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0화 이렇게 바로? (2)
“메르스……?”
잠자코 듣고 있던, 딱히 별 중요한 얘기를 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던 이현종이 눈을 부릅떴다.
“응? 방금 누가 메르스라고 했어?”
물론 그보다 격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이도 있었다.
뻔뻔하게 남의 연구실에 책상까지 넣을 수는 없지만, 소파에 자리 펴고 누울 수 있을 만큼의 철면피는 족히 되는 신현태가 그랬다.
명색이 감염내과이지 않나.
“아…… 네. 근데 뭐, 추세를 봐야죠. 사실 두 배라고 해 봐야 1명이 2명이 된 거고. 중동에서 메르스는 아주 드물기만 한 병은 아니잖아요.”
“드물지…… 네 기준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 돼.”
“하긴 그런가.”
“그래, 넌 케이스 리포트에 나오면 드물지 않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드물어서 케이스 리포트를 한단다.”
이미 신현태는 떡진 머리를 정돈한 채 자세를 고쳐 앉았다.
메르스.
벌써 한차례 유행을 했던 적이 있지 않나?
그때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그때 칠성 병원 감염내과 과장하던 양반도 목이 날아갔지.’
메르스를 제때 진단하지 못해서 국민 건강에 중대한 위해를 끼쳤다는 이유에서였는데…….
내면을 차근차근 살펴보면 진짜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신현태는 뼛속까지 태화인이고, 당연하게도 칠성이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는데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메르스 시약은 못 내줍니다.
분명 그 사람이 메르스를 의심해서 질본에 먼저 요청을 했거든.
그걸 어찌 아냐고?
벌써 서울 주요 소재 감염내과 교수들에게 연락을 돌렸기에 알았다.
중동 방문 이력이 있는 환자가 메르스와 흡사한 증상을 보이고 있는데, 혹시 그런 환자가 또 있냐고 하면서.
그때는 솔직히 이 새끼 이거 오버하네 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맞았다.
물론 시약을 질본에서 안 주는 바람에 그대로 응급실에 환자가 있었고, 거기서 2차 감염이 번지면서 엄한 교수가 책임을 지고 병원을 나가게 됐는데…….
이거야 뭐, 흔한 한국식 책임자 색출에 의한 비극이니 이제 와서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그 뛰어나던 사람이 더 이상 의사를 안 하게 된 것과 그로 인해 칠성이라는 거대 병원의 감염내과 수준이 뚝 떨어지면서 발생한 의료 공백에 대해서라면 열이 좀 나긴 하는데…….
“아무튼, 메르스…… 그거 무서운 병인데.”
“일단 그때 홍역을 치르는 바람에 중동에서 들어오는 발열 환자에 대해서는 검문검색이 빡세니까요. 지켜보도록 하죠.”
“어…… 뭐, 그렇긴 할 텐데. 얼마 전에 네가 한 얘기가 있으니까 마냥 그렇게만 볼 수가 없네.”
“엄밀히 말하면 제가 아니라 하윤이가 한 건데.”
“너의 사견이 많이 들어가 있으면…… 사실상 네가 한 말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하니까 크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닌데, 기안자는 하윤이에요.”
“응, 그래.”
신현태는 이현종을 닮아서 곧 죽어도 제자 키워 주려는 마음에 고집부리고 있는 수혁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나.
도리어 그의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건 전혀 엉뚱한 지역의 일이었다.
-중국 후베이성에서 미상의 폐렴 환자 발생.
감염 내과 의사로 오래 살다 보면 이런저런 루트로 다양한 지역의 감염 소식을 접할 기회가 늘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중에서도 신현태는…….
상당히 발이 넓은 편에 속했다.
본인의 노력도 노력인데, 이제 권력도 쥐게 되어서 더 그랬다.
심지어 수혁 덕에 더더욱 발이 넓어진 마당 아닌가.
‘이건 백강혁 교수님이 보내 준 자료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것과는 별개로 이번에 보내온 자료는 꽤 귀한 면이 있었다.
백강혁.
한때 첩보 기관에서 일했다는 소문마저 있는 사람이 보내온 자료니까.
