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36화 (1,036/1,303)

1036화 다시 시작 (2)

“아, 교수님. 아직 드릴 말씀이 더 있습니다.”

“네, 말씀하시죠.”

엑스레이실로 가려면 시간이 좀 남은 참이었다.

더욱이 수혁은 원격으로 환자를 보고 있는 중이다 보니 그냥 서 있는 상태이지 않나.

무료하다, 이 말이었다.

진료 보는 와중에 무료하다는 게 말이 되나 싶겠지만…….

내과의 진단 과정은 외과와는 아무래도 다르다 보니 그럴 수 있었다.

물론 지금 장종우 교수가 입을 열심히 터는 건 딱히 수혁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그냥 본인이 후달려서기는 했다.

‘아예 감이 안 잡힌다고요…… 수멘. 아멘.’

태화 의료원 본원, 더 나아가 태화 바이오 그룹 회장 김다현은 이미 뉴욕 센터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보고 있었지만 정작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은 생각이 좀 달랐다.

‘뉴욕…… 여기가 만만할 리가 있나…….’

당연한 말인데, 장종우의 인사이트가 김다현보다 뛰어나서는 아니었다.

애초에 김다현은 태화 전자 뉴욕 주재원으로 일했던 경험이 있는 데다가, 지금도 외국계 인사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사람이지 않겠나.

그래서 원하는 기준이 좀 낮았다.

제아무리 대한민국의 위상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지만…….

대항해 시대, 산업 혁명 등을 통해 수백 년간 세계를 지배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서구 열강의 뿌리 깊은 편견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뉴욕은 전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만큼 유대인들이 많았고, 그들이 운영하는 세계 유수의 병원 또한 많았다.

‘우리가 여기서 일등하려면…….’

그 와중에 장종우를 비롯한 몇몇 태화 의료원 인사들은 위에서는 아무도 바라지 않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었다.

특히 장종우가 그 선두에 서 있었는데 따지고 보면 다 수혁 때문이었다.

정작 본원에 있던 이들은, 그러니까 수혁을 포함한 인원들은 제아무리 원격이고 나발이고 진료를 해 왔다고 해도 진짜 격전지인 미국이나 유럽과는 한 발짝 떨어져 있다 보니 느낌이 덜했더랬다.

허나 뉴욕에 있던, 그야말로 매일매일 시신이 쏟아져 나와 냉동 탑차까지 죄 빌려다 써야 할 정도였던…….

지옥에 있던 이들에게 수혁과 그 팀이 보여 준 압도적인 진료 수행 능력은 국뽕이 차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환자들조차 놓쳐서는 안 된다…….’

덕분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장종우는 환자가 탄 휠체어를 직접 끌면서, 달달 외운 검사 결과를 읊었다.

“혹시 몰라 나간 혈액 검사 결과입니다.”

“아, 좋죠. 말씀해 주세요.”

저렇게 형태가 바뀌는 경우라면 아무래도 호르몬 계통에 변화가 있을 수 있었다.

만약 없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의미가 있었다.

호르몬 레벨이 아니라, 다른 수준에서 변화가 있었다는 걸 뜻할 테니까.

뭐가 되었건 간에 좋다고 생각하면서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성장 호르몬, 갑상성 호르몬도 다 나갔습니다.”

“잘하셨네요. 내과 전문의의 자문을 받으셨나요?”

“네? 아, 네. 조태진 교수랑 제가 친해서.”

“아, 맞다. 그래서요?”

“근데 이게 다 정상입니다…… 혈청 칼슘, 알칼리 포스파타제도 정상이었습니다.”

“흐음…….”

수혁은 턱을 쓸어내리며 머리를 굴렸다.

[확실히…… 우리가 생각하는 그 질환이 맞는 거 같은데요?]

‘소견은 그 질환을 가리키고 있긴 한데…… 너무 드문 질환이야.’

[저도 그게 마음에 좀 걸리는군요.]

‘몇 가지 더 확인을 해 볼까.’

이미 아까부터 망망대해 속에서 섬 하나를 짚어 낸 참이지 않나?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 섬이 작다는 점이었다.

의학적인 진단을 할 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유병률을 고려하는 것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역시나 다른 가능한…….

