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0화 이걸 모른다고? (2)
앞에서 설왕설래하고 있는 놈들 모두가 이현종의 제자였다.
좁게 봐도 김성진과 심장내과 교수들은 자신이 직접 가르친 제자이지 않나?
넓게 보면 내과 레지던트들에 인턴까지 다 제자였다.
꼭 같은 과 교수만 스승이 되겠나?
원래 대학 병원의 교수는 그가 툭툭 던지는 한마디가 다른 젊은 의사의 인생을 바꿔 줄 수 있다는 걸 유념하고 살아야 했다.
‘아…… 화가 나는데, 화를 낼 수가 없네?’
하아.
이현종은 한숨을 한번 푹 내쉬곤 이내 말을 이었다.
“자자, 그만들 하고.”
한숨이 도움이 되었던 걸까.
아니면 줄곧 보아온 수혁의 모습이 도움이 되었던 걸까.
알기는 어렵지만 하여간, 어느새 이현종의 얼굴은 시험하는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감정이 드러나 있다기보다는 그저 기대감이 어린 그 얼굴.
거의 뭐 악마에 가까운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자, 일단…… 초음파부터 보자. 이게 어떤 종괴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앞으로의 토의가 더 의미를 가질 테니까.”
이런 얼굴을 한 이현종은 종종 학회장을 뒤집어 놓았더랬다.
김성진이야 단지 풍문으로만 들었을 따름이지만, 심장내과 교수들은 직관한 적이 많았다.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이상했다.
‘왜…… 왜 저러지?’
심장내과 교수들은 눈을 마주쳤다.
함정에 빠진 느낌이라 그랬다.
큰일이었다.
망할.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했다.
“자, 잘 봐라.”
이현종은 그런 제자들 앞에서 초음파를 가리켰다.
정확히 말하면 경흉부 초음파 중에서도 심장 끝 4방 단면도(Apical 4-chamber view)가 떠 있었다.
거기에 뜬 우심방에는 확실히 종괴가 있었다.
그것도 꽤 커다란.
쿵- 쿵-
영상을 재생하자 외부 병원에서 시행한 초음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말이었다.
이렇게만 보면 심장은 건강해 보였다.
우심방의 종괴만 아니라면…….
“일단 여기 종괴로 보이는 조직이 있지. 대략 1cm가량? 이런 게 있으면 증상이 발생할 수 있지. 여러 가지가 있긴 할 텐데…… 우선적으론 초음파상에서 확인 가능한 것만 두고 보자고. 자, 이 환자 심박출량이 어떻지?”
우심방은 전신에서 들어오는 혈액을 받는 곳이면서 동시에 우심실, 그러니까 폐동맥으로 피를 보내는 곳으로, 피를 주는 역할도 하는 곳이었다.
여기에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당장 심박출량이 어떻게 되기는 어려웠다.
우리가 흔히 측정하는 심박출량은 폐동맥이 아니라 대동맥으로 향하는 피의 양이니까.
다시 말해 좌심실의 기능을 평가하는 것이란 얘기였다.
당연하게도, 별문제가 없었다.
“66%입니다. 정상입니다.”
“그래, 정상이지. 나이를 고려하면 건강체라고 볼 수 있어. 자, 그럼 우심방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우심실은 어때.”
“그쪽에도 별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판막은?”
“판막 역류 등의 증상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개별적으로 보면 딱히 어려울 것도 없는 질문들이었다.
심장내과 교수까지 안 가도, 펠로우만 돼도 문제없이 답할 수 있는 질문들이었다.
단순히 초음파를 볼 수 있냐 없냐를 가르는 질문들이라서 그랬다.
당연하게도 이현종이 묻기엔 부적합한 질문이었다.
‘이걸…… 왜……?’
‘레지던트를 배려하시는 거 아닐까?’
‘배려……? 이현종 교수님이……?’
‘요새 좀 나아지셨잖아.’
‘그렇지만 너무 나아지는 거 아닌가.’
‘하긴. 너무 변하면 돌아가실 때가…….’
‘너는 할 말 못 할 말 구분이 안 되냐? 미쳤어?’
‘미, 미안.’
이현종의 평소 모습은 ‘괴팍’ 그 자체 아니었던가?
