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1화 반대의 경우도 있다 (3)
“교수님. 분부를.”
나쁜 물이 든 채였다.
김성진……
다 이 새끼 때문이었다.
아니, 따지고 보면 김성진을 물들인 안대훈 탓인데……
김성진은 애도 아니고 나이도 많은 데다가 따지고 보면 의학도로서 선배인데도 영향을 심하게 받아서 여차하면 사극 말투를 쓰고 있었다.
‘젠장. 뭐라고 하지?’
이현종은 위기의식과 함께 환자를 돌아보았다.
이제 기껏해야 마흔이나 되었을까 싶은 환자는 겁에 질린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이런 병원으로 실려 온 것부터가 사실 일반적인 일은 아니지 않겠나.
거기에 더해 이런저런 이유로 더해지고 있는 검사 또한 심상치 않았다.
무엇보다 이현종이 지금 너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나마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있어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짜로 쫄았을 터였다.
‘카와사키…… 아니면 코비드 또는 아예 미지의 질환…… 셋 중 하나.’
이현종은 찰나의 순간에 머릿속을 정리하고는 일단 분부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미 폐렴이 있잖아. 거기에 대해 경험적으로 항생제 쓰지.”
“어떤…….”
“독시면 좋겠군.”
“네, 교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신장이랑 간 잘 보자고. 심박출량 줄어들어서 언제든지 다기관 불능증으로 갈 수 있어.”
“네, 교수님.”
여전히 진단을 내린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못 하냐? 그건 아니었다.
현대 의학이 쌓아 온 것은 비단 진단 기술뿐만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의학의 본질은 뭐가 되었건 아픈 사람을 살리는 데 있지 않나?
제대로 된 진단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라도 얼마든지 대응은 할 수 있었다.
“혈압 잘 보고…… 물 주는 건 일단 심방세동 상태 보면서 추가하자고. 저거 저렇게 뛰는데 물 주면 오히려 뻑나.”
“네, 교수님.”
“그래, 아. 아까 항응고제 들어갔나?”
“네, 들어가고 있습니다.”
“좋아. 우선 그렇게 하면서 지켜보자고.”
“네.”
그리고 이현종쯤 되면 그러한 대응에 있어서도 스페셜리스트일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수혁과 이현종이 괴물 같은 의사들이라 해도 척 보자마자 진단되는 경우가 많으면 얼마나 많겠나.
뭐, 요새는 그의 아들 이수혁은 점차 괴물 같은 이가 아니라 진짜 괴물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기에 바로 진단을 내리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늘어나고 있긴 했다.
허나 이현종은 인간의 뇌만 갖추고 있다 보니, 다른 쪽의 무기를 탑재할 수밖에 없었다.
해서 대강의 지시를 내려서 환자의 목숨을 벌어 놓은 후, 비로소 고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가와사키 질환의 진단 기준은…… 일단 5일 이상 지속되는 발열이지. 환자는 5일이 뭐야. 1주일도 넘었어.’
이제 환자 주변은 다른 일들이 에워싸기 시작했다.
뭐 이것도 잠시뿐이고 좀 있으면 이리저리 흩어질 터였다.
계속 환자 하나에게만 붙어 있기에는 환자가 너무 많았다.
하여간, 이현종은 그런 환자를 보면서 생각을 이어 나갔다.
마침 눈이 마주친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확실히 환자의 양측 결막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결막염이 있다, 이 말이었다.
‘거기에 경부 림프절 비대, 양측 결막염…… 다형성 발진, 구강 점막에도 염증이 있고…… 손바닥에도 발진이 있어. 진단 기준에는 완전히 부합한다…….’
그래, 다시 생각해도 소견 자체는 완전히 가와사키병에 들어맞았다.
문제가 있다면…….
‘근데 대체 이게 언제 적 진단 기준이냐…… 1967년 기준 아냐?’
토미사쿠 가와사키라는 걸출한 의사가 정의한 질환인데…….
