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6화 월드스타2 (1)
넘어간다고?
비긴 걸로 하자는 얘긴가……?
그래서 이게 뭔 병인데.
아까 못 들었다고…….
이런 식의 웅성거림이 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갑자기 사례 발표를 하다가 툭 끊고 넘어가 버렸으니까.
“폼베 병. acid a-glucosidase 또는 acid maltase 효소의 부족으로 생기는 상염색체 열성 유전 질환입니다. 임상적으로 진단할 때는 피부의 섬유모세포나 근육 조직에서 a-1, 4-glucosidase의 결핍을 확인하시면 되는데……. 의심이 되면 유전자 분석을 통해 확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괜찮을 수 있던 것은 수혁의 부연 설명이 있어서 그랬다.
심지어 이미 이 케이스를 면밀히 살피고 또 그에 그치지 않고 씹어 먹은 바 있던 스튜어드조차 깔 게 없을 정도로 완벽한 설명이었다.
진짜 이 악물고 찾으려 했지만 뭐가 없었다.
‘두고 보자…….’
두고 보자는 놈 중에 별 볼 일 있는 놈 없다는 한국 격언을 모르는 스튜어드는 분을 삭이며 피피티를 넘겼다.
그사이에도 수혁의 설명은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효소의 완전 결핍으로 인해 발생하는 영아기 폼베 병은 예후가 극히 나쁩니다. 하지만 이 아이의 경우엔 발병이 조금 빠르긴 했지만, 임상 양상이 그리 심하지 않았죠. 이러한 경우에는 부분 결핍에 의한 것이기에 효소 대체 요법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 치료만 제때 들어가면 예후가 괜찮은 편입니다.”
역시나 손댈 곳이 전혀 없는 설명이었다.
교과서를 줄줄이 읊고 있나 싶을 정도로…….
‘너……. 심장병 전문……!’
심장 전문이라기보다는 내분비내과의 영역에 있는 내용이었다.
왜냐.
저런 효소의 결핍에 관한 것은 결국, 내분비내과에서 보게 되어 있기에 그랫다.
게다가 잘 들어 보면 알 텐데, 비후성 심근염은 하나의 증상일 뿐 다른 증상 또한 많이 동반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터였다.
허나 스튜어드는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냥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케이스처럼 처음에 진단이 되지 않았던 경우라면……. 그러니까 그냥 베타 차단제만 썼다면 살아남더라도 영구적인 근력 손실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감히 예상컨대 골반의 약화나 안검하수 등이 동반되어 있을 겁니다. 따라서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가 아주 중요한 치료라 할 수 있죠. 모쪼록 오늘 여기 참석하신 분들은 혹 이 비슷한 환자를 보실 때, 반드시 폼베 병을 기억하셔서 절대로 환자가 불필요한 합병증에 시달리지 않도록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중간엔 귀를 막았다.
너무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도 없고…….
또 환자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도 그랬다.
사실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고 여기고 있어서 별다른 죄책감도 없었는데…….
말을 저렇게 하니까 진짜 뭔가 잘못한 거 같았다.
“흠흠. 잠시 혼선이 있었는데……. 제대로 시작하겠습니다.”
하여간, 스튜어드는 방금 일은 없던 걸로 치기로 작정했다.
몇몇 참석자들이 민망한 헛기침을 해 댈 정도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동시에 해외 연자 하나 모셔 오기가 어려운 만큼 명당 1시간씩 할당을 해 놓은 탓에 벌어지는 일이기도 했다.
‘저 봐……. 아니, 굳이 저 인종차별주의자를 왜 데리고 온 거야…….’
뒤에 서 있던 동종헌은 이마를 짚었다.
저 인간을 데리고 온 건 순전히 좌장의 욕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보통 어?
대한내과학회 학회장까지 해 먹은 양반이 여기서 뭘 더 어쩌려고…….
‘멘탈 나가셨네. 뭐……. 사실상 추계부터는 다음 기수가 할 테니까……. 본의 아니게 빠르고 자연스레 이양받게 생겼네, 이거.’