이걸 보고 뉴스를 뒤져봤지만 적어도 한글로 작성된 기사 중에서는 이거 비슷한 기사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구라일까?
그럴 리는 없었다.
벌써 여러 번 백강혁의 보고에 도움을 받아 온 적이 있었으니.
이게 병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태화 전체가 그랬다.
‘이미 태화는 후베이성을 비롯해서 그 근방 출장을 줄였어.’
사스, 메르스.
국내에서의 여파는 둘 다 크지 않았지만, 태화는 이미 다국적 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니 그쪽 지사들에서 어마어마한 피해를 봤던 바 있었다.
칠성도 크게 다르진 않았는데, 그쪽은 마음 편하게 책임자 하나 팽하는 것으로 갈음한 데 반해 태화는 보다 예민하게 유사 팬데믹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태화 경제 연구소에서는 팬데믹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이차적으로 발생 가능한 경제 여파에 대한 보고서를 여러 차례 발표하기도 했더랬다.
모두가 예상이니만큼 공염불에 가까운 일이긴 하겠지만, 하여간 바로 얼마 전에 수혁이를 필두로 올린 팬데믹 감시 체계 시스템 때문에라도 느긋하게만 있진 못했다.
“메르스는 메르스고. 이쪽은 어떤가?”
“아…… 중국이요?”
“응, 그래. 중국.”
“이쪽은…… 아무래도, 앞으로 무궁무진하긴 하죠.”
인구도 많고, 고기도 많이 먹고, 심지어 식재료도 다양하지 않나.
다리 네 개 달린 건 의자 빼고 다 먹는다는 말이 있듯, 중국 전통 시장에 가면 정말이지 온갖 것을 다 볼 수 있다고 들었다.
수혁이야 그런 경험이 없었지만, 평생 교수로 살아왔고 그 덕에 세계 각지에서 열린 학회를 많이 가 본 이현종은 얘기가 좀 달랐다.
“몇 번 얘기한 거 같은데, 진짜 별 걸 다 먹더라. 박쥐도 먹어.”
“박쥐가 먹을 만한 게 있어요?”
“모르지, 나야. 난 비위가 약해서…….”
“그래요?”
“왜 그런 눈으로 날 보지? 안대훈이, 너까지 그러기야?”
이현종은 당시 시장에서 봤던 가죽 벗긴 박쥐를 떠올리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욕지기가 올라와서 그랬다.
“아무튼, 백 교수님이 한 말이면 그냥 넘길 만한 일은 아니야. 그 사람은 단순히 똑똑한 것 이상의 뭔가가 있어.”
“그렇죠. 흐음.”
수혁은 박쥐 말고 백강혁을 떠올렸다.
당연하게도 욕지기가 나올 만한 일은 전혀 없었다.
[백강혁…… 아무리 우수하다는 사람 수술을 봐도 그 인간의 반도 못 따라가죠?]
‘그렇지. 뭔가 달라. 시야 자체가 다른 느낌?’
[네. 제 보정과도 또 다른 느낌입니다. 애초에 종자가 달라요.]
‘그래. 그런 눈을 달고 수십 년을 더 살았다면…… 노력을 하지 않았다 해도 뭔가 달라질 텐데 그 사람은…….’
[노력도 아끼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경고성 정보를 주었다면 예삿일이 아니겠죠.]
그저 감복과 위기감만이 맴돌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바루다를 탑재한 수혁을 감탄하게 만든 사람이 대체 얼마나 되겠나.
기껏해야 이현종 정도인데, 그마저도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뛰어넘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광오한 자신감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랬다.
허나…….
백강혁은?
그 사람은 뭔가 달랐다.
오죽하면 바루다가 ‘저 인간도 뭐 하나 달고 있는 거 아닌가’ 하고 의심을 했겠나.
“열난다? 이름이 그게 최선인지는 일단 나중에 더 보고…… 지금은 군에서밖에 사용 안 하고 있지?”
“네. 애초에 그것도 이틀 만에 만든 시제품이에요. 오류도 계속 보고받고 있을걸요? 당장 학회에서 발표한 게 저번 주인데…… 벌써 군에 지침이 하달된 게 기적이죠.”
