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16화 (1,016/1,303)

1016화 그럼에도 여전히 다른 질환도 있다 (1)

팬데믹.

지난 몇 년간 묵시록의 4기사 중 백기사는 완전히 정복했다고 떠들어 대던 인류의 자만심에 경종을 울리려는 듯 중국 우한에서 발호한 폐렴은 이제 전 세계로 퍼져 나가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있었다.

그나마 의료 체계가 잘 잡혀 있는 국가들, 그러니까 대표적으로 대한민국을 비롯한 의료 선진국들에서는 대규모 참사가 벌어지지 않았지만…….

원래 재난은 약자부터 치열하게 공격하는 법이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도……. 완전 난리 났네…….”

“아프리카 쪽은 어떻대요?”

“거기도 뭐…… 난리지. 그나마 날씨가 더워서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더 추웠으면 저거…… 러시아만 봐도 난리야, 난리.”

짤막한 휴식 시간에 수혁은 비로소 센터 내 회의실로 돌아와 몸을 누인 상태였다.

말이 회의실이지 사태가 터지고 나서부터는 이미 책상은 치운 지 오래고, 그 자리엔 라꾸라꾸 침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신현태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또한 자리에 누워서 지친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근데 중국은 어떻대요?”

신현태는 병원 진료뿐 아니라 각종 회의에도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민간 병원이 협조를 안 한다는 둥 이상한 말을 해 대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더욱 지친 상황이었다.

‘아니, 대한민국처럼 공공 의료 기관의 역할을 민간 의료 기관이 원래부터 하고 있는 나라가 어디 있다고…….’

그 기관의 장인 신현태로서는 애초부터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도 그러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뭘 하다가도 자꾸만 억울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물론 그럼에도 수혁의 질문에는 답을 해 주었다.

“알 수가 없어. 여기저기 대규모 통제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난 사실 이때까지 중국이 공산주의니 어쩌니 해도 체감은 안 됐거든? 그냥 뭐……. 말로만 공산주의지 사실상 자본주의국가 아닌가 했는데……. 공산당 무섭더라. 거의 흘러나오는 정보가 없어.”

“제일 처음, 대규모로 겪은 사람들이 뭐라도 알려 주면 훨씬 수월할 텐데요.”

“그나마…… 뭐…… 케이스 리포트 형식으로는 교류가 되는데……. 전체적인 통계를 알 수가 없으니 이거야 원…….”

말하다 보니까 또다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영화 같은 거 보면 왜 공통의 적이 나오면 원래 싸우던 사람들도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나마 협력해서 적과 싸우고, 으쌰으쌰 하는 과정 속에 우정도 싹트고 해서 대충 해피엔딩이 되지 않던가?

요즈음 신현태는 영화가 왜 영화인지 실감하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그냥 공통된 적은 적이고, 원래 사이가 안 좋던 사람들은 그 때문에 더 팍팍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수혁에게는 말을 안 했지만, 신현태는 사실 이후도 걱정이었다.

글로벌이니 세계화니 떠들어 대던 각국 정상들이 이 대규모 재난을 통해 고립주의로 환원하고 있었다.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사람들이 극단적인 지도자를 원하게 된다던데…….’

수혁이야 너무 어렸지만, 신현태만 해도 세계 1차 대전 및 2차 대전이 그리고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이 그리 먼 과거가 아니지 않나.

아니, 베트남 전쟁은 신현태가 태어나고 일어난 전쟁이었다.

아무래도 당시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지난 전쟁에 대한 교육을 강도 높게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이 말인데…….

‘이러다 전쟁 나는 건 아니겠지?’

설마.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 교훈을 잊었을까 싶었지만.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 사이의 기간이 어마어마하게 짧고, 종래에는 그 기간을 그저 ‘전간기’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과한 걱정은 아닐 터였다.

“음…… 거참……. 다 같이 노력하면 좋을 텐데요.”

그런 걱정을 품고 있다 보니 옆에서 속 편한 소리나 해 대고 있는 수혁이 얼마나 아기처럼 보이겠나.

아니, 이렇게 보니까 실제로 좀 그렇기도 했다.