여전히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몇 가지 가설이 있을 뿐인데, 그중 이현종이 제일 그럴싸하다고 여기고 있는 건 감염 후 발생한 이상 면역 반응이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아직 면역 기능이 안정되지 못한 소아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것도 이 가설을 뒷받침했다.
게다가 소아는 상대적으로 성인에 비해 아직 다양한 병원체를 접하지 못했을 테니, 더더욱 미성숙한 반응을 보일 수 있었다.
그 말은……
같은 이유로 성인에게서는 드물 수밖에 없다는 일이 되었다.
‘막상 아니라고 하기는 어려워…… 이미 심장 쪽 부작용도 생겼지. 이건 진단 기준에 들어가진 않지만…… 임상 쪽으로는 오히려 더 중요해.’
허나 드물다 해서 생기지 말라는 법이 있나?
의사는 모든 것에 대비해야만 했다.
비록 그것이 좀 과하더라도 그래야만 했다.
안 그랬다가 잃을 수 있는 게 다른 무엇이 아닌 사람 생명이기에 그랬다.
‘검사…… 아까 나간 거 다시 볼까.’
혈액 검사는 이전 병원에서 나간 것만 들여다본 참이었다.
여기 와서 또 나간 것도 봐야 했다.
그래야 경향성을 볼 수 있을 테니.
대개는 바닥값이 의미를 갖지만, 지금은 케이스가 어렵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백혈구 늘었고…… 뭐 기타 염증 수치가 늘었고…… 음? 혈소판도 늘었어. 아니, 이거 정말로 가와사키인가?’
사실 혈액 검사는 가와사키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지표라 할 수 있었다.
백혈구 뜨고 하는 건 다른 감염병에서도 다 있는 소견 아닌가.
염증 수치 뜨는 것도 다 그렇고…….
하지만 다른 질환일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환자분.”
“네?”
“숨소리 좀 들어 봅시다.”
“어…… 네. 근데…….”
이현종은 비닐 포대기 위에 청진기를 댄 후, 환자의 숨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가만히.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이게 뽀시락거려서.”
“아, 네.”
진중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숨소리를 듣던 이현종은 이 폐렴이 세균보다는 역시 바이러스성 폐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진도 그렇지만, 소리도 그랬다.
“숨 안 차요?”
“네? 찹니다.”
“산소 들어가고 있는데…… 그래도 차요?”
“네? 아, 네. 좀…….”
환자의 나이는 38살.
그렇다면 어지간한 폐렴이라고 해도 기침이나 발열 등이 주된 증상이 되지, 호흡 곤란이 주된 증상 중 하나가 되기엔 무리가 있었다.
뭐, 다른 질환이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지금은 심장도 살짝 문제가 있긴 하지만, 부동자세로 있는 상황 아닌가.
“아까 검사 나간 거…… 결과 나왔나?”
“네? 어떤?”
“코비드.”
“아…… 음성 떠서 재검 들어갔다고 합니다.”
“음성이라고?”
“네.”
“이상한데.”
“이번에도 음성 뜨면 전원 보내려고 합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현종에게 응급의학과 의사가 말을 걸었다.
어차피 가와사키 의증이라는 말도 들었겠다, 필요한 조치도 했겠다…….
무엇보다 앞으로 대충 치료 이렇게 하면 되겠단 계획도 서지 않았나?
전원이 너무한 선택은 아닐 터였다.
‘폐렴 양상은 또 코비드랑 비슷해……. 한창때가 아니라…… 좀 나아가는?’
허나 이현종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 간질간질하는 느낌이 일어서 그랬다.
촉.
그래, 뛰어난 의사들에게서 발현된다는 그 촉이 지금 이현종에게 임해 있었다.
“환자분.”
“네.”
“교수님?”
“가만히 좀 있어 봐.”
“네네.”
해서 이현종은 다른 이들 대신 환자를 다시 마주했다.
환자는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뭔가 심각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또다시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말이 들린 거 같지 않나.
여기도 간신히 왔는데 또 딴 데로 가라고?
이러다 뉴스에서 본 사례처럼 병원을 전전하다 죽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기침한 지 얼마나 됐죠?”
“아…… 거의 두 달이요.”