“어, 뭐. 그거야 다 방법이 있어서 그런 거지.”
신현태와 이현종이 눈을 마주치면서 어른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게 군인정신이라지 않나?
뭔가 악으로 깡으로 하는 느낌만 들겠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었다.
-방법이 없진 않을 겁니다.
김다현이 해 준 말이 있지 않나.
게다가 원내 대표도 도왔다.
그 결과 국방부 장관과 참모 총장이 움직였고, 둘이 ‘해서 나쁠 게 하나도 없는데?’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몇 분도 채 되지 않았다 했다.
-하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군은 주말이 지나자마자 바로 앱을 배포하고 열난다 사용에 돌입했다.
그래 봐야 일선에서 제대로 일이 굴러가려면 시간깨나 걸리겠지만…….
“근데 정말 신기하네요? 중국 관영 매체에서도 후베이성…… 우한? 이 근처 폐렴에 관한 얘기가 거의 없어요.”
“통제하고 있는 건가?”
“감염병 관리의 기본은 널리 알리고 주의하는 데 있지 않나요?”
“뭐…….”
둘이 그렇게 눈을 맞추고 있는 사이,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중국어 기사를 검색했다.
그래 봐야 중국은 유튜브, 인스타, 심지어 구글도 안되는 나라다 보니 정보 검색에 한계가 있긴 했지만…….
원래 규제가 있어도 정보는 풀리기 마련 아니겠나?
물론 그 정보라는 것도 태반은 중국 정부 당국의 허락이 있어야 풀린다는 게 문제긴 한데.
“모르겠네?”
“흐음. 별거 아닐 수도 있죠.”
“하지만 백 교수님이 원인 미상이라고 했으면, 정말로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른다고 봐야 할 텐데……?”
“그것도 맞긴 하지만…… 대체 뭐지?”
벌어지는 현상 이면에 자리한 복잡한 일들을 여기 모인 이들이 어찌 알겠나.
기껏해야 대학 병원 교수들 아닌가.
자기 전공을 파는 것만 해도 허덕이는 사람들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까지 안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
때문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못난이들만 방을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하여간 거기서 정보를 풀어주지 않는다면 뭔가를 더 알아내기도 어려울 거야.”
“이거 태화 측에서도 알고 있는 거죠?”
“알지.”
“그럼 거기서 정부 측에도 알려 줬겠죠?”
“혹시 몰라서 원내 대표한테는 얘기했는데…….”
“했는데요?”
“알잖냐. 민생이 급하지, 남의 나라 폐렴이 뭐가 중하겠어.”
“그러다 팬데믹이라도 오면 민생이고 나발이고 다 날아가지 않을까요? 일단 사람들이 죽을 텐데.”
“근데 예산이고 뭐고 다 어렵나 봐. 일단 알려 줬으니까 보긴 할 거야. 우리도 우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 보자고.”
이현종은 아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는, 현 대한민국 감염내과의 거두이자 태화 의료원의 원장인 신현태를 바라보았다.
뭔가 시킬 생각을 품은 상태였는데, 신현태야 이현종과 하루 이틀 함께한 것이 아니다 보니 딱 알아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성내는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이건 다름 아닌 그가 주도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맞았으니까.
게다가 신현태도 나름 원장 노릇을 하는 동안 정치적 수완이 조금은 늘어났다 보니, 아예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이현종과 눈을 마주치다가 이내 달력을 돌아보았다.
당장 이번 주 주말에 내과 학회가 있었다.
“2차, 3차 병원에서라도 감염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으면 좀 낫겠지.”
“네 발표 주제는 다른 거 아니냐?”
“형. 형이 볼 땐 내가 아직 어리겠지만, 나도 밖에 나가면 윗사람 마주치기 어렵거든. 내가 하고 싶은 발표…… 제대로 된 발표이기만 하면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오…… 방금 약간 거울 보는 기분이…….”
“그러지 말고. 나 기분 되게 나빠지려고 하네.”
본인은 싫어하는 듯했지만, 수혁 또한 아빠가 둘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