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4화 우하윤 (3)
‘교수님은…… 역시 안 올라가시는구나.’
하윤은 100번째 사진을 찍고 나서야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진짜 아무렇게나 찍어서 지금 끝난 거지 아니었으면 안대훈이나 조태진 당번일 때처럼 내내 따라다녀야 했을 수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대체…….’
카메라가 이거 마냥 가벼운 것도 아닌데 어찌 그렇게 나다닐 수가 있는 걸까.
이상하단 생각이 아니라 그저 경이롭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렇잖아?
말이 안 되는 일을 벌이고 있었으니.
그 두 사람이 뭐 유독 편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아니, 오히려 둘 다 각자의 위치에서 남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할 만큼 어마어마한 위업을 쌓아 나가고 있었다.
‘하여간…… 이제 나도 공부를 좀 해 보실까?’
하윤은 벽에 기댄 채 본인 성적을 떠올렸다.
다른 과처럼, 내과도 전공의 평가라는 게 있었다.
하등 쓸데없는 시험인데 하필 주말에 봐서 아예 빠지는 사람도 있긴 있었다.
서울에 있는 병원들이야 내과 레지던트 수가 여전히 꽉 차서 돌아가고 있었지만, 지방 병원 중에서는 그렇지 못한 곳들도 많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아무튼, 그 시험에서 하윤은 단 한 번도 전국 1등을 놓쳐 본 일이 없었다.
-전문의 시험도 당연히 전국 1등이지?
그 때문에 마주치는 모든 교수들이 기대감 어린 얼굴로 이렇게 말해 오고 있었다.
-딸, 1등?
팔불출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하필 가발 빨 때 그 말을 해 가지고 충격과 함께 각인이 되었으니 아마도 죽는 그 날까지도 잊지 못하지 않을까.
이러한 기대가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긴 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도서관으로 뛰어가야 할 거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교수님 눈이 너무 빛나는데…… 저건 또 어떤 괴랄한 케이스일까?’
아마 다른 병원에서 전원 보내왔다는 아까 환자도 만만한 케이스는 아닐 터였다.
애초에 통합진료센터로 의뢰가 되었다는 건 얼마간 특이한 환자라는 뜻일 테니까.
허나 그때조차 수혁은 그저 안대훈을 대견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 비해 저기 저 눈은…….
자박
하윤은 본인도 모르게 그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사이 수혁 또한 환자와 어떤 교수에게 다가갔다.
[아, 혈종이군요. 조태진 동료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분은 고형암을 보지만요.]
‘고형암…….’
마냥 걷기만 한 것은 아니고 바루다를 이용해 그의 방대한 데이터 센터를 뒤적거렸다.
그 결과,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서 상대가 누군지 정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고형암, 즉 장기에 발생하는 암 중에서도 신장을 비롯한 후복막에 주로 발생하는 암을 보는 오형석 교수.
혈액암을 다루는 조태진도 그리 만만한 인생은 아니라 할 수 있겠지만…….
이 양반도 수월한 인생은 아닐 터였다.
카티 세포 치료니 뭐니 하는 신박한 치료 개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세상이지만, 고형암은 또 다른 기전으로 티 세포의 공격을 막아 내는 놈들이었기에 그랬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걸 지켜보기도 하겠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걸 지켜봐야 하는 숙명의 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아, 이수혁 교수……?”
오 교수는 침울한 얼굴로 환자를 바라보고 있다가, 수혁을 돌아보고는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그 표정을 보고 나서야 수혁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물론 암 환자를 보는 혈종 교수들의 얼굴이 밝을 수는 없기 마련이었다.
그게 당연하기는 한데…….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맨날 보는 환자를 보면서 저렇게까지 침울해할 리가 없지.’
[지인, 또는 가족일 가능성이 큽니다.]
의사가 환자보면서 맨날 침울해한다는 건, 그 사람의 따듯함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조만간 의사 때려치우고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서 안정원이 그러지 않았나.
거기서 안정원 교수는 감정 때문에 일을 그르친 적은 없었지만, 일반적으로 의사가 제대로 된 진료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감정적 장막을 칠 수 있어야만 했다.
“아, 네. 오형석 교수님. 오랜만입니다. 환자분, 아시는 분인가 봅니다.”
수혁은 그런 생각과 함께 인사를 건넸다.
환자를 살펴보면서였다.
얼핏 보니 침대에 72세, F가 쓰여 있었다.
적지 않은 나이의 여성이란 뜻이었다.
“아, 네. 이모예요.”
“아.”
“말이 이모지…… 제가 어릴 때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사실상 엄마 같은 사람입니다.”
“아…… 이거 참. 무슨 말을 드려야 할지…….”
“하아.”
오형석은 한숨을 푹 쉬고 있었다.
‘지금 뭐 물어봐도 되나?’
[도움 주려는 거니까요. 조태진 후배기도 하고, 또 친하기도 하니까……. 아마 수혁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하긴. 그럴 거야?’
수혁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떤 상태이신 거죠?”
의식이 없는 건 아닌 거 같았다.
그냥 뻗어서 자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 이런 확신을 갖는 건 위험한 일이었지만 수혁은 할 수 있었다.
호흡수와 내쉬는 숨과 들이쉬는 숨의 크기의 일정함 등등을 미루어 보면 알 수 있어서 그랬다.
“아직 정확히는 모릅니다만……. 최근에 체중이 좀 많이 빠지셨어요.”
“체중이…… 얼마나?”
“10kg 정도요.”
“10kg…….”
“보시면 아시겠지만, 원래도 그렇게 통통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70대 노인에서 체중이 갑자기 10kg이 빠진다.
이건 무조건 이상한 일이었다.
그 어떤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노인이 10kg을 뺀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에 그랬다.
