.”
액와 림프절이라는 건 겨드랑이에 있는 림프절을 의미했다.
유방에 암이 생기면 이쪽으로 잡혀 들어가기 때문에, 거기에 림프절이 커지는 경우가 많았다.
심한 경우에는 팔에서 림프액이 잘 빠져나오지 못해 퉁퉁 붓는 증상도 생길 수 있는데, 이는 보통 림프 절제술 후에 발생하는 증상이고 단지 암 하나 때문에 생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아무튼, 발표에 따르면 딱히 그쪽으로 림프절 비대가 있거나 하지는 않은 듯했다.
‘확실히 암은 아닌 거 같아.’
[근데 이래 놓고 암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이런 것도 재밌군그래.’
[그러니까요. 이런 함정이면 맨날 파 주면 좋겠는데요?]
수혁은 그 발표를 들으면서 바루다와의 토론을 이어 나갔다.
말 그대로 즐거웠다.
그리고 수혁은 딱히 표정을 숨기는 편이 아니다 보니 자연스레 즐거움이 미소의 형태가 되어 새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면 스튜어드가 비분강개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저 새끼……. 저 건방진 놈. 암인 줄 알겠지? 다른 걸 의심하더라도……. 아예 다른 걸 의심할 거야. 이거일 거라고는 절대 생각지 못할 거다.”
스튜어드의 일방적인 시선 공격이 이어질 때에도 발표는 이어졌다.
“이후 시행한 바이털 사인은 혈압 120에 75, 심박동 84, 호흡수 18, 체온 36.7도로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혈액 및 소변 검사에서도 특이 사항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딸깍 소리와 함께 체스트 엑스레이가 떴다.
그 순간 수혁과 대훈 모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체스트 엑스레이는 정말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에 그랬다.
이거 하나로 얻을 수 있는 소견이 얼마나 많던가.
‘흠……. 딱히 이상 소견은 없어 보이는데. 네가 볼 때는 어때?’
[네,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적어도 여기엔 이상 소견이 없습니다.]
‘그렇군. 흐음…….’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아무리 봐도 이상 소견은 없었다.
‘아무리’라고 해 봐야 실제로 지나간 시간을 따져 보면 기껏해야 수 초에 불과하긴 했지만.
바루다를 탑재한 수혁에게 수 초는 다른 사람의 수 분보다도 긴 시간이니만큼 실제로 이 체스트 엑스레이에는 이상이 없다고 해도 좋을 터였다.
“다만 종양 표지자 검사에서는 CA-125가 67U/ml로 약간 상승해 있었습니다.”
의사가 그러고 넘어가려고 해서 수혁이 물었다.
“CA 19-8, CA 15-3, a-FP, CEA는 어땠습니까?”
방금 언급된 것들은 모두 종양 표지자였다.
종양 표지자랑 어떤 종양, 즉 암이 있을 때 혈액에서 상승할 수 있는 것들인데 이 중 뭔가 증가해 있다면 암을 의심해 볼 수 있었다.
다만 지금은 애매했다.
달랑 CA-125만 올랐고, 또 그 수치도 그렇게 많은 건 아니어서 그랬다.
만약 다른 표지자들이 동반해서 상승해 있다면 모를까, 이거 하나만 가지고 암을 의심하는 건 어려웠다.
물론 표지자가 절대적인 것은 아닌 만큼, 아예 상승이 없어도 암일 수도 있긴 했지만.
‘초조하구만? 그래 암인 거 같지? 근데 이상하지?’
스튜어드는 수혁의 질문에 쾌재를 불렀다.
좋지 못한 뜻을 품고 있는 상태이니만큼 겉으로 막 웃진 않았다.
다만 속으로 좋아할 따름이었다.
“아……. 다른 지표는 모두 정상 범위 내에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후하하.
스튜어드는 수혁의 얼굴을 보며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저 실망한 꼴이라니.
너무 신나지 않나?
그 실망이 전혀 다른 뜻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 이상에는 계속 신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대훈이한테 넘기자.’
[네. 그러죠. 아무리 봐도…….]
‘응, 그쪽인 거 같지? 대훈이가 알려나?’
[알 거 같은데요? 이 비슷한 케이스 본 적 없는 것도 아닌데요.]
‘그러니까. 아니……. 함정이래 놓고 뭐 이런…….’
[어쩌면 다음 케이스가 함정일 수도요. 아니면 그냥 좋은 사람인데 표정만 그런 거 아닐까요?]
‘충분히 가능성은 있지.’
둘은 이런 토론을 이어 나가면서 발표를 들었다.
“상기 소견에 따라 1차 진단명을 암으로 잡았습니다. 환자의 나이와 성별을 고려할 때, 1순위로 유방암을 두는 것이 가장 합당하게 보였습니다.”
“그럴 수 있죠.”
지금 다른 질환을 떠올리고 있는 수혁이지만, 그럼에도 암에 대한 감별 검사는 시행했을 터였다.
암은 놓쳐서는 안 될 질환이니까.
“유방 조영술 시행 결과입니다.”
딸각 소리와 함께 화면이 넘어갔다.
그렇게 뜬 뷰는 유방 조영술이었다.
딱 봐도 아까 종양이 있는 곳에 대략 1.2cm 정도 되는 종괴가 보였다.