스승으로 또 선배 의사로 존경스러운 사람이고, 또 기본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신현태처럼 부드럽냐고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다들 혼란스러웠다.
답할 수 있는 질문만 하다니.
이건…….
“좋아, 그럼 딱히 초음파상에서 관찰되는 심장의 이상은 없군. 적어도 이 종괴로 인한 매스 이펙트(종괴 효과, 이후 문제)는 없다는 거야. 동의하나?”
“어……”
“동의해, 안 해. 다른 의견 있으면 줘.”
매스 이펙트.
말이 좀 이상한데, 쉽게 말하면 그냥 덩어리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경우를 뜻한다고 보면 되었다.
가령 저게 어딜 눌러가지고 문제가 생기고 있다든지, 아니면 저 덩이 때문에 심방이 제대로 못 뛰고 있다든지 하는 것들을 의미했다.
암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인데, 암은 그 외에 직접적으로 주변 부위를 파괴해 버리기 때문에 얘기가 좀 달라졌다.
“동의……합니다.”
영상을 아무리 봐도 주변 조직이 상했다거나 하는 증거를 찾긴 어려웠다.
물론 초음파는 영상의 한계가 있다 보니, 제대로 파악하는 것 역시 어렵긴 했다.
“그래, 이렇게만 보면 그래. 근데 이게 반드시 종괴라는 증거가 있나? 혈전일 가능성은 없나?”
“미약하지만, 있습니다.”
“그래, 그렇게 판단했던데. 검사 결과가 떴어. 볼까?”
심장은 혈관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은 공간이 있는 장기이지 않나.
안에서 피가 겉돌면, 얼마든지 응어리질 수 있었다.
물론 지금 심장이 뛰는 모양을 보면 딱히 그럴 것 같진 않지만…….
혹 구심점이 될 만한 혈전이 어디선가 발생했거나 또는 심내막염 등이 발생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 확률이 미약하다곤 해도, 확인은 해야 했다.
저만한 덩이가 혈전이라면, 언제든지 뚝 떨어져서 다른 곳으로 날아가 혈관을 막아 버릴 수 있었으니.
우심방에 있으니 폐색전증을 일으킬 수 있단 얘기였다.
“디다이머(D-dimer, 혈전이 용해될 때 생기는 단백질)는 정상. 이것만으로 아무것도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사실 배제할 수 있다고 봐야겠지. 그 외에 혈청 종양 표지자도 나갔는데, 이것도 정상이야.”
“네. 확인은 해 봐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럼 그 외 신체 지표는 어떻지?”
“신체 지표라 하시면……?”
“분당 심박 수, 혈압.”
“아. 심박 수는 60회에서 65회. 혈압도 정상입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개별적인 질문은 하나도 어려울 게 없었다.
아니, 아까보다도 훨씬 쉬워졌다.
이건 배경 지식이 없어도, 그저 환자를 열심히 봤으면 누구라도 답할 수 있는 수준의 질문이지 않나.
‘이상한데…….’
‘뭔가…….’
‘이상해…….’
‘불안하다…….’
그렇다 보니, 다들 서로를 마주 보게 되었다.
평소 이현종을 아는 이들이다 보니 이게…….
“정리하지. 우측 심방에 종양으로 의심되는 것이 있어. 근데 관련 증상은 하나도 없고, 심장과 관련한 바이탈 지표 또한 모두 정상이야. 혈액 검사에서도 정상이지. 초음파 소견에서도 종괴 외에는 싹 다 정상이야.”
“네, 그래서 이상합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답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해서 교수들은 이현종의 말에 답했고, 이현종은 걸렸지 하는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이상하긴 한가 본데.”
“아.”
그제야 모두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했던 질문을 개별적으로 보면 안 된다는 것을.
이 모든 문답은 개별적으로 보이지만 다 연결되어 있었고, 결국엔 함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이현종은 당황한 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웃었다.
연기는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미소였다.
“종괴가 있으면 응당 나타나야 할 증상이나 지표가 하나도 없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의심해야 하지?”
“그…… 종괴가 아니란…… 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까?”
“네가 심장을 뒤집어 까서 봤어?”
“아뇨, 초음파로 봤습니다.”
“그래, 초음파로 봤지.”
