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화 더 커진 센터 (3)
흉부외과 펠로우는 전화를 끊는 즉시 후달리는 마음을 이겨 내지 못하고 센터로 달려왔다.
그 사이 수혁은 아이를 진료실이 아닌, 음압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1인실로 이끌었다.
물론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N95 마스크를 비롯한 여러 보호장구를 갖추고서였다.
공기 감염이 될 수도 있지 않나.
그렇다고 해서 부모에게도 당장 뭘 하진 않았다.
“저희는요……?”
아버지가 살짝 섭섭하단 얼굴로 물어왔다.
‘왜 그러지?’
[글쎄요?]
완전무장하고 있는 수혁은 바루다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으나, 당연하게도 제대로 된 답을 기대하면 안 되었다.
반면 안대훈은 의사 둘만 중무장하고 보호자는 무방비 상태로 둔 것이 관점에 따라 이상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대로 두기에는 좀…… 그렇지 않나?
괜한 오해를 살 필요는 없을 터였다.
그렇지 않아도 공부 잘하는 사람은 인성이 그렇고 그렇다는, 영 이상한 선입견들이 있지 않던가.
“아, 아버님. 아버님과 어머님은 잠복 결핵 가능성이 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단 검사를 진행하고 음성이 나오면 조치를 할 텐데…… 그전까지는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잠복 결핵이요?”
“네. 결핵이라는 게 건강한 성인에서는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 경우도 많거든요. 숨어 있다가, 숙주가 약해지면 그때 활동을 하는 등…… 아주 영리하게 행동하는 균입니다. 그래서 검사를 해 보는 겁니다.”
“아…… 그럼 저희는 벌써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시는 거군요?”
“네. 가족은 무조건 밀접 접촉자로 분류하거든요. 또, 아시겠지만…… 아직 아이가 결핵인지 아닌지 확인한 것은 아니라…… 저희는 감염되면 2주간 의료진으로서 활동을 못 하게 되기에 조심하고 있습니다.”
“네…….”
해서 대훈은 성심성의껏, 본인의 장점인 연륜 있어 보이는 얼굴을 이용해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상하게 같은 말을 해도 동기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한 대훈이 아니던가.
오늘도 그랬다.
보호자는 완전히 납득한 채, 병실에 앉아 흉부외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똑똑.
그렇게 몇 분 있으려니, 노크 소리와 함께 역시나 중무장한 흉부외과 의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
그러곤 잠시 멈칫했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아이가 진짜로 애라서 그랬다.
만 2세.
한국 나이로 해 봐야 4살.
유아의 기준에 부합하는 아이는 정말로 작았다.
흉부외과에도 물론 소아 흉부외과가 있어 아이들을 꽤 자주 보기는 하지만, 아픈 애를 보는 것만큼은 쉬이 익숙해지질 못했다.
“그…… 네. 검사를 해 보려는데, 마침 쐐기 절제술로만도 절제가 가능해 보이는 결절을 확인했습니다. 아이가 좀 어리긴 한데…… 수술이 그리 위험하거나 어려운 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당황은 짧았다.
솔직한 얘기로, 이 넓지 않은 대학 병원 안에는 비극이 너무 많지 않던가.
매번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에 빠진다면 정말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터였다.
좋건 싫건 침착을 가장할 수는 있어야만 했다.
“아…… 네.”
실제로 그게 환자나 보호자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말마따나 지금의 보호자도 그랬다.
흉부외과 의사가 멀쩡한 얼굴로 말을 잇자, 이쪽도 얼마간 차분해졌다.
그래, 별일 아닐 거야.
우리 아이가 이겨 낼 수 있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럼 동의서부터 작성하실까요? 마취는…… 교수님이 컨펌해 주신 덕에 바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 그럼 검사를……?”
“네. 지금 바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시간 끌어서 좋을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결핵이라면?
결핵약을 빨리 써야만 했다.
오랜 시간 인류와 함께해 온 이 저주스러운 병은 그만큼 인간에게 너무 잘 적응해서 그런지, 참 천천히 사람을 죽이는 데 반해 치료하기가 어려웠다.
오래 걸린다는 얘기였다.
