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51화 (951/1,303)

951화 아유, 우리 아니었으면 (1)

결국엔 신경과 의사도 왔다.

교수가 아니라 당직이던 레지던트가 오긴 했지만…….

하여간 그 또한 수혁의 말에 달리 첨언할 말을 찾진 못했다.

어찌 찾겠나.

진단부터 치료 지침까지 거의 완벽에 가깝게 알려 주었는데.

“어…….”

신경과 레지던트는 그래도 사정이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문제는 응급의학과 교수였다.

‘그냥 집에서 맥주나 처마시고 있을걸…….’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길 왔을까?

응급의학과라는 게 딱히 뭐 주말이 없는 직업이라고는 해도, 주말이잖아?

어제는 당직이었고.

근데 왜 부득불 여길 와서 ‘에헤이 그런 건 내가 더 잘 보지’ 그랬을까.

결과를 놓고 보니 전혀 아닌데…….

“환자분, 보호자분.”

물론 수혁이 딱히 말을 보태거나 하진 않았다.

잘난척이 대단히 중요한 수혁이지만 사실 그것만 중요한 건 아니어서 그랬다.

놀랍게도, 그는 지금 감압병의 특수한 형태를 진단해 냈다는 사실에 제법 빠져 있었다.

‘흐으음…… 난 역시 천재……인 걸까?’

남들이 생각하는 그런 숭고한 느낌은 또 아니긴 했다.

천재 운운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걸 딱히 교정해 줄 만한 사람이 여기 없다는 점이었다.

[바루다에게 선택받은 종자니 다를 수밖에 없죠.]

‘언제는 그거 순전히 우연이라고 그러지 않았냐?’

[우연이죠. 하지만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건 재능과 노력이죠.]

‘어째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 글귀인데…….’

[요새 이현종 교수가 쓰고 있는 자서전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아니, 그전에도 많이 들었어. 이러다 표절 시비 휘말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그러다 중간에 좀 엉뚱한 생각도 떠올리긴 했다.

김다현 회장의 제안이었다.

책을 써 보라는 거.

이현종의 인생이라면 사실 충분히 자서전이나 자기계발서를 내도 좋을 정도이지 않은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기엔 지나치게 머리가 좋고 성질머리가 별로긴 하지만…….

-그런 건 걱정하지 마세요. 책 쓰는 사람들이라고 다 훌륭하겠습니까? 이렇게 저렇게 인생 편집해서 나가는 거예요. 그럼 세상에 둘도 없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뭔가 김다현이 하는 말이라 그런지 엄청 신뢰가 갔다.

처음엔 나 같은 게 무슨 책이냐고 했던 이현종조차 슬금슬금 매달리기 시작했을 정도로 설득력도 있었고.

하여간, 수혁은 그렇게 잠시 자아도취에 빠져 있으면서도 해야 할 말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일단 입원이 필요합니다. 소변도 그렇고…… 앞으로 받으셔야 할 치료가 만만하지는 않을 겁니다.”

워낙에 중요한 말이어서 그랬다.

실제로 이게 예후가 아주 좋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나이가 젊다고 해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도지사의 어머님은 70대 중반이었다.

억척스러운 삶을 살아온 만큼 치료가 아무리 고되다 해도 견딜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치료의 난이도가 어디 가겠나.

수혁마저도 측은지심을 담아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나마 진단이 늦지 않았고…… 어제 받은 고압 챔버 치료 또한 도움이 되긴 했을 겁니다. 그 빈도에 차이가 있을 뿐, 앞으로 받을 치료가 크게 다르진 않을 겁니다.”

“아…… 네에.”

할머니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경황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만 따지면 도지사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쪽은 조금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어떻게…….”

“자세한 치료 지침은 방금 제가 말한 걸 보다 쉽게 해당 과에서…… 신경과에서 설명해 주실 겁니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리긴 할 겁니다. 참을성을 가지고…… 아드님이 어머님 힘들어할 때마다 지지해 주셔야 해요.”

“그럼…… 이번에 진단이 안 되었으면 어떻게…… 어떻게 되는 것이었습니까?”