비록 그 진단이 소견상 정확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배제를 하긴 해야 했다.

왜냐.

의학에 절대란 없고, 모든 질환들은 각각의 경과에서 희귀한 형태를 띌 수 있기에 그러했다.

“혹시 나병균 검사도 나가셨을까요?”

“아…… 나병이요.”

나병.

문둥병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이 병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피부가 두꺼워지는 것이지 않나.

그 때문에 얼굴이 사자 형태로 바뀌게 되는데, 지금 이 환자의 얼굴 또한 나병 환자의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나병균은 감각을 떨어뜨림으로써 이것보다는 더 심각한 손상을 야기하긴 하지만 확인은 필요하다 이 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도말 검사 나갔는데…… 일차 검사에서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진짜 미치겠습니다.”

“미칠 거까지는 없는데…….”

“아니, 이게 의심되는 질환이 있어서 검사를 나가면 다 음성이라니까요?”

“그럴 수 있죠. 그럴 수 있는데…… 아, 여기가 엑스레이실이죠?”

“네네.”

수혁은 나병균도 음성이 떴다고 하면서 머리를 쥐어뜯으려 하는 장종우를 위로했다.

사실 때가 어느 땐데 나병균이 나오겠나.

저기가 무슨 개발 도상국도 아니고 미국인데.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뉴욕이지 않나.

슬픈 현실이지만, 질환 중에서도 전염병은 특히 사회 인프라와 연관이 깊을 수밖에 없기 마련이었다.

물론 이번 코비드 사태에서는 완전 박살이 나긴 했다만…….

“사진은 일단 다리, 발을 포함하게 찍죠.”

“어…… 뷰는 어떻게 할까요.”

혼란스러운 상태를 넘어 거의 스턴에 빠진 듯한 장종우 대신 방사선사가 나서서 물었다.

사실 엑스레이 뷰에 대해서는 수혁이나 바루다 또한 아는 게 많지는 않았다.

아니, 알기는 아는데 익숙지 않다고 하는 게 옳을 터였다.

‘뷰가…….’

[정면이랑 측면만 찍죠. 어차피 관절이나 골절 보려고 찍는 게 아니니까요. 괜히 뭐…… 방사선 많이 쫴서 뭐 합니까.]

‘그것도 그래. 아, 그리고 미국이 비싸잖아.’

[비싸죠. 근데 뉴욕 살 정도면 뭐…… 거기서 피부 미용까지 신경 쓰실 정도면 잘살지 않을까요?]

‘모르지. 아무튼, 굳이 더 찍을 필요는 없을 거 같아.’

해서 대강 보고 싶은 소견이 나올 거 같은 뷰만 말했다.

“아, 네. 그렇게…… 어, 누구시지.”

워낙 간단한 뷰였기 때문에 검사는 마음만 먹으면 즉시 시작할 수 있었다.

허나 방사선사도 장종우도 환자도 더 움직이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수혁이 보는 화면에서는 뭐가 잘 안 보여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피부병이 아닐 수도 있다면서요?”

물론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이내 금발의 여성 하나가 화면에 잡혔다.

나이가 꽤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환자 엄마 같았다.

닮은 구석은 하나 없었지만 태도를 보면 유추가 충분히 가능했다.

전 세계 어딜 가도 아픈 아들을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은 같았으니까.

“아…… 네. 그렇습니다.”

장종우도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에 정중하게 나섰다.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발…… 앵글로 색슨이 아니잖아…….’

유대인이다.

그것도 몸에 걸치고 있는 것들은 보니, 보통 유대인도 아니었다.

장종우가 명품 전문가는 아니긴 했지만, 귀걸이나 목걸이, 팔지, 시계 등만 봐도 몸에 걸치고 있는 게 억은 훅 넘어갈 거 같은 느낌이었다.

‘깐깐하게 나올 거 같은데…….’

유대인의 역사를 한 단어로 요약하기에 가장 좋은 단어가 바로 디아스포라 아닌가.

고향을 떠나 수천 년을 떠돌며 각종 박해를 받아 온 이들에게 피해 의식이 하나도 없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 아니겠나.

더구나 태화 뉴욕 센터는 코비드 때 반짝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뉴욕의 어마어마한 병원들에 비하면 명성이 후달릴 수밖에 없었다.

