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6화 레지던트 3년 차라고? (1)
수혁의 도움이 없었어도 하윤은 썩 괜찮은 수준의 발표를 해낼 수 있었을 터였다.
타고난 재능도 재능이지만, 환경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흐음…….”
아선 병원의 기조실장이면서 동시에 하윤의 아버지인 우창윤.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은 채 앉아 있는 그 덕택이 있다는 얘기였다.
어린 시절부터 간혹 아버지의 학회 발표를 따라 다닐 기회가 있었던 하윤은 이미 완성된 스피커였다.
“처음부터 전 세계의 감시가 가능하다고 말씀드리려는 건 아닙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국가적인 협조가 필요할 텐데…… 그런 광오한 말을 감히 일개 레지던트인 제가 제안드리기에는 무리가 있겠죠. 다만, 대한민국에 한정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는 전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을 만큼 단단하게 자리가 잡혀 있습니다.”
거기에 수혁의 도움까지 받아, 남다른 인사이트를 탑재하게 된 마당이지 않나.
하윤은 넘어간 화면에 뜬, 주요 선진국의 의료 접근성 비교 자료를 바라보았다.
OECD 기준으로도 나름 선진국 반열에 든 국가들만 포함된 자료였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나쁜 수치를 보이는 곳은 없었다.
허나 대한민국과 비교하자면 모든 나라가 빛이 바랠 지경이었다.
“국민 1인당 연간 평균 외래 이용 횟수만 봐도 우리나라는 평균 15회에 가깝습니다. OECD 평균의 두 배죠. 뿐만 아니라 급성기 치료를 위한 입원일 역시 평균을 압도적으로 웃돌고 있습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요인은 GDP 대비 낮은 경상 의료비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높은 전문의 비율, 그리고 1·2차 의료 기관의 장비 및 훈련 정도의 차이 덕분입니다. 이 덕분에 회피 가능 사망률도 현저히 낮죠.”
도표부터 해석까지 흠잡을 곳이 없었다.
아마 예방의학과 전문의를 데려다 놓아도 딱히 할 말은 없을 터였다.
물론 대한민국의 의료 체계가 완벽하다는 얘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어서 더 그랬다.
어디에건 빛이 있으면 어둠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에, 깊숙이 파고들면 문제점은 여전히 많았다.
그리고 이쪽에 대해서는, 설령 의사라 하더라도 진짜 현장에 있는 이가 아니라면 수많은 오류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객관적인 평가 지표로만 접근하는 건 상당히 영리한 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의료 전달 체계를 이용한다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 어디보다 더 빠르게 감염병의 전파를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이 설령 아직 우리 인류가 접한 적이 없는 미지의 질환이라고 해도요. 이를 어떻게 가능케 할 것인지에 대해 다음 화면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방금 화면에는 보건소를 포함한 국내 1차 진료망이 그려져 있었다.
사실 몇 해 전과 비교하면 오히려 시골 쪽, 그러니까 산간 도서 지역의 진료망은 퇴보한 면이 있었다.
의전원이 시행되면서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던 탓인데, 바로 군필자들이 의대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산간 도서 지역에 널리 분포해 있던 공중보건의사의 숫자가 확 줄어 버리게 되면서 1차 진료망에 구멍이 뚫렸다.
그 외에도 KTX, SRT 등의 개발로 전국 일일생활권 시대가 열리면서 지방의 중소 병원들도 줄도산하게 되었는데, 현재까지도 딱히 호전될 기미를 보이진 않고 있었다.
여하간에 지금 당장은 준수한 것도 사실이었기에, 발표는 별 반발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미지의 질환. 여기서는 미지의 감염병을 뜻하겠죠. 높은 확률로 인수 공통 감염병의 변이에서 발생할 겁니다. 이미 글로벌화가 진행된 지도 수십 년이다 보니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기는 질환 중 태반은 거의 전 세계 의료 기관이 경험해 본 바 있으니까요.”
