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51화 (1,051/1,303)

1051화 클라스 (1)

수혁의 케이스 강의, 그러니까 말이 강의지 이를 빙자한 취미 생활은 여느 때처럼 11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이것도 다음 날 근무가 있어서 브레이크를 건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더 봤을 게 분명했다.

요즈음 태화 의료원 응급실에는 정말이지 환자가 미어터지고 있었으니까.

‘후…….’

하윤 입장에서는 잘된 셈이었다.

물론 수혁과 함께하는 시간은 재밌기도 하고 또 유익하기도 했다.

분명 한 사람의 의사로만 보면 그랬다.

하지만 하윤은 수험생이지 않나.

아무리 전문의 시험이 아무것도 아니라지만 떨어지는 사람은 매년 있었다.

특히 최근 2년 동안엔 그냥 있었던 정도가 아니라 꽤 많았다.

‘이게 다…… 이수혁 교수님이랑 안대훈 선배 때문이지.’

온전히 둘의 탓을 하기엔 어느 정도 나비 효과가 있긴 했지만.

굳이 잘잘못을 따져 보자면, 역시나 둘의 책임이 가장 커다랗다고 봐야 했다.

‘거기에, 난 만점 혹은 1등…… 흐음.’

2년 연속 태화 의료원 출신이 일등이다.

보다 범위를 좁혀 보자면 통합진료센터에 일등만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 하윤이. 1등 하는 거지?

원장부터, 센터장, 부센터장 그리고 조태진에…….

-우리 부주교. 무조건 1등이지?

안대훈까지.

아니, 이렇게만 기대를 품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 공부하다 왔니?”

이제 20대도 다 지나가고 30대를 바라보고 있는 딸내미한테 공부 운운하는 아버지도 있었다.

알아서 하겠다고 화를 내려고 해도 여의치가 않았다.

하필 가발을 빨고 있어서 그랬다.

사람이 가장 처량해 보이는 장면이 있다면 바로 저 장면이지 않을까?

적어도 늘 당당하고 빼어난 모습만 보여 주던 아버지다 보니 더더욱 좀 그랬다.

“어……. 어어. 개인 교습 받았어.”

“개인 교습……? 누구한테? 안대훈? 그 새끼 그거 평판이 좋긴 한데, 개인적으로 알아 둬서 좋을 게 있을 거 같냐.”

“안대훈이 선배 말고. 이수혁 교수님.”

“아, 이수혁 교수. 이 교수면 뭐 믿을 만…… 잉? 근데 왜 개인 교습을 하지?”

우창윤 교수는 물이 줄줄 떨어지는 가발 대신, 가정용 가발 그러니까 가벼운 가발을 뒤집어쓰면서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래, 이 정도면 훨씬 봐 줄 만했다.

아까보다는 그랬다.

“아, 내가 의국장이라. 이런저런 일 때문에 단체 강의일 때…… 잘 못 들을 때가 많아서.”

“아니, 그렇다고 해도…….개인 교습을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했어?”

“뭐……. 오늘은 교습이라기보다는 케이스 스터디였지.”

하윤은 하루를 돌이켜 보았다.

오전엔 공부를 했다.

오후엔 사진을 찍었고, 그러다 환자들을 봤다.

어려운 환자들.

시험에 나올까?

그럴 리가 없었다.

“너 그러다 망하는 거 아니냐?”

“그럴까 봐 걱정이긴 한데……. 진짜 개인적으로 교습도 해 주신대.”

“흐음……. 이수혁 교수…….”

“또……. 신랑감 고민하지? 그런 거 아니라니까?”

“아니, 아니. 왜. 이수혁 교수 정도면 인물도 그렇게 처지는 것도 아니고, 성격이 이상하단 소리는 들어 봤어도 나쁘단 소리는 들어 본 적 없는데.”

“이상한가? 난 그것도 잘 모르겠는데. 그냥 환자를 아주 열심히 보시지.”

“그럼 된 거 아냐?”

“뭐가 돼. 직원 뽑아? 조건 맞는다고 다 사귀나. 난…….”

하윤은 자신의 로망을 떠올렸다.

“아휴.”

