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22화 (1,022/1,303)

1022화 센터 어게인 (1)

“휴우…….”

이현종은 회한에 찬 얼굴로 태화 의료원 안으로 들어섰다.

두 달.

최소 2주에서 길어야 한 달일 거라고 예상했던 봉사가 두 달이나 끌었다.

뭐……

여전히 거기 남은 이들도 많이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렇게까지 한숨 쉬고 할 일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하루가 되었건 이틀이 되었건 몇 달이 되었건 간에 힘들었던 건 힘들었던 것이었다.

“아, 아빠!”

“어, 아들. 아니, 너는 왜 또 얼굴이 박살이 났니.”

한숨이 나오는 이유는 또 있었다.

여기라고 해서 편할 리가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 그랬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던가?

병원도 마찬가지였다.

“아……. 박살이 났어요? 그냥 좀 상한 줄.”

“어……. 완전 박살이 났네. 진짜 힘들구나?”

“힘들긴 힘들어요.”

“설마……. 저거 안대훈이냐?”

“어디요? 아, 네. 대훈이네.”

“허.”

여기가 더 힘들 것임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방금 저쪽으로 비척거리는 발걸음으로 걸어간 놈…….

안대훈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후광이고 나발이고 하나도 없었다.

언제였더라?

기억은 안 나는데, 머리 손질하는 게 유독 귀찮았던 날, 순간 욱해서 넌 좋겠다고 했더니 안대훈이 불경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대부님……. 이 머리도 품이 많이 듭니다……. 옆에 여기는 제모를 하지 않는 이상 자란단 말이죠? 다른 곳은 다 빠져도 여기는 자랍니다. 근데 여기만 자라면……. 뭐 그것도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저는 아니란 말이죠. 매일……. 거의 매일 밀고 광내고 나오는 겁니다.

어, 그렇구나.

그래, 확실히 면도도 귀찮은데 머리를 돌려 가면서 깎아야 한다면 그것도 보통 일은 아니겠다 싶었다.

더군다나 안 보이는 부분도 있다 보니…….

그걸 매일 그렇게 관리한다는 게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게 하나도 안 되어 있었다.

중세 시대 수도승 같은 모양이 되었다, 이 말이었다.

‘웃으면 안 되지. 웃으면 안 된다……. 현종아 이거, 이건 안 된다.’

저게 다 생고생의 흔적 아니겠는가?

해서 이현종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행히 원체 기분이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다 보니 웃음은 금세 가라앉았다.

“휴우.”

“아빠도 힘들었나 보네요. 살이 좀…… 빠진 거 같은데요?”

“어? 어어. 나야 뭐……. 잘됐지. 갇혀 지내면서 살찌는 애들도 있거든. 근데 난 그러니까 밥맛이 없더라고. 막말로 밥이랍시고 먹을 수 있는 게…….”

“아, 우리 아빠 미식가지.”

서울에서는 백날 천날 맛집만 다니지 않나.

아재 픽에 속하는 노포집도 가긴 하지만 대개 나가서 먹는다고 하면, 특히 이기자 교수나 주변 패밀리들을 끌고 나가서 먹는다고 하면 파인 다이닝으로 갔더랬다.

그러던 사람 입맛에 급조된 급식이 입에 맞겠나?

배달 음식도 처음에는 맛있지만 금방 질리게 마련이었다.

특히 나이가 있는 사람에게는 기름기 자체가 부담이 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수도 생활을 하고 온 참이었다.

“김성진 선생님은요?”

“아, 우리 성진이. 걔는 내일부터. 원래 나도 오늘 휴가야.”

“그럼 아빠도 좀 쉬시지.”

“사실 그냥 한번 둘러보고 돌아가려고 했어. 명색이 센터장인데 두 달을 두고 있었으니…….”

이현종은 밀렸던 대화를 나누면서 스테이션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익히 알고 있던 센터 모습과는 꽤 달라져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러한 일이 있을 때 즉시 대비할 수 있도록 감염내과 측의 컨설팅을 받고 만든 곳이다 보니 다른 곳처럼 대대적인 공사를 치를 필요는 없었다.

착착 조립식으로 뭔가 갖다 둔 것에 불과하다는 말인데…….

그럼에도 영 생경한 풍경이었다.

일단 안에 돌아다니는 이들도 그렇고, 안대훈의 머리도 그렇고 수혁의 박살 난 얼굴도 그랬다.