“병원은 안 갔어요?”
“저 원래 역류성 후두염 있어서 가끔…… 기침이 오래갈 때가 있어요.”
“가래나 이런 건 없었고요.”
“가끔……? 근데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원래도 있었어요?”
“아니…… 가래는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역류성 후두염.
만성 기침의 원인이 될 수 있긴 했다.
하지만 가래를 동반한 기침의 원인이 되는 건 아니었다.
“여기 보면 열도 났다는데.”
“아니, 그게. 그 제가 말을 이상하게 해서.”
“무슨 말씀이시죠?”
“열을 재지는 않았어요. 열감이 있었어요. 근데 저 어디 갈 때 안면인식? 그 열 재는 거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한 번도 안 걸렸어요.”
“아, 그거.”
공공 기관이나 하여간 뭐 사람 많은 데 설치하는 거…….
‘그거 오류가 많지.’
막말로 비접촉식 체온계가 정확하면 뭐 얼마나 정확하겠나.
게다가 주로 밖에서 들어올 때 재지 않나.
어지간히 고열이 나지 않는 이상 바깥바람에 의해 식혀진 표피 온도까지 올라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런 말을 환자에게 할 필요는 없어서 일단 말을 돌렸다.
“그럼 최근 두 달 안에 코비드 검사를 받아 본 적은 있어요?”
“아, 아뇨. 오늘만…….”
“오늘이라. 흠. 오늘…… 기침이 점점 심해지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더 심해지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엔 좀 이상하다 싶었죠.”
“그걸 느낀 건 얼마나 됐습니까?”
“3주?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그래, 뭐…….
자기 몸인데 모를 수 있었다.
사는 게 바쁘지 않나.
게다가 코비드로 건강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갔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젊은 사람들은 건강에 대해 자신이 있다 보니 이런 경우도 많았다.
“3주라. 3주…….”
코비드의 기본 코스는 사실 2주 정도 된다고 보면 되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감염 질환은 호스트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의 코스를 밟을 수 있었다.
당장 이 병원만 봐도 입원 일수가 몇 주가 넘어가는 사람들도 꽤 많지 않나.
바이러스 검출이 멈춘 것도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배출이 되고 있었다.
그러니 3주 이상 가는 코비드가 드문 것은 아니란 얘기였다.
‘가와사키 질환의 원인으로…… 코비드였다고 하면 지금 이 환자에게 보이는 양상이 모조리 들어맞아. 문제는 검사상 음성이 뜬다 이건데…….’
아까 병원에서 나갔던 것도 음성이라니.
그렇다면 이 가설은 틀린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자기 생각이 맞을 거 같았다.
극히 드문 상황과 극히 드문 상황의 콜라보라고 해도 좋을, 그야말로 케이스 리포트 감이겠지만…….
“전원은 없다.”
“네?”
해서 이현종은 분연한 얼굴로 말했다.
그와 동시에 응급실 의사는 당황했고, 환자는 다소 안심했다.
“환자 진단명을 정정하지. 가와사키 의증에서 코비드 감염으로 인한 가와사키 의증으로.”
“아니…… 코비드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사진에 있어. 그리고 증상도 그렇고…… 젊은 환자에서의 코비드랑 비슷해.”
“하지만…….”
“어허.”
“크윽.”
당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좀 반항도 해 보려 했지만, 바로 진압되었다.
까불기엔 이현종이 너무 높은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그간 받은 은혜가 너무 컸다.
거기에 더해 김성진의 영향도 있었다.
그렇게 반란을 진압하고 이에 맞는 약을 처방하고 있으려니 전화가 왔다.
검사실이었다.
“음, 말해요.”
“아…… 그…… 음성이 아니라 보류가 떠서요. 이게 양성이라기엔 적은데 그렇다고 또 완전 음성은 아닙니다.”
“역시 그렇군. 양성으로 갑시다.”
“네? 임상적으로는 양성인가요?”
“네, 양성입니다.”
“아, 그럼 그렇게 주겠습니다.”
“들었지? 지랄 말고 가서 치료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