하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우창윤 교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봐도 면전에 대고 한숨까지 쉴 만한 딸은 아니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이쁘지, 착하지, 똑똑하지 실로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연애를…… 연애를 할 수가 없지.’

헌데 연애를 아예 안 하길래 물어본 적이 있었다.

너는 대체 이상형이 뭐길래 연애를 안 하냐고.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이 가관이었다.

-도서관에 책을 들고 가. 가다가 부딪쳐. 그걸 수습하려다 손이 닿아서 얼굴 봤더니 잘생겼어. ‘아, 미안합니다.’ 하는데 목소리도 좋아. 그제야 책을 보니까, 책도 의학 서적이야. 그럼 좀 시작할 마음이 들 거 같은데.

-도서관 말고…….

-카페에 책을 들고 가. 가다가 부딪쳐. 그걸 수습하려다 손이 닿아서 얼굴 봤더니 잘생겼어. ‘아, 미안합니다.’ 하는데 목소리도 좋아. 그제야 책을 보니까, 책도 의학 서적이야. 그럼 좀 시작할 마음이 들 거 같은데.

-책 들지 말고…….

-병원에서 뛰어가다가 부딪쳐. 들고 있던 차트가 떨어져.

-넌 꼭 그렇게 뭘 들고 다녀야 하니?

그만……..

그만 좀 들고 다녀라……

그리고 뭘 그렇게 부딪치냐.

우창윤 교수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이날 이때껏 적지 않은 삶을 살아왔는데 단 한 번도 저딴 식으로 다른 사람과 부딪친 적은 없었다.

아니, 부딪친 적은 있었는데, 그때마다 언성을 높여야만 했다.

머리카락도 한 움큼…… 아니, 이건 아니지.

“왜 한숨 쉬어.”

“아직도 부딪치고 싶어?”

“어. 그게 내 로망이야. 자연스러운 만남!”

“그게…… 그게 어떻게 자연스러운 건지는 모르겠다만……. 아아아아! 귀 떨어져!”

“애 공부하는데 연애 스트레스 주지 말고. 그냥 와.”

어떻게든 딸내미의 마음을 돌려 보려던 우창윤 교수가 와이프에게 돈좌당하고, 하윤은 마침내 혼자가 되어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보통 하루가 이만큼 빡셌으면 바로 씻고 자야겠지만, 의사로 살아온 관성이 아니, 뛰어난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 온 관성이 하윤을 몰아붙였다.

사라락

책을 넘기고, 동그라미를 치고, 외우고.

그러다 한 번씩 수혁이 펼쳤던 추론을 따라 해 보고.

하윤은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입원 환자들은 다 어떻지?”

수혁이라고 해서 집에 가자마자 잠이 든 건 아니었지만, 7시 회진엔 어김없이 나타났다.

유독 피곤해 보이는 이현종이 이상해서 뭔 일 있었냐고 물었지만, 의미 있는 소득은 없었다.

해서 레지던트들과 펠로우 즉 제자들을 조지기 시작했다.

말이 조지는 것이지 간밤에 친 사고가 있으면 수습하고 또 오늘 하루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잡아 주는 시간이었지만, 당사자들은 조져진다고 느꼈다.

일단 1년 차부터 나섰다.

배울 게 제일 많으니까.

“네, 김영우 남자 32세. 점차 심해지는 호흡곤란을 주소로 내원한 환자입니다.”

물론 태화 의료원, 특히 내과의 교육 시스템은 빈말로도 만만하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이다 보니 노티도 1년 차 수준은 아니었다.

문제가 있다면 전반적으로 다 수준이 올라가 버린 탓에 다들 이 정도는 당연하고, 그 이상을 바라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 인사이트는?”

“그…… 환자의 호흡곤란 양상이나 심해질 때 특성을 보면 아무래도 심장이…….”

“심전도 소견을 보면 어떻지?”

“그……. 우, 우심실이 비대합니다.”

“우심실이 비대하면 무조건 호흡곤란이 생기나?”

“그…….”

수혁의 날카로운 눈빛이 1년 차의 눈알을 후빌 듯이 쏘아졌다.

‘이건 알아야지.’

[알아야죠.]

수혁이 1년 차 땐 이 정도가 아니라 더한 것도 알지 않았나.