게다가 지금 보니 피골이 상접했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암.’
[암이겠군요.]
여기서 떠올릴 수 있는 질환은 역시나 암뿐이었다.
“제가 좀 더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데……. 제주도에 계셔서요.”
“아, 제주도…… 자주 가기 쉽지 않은 곳이죠. 그곳이 고향이신가 봅니다.”
“네. 이모는요. 뭍에서 사시다가 나이 좀 드시고 다시 돌아가셨어요. 저는 한 번도 제주도에서 살아 본 적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도 수혁은 바루다를 이용해 환자를 살피고 있었다.
‘열까지 나는데…….’
[암에서 열이 나죠.]
‘그렇지.’
[일단 더 물어보세요.]
‘응, 그래야지.’
수혁은 두 대화를 동시에 진행하는 데도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상대도 어색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고.
“이번에 가서 보니까…… 아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질 않더라고요. 그냥 나이 들면 으레 그런 거라고……. 이모부라도 살아 계셨으면 나았을 텐데. 그분은 또 간암으로 돌아가셔서.”
“아…….”
“아무튼 그래서 급한 대로 지금 모셔 온 참입니다. 결과가…… 좋진 않겠죠. 제가 죄인이에요.”
사실 오형석 교수가 워낙에 경황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기도 했고.
엄마 같은 이모가 아픈 상황이니 당연한 일이긴 했지만…….
진료를 봐야 하는 의사로만 생각하면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감정은 생각보다 강력한 힘이 있지 않나.
이게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울이나 분노 등의 강렬한 감정에 휩싸인 상태에서는 그 기간 동안 지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지경이었다.
“검사는요?”
“아직. 지금 왔습니다. 빨리 말을 해서 진행을 해야 하는데…….”
수혁은 망설이는 오형석 교수를 들여다보았다.
진찰을 위해 신체를 관찰하는 건 수혁의 장기였지만 이런 식으로 내면을 들여다보는 건 아니지 않나?
오히려 미숙하기 짝이 없다고 해도 좋을 텐데, 이번만은 예외였다.
[부정 단계일까요?]
‘그런 거보다는 그냥 이 상황을 최대한 유예시키고 싶은 거 같네.’
[이해가 안 되는군요. 하루라도 빨리 진단해서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바루다의 말에 수혁은 혈액종양내과 병동을 떠올렸다.
확실히 이전보다는 많이 좋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진행 암이라고 하면 무조건 죽지 않았나?
허나 이젠 여러 치료 방법이 생겼다 보니 가능성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70대 노인, 그것도 이렇게 노쇠한 사람이 그 치료를 견뎌 낼 수 있을까.
그 과정을 오롯이 지켜봐야 하는 가족 입장은 어떨까.
[수혁아. 혈종은…… 혈종은 확실히 힘든 과야.]
그 밝은 조태진조차 간혹 우울감에 휩싸일 때가 있을 지경이었다.
가족이 아니라 그냥 환자를 보는 건데도 그랬다.
“힘드시면 제가 대신 볼까요. 치료는 모르겠지만 진단 과정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아…….”
오형석은 수혁을 마주 바라보았다.
-수혁이는 천재야.
-수혁이는 괴물이야.
동시에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기까지는 그래, 뭐 납득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전국에 있는 천재니 뭐니 하는 놈들이 다 모이는 바닥 아닌가.
-수혁이는…… 신이야.
하지만 이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살짝 선배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더랬다.
과학자 입장에서 그건 좀 그렇잖아?
허나…….
‘신이라.’
오형석은 체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수혁이 지금껏 쌓아 올린 위상은 지푸라기보다는 동아줄에 가까웠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하여간, 수혁은 그렇게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환자부터 흔들어 깨웠다.
다소 급박한 진행이었지만 기왕에 허락한 참이었기 때문에 오형석은 그저 뒤로 물러나 있었다.
“어…….”
곧 기운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에 딸려 온 입 냄새는 고약했다.
아무래도 제대로 먹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이 냄새는 탈수로 인해 건조해진 점막에 균이 번지고 있다는 걸 시사하고 있었으니.
“환자분.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이수혁입니다. 오형석 교수님 부탁으로 진료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치료는 오 교수님께서 하실 테니 걱정 마세요.”
“아…….”
환자는 그제야 여기가 병원이라는 걸 자각 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오 교수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사…… 아니, 뭐 하러 여길 왔어.”
“아프면 진단하고 치료를 해야죠, 이모.”
“일도 어신디……. 난 괜찮다. 돈만 들지.”
“돈은 제가 다 댈게요.”
“너 이번에 애들 유학 보낸다며.”
“유학은! 유학은 좀 미뤄도 돼요. 그리고 우리 병원에서 진료받으면 그렇게 비싸지도 않아요. 할인된다고……. 그러니까 좀 들어요.”
전형적인, 그야말로 전형적인 옛 어머니 상이었다.
죽을 때까지 자식 걱정이나 하다 가는.
‘여기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면 좀 미친놈인가?’
[뭐……. 수혁은 그럴 수 있죠.]
천애 고아인 수혁으로서는 저런 마음이 쉬이 이해가 가질 않기도 했고 일견 부럽기도 했다.
여러모로 복잡한 감정이 오가고 있었지만, 수혁은 그러한 감정을 억누르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비단 바루다가 오기 전에도 그랬다.
그렇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세상살이였으니.
“자, 환자분. 말씀 들으세요. 어차피 직원 할인받으면 진짜 얼마 안 해요. 그리고 일단 지금은 대화를 할 참입니다. 제가 몇 가지 물을 텐데…… 그에 대해 답해 주시면 됩니다.”
수혁의 눈은 어느새 환자의 손가락에 꽂혀 있었다.
미세하지만 조금 뒤틀리고 부은 관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