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45화 (1,045/1,303)

1045화 우하윤 (4)

‘어…… 교수님 눈알이 좀 이상한 데로 튀는데?’

하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운 곳에 와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카메라도 없거니와…….

‘이 모드인 이수혁 교수님은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모른다…….’

그간 관찰한 바에 따르면 수혁은 한번 진료를 시작하면 진짜로 진료만 봤다.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을 텐데, 말 그대로 진료만 본다는 게 신기했다.

아무리 집중을 하고 있더라도 옆에서 어물쩍대고 있으면 눈치채는 게 보통의 사람 아닌가.

-너 카메라로 쫓다가……. 밖에 나가잖아? 그럼 카메라 두고 사고 안 나게 잘 봐라.

-네? 교수님이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어린애는 아닌데, 그…… 뭐냐. 그래! 접신!

-네에?

-제정신이 아닐 때가 있어. 혼자 막 중얼거리면서 차도로 간다니까……?

-?

조태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접신……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이상할 때가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면 죄 환자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했더랬다.

그러니까 환자 생각하느라 차도를 걸었다, 이 말인데.

과연 그 정도는 되어야 세계 최고를 꿈꿀 수 있구나 싶기도 했다.

아무튼, 수혁은 하윤이 코앞까지 따라붙은 마당임에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환자의 손가락 등을 보며 입을 열었다.

“환자분.”

“네.”

“손, 언제부터 아프셨어요?”

그 말에 환자가 흠칫 놀랐다.

단순히 피곤해서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인 만큼 온전한 정신이 되어 있어서 그랬다.

“네? 손이요?”

그에 반해 오 교수는 뭔 소린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것도 얘길 안 했구만, 그래.’

[네, 방치한 모양새는 아닌데요.]

‘뭐…… 알아서 치료받으셨겠지. 저거야……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 수준이면 전국 어디서건 가능하긴 하니까.’

[그렇죠. 그건 그렇습니다.]

환자는 민망해하는 얼굴로 오 교수를 돌아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한…… 20년? 정도 되었습니다.”

“네? 뭐가…… 뭐가 20년이 되어요?”

“손. 류마티스 관절염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아주 미세하게 관절이 틀어져 있어요. 관리는 잘하신 거 같습니다. 그렇죠? 약을 계속 드신 거죠?”

“아……. 네. 왔다 갔다 하면서…… 거의 꾸준히 치료받았습니다.”

“아니…… 이게 뭔.”

혼란스러워하는 오 교수를 뒤로하고, 수혁은 환자에게 질문을 이어 나갔다.

“모든 진료에 있어서 과거 병력을 확인하는 건 기본이거든요. 혹시 드시는 약물 모두 알고 계시나요? 이름과 용량.”

“아, 아뇨……. 그건…….”

기대도 안 했다.

그렇게까지 열과 성을 다해 자기가 먹는 약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드무니까.

딱히 나이가 많아서는 아니었다.

젊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했다.

그들은 건강에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러다 훅 갈 수 있다는 것을, 대부분은 훅 가고 나서야 깨닫는 것이 보통 아닌가.

“그럼 병원 이름 알려 주실 수 있어요? 물어보려고요.”

“아…… 네, 그건 알죠.”

수혁은 그렇게 전달받은 병원 이름을 옆에 있던 담당 간호사에게 전달해 주었다.

“먹는 약이랑 용량, 기간 전부 알려 주세요.”

“네, 맡겨 주십쇼.”

수혁은 모르겠지만 어느새 담당 간호사도 바뀐 마당이었다.

현장 상황 때문에 바뀐 게 아니라, 수혁교 신자가 알아서 온 참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간단한 분부에도 지나치다 싶을 만큼 열의를 뽐내고 있었다.

‘역시…… 교수님 곁에는 이상한 사람이 많아…….’

하윤은 전화기를 무슨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듯 비장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간호사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들키리라는 걱정 따위는 전혀 없었다.

수혁이 제일 제정신이 아니니까.

‘그건 그렇고…… 듣고 봐도 불명확한데. 이걸 어떻게 그냥 보기만 해서 알아채시는 거지……?’

