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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1039화 (1,039/1,303)

1039화 다시 시작 (5)

보호자나 스튜어드 등등은 꽤 기대감 어린 얼굴로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호자보다는 아무래도 스튜어드가 그 정도가 심한 편이었다.

‘태화…… 그 이수혁이라는 놈이 있는 곳이지? 이놈들 언제 한번 밟긴 해야지.’

스튜어드로서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도 봐라.

이수혁이라는 이름을 떠올린 것만으로 손이 달달달 떨려 오잖아.

하마터면 무대에서 지릴 뻔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좀 더 신중했더라면 방금 쓰인 소견서에 이수혁이라는 이름 석 자가 쓰여 있다는 걸 눈치챘을 테지만, 지금은 눈이 반쯤 뒤집힌 상황이었다.

‘감히 우리 VIP 아들을 거기서……? 틀린 구석만 찾아봐라. 너네는 뒤졌다…… 어디 동양 놈들이 뉴욕 한복판에 병원을 지어?’

돈은 잘 버는 모양이었다.

마운트 사이나만큼 위치가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뉴욕 내에 병원이 생겼으니까.

손이 작아서 그런가 뭔가 만드는 건 잘하는 거 같다는 생각과 함께, 스튜어드는 혀를 찼다.

‘오만이다, 오만……. 고작해야 우리가 연구해서 내면 따라오는 주제에…….’

실로 건방진 생각을 더해 가면서였는데, 아주 말도 안 되는 생각은 아니었다.

왜냐?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서 그랬다.

실제로 대한민국 의료계에서 나오는 기초 논문은 그 수도 적을 뿐만 아니라, 아무래도 세계 최고의 기관들과 경쟁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돈이 없어서였다.

‘하아…… 지겹다…….’

그러나 임상은 또 다른 영역이지 않겠나?

이미 태화 뉴욕 센터에서 한차례 진료를, 그것도 양질의 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환자에게는 그저 지루한 시간일 뿐이었다.

‘그나마…… 말 들어 보니까 치료가 아주 급한 건 아닌 거 같았지……?’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저 지루한 시간일 뿐인 것이 다행이긴 했다.

빨리 무언가 처치를 해야 하는 상황에 단순한 불신 때문에 끌려와서 정확히 같은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면 정말이지 답답해서 죽을 거 같을 터였다.

“흐음…… 일단 여기는 정상으로 보이는군요.”

그렇게 지루한 시간이 몇 분이나마 흘러간 후에야 엑스레이 결과가 나왔다.

VIP 전용 진료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스튜어드는 모니터를 통해 뜬 사진을 보호자와 환자에게 보여 주었다.

머리 사진이었는데 정확히 태화에서 보여 주었던 그 사진이었고, 지금 마우스를 대고 돌리는 부위 또한 같은 부위였다.

“그럼…… 이쪽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걸까요?”

“아, 그건 아닙니다. 크기가 커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문제는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것만 놓고 판단하는 건 상당히 위험한 일이에요.”

“아하, 그렇군요. 그럼……?”

“검사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합니다. 혈액에서 호르몬 수치들이 올라가 있는지 어떤지를 봐야 한다는 뜻이죠.”

“그렇군요…… 입원해야 할까요?”

보호자의 말에 스튜어드는 환자 쪽을 돌아보았다.

사실, 그제야 환자의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본 셈이었다.

그에게는 환자보다 보호자가 훨씬 중요한 사람이라서 그랬다.

아니, 어찌 보면 보호자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 이 보호자가 태화보다 마운트 사이나가, 더 나아가 바로 자신이 더더욱 뛰어난 의사라는 걸 입증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하아…….’

그렇기에, 환자의 얼굴을 뻔히 들여다보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환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조금만 신경 써서 봤다면 이 사람이 지루해하고 있다는 걸…….

아니, 숫제 한심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입원해서 보시죠. 어차피 2, 3일이면 필요한 검사는 다 할 수 있을 겁니다. 결과야…… 저희의 우수한 시스템이 있으니 퇴원하시기 전에 거의 다 보실 수 있을 거고요.”

“서둘러 주시는 거죠?”

“물론입니다. 최우선 순위에 환자분을 둘 겁니다.”

“좋군요. 아들?”