“근데 못 가겠구만. 꼴을 보니까……. 개고생들을 했어, 아주?”

그 꼴을 보고 있다 보니 집에 가려는 마음이 쑥 사라져 버렸다.

해서 이현종은 자리에 털썩 앉으며 입을 열었다.

“환자 수는 어때?”

“많죠. 중증 환자 중에 해결 안 되거나……. 젊은데 이해 안 되거나 하는 환자들 태반이 오니까요.”

“근데…… 호흡기라 너무 상태 안 좋으면 아예 이송이 안 되지 않나?”

“그렇죠. 그런 환자들까지 다 받았으면 아마…… 이게 안 될걸요.”

“그렇지.”

센터를 떠나 있었다지만, 아무래도 놀러 갔다 온 게 아니라 또 다른 현장에 있다 온 몸이다 보니 대화가 팍팍 이어져 나가고 있었다.

확실히 호흡기 중환자는…….

이송하다가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보니 이송이 쉽지가 않았다.

때문에 화상이나 원격으로 협진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았고, 대다수의 중환자의 경우엔 뭘 몰라서 치료가 안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치료가 안 돼서 안 되는 것이었다 보니 점차 그쪽에서의 로딩은 줄어들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얼마 전에 어려운 환자 하나 보셨던데. 코비드 감염 후 발생한 가와사키 증후군이죠? 그것도 성인.”

“어, 거참…… 뭐……. 워낙에 면역 반응을 강하게 일으킬 수 있는 놈이다 보니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게 아니긴 한데……. 직접 보니까 황당하더라. 그래도 치료는 잘 됐어. 나중에 심혈관 관련 합병증 생기지 않았는지 보기는 해야지.”

둘은 그렇게 고개를 주억거리다, 최근 발생한 화두를 입에 담았다.

“백신은 맞았냐?”

“아, 아뇨. 저는 아직 순번이 안 돌아와서.”

“일선에 있는 사람인데 아직도 안 놔줬어?”

“물량이……. 그래도 뭐…… 다음 주에 맞을 거예요. 아빠는요?”

“나야 맞았지. 나오면서 맞았어. 아 그래서 성진이가 쉬는 거기도 하지. 열 엄청 난댄다.”

“아무래도 그럴 공산이 크죠.”

애초에 백신이라는 게 뭔가.

병원균에 대한 정보를 미리 주고 그에 대해 싸울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의료계가 보유한 무기 중 하나 아닌가.

그렇다 보니 백신을 맞고 열이 나는 건 그 종류를 막론하고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도입된 mRNA 전사 방식의 백신은 얘기가 좀 달랐다.

병원균의 부분 부분을 잘게 쪼개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설계도면 전체를 알려 주는 방식이다 보니…….

젊은 사람에서는 특히 면역 반응이 어마어마하게 강했다.

그 덕에 면역 획득률이 90%를 넘어 95%를 넘어갈 정도로 높았지만, 그와 비례해서 부작용도 있었다.

“뭐 따로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겠죠?”

“지도 의산데 보고를 하겠지. 아직은 그냥 열이나 몸살 증세만 있는 모양이야. 김성진이가 젊어, 아주.”

“그래도 다행이네요. 지금 심심치 않게 백신 관련 부작용이 보고가 되고 있어서 걱정이거든요. 삼촌은 아예 앓아누웠어요.”

“그럴 거 모르고 도입한 건 아니잖아?”

모든 의약품은 음과 양, 즉 효과가 있으면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듯 백신도 그랬다.

모든 백신이 그러한데, 이번 백신은 아무래도 그 방식의 차이 때문에 면역 관련한 부작용이 더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있었다면 좀 더 차근차근 관찰을 해 보면서 더더욱 확대를 해 볼 수 있었겠지만…….

“그렇긴 하죠. 지금 노인 인구에서는 난리잖아요. 미국도…… 인구가 최초로 감소할 전망이라던데.”

“거기는 이민자까지 늘어나는 곳이라 그러기가 쉽지가 않은데…….”

어마어마하게 죽어 나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백신에 가장 취약할 거라 예상되는 노인이나 기저 질환자들이 감염에도 가장 취약했기 때문에 부리나케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기도해야지. 별일 없도록…….

의사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불확실함이지 않나.

