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24화 (1,024/1,303)

1024화 성장하는 이현종? (1)

상대는 이현종의 보챔과 더불어 어머니에 대한 걱정 속에서 입을 뗐다.

‘그냥…… 돈 좀 쓰더라도 여기 병원에 갈 걸 그랬나……?’

설비의 문제는 아니었다.

뉴욕의 센터도 애초부터 뉴욕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지역 병원들과 영혼의 맞다이를 원해서 만든 병원이지 않나.

이미 커다란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입장에서, 새로 증축이나 확장을 하는 것보다는 애초에 지을 때 제대로 짓는 게 크게 보면 싸게 먹힌다는 걸 알고 있다 보니 병원 자체는 완전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문제가 있다면 한 방에 갑자기 시작하는 건 무리였기에 일단 미용부터 차근차근 들여오고 있었다, 이건데…….

‘우리는 사람이 없어…….’

그렇다 보니 중환자를 볼 수 있는 인력이 없었다.

아니, 간호사들은 있는데 의사들이 없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미국 병원 문을 두드리는 건 좀 겁이 났다.

너무 초창기에 오자마자 사태가 터지다 보니 보험이고 나발이고 제대로 계약이 되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는 앰뷸런스만 잘못 타도 몇백이래.

-응급실 가서 공기 냄새만 맡고 와도 몇백이래.

한국에 있다 보면 떠도는 괴소문들이 있지 않나?

어지간한 치료로는 수백 아니라 수십도 내기 어려운 한국에서, 특히 그 한국 병원에 있는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그래서 에이 설마 했는데 와서 보니까 괴소문이 진짜였다.

미친 새끼들…….

‘여기서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면…… 그래도 가야지, 뭐…….’

근데 어쩌겠나.

엄만데.

한국에 있겠다는 거 한사코 뉴욕 구경시켜 주겠다고 데려왔다가 이 난리가 나지 않았나.

이미 거하게 뜨거운 효도를 한바탕한 거 같은데, 여기서 더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 왜 눈알만 굴리고 있어?”

“아, 아닙니다. 교수님. 제가 머릿속으로 정리할 게 있어서요.”

하여간,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성질 급한 이현종이 다시금 재촉했다.

해서 통화 상대, 즉 피부과 전문의 김주하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제 어머님이 일단 연세가 68세이십니다.”

“68세. 젊으시네.”

“네네.”

예전 같았으면 68세면 완연한 노인이었다.

허나 요즈음의 68세는…….

노인이긴 한데, 이전과는 좀 개념이 달랐다.

일단 여자인 경우 평균 수명 자체가 80을 훌쩍 넘어가지 않았나.

심지어 건강 수명도 팍팍 늘고 있다 보니, 젊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기저질환은?”

“고혈압이 있으시고요……. 좌측 난청이 있습니다.”

“난청? 편측으로?”

“네.”

이현종은 턱을 쓸었다.

난청에 대해 이비인후과 의사만큼 뭘 잘 아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노인성 난청은 양측으로 온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러니 한 쪽만 난청이 있다는 건 뭔가 다른 원인이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한 눈치를 피부과 의사도 알아들었기 때문에, 곧장 입을 열었다.

“이거에 대해서는 워크업을 했었습니다. 딱히 종양이나 이런 게 있지는 않았습니다. 중이염도 아니었고…… 아무래도 이전에 돌발성 난청이 있었고 그걸 모르고 넘어갔다는 식으로 들었습니다.”

“워크업은 본원에서 했지?”

“네네. 당연하죠. 로컬에서 하려다가…… 동기들한테 부탁했죠.”

“그래, 그러면…… 뭐…….”

이비인후과.

이현종은 태화의 이비인후과를 떠올렸다.

내과나 김승규가 이끄는 이식외과를 제외한 다른 과들은 솔직히 대한민국 최고라 하기 좀 어려운 부분도 있는데, 이비인후과는 또 얘기가 달랐다.

거긴 확실히 최고긴 했다.

“그건 넘어가고. 고혈압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지?”

“약 먹으면서…… 제가 직접 들여다보진 못해도 자주자주 재면서 보라고 말씀드립니다. 어머님 성격도 좀 꼼꼼한 편이라 관리는 잘 되고 있을 겁니다.”

“그렇군. 당뇨는 없는 거지?”

“네? 아, 네. 다행히.”

