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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1005화 (1,005/1,303)

1005화 시간 벌기 (2)

너무 자화자찬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은 행정력도 그렇거니와 의료 체계 또한 아주 잘 잡혀 있는 나라 중 하나였다.

아니, 뭉뚱그려서 뭐뭐 중에 하나라고 하는 것도 좀 그랬다.

거의 독보적으로 잘 잡혀 있다고 보면 되었다.

누군가는 에이 그럴 리가 있나 할 수도 있을 터였다.

그 어떤 분야라도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 테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해외에 나가서 공무원이랑 일을 해 본 경험이 있다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빨리 일 처리를 해 주는 곳인지 실감할 수 있었을 터였다.

의료?

이거야 뭐 말할 것도 없었다.

양질의 전문의 진료를 별 대기 없이, 그렇게 큰 지출 없이 볼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 한곳이라고 해도 좋았다.

“아니……. 뭐가 이래, 이거?”

“미국……. 왜 저래요?”

“모르겠어. 헨리는 뭐래?”

“난리 났다고 하던데요. 뉴욕에서는 돌아왔대요.”

“어떻게?”

“전용기 빌려다 줘 가지고…….”

“오. 아니, 오 할 때가 아니지.”

신현태는 넘어온 자료를 보다 말고 혀를 내둘렀다.

전용기는 부럽긴 했다.

하지만 나라 꼴은…….

“거리두기 안 한대?”

“하고 있죠. 근데 말을 안 듣는대요. 그리고……. 벌써 싹 번져 버려서요. 의료 인프라 자체가 아예 무너져 버린 느낌이던데…….”

“거참……. 아니, 그래도 뉴욕이면……. 아니지. 뉴욕에…… 사실 커다란 병원이 많이 있지는 않지.”

“그렇죠. 우리랑은 상황이 좀 달라요.”

미국의 의료는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라고 보면 되었다.

말 그대로 비싼 돈을 주면 비싼 진료를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양질의 진료를 볼 수 있다는 건 아니긴 했다.

아마 실제로 병원 진료를 봐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알 텐데……. 기본적으로 일반의 진료부터 봐야 한다는 거부터가 수많은 에러를 수반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그렇다 보니 우수한 병원 대다수가 이용객을 늘리는 방향이 아니라 그냥 소수의 양질의 고객들에게 최대한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대한민국의 대형 병원들은 최대한 많은 이용객에게 최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평소에는 뭐가 더 우월한 것인가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어 왔지만 팬데믹 사태에서는 후자가 압도적으로 우월했다.

“엄청 죽어 나가겠는데…….”

“네. 치명률이 5% 이상이에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경우에는…….”

“백강혁 교수님이 보내 준 자료 토대로 낸 결과지?”

“네. 거긴 n수가 벌써 100만 단위가 훌쩍 넘어가니까요. 근데 그런 걸 어떻게 구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뭐……. 어떻게 하는지 알게 되면 안 되는 거 아닐까? 관심을 아예 갖지 말자.”

“네.”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이전에는 우한 폐렴으로, 지금은 코비드로 불리게 된 바이러스는 사방팔방으로 번져 나가고 있었다.

그중 의료 인프라가 좀 딸리거나 혹은 의료 인프라가 짱짱하지만, 환자 수가 너무 폭발적으로 증가한 나라들은 신현태가 제일 우려했던 상황, 즉 의료 인프라가 무너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사실 방법이 없다고 봐야 했다.

거리를 통제하고 최대한 환자 발생을 줄여야 했다.

백신이니 치료제니 하는 건 아직 요원한 상황인 데다가, 그런 것들이 있다 한들 바이러스 치료에서 최종 선택이란 결국, 대증 치료이기에 그러했다.

그 대증 치료가 가능하려면 의료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그게 다 무너진 상황이다 보니 사망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오르고 있었다.

“일단 우리만 생각을 하자구.”

며칠 만에 수염이 수북이 자란 신현태가 고개를 털고는 입을 열었다.

벌써 환자 보다가 불려가서 회의하고, 환자 보다가 불려가서 회의하는 일정을 보낸 지도 일주일이 훌쩍 지나 버린 지 오래였다.