말이 부센터장이지 기껏해야 32살이지 않나.

원체 동안이다 보니 그냥 보면 20대 중후반으로 보였다.

사실 레지던트들이 그런 편이긴 했다.

밖에 나갈 일도 없고, 사회생활이라고 해 봐야 학생 시절의 연장인 느낌이라 그랬다.

물론 워낙에 고생을 하다 보니 머리도 좀 빠지고, 뱃살도 좀 나오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 수혁은 그런 게 아니다 보니 애 같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자식.”

신현태는 손을 뻗어 옆 침대에 누워서 빈둥대고 있는 수혁의 머리를 헝클었다.

상당히 여유로워 보이는 광경인데, 이 둘의 신분과 몰골을 보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일단 신현태는 원장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어제 그리고 그제 집에 가지 못했다.

수혁?

수혁은 처음부터 여기가 집이었던 것처럼 살고 있었다.

“아 왜요.”

“다 너 같으면 얼마나 좋겠냐. 진짜.”

신현태는 이제 또 정장 입고 나가서 의미 없는 회의에 참석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려 오는 느낌이었다.

아니,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 사태를 타개할 생각이 없겠나?

다만 그 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 다를 뿐이었다.

그중 악질도 있었다.

이 사태를 이용해 인지도를 얻기 원하는 그런 자들도…….

드륵

골 아픈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문이 열렸다.

빼꼼히 침입한 얼굴은 김인수의 것이었다.

한동안 코비드를 앓고 나서 그런가 유독 수척해 보였다.

좀 쉬라고 해도 말은 안 들었다.

다들 고생하는데 어찌 그러냐면서…….

“교수님.”

“어, 어어.”

신현태는 누워서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지만, 수혁은 벌써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김인수가 대체 여길 왜 들어왔겠나.

오후 2시에 자려고?

아닐 터였다.

적어도 펠로우급은 모두 순환 근무를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 순환 근무지 2교대 또는 1.5교대라는 족보에도 없는 교대 근무긴 하지만…….

수혁에 비하면 다들 훨씬 많은 수면 시간을 보장받고 있었다.

[뒤지겠네, 진짜…….]

‘좀만 참자. 참자고.’

[하아.]

‘흐아아.’

간신히 몸을 일으킨 수혁을 보면서, 김인수가 말했다.

“교수님, 아까 일반 치료 센터에서 연락 와서 받은 환자입니다. 선별 검사소에서는 음성이 뜨긴 했는데……. 고열이 있고, 엑스레이상 양측 폐에 간질성 폐렴 소견이 있습니다. 접촉력도 있고요.”

“근데 음성이 나왔어?”

“네. 일단 코비드 의심 환자로 격리 조치하고……. 이쪽으로 보낸다고 하길래 받았습니다.”

“흐음.”

보통 누워 있다가 일어났으면 어느 정도 예열 시간이 주어져야 하겠지만.

사람이 마구잡이로 죽어 나가고 있는데 뭔 놈의 예열은 예열이란 말인가.

수혁은 곧장 고심에 들어갔다.

당연하게도 발걸음은 자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마침 전용 엘리베이터를 통해 음압 이송 침대가 하나 내리고 있었다.

“저분이신가?”

“네.”

“흐으음…….”

바로 들어가거나 하진 않았다.

수혁은 아무래도 다리가 불편하다 보니 옷 갈아입는 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독 불편하기에 그랬다.

게다가, 수혁은 다른 곳에서 걸려 오는 진료 문의 전화에 답해야 할 의무도 있었다.

이미 진료 지침이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른 상황이다 보니 전보다는 문의가 훨씬 줄어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어려운 케이스는 얼마든지 있었다.

‘PCR 음성이라……?’

[검사 결과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긴 합니다.]

‘그렇긴 하지. 그런긴 한데…….’

PCR.

처음에는 어마어마한 에러가 있긴 했더랬다.

아니, 에러라기보다는…….

굉장히 오래 걸리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이젠 개선에 개선을 거듭한 결과, 단 몇 시간이면 결과를 받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신현태야 불만이 많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은 이 미증유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끌어다 쓰고 있는 덕이었다.

