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6화 신현태 (3)
신현태는 이미 의심하는 질환이 있었다.
다름 아닌 감염성 심내막염.
머리 아픈 것을 주소로 온 환자에게 감염성 심내막염이라고 하는 건, 뜬금없는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여러 정황을 이리저리 섞어서 보면 가히 확실했다.
“뭐야, 나 바쁜데.”
하여간, 통화가 연결되었다.
수화기 너머로 퉁명스러운 이현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울에 있는 태화에서 저 먼 제주에서 일어난 일을 알 리 없는 신현태는 좀 어이가 없었다.
‘놀러 간 주제에 바쁘긴 뭐가 바빠?’
심지어 그 때문에 지금 병원에서 팔자에도 없는 당직을 서고 있는 상황이지 않나.
이현종이야 원장 하면서도 회의고 나발이고 거의 짬 때렸으니 진료를 열심히 했지만, 신현태를 포함한 절대다수의 원장들은 행정일 때문에라도 진료에서 반쯤 배제되기 마련이었다.
싫어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장 신현태만 해도 오늘 오찬 모임에 점심 모임까지 있었고, 거기에 더해 저녁에는 줌 회의까지 마친 참이었다.
“어어, 환자분. 잠시만. 나 병원에서 전화가 와서요.”
하지만 신현태의 불만은 이어지는 이현종의 말에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마냥 좋은 일은 아니었다.
불만이 있던 자리에 불안감이 점차 밀려 올라오고 있었으니까.
‘왜…… 왜 환자랑 있지?’
전과라고 하면 좀 거창한 느낌인가……?
‘아니, 아냐. 이 새끼들 전과자야, 사실상.’
이현종과 수혁.
제아무리 좋아하는 형이고 또 조카지만 그놈의 명의병이 문제였다.
물론 명의병 때문에 좋아하는 것도 맞고, 그 정도를 지나쳐 그 병에 전염이 되기도 했지만…….
이 새끼들 이거 한두 번이라야지.
“혀, 형! 또 도둑 진료 하는 거야?”
“도둑 진료라니. 그런 말이 세상에 어딨어. 세상에 도둑질로 치지 않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지랄 마! 또 책이랑 진료 얘기 하려고.”
“대학교수란 놈이 말이 험하네.”
“험해지게 만들고 있잖아, 지금! 어? 도둑 진료 하지 말라고…… 제주도에 또 어디까지 내가 연락을…….”
“어허, 아니라니까. 현수막도 설치하고 응? 다 했다니까?”
“……?”
신현태는 혼란스러웠다.
현수막이라니?
이건 또 무슨……?
“으, 으으.”
돌연 안대훈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어지럼증이 도졌다.
그렇게 쓰러지려는 찰나 눈에 들어온 것이 환자 얼굴이었다.
감염성 심내막염이 의심되는 환자.
다시 말해 때를 놓치면 큰일 날 것 같은 환자.
“흐아압.”
역시나 명의병을 앓고 있는 신현태는 근성으로 어지럼증을 이겨 내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제주도에서 이룩한 위업을…….”
“형, 일단 조용히. 나 머리 아프게 만들지 마…… 제발. 제발……! 일단 닥치고 들어!”
상황이 어떻건 진료는 봐야 한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현종이 저질러 버린 전과를 듣고 싶진 않았다.
그럼 자신이 상정한 상황을 완전히 벗어나 버릴 테니까.
“오…… 박력.”
“박력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신현태는 작정하고 사람 빡치게 만들고 있는 이현종의 말에 한숨을 쉬고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열 받게 만드는 것도 빡치는 일이지만, 이게 곤란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나았다.
“지금 병원에 환자가 하나 왔어.”
“모르겠구나?”
“그냥 좀…… 제발 좀…… 들어줄래?”
“어, 뭐. 해 봐. 근데 어려운 환자였으면 좋겠다.”
“후우.”
모를 거라고 해 놓고선 어려운 환자였으면 좋겠다니.
신현태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지만, 이내 어마어마하게 빠르게 말을 이어 나갔다.