“뭐 하고 있어. 그럼 바로 사이나 병원으로 가야지.”

“아.”

거기에 마운트 사이나 병원이라면 사실 국뽕에 가득 찬, 엄밀히 말하면 국뽕이 아니라 수혁뽕인데 아무튼, 그런 상태에 있는 장종우조차 한 걸음 물러설 만한 병원이었다.

“일단 사진은 찍죠.”

허나 수혁은 달랐다.

사이나고 나발이고 알 게 뭐란 말인가.

이미 진단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데.

‘마운트 사이나면…… 그 누구더라? 스튜피드?’

[수혁, 스튜피드는 바보고요. 스튜어드입니다.]

‘그게 그거 아니었나?’

[그건…… 부정하기 어렵군요. 인정합니다.]

거기에 더해 수혁은 마운트 사이나에 안 좋은 기억이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쪽에서 비참한 기억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할 테지만.

하여간, 마운트 사이나의 의사가 지금 수혁이 머릿속에 품고 있는 진단명을 당장 맞힐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절대 들지 않았다.

‘발표도 병신 같았지만…… 케이스랍시고 들고 왔던 것도 좀 그랬어.’

[그러니까요……. 절대 보내면 안 되겠습니다.]

해서 수혁과 바루다는 한마음 한뜻으로 전의를 다지고 있었다.

“사진? 무슨 사진? 아니, 그보다 지금 이거 누가 얘기하는 거죠?”

그에 비해 장종우는 좀 쫄았다.

정확히 말하면 쫄아 있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아직까지도 이렇게 드세 보이는 백인을 보면 좀 그렇다고 해야 할까?

영어도 너무 빠르게 해서 알아듣기도 어렵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무슨 피부 전문 병원에서…… 수준 뻔하지. 빨리 가자.”

허나, 수혁을 무시한다는 느낌이 들자 쫄아 들었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져 가고 용기와 분노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어어! 어딜 감히!”

“감히?”

도끼눈을 뜬 사람 앞에서도 망설임이 없어질 지경이었다.

“태화를 무시하는 건 참을 수 있지만…… 태화의 이수혁을 무시하는 건 참을 수 없습니다.”

“뭔…… 뭔 소리야.”

더구나 도끼눈을 떴던 여인의 눈도 금세 흩어지고 있었다.

이건 화가 난다기보다는 황당한 일이라서 그랬다.

정말이지 이게 대체 뭔 소리란 말인가.

“세계 최고의 내과 의사이자 교주…… 아니, 아무튼! 믿어 보시죠.”

“교주를 믿으라고? 감히 여호와 이외의 신을?”

유대인에게 포교를?

이제 다시 화가 나려는데, 말이 이어졌다.

“교주 운운하는 건 헛소리고…… 엑스레이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겁니다. 찍어 보죠.”

“전화…… 휴대폰?”

“네, 소개가 늦었습니다, 어머님. 태화 의료원 통합 진료 센터 부센터장 이수혁입니다. 바로 진단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괜히 다른 병원 가서 번거롭게 되는 것보단 이게 나을 거 같은데요.”

“어…….”

“엑스레이는 별로 시간도 걸리지 않을 겁니다.”

“어…….”

전화에서 들려오는 수혁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러하듯 살짝 신비로운 감이 있었다.

더구나 여인은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입양을 결정했으리만큼 열려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어…… 소리를 지속적으로 냈고, 수혁은 멋대로 그걸 허락의 뜻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환자분, 들어가죠.”

물론 환자에게도 묻기는 했는데, 환자도 살짝 정신이 없던 참이다 보니 어어 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덜컥

검사실 문이 닫히고 나면 그걸로 끝이라고 보면 되었다.

그다음부터는 생각이 바뀌어도 그 바뀐 생각을 입 밖에 낼 수 있는 용자가 거의 없거든.

게다가 엑스레이라는 검사는 한국이고 미국이고 좀 가벼운 검사란 인식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어머니도 불만 어린 얼굴을 하긴 했지만, 일단은 기다렸다.

드르륵

그사이 수혁은 사진을 받아 볼 수 있었고,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맞았군.’

[우리가 맞은 거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