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9화 반대의 경우도 있다 (1)
수혁이 이번에 낸 보고서는 코비드 질환으로 오인될 수 있는 질환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잘 모르는 질환이다 보니 아무래도 오인되는 경우가 많지 않겠나.
하지만 일선에서 바쁘게 뛰고 있다 보면, 심지어 본인의 안위조차 위험해진 마당이 되다 보면 간과하기 십상이었다.
“역시 우리 아들이야.”
“네, 교수님.”
그걸 짚어 준 보고서를 보면서, 이현종은 껄껄 웃었다.
집 떠나와 꽤 오랜 시간을 타지에서 보냈기 때문에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한 지도 오래였다.
물론 혼자 살던 시절에는 딱히 집에 있다고 해서 관리를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기자 교수와 살게 되지 않았나.
사람 꼴이라도 갖추고 살라는 말에 때맞춰 이발도 하고 수염도 깎고, 마스크팩도 하고 그랬다.
“이제 막주인가?”
“네, 교수님.”
허나 여기 와서는 그런 말이라도 해 줄 사람이 없지 않나.
김성진이라고 해서 딱히 뭐 멋 부리는 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둘 다 거지 꼴이 된 지 오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현종은 부숭부숭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 때문에 더더욱 뭔가 많이 없어 보였다.
그는 그 수염을 긁적이면서 한숨을 토했다.
“진짜…… 힘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면서였는데, 지금 그가 거하고 있는 거처였다.
전임 원장인 데다가 현직 센터장이니만큼 돈이 없는 건 아닌데도 허름하기 그지없었다.
오래된 것도 오래된 것인데 애초부터 고급으로 지어진 곳이 아니다 보니 지저분하게까지 느껴졌다.
돈이 있다고 해서 숙소를 구할 수 있던 상황이 아니어서 그랬다.
-아……. 진료요……? 코비드 봉사 오셨구나. 이거 어쩌죠. 다른 숙박객한테 방해가 될 거 같아서요.
-네? 아잇! 그럼 우리 폐쇄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이런 건 미리 말씀을 해 주셔야지. 돈 내시고요. 나가 주세요.
코비드 환자를 본다는 것 자체가 낙인이 되어서 그랬다.
분명 좋은 뜻으로 진료하러 온 것인데도 불구하고, 심지어 여론도 이게 좋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자기 옆에는 두고 싶지 않아 했다.
지침 자체가 방호복을 입고 진료하는 이들은 격리 의무가 없고 그 대상도 아니라 해도 별 소용은 없었다.
생리적 거부감은 곧 차별의 성격을 띄고 이현종과 김성진을 두들겼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그 둘을 포함한 의료진 전원에게 날아와 박혔다.
-다행히…… 시 차원에서 숙소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많은 의료진을 다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아직도 열난다 앱을 통해 보면 미친 듯이 코비드가 번져 가고 있었던 데다가 이미 발생한 환자들도 원래 있던 인력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코비드가 아닌 환자들도 수용이 안 되고 있었다.
갑자기 불어난 환자는 전국의 의료 체계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도시의 의료 체계를 마비시키는 데에 충분했기 때문에 그랬다.
해서 지자체는 중앙 정부의 도움을 받아 숙소 하나를 통으로 빌렸고 의료진은 그 숙소를 쓰게 되었다.
“네, 교수님. 진짜로…… 힘들었습니다.”
“이제 그럼 근무 몇 번 남았지?”
“오늘까지 해서 4번이요.”
“나 이제 슬슬 지겨운데……. 이게 뭐 잘못된 생각은 아니겠지?”
“네? 아뇨…… 젊은 저도 힘든데요. 교수님은 더하시죠. 사실 진즉에 올라가셨어도 아무도 뭐라고 못 했을걸요.”
“그렇겠지. 근데…… 그럼 공백이 생겼을 거야.”
공보의, 군의관 등의 인력들이 갈려 나갔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원래 그들이 있던 곳도 의료 취약 지점이다 보니 아무래도 갈려 나가는 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민간에서도 일부 지원자들이 왔더랬다.
