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9화 도와달라고? (1)
“어, 웬일이야?”
얘가 어디를 갔더라.
아, 그래. 이비인후과.
그래, 그랬지.
애가 꽤 괜찮았더랬다.
일단 가난한 집 애라고 무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티 나지 않게 모임에 돈을 안 내도 되게 해 주는 배려가 있었다.
[그럼 꽤 괜찮은 게 아니라 은혜 갚아야 하는 대상이지 않습니까?]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그렇네.’
[가만 보면 꽤 뻔뻔한 구석이 있어요?]
‘그때는 어려서 그랬어. 나 살기 바쁘기도 했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괜찮은 놈이라 수혁은 뭐라도 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굳히며 답을 기다렸다.
“어어. 수혁아. 갑자기 전화해서 미안해.”
“아냐, 괜찮아. 근데 웬일?”
“아……. 코비드 때문에. 알지? 군의관들이랑 공보의들 차출되어서 코비드 진료 기관으로 배치되고 있는 거……?”
“아…….”
그랬나.
사실 정책과 조금이라도 관련되어있는 건 수혁의 관심사가 아니다 보니 명확하진 않았다.
다만 현직 군의관이 그렇다면 그런 거 아니겠나?
확실히 지금 폭발하고 있는 환자를 민간 의원에서 다 받아 주기는 어렵긴 할 터였다.
제아무리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고 해도, 감염력이 보통이 아닌 질환이다 보니 감염 억제가 쉽지가 않았다.
그나마 일반 성인, 그러니까 건강한 사람들에서는 치명률이 낮지만 노인들 그중에서도 요양 병원에 있는 이들에게는 치명적이기까지 했다.
그걸 어찌 원래 있던 의료진만으로 커버할 수 있겠나.
당연히 의협에서도 민간 의사들에게 자원봉사를 요청하고 있긴 했지만 기존에 직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단 2주라도 다른 병원에 가서 진료하는 게 쉬운 일일 수 없는 일이었다.
‘하긴……. 군의관이나 공보의로 채우기가 쉽긴 하겠네.’
[그렇죠. 수혁이 안 가 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주변 말을 들어보면 까라면 까야 하는 존재들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수혁이 찰나의 순간에 이런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상대가 말을 이었다.
“문제는……. 하……. 나 이비인후과잖아. 마이너 과잖아. 그치? 외과고?”
“그렇지. 이비인후과는 마이너 서저리 과지.”
로컬 의원.
그러니까 동네 이비인후과를 주로 접하는 이들에게는 일단 이비인후과가 외과라는 말 자체가 이해가 안 갈 터였다.
코 빨아 주고 귀 봐주고, 목에 칙칙 해 주는 과라는 인식이 강할 테니.
하지만 대학 병원, 그중에서도 태화처럼 큰 병원 이비인후과는 그냥 외과였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또는 다음 날 새벽까지 수술하는 일도 허다했다.
다만 다루는 부위가 귀, 코, 목과 같이 감각에 관련된 곳이고 감기의 최종 합병증인 중이염이나 축농증을 수술하는 과다 보니 밖에서는 감기 보는 과로 인식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해 로컬 경험이 없는 이비인후과 군의관은 외과 의사란 얘기였다.
“근데……. 군에서는 나를 호흡기 의사로 분류했어…….”
“아……. 그럼 지금?”
좋지 않았다.
이건 절대로 좋지 않았다.
이비인후과 의사가 호흡기……?
물론 뭐……. 일부 볼 수는 있겠지만…….
“너 엑스레이는 볼 줄 알아?”
“알겠냐? 흉부 엑스레이라니……. 폐렴 환자 봐 본 적도 없어.”
“그럼 못 본다고 말하지.”
“아……. 너 미필이지.”
“묘하게 기분이 좀 상한 거 같다?”
“상했어. 근데 뭐, 어쩌겠냐. 겪어 보지 않은걸……. 아무튼, 위에서 정해진 일을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어…….”
“그렇군. 그래서?”
흉부 엑스레이조차 보지 못하는…….
아니, 아예 페렴 환자를 봐 본 적이 없는 사람이 호흡기 의사로 분류되었다니.