보호자는 여전히 초조한 얼굴이었다.

치료가 가능한 병이어야 하는데, 아직은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지 않나?

물론 아까 태화에서 뭔가 질환 이름을 듣긴 했지만…….

‘유전 질환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보호자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말을 이었다.

“휴가 내고, 입원하자. 다행히 주말이니까…… 하루 정도만 내면 될 거 같은데.”

“돈은 주말이고 평일이고 없는데…….”

“누가 그걸 모르겠니. 하지만 몸이 우선이야. 커리어도 중하지만…… 얼굴 좀 봐라. 아니,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너 이거 아버지가 알면 난리 날걸?”

“하.”

아빠.

환자는 보수적인 아버지를 떠올렸다.

이게 단지 나쁘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아버지도 좋은 사람이었다.

동시에 좋은 아버지였고.

‘조금만 위험해 보이는 거 하려고 하면 난리난리 치셨는데…….’

다만 과보호 성향이 있을 뿐이었다.

대개 마초적인 사람이 많은 미국 사회에서는 꽤 드문 성향인데, 뭐 어쩌겠나.

아버지가 그런 사람인 것을.

“알겠습니다. 입원할게요.”

“잘 생각했어. 너 다음 달에 있을 연회 있기 전에 일단 이거 다 고쳐야 해. 안 그러면 너네 아버지 기절한다.”

“네…….”

이수혁 교수라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고치는 게 아니라 관리하는 병인 거 같았다.

그리고 환자는 어쩐지 그의 말이 맞을 거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으스대는 투도 없이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진단명을 읊어 대는 동시에 치료법과 관리법에 대해 떠들어 대지 않았나?

실로 고수의 말투였는데…….

월스트릿에서도 그만한 말투를 가지고 있는 대가는 드물었다.

“그럼, 오늘 밤에 영상을 좀 찍겠습니다.”

“네에…….”

그의 생각과는 별개로 입원은 결정되었다.

밤에도 훤하게 밝은 바깥 복도와 시끌벅적한 소리를 제외하고 방만 보면 이게 병실이 맞나 싶을 정도로 호사스러운 병실이었다.

업무를 볼 수 있는 데스크는 물론이거니와 간단한 회의가 가능한 응접실도 마련되어 있을 지경이었다.

심지어 응접실에는 위스키가 담긴 장도 있었다.

아파서 입원한 사람이 저걸 마실 일이 과연 있기는 한 건가 싶을 정도로 고가의 위스키들이 줄지어 들어 있었다.

“아…… 예정되어 있는 검사도 이거 거의 다 해 본 건데…….”

‘거의 다’라는 건 안 해 본 검사도 있긴 하다는 얘기였다.

문제는 그런 검사도 다 얘기는 들었다.

지금 당장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가령 머리 MRI와 같은 검사들…….

띵동

그렇게 한숨을 쉬고 있으려니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두드리면 안에서 못 들을 수 있을 만큼이나 넓은 병실이라 그랬다.

그러자 환자 대신 보호자가 남겨 두고 간 고용인이 도도도 달려가 문을 열었다.

“아, 검사 시간이라서요. 밑으로 내려가셔야 합니다.”

“오늘 밤에 계속 검사가 있는 겁니까?”

말이 고용인이지 저 양반도 만만한 양반이 아니었다.

깐깐한 말투로 말을 툭 하고 던지는데, 아주 자연스러운 불평이 되었다.

물론 상대하는 간호사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간호사로 일하다 보면 그 섹터가 어디가 되었건 간에 각종 진상을 만나게 되기 마련 아니겠나.

그중에 베테랑들이 VIP 병실을 맡게 된다고 보면 되었다.

“네, 낮에는 응급한 환자들이나 암환자분들 검사가 꽉 차 있습니다. 제대로 예약을 해서 낮에 검사를 하려면 지금부터 적어도 한 달 이상은 기다려야 하지만, 이렇게 입원해서 진행을 할 경우에는 응급 환자만 없으면 중간에 찍을 수 있어요. 지금도 늦으면 언제 어디서 응급 환자가 치고 들어올지 몰라요.”

“아…… 한 달…….”

“그러니까 바로 가시죠. 침대 말고 휠체어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편하실 거예요.”