이현종은 새카만 화면에 하얀 무늬가 떠 있는 초음파 화면을 가리켰다.
심장내과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익숙한 화면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보기엔 그저 이상한 화면일 뿐이었다.
애초에 심장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게 아니라서 그랬다.
초음파를 쏴서 날아오는 신호의 강도를 시각화해서 보여 주는 화면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건 실제 이미지가 아니야. 내가 누누이 말하잖아? 청진기로 들었던 시대에 비해 시각적인 자료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지금이 검사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건 당연한 일이야. 하지만 신뢰도가 높다는 말이 맹신으로 이어져서는 안 돼.”
“그…….”
“초음파는 언제든지 틀릴 수 있어. 너희도 그걸 아니까, 검사를 낸 거 아닌가? PET/MRI 냈더만.”
“아…… 네. 근데 그건…….”
초음파가 정확하지 않다는 거야 뭐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교수들이 합의하에 PET/MRI라는 처방을 내게 된 건, 종괴 자체를 의심해서라기보다는 종괴의 정확한 형태와 크기, 그리고 위치를 가늠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종괴가 있는 것은 확실한데 그 종괴가 어떤 것인지 파악하려고 냈다는 얘기였다.
‘이놈들…….’
이현종은 그렇게 대답하는 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처방의 배경을 바로 알아차렸다.
눈치를 볼 필요가 없거나 보고 싶지 않아서 살피지 않을 뿐이지, 작정해서 보려고 하면 또 어떤 사람들보다 잘 알아차리는 사람이 이현종이지 않나.
사소한 것까지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수혁과는 조금 달랐다.
“마침 검사를 시행했던데…… 보자고.”
“네? 벌써요?”
“내가 전화했어. 강의해야 하니까 좀 서둘러 달라고.”
“아, 교수님이.”
PET/MRI는 핵의학과 검사다 보니, 다른 영상 검사들보다는 시간이 좀 더 걸리는 편이었다.
PET CT가 암 진단 및 전이, 재발 판정에 있어서 워낙에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어서 대기하는 것도 더더욱 길어졌는데, 그것도 사이에 끼워 넣으려 하면 어떻게든 할 수는 있는 모양이었다.
심장 문제라고 하니 핵의학과에서 살짝 쫀 것도 있었다.
암도 심각한 질환이지만 대개의 경우 하루 이틀 새에 어떻게 되지는 않는데, 심장은 몇 분만 지나도 난리가 터지지 않나.
“잘 봐라. 이게 종괴인지 아닌지. 아휴, 이 돌대가리들.”
이현종은 아직 영상을 보지도 않았으면서 고개를 뒤흔들었다.
그리곤 방금 찍은 따끈따끈한 영상을 보여 주었다.
“Cine gradient-echo 이미지로 가지.”
“아, 네.”
제일 잘 보이는 창까지 골라 주었다.
그리곤 손가락을 쫙 펴서, 손톱으로 영상을 가리켰다.
화살표를 대신하는 셈이었다.
“우심방의 후벽에 부착된 종괴가 있네. 이게 어떻게 보이냐? 여기서는?”
“어…… 화살촉 모양…… 아.”
심장내과 교수들은 그걸 보자마자 하아 하고 탄식을 터뜨렸다.
나머지는 아직 아니었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놈들이니 당연했다.
“그게 우심방의 수축기 및 이완기 동안 이동하네? 확실히 부착되어 있어. 모양과 움직임을 기억하고, T2로 갈까.”
이현종은 이미지를 바꿨다.
심장 쪽이면 수혁은 물론이거니와 그냥 모든 사람 위에 있는 사람이다 보니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여기서 보니 아까 그 종괴가 주변 심장 근육과 신호가 거의 같군. 조영 증강은……? 역시나 이상해 보이는 곳은 없고. PET에서는…… 딱히 업테이크가 증가되어 있어 보이지도 않네? 그럼 결론이 뭐야?”
이현종은 질문을 던지면서, 김성진을 바라보았다.
김성진은 배경 지식이 별로 없었지만, 들은 정보를 취합하는 건 할 수 있는 위인이었다.
“종괴의 성상이…… 심장 근육과 아예 같다는 것……. 그러니까 심장 근육이라는 걸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