하윤의 말대로였다.
에볼라를 제외하면 에이즈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 간의 전파가 입증된 질환들은 전 세계에서 겪은 바 있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에볼라를 걱정할 이유도 없었다.
치명률이 워낙에 높은 데다가 감염 경과도 빠르고, 특징적인 임상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해 인수 공통 감염병, 곧 동물에서 사람에게 전파가 가능한 병은 얘기가 좀 달랐다.
“대부분의 인수 공통 감염병은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파되긴 하지만, 감염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의 감염은 일으키지 못합니다. 허나 이것이 가능하게 된다면, 팬데믹의 단초가 될 수 있겠죠. 이 루트 또한 급증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글로벌화하고는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야만 합니다.”
글로벌화.
하나의 지구.
일부 권위주의 국가를 제외한 세계.
즉 자유 세계는 그야말로 하나의 지구라 해도 좋을 정도로 긴밀해진 세상이지 않나.
그러한 세상에서 감염병이 늘어난다는 건 예측도 뭐도 아니었다.
허나 그 관점에서만 본다면, 사실 인류가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질환이 창궐할 거란 가설에 대한 입증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지난 10년간 육류 소비량 증가 추이를 보여 주는 도표입니다. 인구 증가 속도의 2배를 웃돌고 있을 정도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죠. 실제로 전 세계 농지의 80%를 가축 사료용 목초지가 차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로 인해 전 세계 포유류 자원량은 원시시대에 비해서도 5배 이상 증가한 상황이죠.”
지금껏 말했던 것처럼 앞으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감염병이 나오게 된다면, 그건 분명 높은 확률로 인수 공통 감염병일 터였다.
방금 보여 준 도표에 의하면 사람과 동물의 접촉은 전에 없이 활발해지고 있는 마당이었고.
“아…….”
“저건…… 생각도 못 했네.”
“난 기후 변화 포럼에서나 다루는 의제인 줄 알았는데…….”
사실 이것 또한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얘기였지만, 생각해 본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역시…… 우리 수혁이…… 나도 저런 생각은 못 했었는데…….’
감염내과의 거두인 신현태마저 이러한 관점에서는 사태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이는 가운데, 하윤은 잠시 침묵했다.
수혁의 지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본능으로 알았다.
‘여기선 잠깐 멈추자. 그래야 다시 이목을 끌 수 있어.’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말 그대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윤이 그러고 있자, 수혁이 침묵한 채로 서 있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더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눈으로 좌중을 훑어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두가 다시금 입을 다물게 되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자, 이것은 일 인당 신선야채 소비량입니다. 이 역시 늘고는 있지만 주요 선진국에서 가파르게 오르고 있을 뿐 인류 전체를 보면 미진하죠. 그에 비해 육류 소비량은 개발도상국에서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고기의 수출입은 전 세계적으로 더더욱 활발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는 곧 질환의 출입 또한 더더욱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시망이 잘 갖추어져 있는 선진국에 국한된 이야기라면, 어쩌면 괜찮을 겁니다만…….”
하윤은 이제 인도와 중국의 도표를 보여 주었다.
육류 소비량이 늘어나는 추세가 가파르다 못해 폭발적일 지경이었다.
그나마 인도는 종교적인 이유 또 문화적인 이유로 주춤하고 있었지만, 중국 쪽은 가히 어마어마하다 할 수 있었다.
“두 국가 모두 GDP로만 따지면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라 있지만, 넓은 땅덩이와 많은 인구수 등의 이유로 지역별 편차 및 계층 간 경제 불평등 지수가 엄청나게 높죠. 이는 필연적으로 의료 접근성의 불평등으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높은 확률로, 다음 펜데믹은 이 두 국가 중 하나에서 시작하게 될 겁니다. 동시에 우리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중국과 아주 가깝죠.”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게 의학회 강의인지 아니면 경제학 강의인지, 외교학 강의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잘하네.’
