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18화 (1,018/1,303)

1018화 그럼에도 여전히 다른 질환도 있다 (3)

아예 다른 계통의 질환.

감염이 아니라 자가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질환임을 말했다.

하나는 외부에서 병원균이 침입해서 발생한 질환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의 면역 시스템의 에러 때문에 발생하게 되는 질환이니 만큼 그 치료는 완전히 정반대가 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럼 이 두 가지 질환을 구분하는 것도 당연히 쉬워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아쉽게도 의학이라는 건 그렇게 딱딱 갈라져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군……. 확실히 데이터는 그렇게 말해.’

[네, 그리고 데이터는 거짓말하지 않는 법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뒤집을 만한 가설이나 이론이 있을 경우에는 다른 경우의 수를 고려해 봐야 하겠지만…….]

‘아니, 그럴 거 같진 않아. 이건 그냥 점상 출혈의……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 그냥 일련의 과정을 보이는 거야.’

[그렇습니다. 반박의 여지는, 현재로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수혁은 레벨D 방호복, 그러니까 하얀 비닐 포대기를 뒤집어 쓴 채로 무릎까지 꿇고는 환자를 살피고 있었다.

김인수는 이따 일어날 때 반드시 끌어안아 올려 줘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동시에 수혁이 뚫어져라 보고 있는 손 쪽을 바라보았다.

‘음…….’

언제나 그렇다고는 하기 싫었다.

실제로 군의관 때도 쉬지 않고 논문 쓰고 환자 보고 또 공부해 온 사람이니 만큼…….

거기에 더해 여기 들어와서는 정말이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사람이니 만큼 간혹 수혁이 아직 말없이, 그저 행동만으로 짚어 나갈 때도 ‘아, 저게 저래서 저러는 거구만’ 할 때가 있었다.

‘1도 모르겠다…… 지금은…….’

하지만 대개는 이런 상황이었다.

대체 수혁이 뭘 보고 있는 건지조차 감이 안 왔다.

저건 그냥 손바닥 아닌가?

‘헬스하면서 생긴 굳은살…… 저거 보는 건가?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우리 교수님이 그렇게 호들갑 떠는 분이 아닌데…….’

암만 봐도 자기 손바닥하고의 차이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아까부터 계속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 보고 있음에도 그랬다.

혹 김이 서려서 그런가 싶어서 방호복에 달린 투명 플라스틱을 박박 문대어 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어어, 선생님. 그러다 부서져요.”

“아, 네. 죄송합니다.”

괜히 한 소리 듣기만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방호복이라는 게 다 일회용으로 만들어져 있다 보니 내구성이랄 것도 없어서 그랬다.

하지 말라는 짓을 하게 되면 보통은 방호복이 찢어지기 마련이었다.

“환자분 죄송하지만 옷을 좀 더 벗어 보시겠습니까?”

“네? 아…… 옷이요?”

보통 이쯤되면 아마 수혁이 뻘짓거리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좋을 터였다.

사실 대학 병원 교수라 해도 사람은 사람이지 않나.

다들 한계라는 것이 있다, 이 말이었다.

실수도 하고, 이상한 데에 꽂힐 때는 인턴조차 하지 않을 만한 실수도 하기 마련이었다.

애초에 그런 것을 막기 위해 팀 단위로 움직이는 것이기도 했고.

하지만 수혁은…….

달랐다.

“환자분, 벗으세요.”

“그…….”

김인수는 이번에도 뭔가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아직 자신이 모르고 있을 뿐, 이미 수혁의 추론은 정답에 도달해 있을 거란 확신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환자 입장에서는 좀 황당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좀 무례하기까지 해 보이는 요구를 당당히 할 수 있었다.

‘그…… 벗으라니까 벗는데…….’

결과적으로 환자는 금세 환자복을 벗게 되었다.

문명인이 남들 앞에서 신체적인 위협 없이 옷을 벗는 경우가 없음을 감안하면 매우 이상한 일인데…….

병원이라는 곳이 좀 그랬다.