이건 신현태에게라도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어린양부터 어떻게 해 주어야만 했다.
“그래도 이게……. 우리 원장님, 그러니까 중령님이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 일반 환자를 보기로 하고 왔거든? 일반 병동 환자지, 그러니까.”
“아, 중환자는 아냐?”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럼 그렇지 싶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
이비인후과 의사한테 폐렴으로 인해 중환자실까지 간 환자를 보게 하겠나?
가뜩이나 인력 없이 불려 간 마당이니만큼 백업 인력도 없을 텐데?
“어. 근데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벤틸레이터 달고 있으면 중환자……. 아니냐?”
“아?”
아니, 아니었다.
벤틸레이터란 즉 인공호흡기를 뜻하는데 그걸 차고 있다는 건 중환자란 뜻이었다.
원래 차고 있었다면 또 모를…….
[아니죠. 내과 의사 기준으로 생각하지 마십쇼. 이비인후과 의사에게는 그 기저질환 자체가 중환 질환입니다.]
‘아, 그렇지. 그렇네.’
아니, 대체 이비인후과를 왜 중환자실에 넣었지?
가서 소리 들려요? 하고 물을 것도 아니고…….
애초에 그런 말에 답할 수 있으면 중환자가 아니지 않나.
그보다 청력을 고려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중환자가 아니란 뜻이기도 했다.
“중환자 맞아. 그런데?”
“역시……. 이 X발…….”
상대는 욕설을 내뱉고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
“나 진짜 하나도 모르겠는데……. 사진 하나만 봐줄래?”
“어어.”
“뭔가 좀 일이 난 거 같아서.”
“어, 그래.”
“톡으로 보냈어.”
“어……. 아직 받는 중.”
하여간 그러면서 환자 얘기를 꺼냈다.
제대로 된 노티는 아니었다.
그냥 사진이 딸랑 건너오고 있었다.
그마저도 화질이 그리 좋지 못했다.
화면 띄워 놓고 찍은 모양이었다.
‘별거 아니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우리 병원 출신 마이너 과라면……. 온실 속 화초죠.]
바루다야 내과 말고는 의사가 아니라는 다소 극단적인 이론의 신봉자니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마이너 과가 중환을 안 보는 게 시스템적으로 맞는 일이었다.
애초에 그런 걸 안 배우는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처치하게 두는 게 옳을 리가 없지 않겠나?
물론 의학이 발전할 때 시신을 쌓고 발전한다고는 하지만, 그 시신이라는 게 쓸데없는 시신을 칭하는 건 아니었다.
더욱이 이미 충분한 지식이 쌓인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더더욱 그랬다.
물론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있듯이 이런 다소 특수한 상황에서는 그런 식의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점이……. 약점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었다.
“음?”
하여간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수혁은, 그러니까 별거였다면 아무리 마이너 과 의사라 해도 이것보다는 훨씬 호들갑을 떨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수혁은 사진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응응. 봤지?”
“어. 봤어. 너…….”
“이거 폐렴이지?”
“응?”
폐렴……. 이라고?
이 자식 이거 학생인가?
수혁은 저도 모르게 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뻔히 알고 있는 이름이 떠 있었다.
동기가 맞았다.
나름 4년 동안 수련받고 전문의까지 따고 이제 군의관 1년 차로 간 동기.
“그 오른쪽에 원래 까매야 하는 부분이 하얘 가지고. 폐렴…… 맞지? 이게 상태가 좀 심한가? 룸에서 산소 포화도가 자꾸 떨어져. 열은 그렇게 높진 않은데.”
“어……. 어, 폐렴도 있지. 근데 진짜 문제는 그게 아냐…….”
“응? 폐렴 말고 뭐가……. 아, 심장이 커졌나?”
“아니, 심장도……. 약간 크긴 한데, 환자 나이가 좀 있지? 고혈압이 있거나 할 거 같은데.”
“고혈압? 아……. 응, 보니까 있네.”
“하.”
원래 마이너는 이런 건가.