처음 이런 인간 군상들을 마주했을 땐 솔직히 많이 이상하다 생각했다.

안대훈도 그렇고, 조태진도 그렇고…….

단순 천재라고 생각해 주면 안 되는 건가 싶었다.

그걸 왜 꼭 종교적으로 엮느냐, 이 말이었다.

‘이런 게…… 그 둘이 말하는 체험인가.’

허나 카메라를 들고 나서부터, 그러니까 수혁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다 면밀히 살피게 되고 나서부터는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수혁의 진료는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었다.

단순히 천재니 어쩌니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대체 이걸 어떻게? 하는 지점들이 한두 군데 존재하는 게 아니란 얘기였다.

“구역, 구토는 없으세요?”

“아, 네.”

“설사는?”

“없습니다.”

“의식도 명료하시고…… 그에 비해 열은 꽤 높은데…….”

“열감은 있어요. 며칠 된 거 같아요…….”

“통증은요?”

“그건 잘…….”

놀라거나 말거나 수혁은 자기 페이스대로 진료를 이어 나갔다.

‘이상하군…….’

[그러니까요. 암으로 인한 열이 39도 이상으로 피크 치고 있다면 다른 증상도 동반해야 할 텐데요.]

흔히 암은 증상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초기에나 가능한 발상이었다.

나중엔 온갖 증상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통증이었다.

특히 고형암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암이 자라나면서 옆에 있는 조직들을 누르는 데 그치지 않고 파괴하기 때문이었다.

‘혹 혈액암 종류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혈액암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 너무 없습니다.]

수혁의 눈이 빠르게 환자의 전신을 훑었다.

그중에서도 정강이 부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뼈와 연한 살가죽이 얇은 부위이면서 동시에 움직일 때 워낙에 많이 쓰이는 곳인 만큼 잘 다치는 부위이기도 해서 그랬다.

특히 나이가 어리거나 많아서 신체 제어 능력이 저하된 상태라면 더더욱 그랬다.

동시에 혈액암이 있는 경우라면 대개 혈소판이 감소하기 때문에 반상 출혈이나 멍이 다수 관찰되어야만 했다.

바루다는 그게 없다고 판단했고, 수혁도 그에 동의했다.

‘물론 환자는 고령이지.’

[그렇습니다.]

다만 젊은 사람처럼 모든 소견이 딱딱 맞아떨어질 수는 없을 터였다.

아니, 젊은 사람이라고 해서 다 그럴 수도 없었다.

나이가 든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사람 몸에 대해서만큼은 그 어떤 사람도 초장부터 확신을 가지면 안 되었다.

그리고 현대 의학은 그 확신을 갖게 되기까지 합리적인 근거를 제공해 주기 위해 발전해 온 참이었다.

“우선 CT를 찍어 보죠. 다행히 바이털은 괜찮으니까요. 혈액이야 뭐…… 아직 결과 나오려면 멀었고.”

“아…… 네, 그렇게. 그렇게 하시죠.”

수혁의 말에 오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는 거부했다.

“CT 그거 비싼데.”

“아니! 걱정 마시라니까요! 이모, 저 여기 교수예요!”

“그래도…….”

“일단 찍어요. 찍고 봅시다.”

“다 늙어서…….”

“요새 칠십이면 청춘이지! 뭔 소리를 하는 거예요!”

그 덕분에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지만, 말 그대로 잠시였다.

막말로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개중엔 좀 지나치게 자식들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 게 사실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살아날 가능성이 보이는 상황이라면, 일단 최선을 다해 보려 하는 게 인간이었다.

그게 본능이니까.

‘그래……. 누구라도 죽고 싶은 사람은 없지.’

물론 조태진이 보는 병동으로 가면 얘기가 살짝 달라지기는 했다.

암.

망할 놈의 질환은 사람을 몸뿐만이 아니라 정신조차 망가뜨리기에 그랬다.

직접적으로 뇌를 침범하는 경우도 있지만, 항암 치료라는 걸 몇 년 견디고 나면 말 그대로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 내는 것이 되기 마련이었다.

[그분들은…… 잠시 예외로 두죠.]

‘더 발달하면 그 사람들도 구할 수 있겠지.’