아무래도 의사가 와서 뭘 하라고 하면 환자 입장에서는 안 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한 실험에서는 의사가 코끼리 돌기를 시켜도, 오리걸음을 시켜도 환자들은 한숨과 함께 하긴 하더라는 결론을 본 적이 있지 않나.

“흐음.”

하여간, 그렇게 속옷 하나만 남기고 옷을 벗은 환자를 수혁은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매의 눈을 하고서였는데 아쉽게도 플라스틱 판대기 때문에 정작 환자는 그의 눈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냥 비닐 포대기 쓴 사람이 이리저리 살핀다는 느낌만 받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좀 없어 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는데…….

수혁이나 바루다가 들으면 퍽 우울할 만한 순간이었다.

‘과연…… 다리에는 이미 반상출혈이 있군.’

[네, 미세하지만 있습니다. 아…… 여기. 우측 허벅지 보입니까?]

‘보여. 여긴 꽤 진행했네. 고리형 홍반에 반상출혈까지 동반이 되어 있어.’

[네, 코비드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소견입니다.]

‘그렇지. 코비드가 아닐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데…….’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고, 소견 또한 다른 것을 가리키기 시작한 마당임에도 불구하고 수혁은 아니란 확신을 갖지는 못했다.

왜냐.

코비드는 완전히 새로운 질환이기에 그랬다.

실제로 자잘한 변이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지 않나.

이러한 점핑에 가까운 변이가 없으리라고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칼 가져와 봐요.”

“어…… 칼이요?”

때문에 뭐든지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하는 시점이었다.

수혁은 뒤를 돌아보고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간호사 중 하나가 이게 무슨 말이냐는 얼굴로 나머지를 돌아보았다.

‘상식적으로 갑자기 칼이라니? 누구라도 좀 말려 봐……!’

센터는 지금 평소보다 훨씬 과중한 업무가 부여된 상황이었다.

각지에서 발생하는 코비드 중증 환자를 받고 있으니 당연했다.

그래서 다른 부서에서 간호 인력을 우선 빼 왔는데 그래서 발생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뭐 해요?”

“칼 드려요.”

“어…….”

“아, 다른 부서구만. 어디야. 피부과? 그러니까 이러지.”

“피부과는 아직 교수님의 위엄을 모르는구만…….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어……?”

다른 의료진들이 그를 타박하면서, 칼을 찾아 건네주었다.

말은 칼만 했지만 보통 이럴 땐 조직검사를 나가기 마련이기에 슬라이드도 들고 왔다.

검체 통이나 기타 장구들도 포함했다.

“좋아. 흠.”

수혁은 그렇게 칼을 전달 받고는, 얼떨떨한 얼굴이 된 환자를 돌아보았다.

‘무섭다……. 너무 무서워!’

환자는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병원 갔다가 돌연 이리로 끌려온 것도 무서운 일인데…….

비닐 포대 입은 사람들에게 발가벗은 채로 둘러싸이지 않았나.

심지어 선두에 선 놈은 메스를 들고 좋다고 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허벅지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던 놈이기도 했다.

“환자분은 아무래도 코비드가 아닐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직 검사를 해 보고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

거기에 더해 코비드 병동에 들어온 마당인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리까지?

이게 뭔 소리인가 싶었지만, 하여간, 아까보다는 좀 나았다.

영문도 모르고 칼에 베이는 것보다는 상대가 그래도 뭔가 근거를 제시하려는 성의를 보이지 않았나.

진료 스트레스에 단체로 돌아 버렸나 싶었던 순간은 찰나에 넘어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눈앞의 의사는 칼이 아니라 주사기를 들고 있었다.

“따끔합니다. 따끔.”

“으읏.”

그러곤 망설임 없이 허벅지 근처에 주사를 놓았다.

그제야 알았다.

자기 허벅지에 좀 이상해 보이는 병변이 생겼다는 것을.

‘아…… 저게……. 저게 이상하다 이건가? 설마 암 같은 건 아니겠지……?’