“뭐…… 지금 상태에서 더 안 좋아지셨겠죠. 예후도 그 상태로 고착되었을 가능성이 제일 크고요.”

“아…….”

도지사는 입을 쩍 벌린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수혁은 그 사이 다시 진료실로 돌아왔다.

사람이 워낙 많아서 더 기다리게 할 수 없어서 그랬다.

아니, 이 템포로는 다 보는 건 절대 무리였다.

“흩어지자. 잘 모르겠는 거 있으면 들고 오고.”

“네? 교수님들은 몰라도 저희는…….”

“너네도 어지간한 교수들보다 훨씬 나아. 특히 어려운 케이스에 있어서는 더 나아. 시술이라면 모르겠지만…… 우리가 시술할 것도 아니잖아.”

해서 이현종이 결단을 내렸다.

다 흩어져서 진료를 보기로.

나름 확신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상태가 아주 심각해 보이는 환자는 적어. 게다가 우리 아들은 촉이 좋지. 거의 신기라도 있는 애처럼…… 에구머니. 망할 조태진 때문에 나까지 이러네.’

비록 신기라는 단어 자체는 실수로 튀어나온 것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믿는 이들이 한가득 있을 정도로 환자를 잘 짚어 내지 않았나.

그 말은 곧, 눈에 띄는 곳에 있으면 안대훈이 되었건 김성진이 되었건 어려운 환자를 혼자 보다가 사고 칠 일은 없을 거란 얘기였다.

‘뭐…… 요새 공부하는 게 좀 아깝긴 하지만…… 효율적으로 움직이려면 나는 심장 환자들로 보면 돼.’

거기에 더해 심장내과 월드 스타인 본인이 나서면 해결 못 할 환자는 없을 거라는 계산이 딱 섰다.

[우리는 저분…… 갈까요?]

‘저분? 관절염 아니야?’

[관절염…… 아무리 제주도라 해도 관절염 치료가 수지 절단까지 필요할 정도로 안 되는 경우가 있겠습니까?]

‘있을 수도 있지. 류마티스 관절염도 본인 관심아 없으면 진통제만 먹기도 하잖아.’

[이거 봐라, 이거. 이렇게 감이 떨어지네…….]

‘뭔 소리야.’

이현종의 예상대로 수혁은 이미 환자 하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바루다이긴 했지만, 남들이 볼 땐 그게 그거였다.

하여간, 수혁은 바루다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까지 온 사람이 관심이 없겠습니까? 제주도도 비행기 타면 1시간이면 서울에 가는 세상인데…… 아마 서울에 있는 병원도 가 봤을걸요?]

‘아…… 그건 그렇겠네.’

[아니, 대체 인공지능보다 세상 물정에 어두우면 어쩝니까?]

‘괜찮아. 난 교수니까.’

[어후.]

‘여차하면 아빠가 도와주겠지.’

[이현종이요?]

‘아, 뭐 삼촌도…… 하여간 환자 봐야지?’

듣다 보니까 비난이 섞이긴 했는데, 듣다 보니 또 타당한 말이긴 해서 말을 돌리기로 했다.

[그러죠.]

당연하다는 듯 잘도 먹혀들어 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현종, 이수혁 모두 명의병으로 이름이 드높긴 하지만.

누가 뭐래도 바루다가 진짜 명의병 그 자체였으니.

“환자분.”

“어…… 제 순서가 아닌데요.”

“저는 순서대로 안 봅니다. 심한 환자부터 보죠. 그렇게 안내가 갔을 텐데요?”

“아…… 네네. 그렇긴 합니다.”

사실상의 의료 봉사 아닌가.

검사 외에는 딱히 뭐 진료비가 책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진료에 나선 이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한 푼도 없다고 보면 되었다.

하여간 그 때문에 지침은 중구난방이었다.

“손을 좀 볼까요?”

그렇게 진료가 시작되었다.

‘어떻게 봐도 류마티스 관절염처럼 보이는 변화가 있네…….’

[네. 그 점이 이상합니다.]

‘그렇지?’

이상하다고 하는 이유가 있었다.

치료를 안 받은 게 아니어서 그랬다

약한 약만 썼냐?

그것도 아니었다.

Hydroxychloroquine, 스테로이드.