“그럼 사실상 잘 관리가 되고 있다…… 이건데.”

고혈압도 무서운 병이긴 했다.

무서운 병이지만, 그래도 당뇨보다는 훨씬 나았다.

당뇨는…….

이놈은 진짜 무섭기도 무서운데 관리도 까다롭지 않던가.

기껏해야 당만 낮추면 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그걸 위해서 얼마나 다채로운 약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의료진은 많지 않았다.

실제로 인슐린을 단기적으로 쓰면 회복될 만한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서 그걸 못 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내분비내과 학회에서 이점을 누누이 지적하고 있지만, 아직 정부에서는 딱히 무겁게 여기고 있지 않은 듯했다.

뭐,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이현종은 일단 넘어갔다.

“아무튼…… 그래서, 어떤 증상이지?”

속으로는 이 환자가 대체 뭔 증상일까 생각하면서였다.

곁눈질로 병동도 보았다.

다행히 아까 한바탕 난리를 쳐 놔서 그런가 별일은 없어 보였다.

김인수도 이쪽을 보면서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있고 하니 시간은 있었다.

‘일단…… 뇌경색, 출혈…… 심근경색은 아닐 거야.’

아무리 피부과라지만 그건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니, 피부과라면 사실 1등 또는 그에 유사한 성적으로 졸업했을 거라 더더욱 그랬다.

이현종이 기억하기로 눈앞의 이놈, 김주하도 그랬다.

“그게 우측 팔다리가 좀 이상해서요. 감각도 이상하다고 하시고요.”

“응?”

아닌가.

아니었나.

이 미친놈이……

그걸 놓쳤나?

싶어서 재차 물었다.

“어, 언제부터?”

“한 한 시간 되셨습니다.”

일단 골든아워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저쪽 병원에 뭐가 가능한 사람이 없다는 건데…….

아쉬운 대로 뉴욕 마은트 사이나 병원의 스튜어드에게라도 통화를 돌려야 하나 싶어진 가운데, 김주하가 말을 이었다.

“와서 영상 찍었고…… 일단 머리는 괜찮습니다.”

“자네 혼자 본 건 아니지?”

“아, 아니죠. 영상의학과 친구한테 바로 콜 했습니다.”

“그래, 그럼 머리는 아니다?”

“네.”

“근데 흠…… 어디 부딪히거나 한 건 아니고?”

“아닙니다.”

머리가 아닌데 팔다리에 위약이 생긴다?

다리나 팔만 생기는 경우라면 사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었다.

근방에 신경병증이나 근육의 병 또는 부상 등…….

허나 팔다리가 한 번에 생기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만약 척추나 척수 근방에 부상이라도 생겼다면 또 모를 일인데 부딪친 적도 없다고 하니 그것도 아니었다.

“다른 병력은?”

“음…… 딱히…….”

“일단 환자를 좀 보지.”

“네, 교수님.”

다른 병력이 있을 거 같은데…….

없다니 뭐 어쩌겠나.

그렇다면 우선 환자를 봐야 할 터였다.

뭐가 되었건 진료는 환자를 두 눈으로 보면서 시작되는 법이었으니까.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병실이 나왔다.

그쪽에도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별 어려움 없이 다시 화상이 연결되었다.

한눈에 환자를 볼 수 있었는데 확실히 노쇠해 보였다.

얼굴만 보면 그랬다.

‘하지만 몸은…… 그렇게 노쇠하지 않았어. 여기저기 운동의 흔적도 있고…… 저렇다면 확실히 흠…… 최근에 갑자기 아파진 거란 얘긴데……?’

가능성이야 여러 방면으로 열어 둬야겠지만 종양이나 이런 만성 질환의 가능성은 떨어진다고 볼 수 있었다.

“환자분.”

“네, 네.”

의식은 명료했다.

좋은 사인이었다.

아무래도 직접 대화가 가능하다면, 이현종은 뭐라도 잡아낼 자신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꿀꺽.

어느새 옆으로는 그나마 한가해진 틈을 타서 모여든 레지던트들이 있었다.

다소 북적거린단 느낌마저 일 지경이었는데, 사람이 늘어서 그랬다.

코비드 전담 병원 비슷하게 되면서 아무래도 일반 환자 수가 줄다 보니 인력을 이쪽으로 몰아주고 있어서 그랬다.

“팔다리가 이상하시다고요?”