자세히 보니, 좌장도 더는 못 보겠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귀에는 쓰리엠 귀마개를 쓰고 있었고.
참 정신 나간 양반이었다.
하긴 뭐 그렇게라도 해서 멘탈을 지킬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기는 했다.
“자……. 이번 케이스는 정말 극히 드문 케이스입니다.”
좌장은 염치를 아는 편인 데 반해 스튜어드는 그렇지가 않은지 아니면 단기 기억상실이라도 겪은 건지 뭔지 자연스레 입을 열고 있었다.
잘 보면 피피티도 바로 다음 것이 아니라 더 뒤엣것을 골라 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하자면 진짜로 극히 드문 케이스를 꺼냈단 말이었다.
보통 이런 초청 강의에서는 단순히 드물고 어렵기만 한 게 아니라, 도움이 될 만한 케이스를 꺼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체면 다 버렸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니……. 왜 저렇게까지?’
같이 온 트레이시 또한 왜 저러나 하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스튜어드가 입을 열었다.
정작 스튜어드를 그렇게 만든 수혁은 얌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드물다고?’
[이번엔 기대해도 좋을 거 같군요.]
‘제발……. 폼베 같은 흔해 빠진 거 말고…….’
[그러니까요. 기껏해야 4, 5만 명 중 하나라니……. 이건 너무 흔한 병 아닙니까?]
얼굴만 보면 얌전했지만 내면은 은은한 똘기를 품고 있었다.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스튜어드는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심장이 아니다……. 어떠냐.’
만약 생각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 내뱉었다면 저거 저거 미친놈이네 하는 소리나 들었겠지만, 아쉽게도 실제로 그가 내뱉은 것은 제대로 된 발표였다.
“황달로 내원한……. 생후 3주 된 남아입니다. 재태 주 수 40주에 체중 3.2kg으로 태어났습니다. 부모의 진술에 따르면 정상 분만 후 3일 후부터 황달 증상이 있었습니다.”
하여간…….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다들 내과 의사인 데다가 공부하러 온 참이었기 때문에 좀 이상한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중에 제일 발군인 것은 역시나 수혁이었다.
그는 최선을 다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일단 신생아 황달이다, 이건데…….’
[정상 분만에 체중도 정상이라면……. 산전 검사에서는 이상이 없었을 가능성이 크겠군요.]
‘그럴 거야. 뭐……. 미국 같은 경우는 우리랑 어떻게 다를지 모르겠는데…….’
[생각보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영위하는 의료 수준은 굉장히 낮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저 사람은 꽤 상위 병원이야. 그때 들었잖아. 좋은 병원에 가려면 돈이 많아야 한다고 했어.’
[하긴……. 근데 또 재단이 운영하는 경우엔 일종의 복지 차원에서 몇몇 환자들을 골라서 치료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단순 국내 케이스였다면 고려하지 않아도 될 것들도 지금은 고려해야만 했다.
생각보다 미국 같은 경우엔 소득 수준에 의해 의학적으로 반드시 했어야 할 치료나 진단이 이루어지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그랬다.
“내원하여 시행한 검사상 담즙 정체성 황달이 있었고……. 이대로 진행하게 되면 간부전이 올 것이 자명했습니다. 원인 규명이 시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스튜어드에 대한 판단은 접어 두고, 이건 맞는 말이었다.
담즙 정체성 황달이라는 건 말 그대로 담즙이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지 않나.
이유를 빨리 알아내서 해결을 해 주지 않으면 결국, 그로 인한 간부전이 발생할 수 있었다.
간부전…….
말 그대로 간이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건데 방치하면 반드시 사망하게 될 터였다.
‘담즙 정체성 황달……. 확실히 생후 3주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면 정의에 맞지. 원인은 꽤 다양한데…….’
[신생아 간염이 있을 수 있죠. 특발성 간염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간염. 후자는 예후가 극히 나쁩니다.]
자연히 수혁은 토의를 시작했다.