류마티즘 질환에 써 볼 수 있는 약 중에서 제일 세다고는 못 해도 뭐, 그럭저럭 강한 약들이었다.

그러나…….

환자의 손은 전형적인 류마티스 관절염의 종착점 같은 모양새를 띄고 있었다.

“환자분, 이거 얼마나 된 거죠?”

“이제 한 2년 되었습니다…….”

“2년. 치료를 받으셨다는 거죠?”

“네.”

심지어 2년 만에 이렇게 되었다고 했다.

너무 빨랐다.

물론 초기 류마티스 관절염은 그 특성상 증상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증상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게 류마티스인지 모를 수 있다는 얘기인데…….

그걸 감안한다고 해도 2년은 좀 너무 급했다.

“이 손가락은 언제 자르신 거예요?”

수혁은 혹 수지 절단이 다른 일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을 상정했다.

이제 그럴 만한 일이 드물어진 시대가 오긴 했지만…….

혹 모르는 일이었다.

드물다고 해서 없어지는 건 또 아니니까.

“한 반년……? 아니 8개월?”

“관절염이 심해지셔서 자른 거예요?”

“아…… 네. 어쩔 수 없다고…….”

“어느 병원에서요?”

“이건 제주도에서 했습니다.”

“그렇군요. 류마티스 관절염이라고 들으신 거죠?”

손에 구축(근육이나 힘줄이 수축되어 운동이 제한된 상태)이 와서 오므라들어 있는 모양새가 확실히 류마티스로 봤을 거 같았다.

아니, 지금은 수혁이 보기에도 그랬다.

바루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네. 이렇게까지 약이 안 드는 건 처음 본다고…… 다들 고개만 흔들더라고요.”

“흐음…….”

난치성 류마티스 관절염도 분명 있기는 했다.

세상엔 참 어려운 병들이 많지 않나?

어떤 질환은 진단보다 치료가 훨씬 어렵기도 했다.

멀리 갈 걸 없이 암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미 인류가 암을 인지한 지 수 세기가 지났고, 치료를 위해 천문학적인 인력과 돈을 쏟아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암 치료는 요원한 일이었다.

“혹시 2년 전 증세가 어떻게 시작됐죠?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어요.”

“어…… 그렇게 말씀하셔도 사실 오래된 일이라…….”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아직 제 진료 시간도 꽤 남아 있습니다.”

수혁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세 명의 통합진료센터 의사들이 말 그대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사실 진료라는 게 난이도에 따라 걸리는 시간이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상대적으로 쉬운 케이스는 말 그대로 쳐 내는 수준으로 볼 수 있는 능력자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그…… 알겠습니다. 우선 여기가 좀…… 아팠어요.”

아마 의료진이었다면 여기가 아니라 왼쪽 손등이라거나 하는 해부학적인 용어가 튀어 나왔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용어를 마치 새로운 언어라도 정립하듯 빡빡하게 정리한 이유 자체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함이었으니까.

눈앞에 환자를 두고 있는데 무슨 필요가 있겠나.

그저 가리키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어떤 식으로 아팠습니까?”

눈에 띄게 변화가 구축성 변화가 있는 왼쪽 손을 보며, 수혁이 물었다.

‘이제 보니 손에 이런저런 상처가 꽤 많은데……?’

[네, 뭔가 손을 쓰는 직업인 듯합니다. 해에 그을린 얼굴이고요.]

‘어부……이려나?’

[그럴 가능성이 대단히 크죠.]

‘그렇군. 그럼 바다에서 다쳤겠는데…… 손등에 좀 커다란 흉터가 있어. 크기로 보면…….’

[이미 흉터가 된 지 오래되어서…… 지금은 길이 3cm, 너비 0.3cm 정도로 추정이 됩니다. 하지만 구축이 되었을 수도 있어요.]

‘그렇겠지. 원래 모든 흉터는 쪼그라들기 마련이니까.’

수혁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환자가 답했다.

“여기가 막 붓더니만 아프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더니 팔꿈치도 아프고, 손가락도 아프고…… 아휴, 이거…… 지금도 아픕니다. 약을 먹어도 정말 잠깐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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