‘결핵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암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암은 뭐가 되었건 최대한 빨리 치료하는 게 우선이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선생님.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 아버지는 마른 눈동자로, 그러나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흉부외과 의사는 그런 아버지의 손을 한번 잡아 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이를 고쳐 드리겠습니다.
이 말은, 의사로서 제일 하고 싶은 이 말은 참았다.
대학 병원 의사 중에서도 제일 사명감 있는 의사들이 모여 있다고 봐도 무방한 흉부외과.
이곳에서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겠는가.
누구보다 사람 살릴 열망을 품고 있는 이들이지만, 그래서 더 많은 죽음을 목도해야만 했다.
그런 곳에서 수련을 받다 보면 좋건 싫건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않게 되는 법이었다.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수혁은 그런 흉부외과 의사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또 자신이 쌓아 온 경험을 통해 고개를 숙인 다음 환자와 흉부외과 의사, 그리고 보호자를 떠나보냈다.
마음 같아서는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환자가 너무 많았다.
대신 요청은 했다.
검체가 나오면 슬라이드 하나만 보내라고.
그럼 자기가 바로 보고 임상적인 추론을 더해 병리과와 소아과에 알려 주겠노라고 했다.
‘뭐…… 이수혁 교수님이라면 그럴 만한 자격도 있고, 능력도 있지.’
수술과에 하기에는 살짝 과한 요청이었지만, 흉부외과에서는 충분히 납득했다.
수혁이 지금껏 해냈던 어마어마한 일들 덕분이었다.
기적이라는 말로밖에는 설명하지 못하는 케이스들이 너무도 많았다.
드르륵.
하여간 일행이 떠나고, 수혁은 진료를 지속했다.
말이 진료지, 일단은 여전히 케이스를 살피고 있었다.
급한 사람부터 봐야 하지 않겠나?
어지간한 환자들은 의뢰만 들어왔지, 해당 과에서 자체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컸다.
이곳은 태화 의료원,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1등 의료기관이었으니.
“이 환자…… 음.”
“안과 환자군요. 증상 자체는…… 사실 별거 없긴 한데요?”
“하지만 이유 없이 이런 소견을 보인다는 건 사실상 말이 되지 않지.”
다음으로 수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젊은 안과 환자였다.
28세 여자.
이곳이 비단 대학 병원이 아니라 해도, 젊다는 말을 쓰기에 적당해 보이는 나이 아닌가?
하여간 수혁이 골랐으니 대훈도 보긴 봐야 했다.
해서 봤다.
아니, 읽었다.
“고열과 동반된 양측 눈꺼풀 부종을 주소로 내원했습니다. 로컬 안과에서는 딱히 눈병 소견을 찾지 못했으나, 확실히 눈꺼풀 부종이 있다는 것은 인지했고, 해당 대학 병원으로 의뢰했습니다. 대학 병원에서 시행한 안과적 검진 상 안압이나 시력, 시야 등에는 이상이 없었으나…….”
안과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보이면 응급은 아니다.
다시 말해 시력이 떨어진 게 아니면 응급은 아니란 건데, 과장된 말은 아니었다.
막말로 이비인후과에서도 이과, 즉 귀를 보는 분과는 청력의 변화 유무를 통해 응급과 비응급을 나누지 않나.
아마 해당 안과에서도 저 소견을 보고 꽤나 안심했을 터였다.
“이후 시행한 눈물샘 CT에서 눈물샘 부종이 관찰되었습니다. 원인 미상의 알레르기 반응으로 판단 후 경구 스테로이드 치료하였고, 증세가 호전되었으나 재발하여 이번에는 본원으로 의뢰되었습니다.”
그러니까 CT도 찍고 했겠지?
하여간 스테로이드를 썼다는 것이 굉장한 단서가 될 것 같았다.
살짝 생각 없이 쓴 것 같단 느낌도 있긴 한데…….
그래도 어쨌든 썼고, 그로 인한 효과도 봤다는 말 아닌가?
허나 문제가 있다면 재발했다는 점이었다.
알레르기를 의심했다는데, 무슨 알레르기를 의심했는지에 대해서도 적혀 있지 않았다.