‘뭐……. 검사자 오류였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

[그러니까요.]

‘근데 내가 선별 검사소 가 봤을 때 딱히 그런 거 같진 않았는데.’

[수혁. 우리가 가 본 검사소는 태화 의료원 검사소밖에 없지 않습니까? 여기는 평소에도 모든 것을 FM대로 하려고 애쓰는 곳입니다.]

‘하긴……. 그것도 그렇긴 하네. 하지만 지원자들이 다 의료진일 텐데…….’

의료진이라는 건, 그게 어떤 식이 되었건 간에 사람의 생명과 연관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란 얘기였다.

들어갈 때는 뭐 별생각이 없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관련된 일을 할 때만큼은 정신 똑바로 차리게 된다 이 말이었다.

물론 어느 분야에서건 간에 일부 예외가 있긴 하지만…….

글쎄.

본인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또 원래 다니던 직장에서의 커리어를 포기하면서 선별 진료소에 지원한 인원 중에 그럴 사람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수혁은 일단 의학적인 추론을 이어 나갔다.

‘확실히 일단 그것부터 의심을 해 보는 것이 좋겠군.’

[네. 다시 검사 나가 보죠. 병동에서요.]

‘오케이. 뭐 어차피 우리 병동 오면 한 번에 나가니까…….’

우선 검사는 해 봐야 할 터였다.

기왕 하는 김에 다른 검사도 해 보고, 또 이미 나간 검사가 있다면 확인도 해 봐야 할 터였다.

“김인수 선생님. 일단 PCR 검사 나가 보죠. 그리고 다른 피검사도 다시 나가 보겠습니다.”

“아, 네! 교수님.”

수혁의 말에 김인수는 부리나케 달렸다.

그러곤 익숙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옷을 갈아입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도 벌써 간호사 몇몇이 레벨D 방호복을 껴입고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검사는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사이 수혁은 이전에 했던 검사를 검토했다.

‘백혈구가 만 이상으로 증가해 있고……. 그중에서도 호산구가 꽤 증가해 있네.’

[호산구라……. 일반적인 코비드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소견이긴 합니다.]

‘그렇지? 하지만 그 외에는 비슷해. 혈소판도 떨어져 있고 d-dimer도 증가해 있고……. CRP야 뭐 당연하고.’

[그렇군요. 무엇보다도 이 엑스레이 사진은 굉장히 코비드와 흡사합니다. 사전 정보 없이 봤다면 저라도 코비드부터 의심했을 겁니다.]

‘응, 확실히……. 근데 말이지.’

수혁은 아까 음압 카트에 실려 들어온 환자 모습을 떠올렸다.

정확한 나이는 듣지 못했지만…….

딱 봐도 젊어 보였다.

아마도 30대 중반쯤?

그래, 젊은 환자들은 일반적으로 폐 상태가 엉망이어도 잘 견디는 편이긴 했다.

‘아까 그 환자 호흡이 너무 멀쩡해 보이지 않았어?’

[네? 멀쩡하진 않았는데요? 호흡 곤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비드라고 가정을 해 보자고. 코비드는 엑스레이 변화보다 더 급격한 호흡 곤란을 수반하지. 이 정도로 사진이 안 좋다면……. 사실 이미 삽관을 했어야 했을 거야.’

[아……. 아? 그렇긴 합니다. 확실히 데이터는 그렇게 말합니다.]

바루다는 수혁의 말에 환자 사진을 그간 쌓아 둔 데이터베이스에 돌렸다.

정확한 수치가 띡 하고 출력되었다.

95.4% 확률로 삽관이 필요하다고.

허나 지금 환자는 약간 숨이 차 보이긴 했을지언정 룸에어에서조차 숨이 넘어가진 않고 있었다.

‘뭐……. 일단은 검사 결과를 기다려 보자고.’

[네, 그게 좋겠군요.]

‘꽝 나오면 들어간다?’

[하……. 그러다 수혁 걸리면 어쩌려고요.]

‘방호복 입잖아. 맨날 저기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도 멀쩡한데.’

[수혁은 종이 인간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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