“전원해서 시행한 검사상에서 간염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오케이, 이건 아니고. 그럼……. 전신 감염이나 국소 감염도 있을 수 있겠지만…….’
[화면에 뜬 수치만 봐도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좋아. 그럼 총 정맥 영양으로 영양 공급을 받았을 경우가 있는데, 흐음. 그거라면 언급이 있었을 거야.’
[그쵸. 배제하겠습니다.]
중간중간 스튜어드의 말을 들어 가면서, 그의 말을 종합하면서였다.
“간 수치는 AST/ALT가 각각 1580IU/L, 311IU/L였습니다. Alkaline phosphatase 1411IU/L로 증가 되어 있었고요.”
‘총 담낭관이나……. 담도 이형성증 또는 무형성증도 한 가지 이유가 되지.’
[폐쇄 또한 이유가 될 수 있겠습니다만……. 초음파상 그러한 소견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실 저 사람이 내분비내과 의사잖아. 당연히 내분비 질환이기야 하겠지…….’
[그렇죠, 사실.]
그 결과 내분비 질환.
그중에서도 유전 질환일 거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발표자의 전공을 고려해도, 모든 정황을 살펴봐도 그랬다.
그렇다면 과연 원인이 무엇일까?
‘유전 질환이라면 개선의 여지는……. 적지.’
[네. 아마도 조직 검사를 해 봐야겠지만요. 간이식 외에 치료 옵션이 있길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가닥이 하나하나 잡혀 가는 가운데, 스튜어드가 화면을 옮겼다.
이미 수혁과 바루다가 의견을 나누었던 대로 조직 검사 결과가 떠 있었다.
“초음파 및 여러 검사를 종합한 결과, 환아의 담즙 정체성 황달의 원인을 감별하기 위해서는 조직 검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행하였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진짜로 사진만 띡 띄워 놨다.
뭔가 부자연스러운 화면이었다.
있었던 문구를 지운 흔적이 역력하달까?
아까 막 부산스레 움직인다 싶더니만 지운 모양이라고, 보고 있던 사람들 중 90%가 생각했다.
‘giant cell 간염 소견도 있고……. 간문맥의 염증……. 간경화 소견도 보이고.’
[골수 외 조혈 작용도 있습니다.]
‘면역 화학 염색에서 보면 cd10 발현이 아예 없어.’
[BSEP 발편 또한 부분적으로 결핍되어 있습니다.]
수혁은?
그는 판독 소견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보면 보이는데 어쩌겠나.
판독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막 눈에 들어오는 중이었다.
그걸 알았어야 했다.
스튜어드는 그걸 알았어야 했는데…….
“아까 질문 주셨던 분. 이수혁 교수님?”
스튜어드는 조악한 미소를 지으며 수혁을 불렀다.
“네?”
수혁은 왜 그러나 하는 얼굴로 몸을 비척비척 일으켰다.
가뜩이나 다리가 불편한 마당인데, 예상치 못했던 타이밍에 부른 것이다 보니 아무래도 굼뜰 수밖에 없었다.
‘새끼! 그래! 이건 모르지! 이걸 알 수는 없지!’
이 케이스.
전 세계에 보고된 예가 10개 케이스도 안 되는…….
유전 질환만 평생 들이 파는 사람들조차 정확한 경과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케이스이지 않나.
심지어 지금 이 조직 검사 소견은…….
난해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이거 혹시 어떻게 보이시는지.”
“뭐가 어떻게 보이시냐는 말인지. 잘 보입니다만.”
하하!
농담을 해?
그 여유를 박살 내 주마.
스튜어드는 그래, 동양 놈이 그러면 그렇지 하고 속으로 외치다가 다시 말했다.
“그런 말이 아니라, 판독하실 수 있냐, 이 말입니다.”
판독이라는 말에 여기저기서 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놈이 모르면, 그걸로 됐다.
“역시 모…….”
“네, 뭐. 해 드리죠. 이건 어려운 게 아닌데…….”
“네?”
“해 드린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