수혁은 잠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속으로 친구 녀석 멱살이라도 잡아 흔드는 상상을 하면서였다.
[은혜……. 은혜 갚는다고 생각하시죠.]
그때 나선 것이 바루다였다.
그래, 그렇지.
은혜를 입었지.
[그리고 내과 의사가 아닌 이상 이런 거 모른다고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근데 이런 환자를 봐야 하잖아?’
[어쩌겠습니까? 전화하라고 하세요.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아니, 아니다. 이 지경이면 그냥 신환 오면 전화하라고 해요.]
‘그래…….’
[일단은 이 환자부터 어떻게 하시고.]
‘어.’
수혁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지금 보면 가운데가 늘어나 있어. 종격동 부위인데……. 이게 그냥 사진이 이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환자 숨차 하고 있어?”
“어? 어어. 산소 주고 나서는 좀 나아졌는데.”
“아니, 그거야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지.”
“그래? 우리 과 쪽 문제면 안 그러던데.”
“너네는 들어가는 길이 아예 막히니까 그렇고. 폐 문제면 안 그래. 아무튼, 급하거든? 그러니까 일단 CT 좀 찍어 봐.”
“CT?”
“응.”
“어……. 알았어. 그럼 내가. 내가 가야 해서. 전화 이거……. 이거 좀 들어 줄래요? 나 들어가야 해요.”
이제 보니 밖에, 그러니까 음압병동이 들여다보이는 컨트롤 룸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바퀴 굴러가는 소리 또한 들리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꽤 지체되고 있었는데, 다행인 것은 당장 다른 데서 전화가 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해서 수혁은 기왕 기다리게 된 거 잘됐다 하고 아까 들었던 내용, 즉 혈전 가능성 및 이를 예방하기 위한 지침서를 작성해 신현태를 비롯한 의사들에게 날렸다.
“어, 지금 찍었어. 내가 볼 때는 잘 모르겠는데.”
“어. 네가 보는 건 지금부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아, 응. 그래. 그럴게.”
한 가지 더 다행한 것이 있다면, 상대가 주제 파악을 아주 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소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을 들었음에도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잘됐다 여기고 있는 거 같기도 했다.
그럴 만도 했다.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책임만 주어진 상황 아닌가.
그것도 누군가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책임이었다.
“종격동에 공기 차 있어. 기종격동이야. 일단 환자 보호자에게 환자 사망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어……. 어? 아니, 나 오늘 환자 받을 때 그런 얘기가 없었는데?”
“누가 실수했거나 오면서 터진 거 같은데, 아무튼. 잘 들어야 해.”
“어어.”
“종격동염으로 발전할 땐 진짜로 죽어. 그러니까 예방적으로 항생제 쓰고……. 바로 삽관해서……. 너 삽관할 줄 알지?”
“주로 째는 편인데, 할 줄은 알아.”
“그건 잘됐네. 그렇게 하고 일단 중환자실로 넘겨. 혈액 검사한 거 있으면 보내 주고. 내가 추가 지시 사항 알려 줄게.”
“어어.”
상대가 어어 하고 나자, 다시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중간중간 뭐가 잘 안되는지 투덜대는 소리도 들렸는데, 최종적으로 뭐라도 한 모양인지 ‘됐다!’란 말도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수혁은 한숨을 쉬었다.
조금만, 정말이지 조금만 늦었어도 환자 죽었다.
가령 내일…….
아마도 순환 근무를 하고 있을 테니 다른 내과 의사가 봤을 땐 시신으로 마주했을 테지.
다시 말해 죽을 사람이 살았다는 건데, 보통 이렇게 되면 일단은 전화가 끊겨야 정상이었다.
근데 안 끊고 있었다.
[정신없나 보죠.]
‘그래, 그렇겠지?’
해서 이쪽에서 끊으려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하게도 여전히 친구였다.
“수혁아!”
“어.”
“다른 환자도 좀 물어봐도 될까?”
해맑게 묻는 애한테 뭐라고 하겠나.
게다가 방금 케이스를 보아하니…….
이 새끼 이거 얼마나 심각한 환자를 깔고 뭉개고 있을는지 당최 짐작도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