“아, 네. 도련님.”

“네에.”

바로 진압당한 고용인은 환자와 함께 MRI실로 향했다.

처음 검사는 그냥저냥 견딜 만했지만, 그 후로도 꾸준히 검사랍시고 끌고 나가다 보니 무척 피곤했다.

거의 날밤 까는 느낌마저 들 지경이었다.

이게 다 새로운 검사거나 의미가 있을 거 같은 검사였다면 그나마 나았을 터였다.

하지만…….

‘아니, 내가 왜…… 했던 검사를 또 하고, 또 해야 하냐고…….’

더 화가 나는 건 그 와중에 전에 했던 검사 중 빠진 검사도 있다는 점이었다.

망할…….

망할!

“하아…… 피곤하네.”

동이 터 올 무렵이 다 되어서야 검사 러쉬가 끝이 났다.

말을 들어 보니 오늘도 오전, 오후에는 검사가 있긴 하지만 밤에는 없다고 하니 다행이긴 했다.

“그러니까요. 이게 대체…… 병원은 멀쩡히 들어와도 아파질 수 있겠어요.”

고용인도 잔뜩 지친 얼굴로 환자를 돌아보았다.

둘은 밤새 싹 튼 전우애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다고 검사가 멈추진 않았다.

심전도, 심초음파부터 해서 각종 초음파 검사들이 줄지어 이루어졌다.

“으, 으아아!”

“좀 아픕니다.”

“아니, 그걸 왜 나중에!”

그뿐만이 아니었다.

두피를 비롯해 피부가 변한 곳에 대한 조직 검사들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그를 더 열 받게 하는 건 이게 다 해 봤던 검사들이라는 점이었다.

어디서?

태화에서.

그 말은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는 점이었다.

‘닥터 스튜어드라고 했지……?’

그렇다 보니 힘든 것을 지나서 화까지 점점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고난을 다시 겪게 한 건 엄마였다.

근데 어떻게 엄마를 탓할 수 있겠나.

어머니는 생면부지의, 그것도 나라와 민족도 다른 그를 거두어 호강하게 해 준 사람인데.

거기에 더해 그 마음속에 가득한 애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 때문에, 화살은 자연스레 스튜어드에게 향하게 되었다.

‘그 새끼 때문에 내가…… 하아…… 진짜 너무 빡치는데……. 이거 진짜 같은 결론이 나오기만 해 봐. 내가 진짜 아주…… 가만두나 봐.’

환자는 곧 절치부심하는 마음으로 검사를 견뎌 내게 되었다.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그러니까 퇴원하는 날이다 이건데…….

“음.”

VIP인 만큼, 거기에 더해 스튜어드의 직급이 꽤 높은 사람이니만큼, 또 이런 병원들은 특성상 평소에 모든 가용 자원을 돌리고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장담했던 대로 검사 결과는 거의 다 나와 있었다.

‘으음.’

차라리 그러지 않았다면 스튜어드의 얼굴이 더 나을 수도 있었을 터였다.

허나 결과를 다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잡히는 게 없었다.

아니, 하나도 모르겠단 생각만 들었다.

‘뭐지……? 뭐야, 대체?’

뭔 질환이지?

스튜어드의 당혹스러운 감정은 고스란히 환자와 보호자에게도 전달되었다.

원래 이렇게까지 멘탈이 약한 개복치는 아니었는데, 일전에 있던 사건이 화근이었다.

한국 갔다 온 후로 사람이 좀 이상해졌다는 평이 주를 이루고 있달까.

“뭐 잘못됐어요? 안 좋은…… 그런 병인 거는 아니죠?”

보호자는 더더욱 초조해져서 물었다.

자선 행사만 아니었으면 자리를 지켰을 텐데, 워낙 중요한 행사다 보니 오늘에서야 돌아왔다.

죄책감까지 더해지다 보니 눈에 물기가 묻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스튜어드가 짐짓 괜찮은 척을 했지만…….

‘저 새끼 하나도 모르는 거 같은데…….’

환자는 이미 전화기를 빼 든 참이었다.

-혹 필요하면 연락 주시죠.

닥터 장이 주었던 번호를 찍은 채였다.

-이수혁 교수님 직통 전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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