딱 봐도 좀 수상쩍어 보이는 병변이었는데, 과연 수혁은 마취를 하고 나서 그 병변을 칼로 포를 떴다.

그 솜씨가 문외한이 보기에도 대단해서 순간 숨을 참았다.

다른 의료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거 바로 보러 가죠.”

정작 수혁만 별다른 놀라움 없이 포로 뜬 피부 조직을 들고 곧장 병리과로 향했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워낙 많은 부탁을 받는 과 특유의 피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놓고 가세요.

놓고 가라 좀.

이런 감정이 잔뜩 느껴지는 말투였다.

나중에 해 주면 되는데 왜 지금 와서 지랄이냐, 이런 말투이기도 했다.

“아, 저 이수혁입니다.”

허나 수혁이 그냥 물러나면 수혁이겠나.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아.”

그리고 병리과에서도 이미 포기한 지 오래였다.

바로 딸각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수혁은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안으로 당당히 들어섰다.

그러곤 너무도 자연스럽게 현미경실로 들어갔다.

“아, 안녕하세요, 교수님.”

“네네. 고생이 많습니다.”

심지어 안에 있던 병리과 레지던트들도 그냥 그런갑다 하면서 인사나 하고 있었다.

시니어 교수 중에는 대체 병리과의 미래가 어디로 가려고 한낱 새파랗게 어린놈한테 휘둘리냐는 불만을 품은 사람도 있긴 있었지만…….

이미 과장부터가 수혁의 신성한 사진을 이용해 상을 타는 등의 기행을 저지르고 있는 마당인지라 그 누구도 이러한 짓을 바로 잡아 줄 수는 없는 상황에 이른 지 오래였다.

“좋아.”

수혁은 병리과 도움을 받아 슬라이드를 제작한 후,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커다란 화면에 방금 따온 조직이 떴다.

그걸 보면서 수혁은 실시간으로 판독을 진행했다.

“혈관 주위에 세포 침윤이 있어. 호산구가…… 특징적이로군……. 아까 혈액검사에서도 호산구가 증가해 있었고…….”

[반상출혈이 있습니다. 아마도……. 전신으로 번져 나가겠죠.]

“그렇다면 다발성 혈관염을 동반한 호산구성 육아종증……. 이게 답이 되겠어. 확실히 이 질환도 호흡곤란이나 고열을 동반할 수 있지. 그러고 보니 사진도 그렇네.”

바루다의 도움을 받았지만, 남들이 볼 때는 알 게 뭐란 말인가.

그냥 천재 의사가 병리과 쳐들어와서 슬라이드 보다가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그냥 다 해 먹는 것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미친…….’

‘나도 내과 할걸…….’

‘병리과……. 우리 과 영역을 박살 내 버리시네…….’

특히 병리과 의사들에게는 더더욱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병리과 진단이라는 것이 임상적인 소견과 더불어서 조직을 들여다보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아무래도 임상 의사가 병리과 지식까지 총망라하는 것이었다.

병리과적인 지식이 워낙에 방대하다 보니 그냥 망상일 뿐이어야 할 텐데…….

그걸 눈 앞에서 밥 먹듯이 해내는 놈이 있다 보니 입이 떡 벌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갈까.”

아무튼, 수혁은 그렇게 진단을 바로 내린 후 다시 병동으로 돌아갔다.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밖에서 안에서 킵하는 의료진들에게 지시를 내릴 따름이었다.

“환자 진단명은 코비드가 아니라……. 다발성 혈관염을 동반한 호산구성 육아종증입니다. 일선의 의료진들이 아무래도 코비드를 염두에 두고 있다 보면 이런 식의 착오가 발생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앞으로는 아무리 임상적으로 강력하게 의심이 된다 해도 검사 결과 음성이 나오면 우선 의증 병동에서 격리 조치하면서 보다 면밀한 검사를 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단 이 환자 같은 경우엔 안에서 감염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으니 지금 당장 의증 병동으로 옮기고 PCR 주기적으로 확인하겠습니다. 아, 치료는……. 3일간 스테로이드 펄스 요법을 쓰겠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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