피곤함이 극에 달했다 이건데…….

그럼에도 쉴 수 없다는 압박에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옆에 놓인 각종 각성제에 힘을 받아서인데……. 상황은 수혁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았다.

“네. 후우.”

신현태가 정책적인 고민까지 하느라 죽기 직전이라면, 수혁은 온전히 환자를 보느라 죽어 나가고 있었다.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은 이미 나왔다.

환자 구분하는 법이나 치료제를 어떻게 쓸지, 스테로이드를 어떻게 할지 등등.

하지만 역시나 바이러스 질환이라는 게 문제였다.

어떤 치료를 해도, 결국, 바이러스와 싸워 이겨야 하는 건 환자 본인이었다.

그 말은 곧 대증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시 말해 상황에 맞춰 싸워야 한다는 얘기였다.

당장 오늘만 해도 췌장염이 온 환자를 진단해 냈고, 폐가 뭉개지면서 바람 찬 환자에게 관도 꼽았다.

인투?

그건 셀 수도 없었다.

“아빠는 괜찮겠죠?”

“아버지? 뭐……. 여기나 거기나 상황은 비슷할걸?”

태화 의료원이 중증 환자 입원 대상 지정 병원이 되어서 그랬다.

이현종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내려가 있었다.

국내에서 환자가 갑자기 늘어난 지역, 대구로.

“그나마 열난다가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네요.”

“그러니까. 조기에 잡았잖아. 안 그랬으면 벌써 우리나라도……. 인프라 무너졌을 수도 있어. 서울이야……. 어지간히 버틴다고 해도 지방은 어려워.”

“그렇죠.”

그곳이 경보에 걸린 건 불과 열흘 전의 일이었다.

갑자기 로컬 의원 중심으로 해서 불명열 환자가 열 명이 넘게 불어난 것을 앱을 통해 알았다.

바로 역학 조사에 돌입했고, 그 결과 코비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랬음에도 접촉자까지 다 하면 격리해야 할 사람이 수백에 달했는데…….

그중 절반에 가까운 이들에서 양성이 나오는 바람에 대구도 난리가 났다.

일단 군 병원 중 국군대구병원이 차출되어 일반인을 받았고, 모자란 자리는 대구의료원 등의 커다란 병원들이 차출되었다.

이현종은 그중에서도 국군대구병원에 있었다.

“지금은 아예 무너진 건 아니죠?”

“응, 그렇다는데……. 사실 알 수 없지. 일단 군인들은 대구 병원 못 쓰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뇌출혈이나 심근경색 같은 질환인 경우엔 일반인들도 예전보단 돌아가야 될 거 같은데.”

“흐음……. 거리두기는…….”

“해야지. 어쩔 수가 없겠어. 대구만의 문제일 리가 없잖아.”

“그렇긴 하죠.”

바이러스에게 눈이 있나?

그냥 번질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어려워지겠지만……. 어쩔 수가 없어. 시간을 벌어야 해. 당장 뉴욕처럼 서울에서 하루 몇만씩 환자가 쏟아진다고 생각해 봐.”

“아찔……한데요?”

지금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환자들만 이송받아서 보고 있는데도 온전한 잠을 반납한 지 꽤 되었는데, 서울에서 몇만이라?

[미친……. 차라리 죽여라.]

바루다마저 기함할 지경이었다.

환자 보는 것이라면 환장하는 놈이 이 난리를 피우고 있으니, 지금 수혁이 얼마나 시달리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을 터였다.

“아, 교수님.”

그때 회의실 문이 열렸다.

말이 회의실이지 반쯤 당직실로 쓰이고 있었다.

애초에 신현태는 앉아 있었지만, 수혁은 갖다 놓은 매트리스에 누워 있던 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안대훈이었다.

가뜩이나 나이 들어 보이는 그는 아예 맛탱이가 가 있었다.

그냥 입고 벗는 것만 해도 힘든 레벨 D 방호복을 하루에도 몇 번씩 걸치고 들어가 환자를 봐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공부도 쉴 수가 없었다.

