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50화 (950/1,303)

950화 에헤이 그런 걸 (2)

수혁의 신체 검진은 그 종류를 막론하고 완벽하지 않던가.

신경학적 검사 또한 그러했다.

그 흔한 척수반사부터 바빈스키 검사(발바닥 바깥쪽을 긁어 반사 반응을 보는 검사)까지.

의료진들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다른 이들조차 일련의 동작을 마치 예술이라도 되는 양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네? 도지사 어머님이요? 지금 여기? 아니…… 제가 지금 감압병으로 진단하고 치료하고 있는데요?”

다들 그렇게 흐뭇하게만 보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어젯밤에 와서 몰래 환자를 보고 갔을 때와는 상황이 좀 달라지지 않았나.

이게…….

일이 너무 커져 버렸다.

해서 원장도 와 있었는데, 그만 도지사 어머님을 보게 된 것이었다.

“뭔가 실수라도 한 거 아니야……? 증상이 감압병하고 다른데?”

“아닙니다. 아니…… 제가 제주도에서 진료한 게 벌써 몇 년인데요. 사타구니 아파하고 하는 거 그거…… 드물긴 해도 아예 못 보는 증상도 아니에요. 특히 고령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 있어요.”

따지고 보면 애초에 숨차고 잠수하는 해녀에게 감압병은 극히 드문 질환 아닌가.

허나 의학에 있어서 나이는 깡패였다.

나이가 들면 모든 질환의 유병률이 올라가면 올라가지, 떨어지는 법은 없었다.

감압병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제 리뷰 논문을 봐도 노인에 있어서는 감압병을 훨씬 유의해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줄줄이 적혀 있을 지경이었다.

“그래, 근데…… 왜 뭔가 다른 거 같냐고.”

당연하지만, 이곳의 응급의학과 교수라면 누구나 감압병에 대해서는 일종의 프로라 할 수 있었다.

너무 많이 봐서 익숙해진 지 오래인 수준이랄까?

그러니 원장의 말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나도…… 나도 이현종, 이수혁은 알지.’

심지어 응급의학과 교수는 이현종 부자에 대한 소문을 들어 본 적이 있음에도 그러했다.

천재라고 들었다.

아니, 듣기만 한 게 아니었다.

누가 링크를 보내 줘서 유튜브도 좀 봤는데, 최근 공부의 절반은 그 유튜브로 하는 느낌이었다.

어찌나 특이한 케이스를 한 치의 막힘도 없이 풀어 내는지…….

케이스를 공부하는 느낌도 있었지만, 교수로서는 오히려 그 추론 방식을 배우고 싶어서 열심히 들었다.

‘그래도…… 감압병은 선 넘었지?’

하지만 감압병은 아니었다.

이건 내가 짱이라고.

진짜로.

서울 촌것들이라고 해도 좋을 수준이라고…….

“일단 제가 가겠습니다.”

“어제 당직 아니었나?’

“그래도요. 제 환자를 보고 있다면서요. 아무리 두 교수가 천재라 해도 감압병 보는 건 제가 더 나아요. 사고 칠 수도 있습니다.”

“사고……?”

응급의학과 교수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도 원장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직접 보기 전에는 솔직히 좀 씩씩대면서 온 것도 사실이었다.

뭐…… 병원 홍보가 되는 건 좋은 일인데.

생각해 보면 어차피 국립대학교 병원이고, 이 양반들이 여기 남아 줄 것도 아니지 않나.

다시 돌아갈 사람인데 사람들이 이렇게 관심을 보인다는 것도 어찌 생각하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딱히 사고 치는 느낌은 아닌데…….’

허나 와서 보니까 좀 다르긴 했다.

일단 진료 보는 분위기가 달랐다.

골프복 입고 있는 주제에…….

저 도지사가 굽신대고 있지 않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대화가 아주 잘 들리진 않는데, 그럼에도 확연히 알 수 있는 사실 하나는…….

‘뭔가…… 뭔가 벌어지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와는 달리, 도지사란 인간이 얼마나 까다로운 인간인지 알고 있지 않나.

저 인간 저거 아무한테나 저럴 위인이 절대 아니었다.