하지만 원래 병원을 운영하고 있거나 또는 속한 곳이 있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보니 길어야 한 달, 짧으면 2주도 채 못 채우고 돌아갔더랬다.
그 와중에 이현종처럼 무려 2달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죠. 교수님……. 실력이 장난이 아니신걸요.”
거기에 더해 방금 김성진의 말마따나 이현종의 실력도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수혁을 제외하면 국내 최고 아니, 세계 최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바로 이현종 아닌가.
그가 현장에 와서 진료를 본다는 건 그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래. 아무튼, 가자. 아유. 셔틀 오네.”
“네, 교수님.”
하여간 이현종은 멀리서 들려오는 셔틀 소리에 몸을 일으킨 후, 밖으로 나섰다.
복도엔 벌써 이번 순번인 의료진들로 그득했다.
“좀 쉬셨어요?”
“몸은 어떠세요?”
“자자! 힘내서 가 봅시다!”
모두 좋은 뜻으로 모여서 그럴까?
또는 코비드라는 공통의 적을 눈앞에 두고 있어서 그럴까.
의료진들은 서로가 서로를 전우로 여기고 있었다.
억지로 있는 힘, 없는 힘 다 짜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스케줄이라서 그럴 수도 있었다.
여하간에 다 죽어 가는 얼굴이었던 이현종도 이런저런 격려를 주고 받다 보니 조금이나마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원장님, 손.”
“어, 그래요. 고마워요.”
그렇게 셔틀 버스에 오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꽤 커다란 병원이었는데 사태가 사태이다 보니 아예 통으로 코비드 환자만 보고 있었다.
이거 때문에라도 일반 환자에 대한 공백이 발생한 상황인데…….
신현태에게 어쩌고 있냐고 물어보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라는 답만 돌아왔다.
-백신이라도 들어오면…… 그때 지침을 좀 바꿀 수 있을 거야. 아직은 안 돼.
뭐…….
어쩌겠나.
감염내과가 이렇게 말하는데.
심장내과 따위인 이현종이 할 말이 있으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후우…….”
게다가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시간도 별로 없었다.
오죽하면 최근 통화 목록에 이기자 교수밖에 없겠나.
수혁에게조차 전화를 하지 못할 정도로 심신이 지쳐 있다, 이 말이었다.
“교수님, 인계 괜찮을까요?”
그렇게 병동에 와서 한숨을 쉬고 있으려니 밤새 환자를 봤던 것이 분명해 보이는 젊은 의사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과가 뭐라고 했더라.
그래.
재활의학과.
과만 봐도 알 수 있을 텐데, 군의관이었다.
아마도 코비드 환자도 재활시킬 수 있을 거란 군 당국의 판단이 있었던 거 같은데…….
안타깝게도 재활의학과는 이런 중환자를 보지 않는 과였다.
“어, 그러죠.”
“네. 환자분은…….”
“네네. 별거 없고……. 이분은……. DNR 받은 거죠?”
“네. 그렇습니다. POLST(Practitioner Orders for Life Sus taining, DNR의 다른 표현)……. 가망이…….”
“그럴 수 있지.”
인계는 꽤 덤덤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중환자 위주로 이루어져 있는 병동이다 보니 DNR을 받은 환자도 많았고, 심지어 밤새 돌아가신 분들도 있었다.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 수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았다.
제아무리 대학 병원에 있는 이현종이라지만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건 처음 볼 지경이었다.
정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처음 왔을 땐 살짝 무서웠을 정도였다.
“또?”
“3호실, 5호실 환자분 돌아가셨습니다.”
“결국, 못 버티셨네. 보호자분한테 어제 미리 연락드리길 잘했네. 임종은 지키셨고요?”
“아, 네. 뭐…….”
하지만 이젠 익숙해졌다.
의사가 되어 가지고 사람 죽는 데 익숙해진다는 게 온당한 표현일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도 그러한지, CCTV 화면 쪽을 힐끔거렸다.