[네, 미래에는요. 아직은, 아직은 아닙니다.]

‘그래.’

잠시 침울해지려 했던 수혁은 이내 현실로 돌아와 눈앞에 있는 환자에게 집중했다.

그의 지시에 따라 이미 환자는 CT실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익숙해진 것을 넘어 친숙해진 방사선사가 옆에 서 있었다.

‘이 양반…… 또 영상 넘어오면 동시에 판독하겠지?’

마음이 편한 건 수혁뿐이었다.

수혁이야 다들 평등하게 대한다고 대하고 있지만, 그가 부센터장이지 않나.

아무리 착한 부센터장이라고 해도 못된 신입 사원이 옆에 서 있는 것보다 마음이 편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수혁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빨랐다.

‘환자만 생각하면 잘된 일이지.’

방사선사는 어떻게 하면 동선을 빼서 최대한 빨리 움직일 수 있을까를 미리 계산하면서, 안쪽에 있는 오 교수에게 말했다.

보통 인턴이 들어가는데, 오 교수가 들어가 있었다.

가족이니 그럴 수 있었다.

“일단 논컨부터 찍고, 그다음에 조영제 슛할 겁니다. 신호 드리면…… 그때 주시면 됩니다, 교수님.”

“네.”

VIP다 이 말이었다.

옆에는 이수혁, 안에는 오형석 교수.

‘와. 나 최근 들어 지금이 제일 마음 불편한 순간 같은데?’

방사선사는 왜 오늘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를 생각하면서 기기를 돌렸다.

곧 윙 소리와 함께 씨티 기기가 돌아가면서 동시에 조영제 없이 영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흐음.”

그 영상을 보면서 수혁이 침음을 흘렸다.

[우측 부신…… 6cm가량의 종괴가 있군요.]

‘조영제가 들어가 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옆으로 이거.’

[림프절 비대…… 같은데요?]

‘이런 망할.’

암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진료하고 있었다.

허나 부신에 너무 큰 종괴가 있었다.

“자, 지금 슈팅해 주시면 됩니다. 환자분 약 들어가면서 팔 화끈거릴 수 있는데 그건 있을 수 있는 거니까 움직이면 안 됩니다. 가슴이 아프거나 하시면 그땐 바로 말씀 주세요.”

“네. 제가 모니터링 보고 있습니다.”

“네, 그럼.”

수혁의 얼굴이 어두워지고 있는 것도 모른 채로 오형석은 조영제를 집어넣었다.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환자의 나이를 고려하면 아주 치명적일 수 있기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여력은 없었다.

아마 아까, 그러니까 우두커니 환자 옆에 서 있을 때의 상태였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터였다.

허나 수혁이 나서자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천재고 뭐고 다 떠나서 그냥 수혁이라는 인간이 주는 신뢰감 덕분이었다.

목소리, 말투 등이 원래도 좋은데 바루다가 조정까지 해 주고 있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한결 마음이 나아졌다 이건데, 그것과는 별개로 넘어오고 있는 영상은 예상했던 것을 훨씬 나쁜 쪽으로 웃돌고 있었다.

‘이건…….’

[뼈로도 전이가 있습니다. 다발성 전이예요.]

‘으음…… 부신암……?’

[지금으로서는 전신 전이가 있는 부신암이 가장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암.

전이암.

희망이 산산이 조각나는 진단명이지 않나?

하지만, 수혁은 그 와중에도 한 줄기 희망을 찾아낼 수 있었다.

‘부신에 저만한 종양이 있으면 부신이 기능을 할까?’

[못 하죠. 다 망가졌죠.]

‘그 전에 밑에 신장을 뭉개지 않았을까?’

[지금 봐도 좀 침범하는 것처럼 보이긴 합니다만…… 확실히 고형암이라고 하면 저것보다는 더 공격적일 거 같긴 합니다.]

‘무엇보다 지금 침범한 곳 때문에 열이, 그것도 저런 고열이 나는 것이 일반적이진 않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래, 여전히 부신암이 가능성이 제일 높지. 하지만 여지가 있어.’

[그럼 그 부분을 들이파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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