원장인 자신도 우습게 보는데, 누가 봐도 새파랗게 어린 교수한테 저런 태도라고……?

뭔가 계기가 있는 게 분명했다.

“하여간 갑니다.”

“어…… 그래.”

그렇다고 온다는 교수를 막을 수도 없어서 일단 그러라고 했다.

“양측 모두 바빈스키 사인이 양성…….”

그 사이 수혁은 신경학적 검사를 마치고, 소견을 정리하고 있었다.

바빈스키 사인은 발바닥을 위에서 아래로 죽 긁었을 때, 발가락이 뒤로 벌어지는 것을 말했다.

신생아에서는 뒤로 벌어지는 게 정상 소견이었다.

그때는 신경이 다 성숙되지 않아서 그랬다.

허나 성인이 이렇게 된다는 건, 당연하게도 이상한 일이었다.

“팔도…… 약간 떨어져 있어요.”

“뭐 안 좋다는…… 그런 겁니까?”

“예상되는 레벨은 C2. 꽤 높은데…… 흐음…….”

“저기, 교수님?”

수혁은 일단 추론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지금은 좀 심각한 상황이었다.

모든 것을 정확히 정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감압병이 원인이라면…… 척수 신경으로 들어가는 혈관에 손상이 발생했을 수 있습니다.]

‘근데 머리나 다른 데는 멀쩡하고 척수 쪽만 그럴 수가 있나?’

[관련 케이스를 본 적은 없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본 적은 없다는 얘기지?’

[네. 다만 감압병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질환이라 분류하여 열심히 공부하진 않은 편입니다.]

‘그럼 가능할 수도 있다는 얘기네. 뭐가 되었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는 거잖아?’

[그렇습니다.]

‘그래.’

가설과 현상이 맞지 않다면, 아무리 관련되어 있어 보이는 케이스를 읽었다 해도 폐기해야 할 터였다.

반대로 가설과 현상이 맞아떨어지고 있다면, 관련 케이스를 본 적이 없거나 또는 관련 경험이 부족하다고 해도 일단은 달리는 게 좋았다.

좀 더 기다려 볼 수 있는 질환이라면 모르겠지만…….

“환자분, 아까보다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는 느낌이죠?”

“어…… 어유우…….”

이건 그런 종류의 질환이 아닌 듯 보였다.

실제로 감압병으로 인해 혈관병증이 발생했다면, 시간이 제일 중요했다.

감압치료도 하고 고압 챔버 안에 들어가기도 했다곤 하지만, 척수 신경으로 들어가는 혈관들이 문제라면 그것만으론 불충분했다.

최대한 빨리 확인하고, 그에 맞는 치료를 해야만 한다는 얘기였다.

“우선 MRI 찍죠. 부위는 척추. 특히 C2 레벨이 잘 보이게.”

다리뿐 아니라 팔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양측 팔을 붙잡고 힘을 주라 말하였는데도 힘이 빠지고 있다는 걸, 적어도 바루다를 탑재한 수혁만은 눈치챌 수 있었다.

속도는 느릴지언정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게 더 진행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돌이킬 수 없을 터였다.

신경은 한 번 망가지면 절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돌아오는 법이 없었으니.

“네? MRI요?”

하여간, 어쩌다 보니 책임을 지게 된 고재현 교수가 의문을 표했다.

그 또한 어제 기적에 가까운 천재성을 보긴 했지만 이 환자는 예외라 생각해서 그랬다.

예전의 제주도였다면 혹시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다이버들이 늘어나면서 감압병은 적어도 제주도에서는 퍽 흔한 병이 되어 버렸다.

여기 응급의학과 교수는 당연히 그 감압병에 대해 전문가였고.

헌데 그들의 판단을 송두리째 뒤집어……?

“아, 찍으라면 찍자. 재현아.”

“그…….”

“너 방금 진료 못 봤어? 너희 기록이랑 아예 다르잖아.”

“그…… 그건 그렇긴 한데.”

“그렇긴 하면 말을 들어야지, 멍청아.”

“그……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아마 수혁 혼자였다면 좀 더 말려 볼 생각을 했을 수도 있었을 터였다.

허나 그의 옆에는 이현종도 있었다.

불세출의 기인인 이현종은 화나면 무서웠다.