“기저질환은 없고 두통을 주소로 내원했어. 발에 어딘가 물린 자국이 있는데…… 가피도 없고, 진드기는 아니야. 주변으로 발생한 구진은 아무래도 가려움증 때문에 긁고 나서 발생한 2차 감염으로 보여.”
“흐음…… 머리가 아픈데, 감염 경로가 발이다? 패혈증?”
“들어 봐. 기저질환도 없이 패혈증이 쉽게 오나? 환자는 충치 치료도 받고 있어. 꽤 오래전부터 반복되었던 바 있는 질환이고…… 그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건 이전까지는 없어.”
“복합 감염이…… 우연히 일어난 건가.”
이현종은 응응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정하고 사람 빡치게 만들던, 철없는 60대 중반 아저씨의 모습은 이미 간 곳 없이 사라진 참이었다.
어느새 중후한 인상을 지닌 대가가 그곳에 있었다.
“응. 심전도상에 이상이 있지는 않아. 하지만 심장 청진을 했을 때 약간의 잡음이 있어.”
“잡음이라. 심초음파에서는?”
“대동맥 판막에 약간 역류가 있어. 베지테이션은 없고.”
“아직 없는 것일 가능성이 더 크군……. 근데 이 번호는 심장내과 펠로우 거 아니야? 저장은 되어 있는데.”
“응. 근데 이 선생이 자꾸 베지테이션 없다고 감염성 심내막염 가능성이 없다잖아.”
“역류가 있는데?”
“나이 들면 생길 수 있다고.”
“하.”
이현종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옆에서 대화를 다 듣고 있던 심장내과 펠로우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둘이 내쉰 한숨의 종류는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쪽은 깊은 분노, 다른 한쪽은 공포라고 해야 할까……?
“바꿔 봐.”
“응!”
“하.”
아니, 절망이었다.
‘까이는 동안…… 일단 나는 다시 점검을 해 봐야겠어.’
세상에는 화를 내면 그 즉시 화가 풀리는 사람이 있고, 화를 내다 보면 왜인지 모르게 점점 더 그라데이션으로 화가 진해지는 종류의 인간이 있는데…….
이현종은 거의 대부분의 의료진에겐 안타깝게도 후자에 속했다.
“%$!#@!”
이제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간 탓에, 당최 뭔 말인지 알아들을 수조차 없는 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마어마하게 까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장내과 펠로우는 이 모든 것을 기획한 신현태조차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확실하고 완벽하게 까이고 있었다.
물론 그것만 보고 있을 틈은 없었다.
이미 역류가 발생해 버린 감염성 심내막염은 심각한 질환에 속했으니.
아니, 감염성 심내막염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큰일이었다.
약으로만 될까?
‘안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
신현태는 다시금 환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햇볕에 그을린 탓에 더없이 건강해 보이는 느낌의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저런 사람이 아프게 되면…… 더 빨리 무너지기도 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아, 감염내과 신현태입니다.”
“감염…… 네? 원장님? 아, 네네. 네, 말씀하십쇼.”
심내막염은 기본적으로 심장 안쪽에 자라는 균의 존재를 동반하기 마련이었다.
대개의 경우 그 균은 판막 내측에 자리하게 되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판막에서 역류가 발생하는 것이기도 했다.
혹 애초에 있던 판막 질환 때문에 생기기도 했다.
즉, 감염성 심내막염은 아주 높은 확률로 판막 질환과 연관이 있다는 얘기였다.
“네……? 아…… 네. 제가 지금 내려가서 보겠습니다!”
“네, 좀 부탁합니다.”
“네네. 와…… 대단하십니다. 아무리 감염내과라곤 해도 심내막염은 이게 또 얘기가 다른데.”
“만류귀종이라는 말이 있죠.”
“네?”
“결국, 감염은 다 같은 감염이라는 뜻입니다.”
“아…… 네.”
이현종조차 처음엔 놀리려는 마인드였다가 즉시 대가의 마인드로 돌아가지 않았던가?
그건 그만큼 신현태의 논리가 단단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흉부외과 의사가 듣기에도 그랬다.