보호자가 임종을 지켰다는 게 진짜 그 곁을 지켰다는 것이 아니라 화면 너머에서 지켜봤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랬다.
마지막 가는 길에서조차 코비드 환자는 격리 대상이었다.
아니, 죽어서도 그랬다.
“좋아요. 고생했네. 가서 쉬셔야지.”
“아, 네. 그…….”
“응?”
“이번 주가 끝이시라고…….”
“아, 네. 이제 사실 우리 병원도 완전히 코비드 병동이 돌아가고 있어서 가서 도와야지.”
“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무슨. 많이 늘었어요. 노력 많이 했지, 선생님도.”
하여간 재활의학과 전문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급히 병동을 빠져나갔다.
감사는 감사고 쌓인 피로는 풀어야 살 거 같아서 그랬다.
어차피 퇴근해 봐야 숙소로밖에 못 가고, 그 안에 갇혀 지내다시피 해야 되지만 여하간에 그거라도 어딘가 싶을 터였다.
이현종은 그렇게 도망치듯 퇴근하는 재활의학과 군의관을 바라보다가 이내 환자 목록을 돌아보았다.
‘일단 회진은 좀 있다가 돌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인계받은 환자를 다시 한번 살폈다.
많이 배웠고 또 많이 늘긴 했지만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
내과라는 과를 전공하기 위해 보내야 하는 수년 간의 세월은 다른 과 출신이 고작 몇 주 만에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이전 순번 의사가 내과 전문의였다고 해도 다시 살피긴 했을 터였다.
하여간, 그렇게 보고 있으려니 전화가 울렸다.
“아, 교수님. 저 응급실입니다.”
“네네. 뭐 연락 온 거 있어요?”
“네. 교수님. 근데 이게 좀…….”
“왜요?”
“코비드 환자 밀접 접촉력이 있고, 또 양성이 나왔다고는 하는데……. 환자 증상이 너무 이상해서요. 혹 다른 병이 병발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병발이라.”
같이 걸렸다는 걸 의미했다.
이현종은 흐음 소리와 함께, 머리를 굴렸다.
‘가능한 일이지.’
지금 코비드가 번져 나가는 속도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우연히 같은 시기에 전혀 다른 병이 생길 만한 가능성이 없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터였다.
하지만…….
인체는 그렇게 간단하게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드물 수밖에 없어.’
병원균끼리도 경쟁을 하지 않나.
다른 질환들도 그랬다.
“내려가지. 어차피 병동은 지금 안정적이라.”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 줘요.”
“네!”
이현종은 그런 생각을 품고서 병동을 빠져나왔다.
당부의 말을 잊지는 않았다.
-형! 봉사도 좋고 다 좋은데! 거기 태화가 아니라는 것만 늘 생각해! 거기서도 지랄하면 안 돼!
-아빠! 진짜로요. 웃지 말고!
이게 다 신현태 그리고 수혁 때문에 하는 짓이었다.
‘내가…… 어? 법 없이도 살 사람인데.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 거야?’
아니, 둘만 그랬으면 지금쯤 실수를 범하고도 남았을 텐데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가서 쪽팔리는 짓 하기만 해 봐, 아주. 뉴스 몇 번 난 거 알지? 계속 그렇게만 하라고. 좋게좋게.
이기자는 숫제 전화 도중에도, 그러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당부를 하고 있었다.
‘거참……. 나 같은 인격자가 또 어딨다고.’
해서 이현종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여러 번 생각한 후에 내뱉고 있었다.
어찌 보면 그게 더 힘들어서 떠나고픈 마음이 굴뚝같나 싶기도 했다.
“옷 입으셔야 합니다.”
“음. 네.”
그렇게 도착한 응급실은 언제나 그렇듯 전쟁터였다.
언제 어떤 환자가 올지 모르니만큼 의료진 전원은 방호복을 입은 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고 있었다.
“휴.”
이현종도 전투복을 입고서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