보통 의뢰가 아니라 통합진료센터로의 의뢰인데, 그러니까 이현종이라는 악마가 도사리고 있는 곳에 보내면서 안 써 놨다는 건, 그냥 검사를 안 했다는 거라고 보면 되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수혁은 쯔쯔 혀를 차고는 대훈을 바라보았다.
대훈은 그런 수혁의 뜻을 바로 알아먹었다.
“부르겠습니다.”
“좋아. 혹시 모르니까 일단 밖에 소리쳐 봐.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다 내려와 계시는 것 같기도 하네?”
“아…… 네. 외래 느낌 나고 해서 좋긴 한데, 환자들이 힘들 것 같습니다.”
“응, 뭐. 의자라도 마련해 놔야 하나…….”
수혁이 별로 신통치 않은 반응을 보이자, 대훈은 하던 말을 멈추고 밖으로 향했다.
하긴, 신에게 사람의 마음을 기대하는 것도 좀 이상한 일 아니겠나.
그게 좀 부족하다면, 본인이 채워 주면 될 일이었다.
다행히 안대훈은 좋은 사람이었다.
이상한 사람인 것과는 또 별개로 그랬다.
“안지영 환자분! 안과 안지영 환자분 혹시 계십니까?”
하여간 시킨 일을 하기 위해서 불렀더니, 과연 눈두덩이가 누가 봐도 좀 많이 부어 있는 여자 환자가 손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아이구.’
저걸 봤는데도 그냥 알레르기라고 했다고?
알레르기 때문에 저렇게 눈이 부을 정도면, 그 전에 숨을 못 쉬어야 정상일 것 같은데?
너무 안일하게 진료했던 거 아닌가?
거기 대학 병원 이름이 뭐더라?
대훈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하다가, 다가온 환자를 데리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섰다.
“어…… 많이 부으셨구나.”
수혁도 환자 얼굴을 보고 좀 놀랐다.
확실히 기록만 보는 것과 실제로 환자를 보는 건 천양지차였다.
‘역시 알레르기는 아니야.’
[네. 알레르기인데 저렇게 부었다면, 아나필락시스를 의심해야 합니다. 생명의 위협이 있었을 텐데, 이 환자는 저게 단순히 눈물샘 부종에 의한 것이란 기술이 있습니다.]
‘그렇지. 알레르기에서 눈물샘이 붓는다는 것도…… 좀 이상한 일이지.’
[네, 전체적으로 진료가 좀 엉망이군요.]
알레르기로 인한 부종은 혈관이 알레르기에 의해 분비되는 물질, 즉 히스타민 등에 의해 느슨해지면서 주변부 조직이 붓는 것을 기전으로 하지 않나.
눈물샘만 꼭 짚어서 붓는 건, 적어도 알레르기 질환에 있어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렇게 딱 한 조직만 붓는 건…….
‘자가면역질환인가.’
[그럴 가능성이 크겠군요.]
비단 이것만 놓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환자의 나이도 중요했다.
젊은 여자 환자.
자가면역질환이 호발하는 나이대이지 않은가.
거기에 더해, 시스테믹 스테로이드에 반응했다는 것(눈꺼풀 부종은 부작용 중 하나)도 한 가지 단서가 되었다.
그렇게 하나의 실마리를 얻은 채, 환자에게 다가가려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지금 진료 중입니다.”
“아, 병리과에서 왔습니다. 슬라이드…… 배달입니다.”
문을 열었더니 자포자기한 얼굴의 병리과 직원이 서 있었다.
‘이제 하다 하다 슬라이드 배달까지 시키네.’
이런 얘기를 다른 병원 사람들한테 하면 거짓말인 줄 알겠지?
그럴 게 뻔했다.
병리과가 갑질하는 과는 아니더라도, 을질하는 과도 아니거든.
“아, 감사합니다.”
“네네.”
“저, 환자분. 잠시만요? 이거 하나만 보고 보겠습니다.”
“아, 네.”
수혁은 그렇게 받은 슬라이드를 통합진료센터에 넣을 때 욕을 들어 먹었던 현미경에 끼워 넣고 들여다보았다.
그러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일단 결핵 맞고. 자, 환자분. 이제 보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