“아, 네.”

“팔이나 다리 어느 쪽부터 시작되었나요? 아니면…… 그냥 한 번에 시작되었나요?”

“아…… 그…… 처음엔 팔이었던 거 같아요.”

“팔이라.”

“네.”

이현종은 환자의 답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진행을 했단 얘기였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이 최종 형태일 보장도 없다는 얘기였다.

‘말하는 거 보면 일단 안면 근육은 전혀 이상이 없어. 머리 쪽이라면…… 우측 상하지를 먹을 정도의 병변일 경우, 거의 안면도 먹지.’

그런 추론을 이어 나가는 동시에 환자 얼굴도 살폈다.

보아하니 레벨이 거의 보였다.

확실히 뇌가 아니고, 척수 쪽 같아 보였다.

‘근데 척수가 그냥 갑자기 망가지는 경우는 없잖아?’

이런저런 추론을 이어 나가면서, 이현종은 다시 물었다.

진행을 하고 있다면 그다음 중요해지는 건 속도이지 않겠나.

“팔 이상하고 나서 얼마 지나고…… 다리가 이상하셨어요?”

“아…… 그게. 글쎄요. 사실 팔 저리고 할 때는 그렇게 주의 깊게 들여다보질 않아서…….”

“이유가 있으십니까?”

이현종은 환자의 옆에 놓인 책을 보면서 질문을 이어 나갔다.

영어책이었고, 제목은 모비딕이었다.

고전 명작이라지만……

요약본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본 사람이 있을까 싶은 정도로 골 때리는 책이었다.

그걸 꾸준히, 그것도 원서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자기 몸이 아픈데 무시했다면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것도 꽤 합리적인 이유가.

“그…… 여기 주사를 맞았어요.”

“어, 아. 맞다. 맞았어요. 어젠가?”

해서 질문을 던지고 기다려 보니 환자가 멀쩡한 팔, 그러니까 왼쪽 팔로 우측 어깨 쪽을 가리켰다.

동시에 옆에 있던 아들놈도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주사.

주사라.

요즘 같은 때에 어깻죽지에 맞을 만한 주사라면…….

“코비드 백신이에요?”

“아, 네.”

이현종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백신…… mRNA 전사 방식의 백신이라면…….’

길랑바레 증후군이라는 게 있지 않나.

면역 반응이 이상을 일으키면서 마비가 일어나는 병인데, 뇌가 아니라 척수를 따라 발생하는 병이었다.

뭐 아주 같지는 않겠지만, 비슷하긴 할 터였다.

“그게 범인일 수도 있겠는데.”

“네? 하지만…….”

“사례 보고는 없어. 나도 아는데…… 그래도 가능성은 있어. 기전을 보면 말이지. 흐음.”

만약 백신의 부작용, 즉 면역 시스템의 과도한 반응으로 인해 저 증세가 발현되었다면 딴 게 아니라 스테로이드부터 써야 할 터였다.

재활도 당연히 하긴 해야겠지만, 반응을 가라앉히려면 스테로이드를 써야 한다는 얘기.

허나 스테로이드란 약은 언제나 그러하듯 양날의 검이었다.

이건, 잘못 쓰면 환자를 죽일 수 있었다.

특히 감염병이 있다면…….

그런 상황에서 스테로이드를 쓴다면, 오히려 약이 아니라 극독이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 그럼 스테로이드를 쓸까요?”

“아니, 잠시만. 일단 사례가 없잖아.”

“방금은…….”

“배제를 해야지. CSF 검사할 수 있나?”

“네?”

“척수 천자 할 수 있냐고.”

“아.”

피부과 의사가 난색을 표했다.

사실 이현종도 그럴 거 같았다.

“자신 없으면 병원 보내.”

“아니, 근데…….”

아까까지만 해도 피부과 의사 또한 병원을 고민하고 있었더랬다.

하지만 이현종의 진료 과정을 지켜보다 보니 믿음이 샘솟고 있었다.

괜히 딴 데 가 봐야…… 코비드가 창궐하는 시점에 제대로 진료가 될까 싶기도 했고.

“그…… 가이드해 주시면 해 보겠습니다. 저 손 좋습니다.”

“그래? 나도 딴 데 가는 거보다는 여기서 내가 보는 게 나을 거 같긴 해.”

“네.”

“좋아. 그럼…… 새우등 모양으로 눕혀 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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