경계가 깨끗해 보이진 않았다.
심지어 주변으로 2개의 림프절 비대를 동반하기까지 했다.
두 개의 크기는 각각 1.7cm, 1.9cm이었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암 같아 보이네.’
[그러니까요. 하지만 다른 질환이라고 생각하면 그쪽이 훨씬 그럴싸합니다.]
‘그렇지. 아…… 실망이다. 이게 어렵다니. 하긴……. 스튜어드가 준비한 거지?’
[그렇죠. 나름 열심히 찾은 걸 거예요. 스튜피드가 이 정도 했으면 잘했지, 뭐.]
보자마자 판독을 끝낸 수혁은 이놈도 했나 싶어서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그 광경이 뭘 모르는 놈들이 보기엔 볼 줄 몰라서 딴청 피우는 것으로도 보였다.
특히 그러길 최선을 다해 바라고 있는 스튜어드에게는 더더욱 그렇게 보였다.
‘대훈이도 어느 정도…….’
[네, 그렇죠. 대훈이가 이 정도도 못 하면 안 되죠.]
스튜어드는 그 뒤로 심지어 눈을 살짝 감기까지 한 수혁을 향해 물었다.
“어떻게 보입니까?”
그 말에 수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아마도 그가 바라고 있을 말을 해 주기로 결정했다.
그래야 나중에 반전을 보여 줄 때 더 극적이지 않겠나?
생각만 해도 막 가슴이 두근거렸다.
“BI-RADS, 즉 American Clolege of Radiology Breast Imaging and Reporting Data System(미국 방사선학 유방 영상 및 보고 데이터 시스템)에 따르면 악성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군요.”
물론 모르쇠를 칠 때조차 있어 보이게끔 치는 걸 신경 썼다.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로 보이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러면서 동시에 안대훈의 눈치를 살폈는데, 눈치 빠른 충신인 그는 이미 수혁의 뜻을 알아차린 듯했다.
미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스튜어드는 그러나 후후 웃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 다음.”
그의 말에 따라 화면이 넘어갔고, 초음파 소견과 CT 소견이 덩달아 떴다.
초음파 소견은 조영술과 거의 같았고, CT도 그랬다.
‘종격동이나 폐에는 아무 병리가 없어. 확실히 드문 상태긴 해.’
[네, 하지만 원래 좀 그런 병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렇지. 나쁜 병이지.’
[네, 그렇습니다.]
일단 거기까지만 보여 준 채로 발표가 멈추었다.
사실 그 이후로 조직 검사도 하고 다 했지만, 숨기기로 했다.
그래야 함정이라 할 수 있을 테니까.
“여기까지 진행한 상태입니다. 이제 이 환자에 대한 진단 계획 및 치료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네. 뭐…… 원래대로면 다른 사람부터 의견을 물을 텐데, 오늘은 한국에서 온 손님도 있으니 먼저 묻도록 하지.”
스튜어드는 흡족한 얼굴이었다.
아까 분명 악성 운운하지 않았나?
사실 저기까지만 보고 다른 질환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어디 뭐 메이요나 메사추세츠 병원에 있는 놈들처럼 괴물과도 같은 놈들이라면 또 모를까, 동양의 작은 병원에서 온 사람이 이걸?
‘말도 안 되지.’
스튜어드는 하마터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을 뻔하다가 간신히 참은 채로 입을 열었다.
“이수혁 교수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러자 수혁은 냉큼 이렇게 답했다.
스튜어드의 기대와는 조금 다른 방향의 답변이었다.
“저보다는 일단 안대훈 선생의 답을 듣고 싶습니다.”
뭐, 괜찮았다.
어차피 제자 다음엔 스승이니까.
처형 대상이 하나였다가 둘이 된 것일 뿐이지 않겠나?
스튜어드는 아무래도 됐다는 생각으로 대훈을 바라보았다.
대훈은 그런 스튜어드를 마주 바라보았다.
아니, 노려보았다.
‘왜 저래?’
안대훈처럼 생긴 사람은 표정이 어떠냐에 따라 인상이 확확 변하지 않던가.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혁 앞에서는 그렇게 곰살맞게 굴던 사람이 스튜어드에게는 무슨 악귀처럼 표정을 지었다.
물론 잠시뿐이었다.
그는 수혁의 스타일을 아주 잘 알고, 또 그런 수혁을 닮아 가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보니 수혁처럼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 부족하지만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우선 환자는 우측 유방의 상 외측에 발생한 종괴를 주소로 내원했습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명확한 종괴가 있었죠. 이는 유방암의 가장 흔한 주소이기도 합니다.”
그의 말에 스튜어드 또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일반적으로는 저렇지.
잘못은 아닌데, 틀렸다.
잘됐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는데, 안대훈이 말했다.
“다만 최근엔 유방암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이 되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실제로 자가 검진에 대한 교육도 활발하고…….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명확한 종괴가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는 것이 좀 이상합니다. 아무래도 근래에 발생한 종괴일 가능성이 높죠.”
허나 그 미소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뭔가 수상쩍은 답이 튀어나오기 시작해서 그랬다.
그것도 수혁이 아닌 옆에 딸려 온 군식구의 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