잘됐다 싶었다.
찐텐으로 딸랑거릴 수 있었으니.
‘만류귀종…… 원래 신 원장님이 이런 말을 쓰던가……?’
물론 중간에 좀 뜨악할 만한 일이 있기는 했다.
아마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당황한 티를 좀 더 냈을 터였다.
‘수혁교 사람이라고 하더니…… 확실히 사람이 고풍스러워졌네.’
하지만 온 병원에 돌고 있는 소문이 있었다.
기존에 태화에 있던 각종 라인들은 이제 의미가 없다는 소문이었다.
수혁교인가 아닌가.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지금 실세는 죄다 수혁교 사람들이니까.
“만류귀종이라니, 원장님의 흥복이십니다.”
“응? 뭔 소리야, 갑자기.”
“아뇨, 아닙니다.”
개중에는 샤이 수혁교도 있는데, 신현태가 대표적이었다.
이미 몸은 수혁교에 물들다 못해 한 몸이면서 이렇게 내숭을 떤다는 의미였다.
아무튼, 흉부외과까지 내려와 환자를 본 후로는 보다 체계적인 계획이 잡혔다.
일단은 신현태가 처방한 경험적 항생제를 쓰면서 보고, 매일 심장 초음파를 보면서 동시에 두통의 원인을 감별하기 위해 CT도 추적관찰하기로 했다.
혹 판막에 끼어 있던 균 덩어리가 날아갔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게 뇌혈관에 틀어박히기라도 했다면…… 초기 CT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크기라 해도 구성 자체가 균이기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다.
“저희는 필요하다 싶으면 바로 판막 치환술 들어가겠습니다.”
당연하지만 가장 커다란 문제는 판막이었다.
그게 감염에 의해 녹으면 정말이지 즉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신속하게 새로 달아 줘야만 했다.
말로는 쉽게 새로 달아 주는 거라 하지만, 인공 판막 치환술이라는 건 결코 만만한 수술이 아니었다.
심장을 멈추고 체외 순환기를 써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물질이 들어가게 된 만큼 남은 평생 약을 먹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겠죠.”
그러니 신현태가 말한 대로였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비는 수밖에 없었다.
그 말에 심장을 다루다 보니 괜한 말은, 그러니까 희망에 관한 얘기를 극도로 아끼게 된 흉부외과 의사가 답했다.
“그나마 원장님이 워낙 빨리 캐치하셔서…… 가능성이 더 낮긴 할 겁니다.”
진심이었다.
아부하려는 생각도 있긴 하겠지만, 근거 없는 아부를 하기엔 그가 심장 열고 살아온 세월이 녹록지 않았다.
“그래요. 그래야지. 그래야 보람이 있지.”
그걸 신현태라고 모르겠나.
그 또한 패혈증을 비롯한 여러 심각한 감염 질환에 있어서는 말을 극도로 아끼게 되지 않았나.
덕분에 잠시나마 씨익 웃을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어느덧 자정이 가까워져 오고 있음에도 그랬다.
비록 시작은 이현종과 수혁의 강요로 하게 된 당직이었지만 이만하면 보람이 넘치는 당직이라서 그랬다.
어찌 되었건 한 사람의 생명을 살렸고, 어쩌면 남은 인생 또한 구해 주었을 수도 있었다.
부아앙.
홀가분한 얼굴로 집에 돌아온 신현태는 아내와 잠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잠들었고, 다음날에서 역시나 상쾌한 얼굴이 되어 일어날 수 있었다.
“으음……?”
기분 좋게 일어나 커피를 내리던 신현태는 평소보다 휴대폰에 메시지가 많이 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일요일.
제아무리 원장이라고 해도 비교적 업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날이었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 아니지. 이건 타짜고.’
서늘한 기분에 메시지를 확인했더니만 기사가 떠 있었다.
중앙에 떠 있는 건 이현종, 수혁의 얼굴이었다.
“으. 으으.”
“여보, 왜 그래?”
“으으으…… 이 새끼들…….”
“왜, 칠성 놈들이 또 뭔가 했어?”
“아니…….”
“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