[저 정도 자료를 모아 주는 것만으로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뭐…… 그렇긴 한데, 그래도 그걸 모아서 저렇게 이야기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네. 통합진료센터의 복이죠. 안대훈도 대단한데, 우하윤까지. 매년 저런 인재가 들어온다면…… 진짜 몇 년 내에 전 세계 1등 센터가 될걸요?]
그게 꼭 어지러움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강의실 내의 거의 모두는 조용히 강의를 듣고 있었다.
레지던트의 강의고, 태화의 편파 판정이 있을 테니 두고 보자는 마음은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야말로 오랜만에 제대로 된 ‘강의’를 듣는 기분이었다.
“즉, 국내 팬데믹 감시 체계를 보다 강화해야 하는 근거는 충분한 셈입니다. 물론 이를 위한 예산이 너무 크다면 어려운 일이 될 겁니다. 가령 현재까지 변이가 가능할 거라 알려져 있는 인수 공통 감염병의 검사 시약을 전국적으로 배포하는 등의 일을 한다면 말이죠.”
하윤은 씨익 웃으며,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화면을 넘겼다.
방금 말했던 내용에 빗금이 줄줄이 쳐졌다.
그다음에 뜬 화면은 간단하기 그지없었다.
Fever.
즉 발열.
“종류를 파악하는 건, 일단 병이 번지고 있다는 걸 파악한 후에 해도 좋을 겁니다. 감시 체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함이니까요. 모든 질환에서 골든아워가 중요하겠지만, 팬데믹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감염병에서라면 더더욱 중요하겠죠. 그렇기에 이 감시 체계는 오로지 열만을 볼 겁니다.”
“응?”
“무슨 소리야?”
“저런 거로 감시가 된다고?”
하윤의 말에 여기저기서 다시 웅성거림이 일었다.
강의에 대한 반발심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순수한 반응일 뿐이었다.
지금 와서 반발심을 갖기엔, 다들 강의에 푹 빠져 버리게 된 지 오래였다.
“모든 감염병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무엇일까요? 네, 열이죠. 숙주의 상태에 따라 열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러한 예외 상황은 배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린 어떤 질환을 진단하고자 이 체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니까요.”
“무슨 말이야?”
“몰라, 근데 일단 들어 봐. 이제 와서 개소리로 드리프트할 것 같진 않으니까.”
“하긴…… 근데 저 선생, 레지던트라고?”
“어.”
“태화에는 무슨 수맥이라도 흐르나. 대체 애들이 왜 다 저렇게 잘해?”
이어지는 말에도 웅성거림이 완전히 잦아들고 있진 않았다.
다만 아까에 비하면 지엽적인 데다가 그리 시끄럽지도 않았기에, 하윤은 멈춰서는 대신 그저 말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가령 서울 강남에서 질환이 번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죠. 그렇다면 이 근처에서 발열 환자가 늘어날 겁니다. 무슨 질환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독감일 수도 있고, 수족구일 수도 있고…… 흔한 감기일 수도 있겠죠. 허나 진단되지 않는 미상의 발열이 한 지역에서 급격히 번지고 있다면…… 우리는 보다 경각심을 가지고 들여다봐야 할 겁니다.”
“아…….”
“오……?”
“제일 좋은 건, 의료기관의 보고가 아닌 개개인의 보고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발열이 있을 때 유용한 정보를 우리 학회 차원에서 제공하고, 보건당국과 학회는 발열에 대한 정보를 위치 기반으로 수집하는 것이죠.”
하윤이 이 말을 했을 때, 눈을 빛내는 이가 하나 있었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나는 대체 왜 여기 끌려와 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이였다.
‘저거…… 예산도 거의 안 들어갈 것 같은데……?’
4급 공무원, 보건복지부 서기관.
수혁 때문에 진짜 X될 뻔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