게다가 들으면 들을수록, 확실히 뭔가 소견이 좀 바뀐 기분이 들었다.

아예 다른 질환인 건가 싶기도 하고.

‘뭐…… 도지사쯤 되는 양반한테 MRI 검사 비용이 부담될 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가격에 대한 저항이 없을 것 같다는 게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자, 그럼.”

그렇지 않아도 원장이 뒤에서 나름 조정을 하고 있지 않았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도지사의 어머니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선서를 했다 해도 이현종, 이수혁처럼 환자의 신분을 전혀 고려치 않는 의사는 드물었다.

땅땅땅땅.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환자는 곧 MRI실에 들어가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시간이 꽤 걸리는 검사다 보니, 아직 반도 채 돌아가기 전에 응급의학과 교수가 도착했다.

오던 중간에 MRI를 찍으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더 속도를 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동안 제주대학병원으로 늘어섰던 차량들이 다 어딘가로 간 덕분도 있었다.

“아니…… 두 분.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감압병 환자인데 왜 갑자기 MRI를 왜 찍는단 말입니까. 그것도 척추라니요?”

“누구시지?”

“여기 응급의학과 교수입니다! 가운 입었잖아요?”

“아…… 네네.”

그는 그렇게 MRI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성질을 부렸다.

어쩌다 보니 원래 오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더 화를 내게 되었는데, 이 둘의 반응 때문이었다.

게다가 옆에 선 놈들도 만만치가 않았다.

“다 뜻이 있으십니다.”

“일단 진단이 이수혁 교수님과 다르다면, 내가 잘못했구나 하시면 됩니다.”

이따위…….

이따위 말은 교수 달고 처음 들어 봤다.

아니, 기억이 희미할까 봐 보수적으로 말한 것일 뿐 평생 처음 들어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에헤이! 뜻이 있다니! 내가 이런 걸…… 감압병을 놓칠 거 같아요? 이런 걸 틀린다고 말하는 겁니까?”

게다가 앞에는 도지사도 있었다.

뭔가 막 잘 보이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틀렸다고 오해받는 건 참을 수 없었다.

해서 막 성질을 부리는데, 이게 참 벽에다 대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들어 처먹질 않았다.

“뭐…… 그런 말은 아닌데요. 다른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아니…… 그게 그 말이잖아!”

“그게 그렇게 되나요?”

“하아.”

어째 아까부터 소리를 지르고는 있는데, 속이 시원해지기는커녕 뭔가가 틀어막은 것처럼 갑갑해지는 기분만 들었다.

‘시발…… 아니, 아니지. 내가 왜 이런 욕을.’

나름 점잖은 사람이라고, 심지어 응급실 교수를 하면서도 욕 안 하고 버텨 왔던 그이기에 스스로의 욕설에 크게 놀랐다.

속으로만 놀란 건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딱히 관심을 받진 못했다.

“온다, 영상.”

“어디…….”

다른 놈들은 그의 존재를 잊기라도 한 건지 뭔지, 그저 넘어오기 시작한 MRI만 보고 있어서 그랬다.

‘하아.’

도리가 있나?

주먹으로 칠 수도 없고.

들어 주질 않으면 화내는 사람만 손해였다.

게다가 영상이 넘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의사 된 본능 때문에라도 눈길이 그리로 갈 수밖에 없었다.

“흐음…… 역시.”

“여기…… 여기 말하는 거지?”

그 영상을 보고 있다 보니, 그리고 두 부자의 대화를 듣고 있다 보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뭐가 있어서 그랬다.

그것도 딱 C2 레벨에…….

“척수 신호 자체는 주변부에 비해 높고, 주변의 척수액은 신호가 떨어져 있어요. 척수염의 증거인데…… 다행히 완전히 손상된 것처럼 보이진 않아요. 지금 당장 신경과에 알리시고, modified USN Navy Table 9(미 해군 수정 처리표 9)에 의거하여 산소 치료 용법을 바꿉니다. 거기에 더해 헤파린 치료도 필요해 보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물리적 감압도 필요해 보입니다. 그나마 지금 발견해서 다행이군요.”

당연히 이어지는 수혁의 완벽한 설명에는 더 할 말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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