바루다가 있어서이기도 하고 타고난 재능도 다르고 무엇보다 절박함이 달라서였지만.

원래 개구리는 올챙이 적 생각을 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그런가?”

“아니, 아닙니다.”

“그럼 우심실 비대는 의미가 없나?”

“아니, 그건 아닌데…….”

“뭘 유추해야 하지? 어제 입원했으면 오늘쯤은 진단 계획이 다 서 있어야지? 주치의잖아.”

그게 되면 왜 주치의를 합니까.

지정의를 하지…….

잠시 주변에 있던 모두의 머릿속에 이런 불충한 생각이 들 정도로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상대는 교수고 이쪽은 배우는 입장인데.

게다가 그냥 교수도 아니고, 수혁은 교수들의 교수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배우다 보면 내 실력이 팍팍 는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잘 가르쳐 주는 사람이기도 했고.

“그…….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지. 자, 그럼 2년 차……. 백이……. 아, 그래.”

1년 차가 침몰하면 다음은 2년 차였다.

말이 2년 차지 3년 차들이 시험 보기 위해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사실상 치프 그레이드라고 보면 되었다.

그래서일까?

아무래도 기대가 훨씬 더 커다랄 수밖에 없었다.

‘살려 줘…….’

문제가 있다면 수혁의 기대만큼 실력을 쌓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같은 질문이야. 우심실 비대까지 확인했어. 그렇다면 이 환자의 호흡곤란의 원인은 단순히 우심실 비대인가?”

“그……. 아, 아닙니다. 폐동맥…….”

“폐동맥?”

“네. 그 우심실에서 이어지는 게 폐동맥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학생들도 알지, 그건.”

“그 폐동맥의 압력이 올라가 있으면 우심실이 그걸 이겨 내기 위해 비대해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2년 차가 1년 차보다야 나을 수밖에 없었다.

거의 2년 꽉 채워서 빡세다고 소문난 태화 의료원 내과를 돌았으니 그 정도가 안 되면 실로 억울하지 않겠나.

수혁은 좀 낫네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그걸 폐 고혈압이라고 하지.”

“네네.”

“그럼 폐 고혈압이 환자의 호흡곤란의 원인인가?”

“그……. 아닙니다. 폐 고혈압이 발생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부터 찾아? 아니면 찾았어?”

“어…….”

2년 차도 침몰했다.

아직 죄송하다느니 모르겠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이만하면 잘했다. 확실히 우리 교수님이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는 면모가 있으시지.’

그제야 안대훈이 나섰다.

펠로우도 여럿 있었지만, 이 환자는 안대훈이 백을 보고 있어서 그랬다.

그 순간 자리에 있던 모두는 잠시 눈이 부시단 느낌을 받았다.

느낌만은 아닐 터였다.

실제로 광을 냈으니.

“환자의 병력을 추적해 보면……. 결핵을 앓았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딱히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고요.”

“그래. 그래서?”

“엑스레이를 보면 결핵의 합병증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하얀 부분들이 있습니다. 아직 검사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간이 보고를 보면 객담에서 염색된 개체들이 있습니다. 결핵균이 여전히 검출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결론은?”

“진행성 결핵에 의한 폐 파괴로 인해 호흡곤란이 발생했습니다. 동시에 이로 인해 폐동맥압이 오르면서 우심실 비대를 야기했을 겁니다.”

“좋아. 훌륭해.”

겉모습에만 신경을 쓰고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안대훈의 실력은 진짜였다.

수혁의 입에서 칭찬이 터져 나올 정도로.

아무튼, 그 후로도 스테이션에 앉은 채로 몇 명이 조져졌다.

그중에는 김인수나 김성진 등을 포함한 펠로우들도 있었다.

안대훈은 간신히 피해 갔는데, 수혁은 그런 안대훈을 보면서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부턴…… 깨질 수밖에 없을 테니.

‘어려운 케이스지?’

[어렵죠. 어렵다기보다는…… 헷갈리죠. 의심하지 않으면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부분이 있죠.]

‘그렇지.’

수혁은 바루다의 동의와 함께, 어제 입원한 환자를 가리켰다.

“어떻지?”

이미 수혁의 머릿속에서는 진단명이 어제와는 크게 달라져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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