미지의 질환을 보고 있으니.

심지어 그냥 일반 환자도 아니고 중환자들만 보고 있는 상황이니…….

“어, 대훈아. 너 좀 잤어?”

“네? 아, 네. 인수 형이 교대해 줘서……. 2시간이나 잤습니다.”

“인수 선생님은?”

“죽……. 아니, 쓰러져서 잡니다.”

“그래……. 근데, 왜?”

“영국에서 전화 왔습니다.”

물론 수혁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게 다 학회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해외 초청 연자 시간 때문이었다.

그때 박살 난 스튜어드를 보면서 인상이 깊었는지, 원래 제휴를 맺었던 병원들 외에서도 이런 식의 문의 전화가 오고 있었다.

그중엔 영국도 있었다.

“아, 거기도 박살 났지?”

“네? 아……. 네. 박살 났죠. 뉴욕만큼은 아닙니다만…….”

“하여간, 가야지. 어려운 환자래?”

“네. 아무리 봐도 너무 이상한 경과라고…….”

“그래. 그럼 잠 좀 깨야겠다.”

이상한 경과.

미지의 질환이 이상한 경과를 밟는다는 말을 한다는 건, 사실 되게 희한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저 말은 일반적인 경과가 어떤지 알고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말이지 않나.

-WHO에서는 국내 태화 의료원 이수혁 교수의 지침을 받아들여 코비드의 일반적인 경과에 대해 지침서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훨씬 더 소요되었어야 정상이었다.

일단 발원지라 할 수 있는 중국에서 정보를 통제하고 있어서도 그랬고, 애초에 아직 인류에게 코비드란 여전히 너무나도 낯선 질환이었다.

WHO에서 경과에 대한 지침을 발표할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수혁 덕이라 할 수 있었다.

인류사에 있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이런 말을 하는 건 다소 위험한 일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사태 지나면 우리 아들이 진짜 월드 스타 된다.

이현종은 레벨 D 방호복만 벗으면 이 소리를 해 대고 있었다.

같이 간 이, 즉 김성진은 그의 제자인 데다가 이게 또 맞는 소리 같기도 해서 맞장구만 치고 있었다.

물론 다른 이들이 혹여나 듣지는 않을지 두리번거리긴 했지만…….

“후.”

그 희대의 천재 수혁은 각성제를 벌컥벌컥 마신 후, 화상 회의실로 향했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화면 너머에 있는 이가 입을 열었다.

“아, 닥터 리!”

“네.”

유독 반가워한다 싶을 텐데, 내막을 알고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너머에 있는 이, 닥터 리스턴은 벌써 몇 번이나 수혁에게 도움을 받은 바 있었다.

오늘?

오늘은 유독 더 절실한 날이었다.

‘진짜 하나도 모르겠어……. 어쩌면 다른 질환이 동반되었을 수도 있지……. 망할.’

수혁 또한 흥미가 동한 지 오래였다.

힘든 건 힘든 거고, 새로운 질환은 새로운 질환이지 않겠나.

“어떤 환자죠?”

“네. 일반 발열을 보여서 검사했고……. 자가 격리 중이던 환자입니다. 기저질환으로는 고혈압이 있고 라미프릴과 암로디핀으로 치료 중입니다. 녹내장도 있어서……. 약을 먹고 있고……. 갑자기 동반된 권태감과 노란 가래를 주소로 내원했습니다.”

“병이 진행했군요? 바이털은요?”

“네. 38.4도에 심박수는 84회 혈압은 128에 82였습니다. RR이 32회로 빈호흡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검사 결과는 특별할 것이 없었는데……. 어제부터 보행이 불안정해지는가 싶더니 지금은 복시와 오른팔 감각 변화 및 운동 실조가 보이고 있습니다!”

“신경학적 증상……? 길랑 바레는 아닌가요?”

“아닙니다. 뇌출혈이나 뇌경색도 아니고요.”

“흐음.”

새로운 질환의 미지의 증상.

[각성제 먹길 잘했네.]

‘그러니까 말이다…….’

수혁과 바루다에게도 도전적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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