불과 19세기, 20세기 초만 해도 과학자임을 표방하는 이들 중에서 가장 실험 정신이 미쳐 날뛰던 이들이 의사들이긴 했지만 바로 그러했던 이유로 가장 보수적인 이들이 되어 버렸다.

선의에서, 또 무지에서 비롯된 수많은 악행을 피하기 위해서였는데…….

이번만큼은 의사 개개인이 뭔가 결정할 수 있기는커녕 의사 집단을 넘어 전 세계의 리더들이 머리를 맞대야 하는 중대 사안이 발생해 버렸다.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지?”

“모니터링하고 있죠. 그나마 삼촌이 이거 다른 백신하고 다르다는 걸 주지시켜서 훨씬 예민하게 보고 있긴 할 거예요.”

“그래, 그렇군.”

수혁은 믿음 충만한 얼굴이었지만, 이현종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가 여러 가지 이유로 행정 능력이 꽤 뛰어난 것도 사실이었다.

공무원이랑 일해 본 여러 사람들이 학을 떼는 것도 사실이지만, 외국 공무원과 일 한 번만 해 보면 우리나라가 짱이구나란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지 않나?

실제로 이현종은 이번에 병원에서 여러 루트를 통해 전원 되어 오는 환자 정보를 보면서, 대한민국에 감탄했더랬다.

대체 얼마나 사람을 갈아 넣으면 매번 이런 퀄리티로 정보가 올까 싶어서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사람이 죽어 나가기도 했다.

그 말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거기에 백신까지……. 제대로 대응이 되려나?’

그런 생각까지 했던 이현종으로서는 걱정이 안 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다만 입 밖에 내진 않았다.

그래 봐야 바뀌는 것도 없을뿐더러…….

관할도 아니지 않나.

도움을 줄 방법도 없고.

의사로서 다만 해야 할 일을 할 따름이었다.

“아무튼, 연락 온 거 없나?”

“네.”

“그럼 지금 당장은 할 게 없네?”

“어……. 아니, 그래도 모니터링은 해야죠. 아시겠지만 갑자기 안 좋아지는 경우가 많아서.”

“그거야 내가 하면 되지. 넌 가서 좀 쉬어. 얼굴이…… 아니, 얘 이거 왜 이렇게 된 거야?”

더구나 이현종은 의사이기 전에 아빠이기에 수혁을 안으로 보냈다.

수혁도 겸양을 떨진 않았다.

[그럴 때가 아닙니다. 킬각 떴다, 지금.]

‘대상이 난데 킬각이니 뭐니 하는 건 좀 부적절하지 않냐?’

[뭐가 되었건……. 이현종 말대로 얼굴 박살 났습니다. 원래도 그렇게 좋은 상태가 아닌데 더 그렇다고.]

‘야…….’

[잠이나 자죠.]

‘그래…….’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

해서 수혁은 안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옆에 이미 뻗어 버린 안대훈이 쥐고 있던 유튜브를 끄고서였다.

원래 같으면 앉으나 서나 수혁 관련한 것만 보던 놈이 웬일인지 다른 걸 틀어 놓았다.

‘뭐냐, 이거?’

[강남역…… 거리뷰? 이런 걸 왜 보는 거죠? 나가면 되는데.]

‘아.’

[왜요?]

‘우리 못 나간 지 꽤 됐다……. 이거 근데 지금인가? 업로드는 지금이네. 바깥은…… 가을이구나. 다들 행복해 보이네.’

[주절주절하지 말고 자요.]

‘어.’

그렇게 수혁이 낮잠도 아닌 이상한 잠을 청하게 되었을 무렵, 이현종은 환자를 살피기 시작했다.

확실히 처음엔 별문제가 없었더랬다.

아무리 환자가 많고 중하다 해도 수혁이 보고 있는 와중에 뭐가 있겠나.

어지간한 변수는 다 예측하고 대응하고 있다 이 말이었다.

허나 시간이 지나자 얘기가 달라졌다.

인류의 적은 과연 무서웠다.

“교수님! 3번 방 세츄레이션 떨어집니다!”

“거기 뭐 괜찮지 않았나?”

“네! 근데 혈압도 좀…… 이게 왜……!”

“세츄에 혈압?”

“네!”

“엑스레이! 포터블 찍어!”

“네?”

“뉴모쏘락스일 가능성이 제일 커! 일단 내가 간다!”

물론, 이현종도 만만치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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