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12화 (912/1,303)

912화 갑자기요? (7)

그 날.

수혁교인들에게는 일종의 금언이었다.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닐 때가 있지 않나?

눈을 감고 중얼거리는 등의 일도 그랬다.

물론 안대훈은 이미 초월적인 신앙으로 모든 의문을 덮어 버린지 오래였지만, 비교적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해 오고 있는 이들에겐 걱정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럴 낌새는 없었어.”

“그, 그렇죠? 그럼 이건…… 진짜 정식으로 여쭤보시는 거죠?”

오죽하면 이현종과 신현태가 정신건강의학과에 핫라인을 유지하고 있을까.

하여간 이현종은 병리과 교수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일축하면서, 수혁을 돌아보았다.

병리과 교수도 그랬다.

수혁은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들고 있던 종양을 건네주면서였다.

“네, 정식으로 여쭈는 겁니다. 저도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근데…… 아무래도 의심이 돼서요. 아주 불가능한 건 또 아니라.”

“음. 그런……가요?”

“네.”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남자한테, 유전질환이 없는 남자한테 자궁내막증이 생기는 게……?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교수는 몰타 십자가를 출품했을 뿐만 아니라 배경화면으로도 설정해 놓은 참이다 보니 일단 움직였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나.

면역 염색을 하는 게 귀찮긴 하지만, 루틴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 뭐…….

서걱- 서걱-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슬라이드를 만들고 있었다.

면역 염색을 하기 위해선, 검체를 아예 따로 만들어야 했기에 많이 준비해야 했다.

마침 종양 크기가 거대하다 보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여유가 한참 남는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수혁이 요청한 부위는 종양 중에서도 안쪽, 그러니까 갈색 액체를 품고 있던 부위여서 일단 그쪽으로 슬라이드를 만들었다.

“이게 되려면 시간이 걸려서요. 우선 모양부터 좀 보겠습니다.”

“네.”

그렇다고 해서 바로 염색할 수 있는 건 또 아니었다.

머리카락 염색도 시간이 꽤나 걸리지 않던가.

조직은 더했다.

머리는 오히려…… 좀 상하게 해도 되는데, 조직에 그랬다가 모양이 바뀌면 오진이 되거든.

이거 뭐 어디서 더 떼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더 떼올 수 있다고 해도 몸을 또 열어야 하지 않나.

신중해야만 했다.

“으음…….”

섬세한 작업을 먼저 진행해 놓고서, 교수는 슬라이드를 현미경에 올려놓았다.

나름 예산을 빵빵하게 지원해 주는 병원이다 보니 굳이 현미경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도, 즉 모니터를 통해서도 조직을 바라볼 수 있었다.

“으음…….”

“으음……?”

그렇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딱히 소용은 없었다.

이현종하고 안대훈이 진짜 미친 듯이 공부하는 사람이고 동시에 진료에 환장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대체 언제 이런 걸 봤겠나.

자궁내막증이라니?

산부인과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손 치더라도, 적어도 내과 의사에게는 너무나 드문 질환이었다.

아니, 아예 볼 일이 없다고 해도 좋았다.

딱히 희소한 질환도 아니어서 협진을 볼 일도 없고 하니, 말 그대로 불모지라고 해도 좋았다.

“흠.”

[으음…… 점점 더 자궁내막증처럼 보이는데요?]

‘그러니까 말이야.’

[이거…… 아까 늦게라도 말하길 잘한 것 같은데요? 근데 왜 이렇게 우거지죽상이지?]

‘처음부터 말했으면 얼마나 좋냐.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인마.’

[여기서 날 비난한다고?]

허나 수혁은 달랐다.

변태적으로 다양한 케이스 보는 것에 집착하고 있는 그에게, 자궁내막증은 이미 섭렵한 지 오래된 질환일 따름이었다.

여기서 섭렵의 개념이 중요했다.

그냥 질환을 본 적이 있다?

이걸로 수혁이나 바루다에게 섭렵했다고 주장한다면, 아마 빠른 시일 내에 한 대쯤 얻어맞게 될 터였다.

‘확실히 저 병리 슬라이드…… 모양이 비슷해.’

[그렇죠. 으음…… 면역 검색을 해 봐야 하긴 할 텐데…… 그럼에도 비슷하긴 하네요.]

적어도 관련 케이스 리포트 열 개 이상, 그리고 리뷰 논문에 영상·병리·진검 소견 정도는 숙지하고 있어야 그런 말을 감히 입에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걸 직접 입에 담았다는 건, 수혁이 이걸 다 한 지 오래란 얘기였다.

“으음…….”

비슷한 생각을 병리과 교수도 하고 있었다.

‘이상하네……? 듣고 봐서 그런가, 이게 되게 비슷하긴 하네.’

병리과 교수가 누구란 말인가.

진짜 밥 먹고 슬라이드만 들여다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에게 비슷하단 직감은 절대로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이거 진짜 저도 궁금해지는데요? 확실히 자궁내막증 소견과 비슷한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그는 그날 어쩌구 했던 일은 새까맣게 잊은 채, 어느새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논문 하나만 껴 줘.’

케이스 리포트에 들어가겠지?

뭐 이런 기대도 품고 있었다.

그러지 않겠나.

뭐가 되었건 간에 진단에 도움을 주었으니까.

“얼마나 걸릴까요?”

“제가 최대한 빨리 해 보겠습니다. 음…… 며칠 내로 나오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빠르면 한 이틀 정도 걸릴 거예요.”

“아, 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병리과 교수는 일행과 일별했다.

돌아오는 길은 그리 길지 않았다.

수술방이 아니라, 회복실로 가면 되어서 그랬다.

어느새 김승규는 환자 배를 닫고 나가 버린지 오래였고, 한석준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심지어 정관까지 잘라다 묶어 놓았다.

“으…….”

덕분에 수혁은 회복실에서 반쯤 정신이 깬 환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괜찮으세요?”

“아…… 네, 그런 거 같긴 한데.”

“수술은 아주 잘 끝났습니다. 정관도 잘 묶였대요.”

“아, 네네. 제 아내는요?”

“수술 설명 들으시고, 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중환자실로 가거나 할 일은 없겠죠?”

“네? 일반 병실로 가셔야죠. 저희 센터에 자리가 있어서, 일단 거기서 보려고요.”

“네에.”

환자는 하아 한숨을 쉬면서 이제 뒤졌다 하다가, 이내 배를 내려다보았다.

BMI가 상당한 사람이다 보니 똑바로 누운 채로 눈만 굴려서 배를 보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거즈 같은 것들이 붙어 있어서 어디가 어떻게 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상한 건, 그리 아프지 않다는 점이었다.

“일단 절개 범위가 작고, 아직 마취에서 덜 깨서 그래요.”

수혁은 환자의 표정을 읽어낸 바루다의 보고를 인용해 답을 해 주었다.

촬영 감독은 확실히 이 양반이 점쟁이 빤스를 입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돌이켜보면 참 어이없는 하루였다.

그냥 일하러 왔다가 배를 째다니.

심지어 미상의 종양을 빼다니.

그게 뭐였냐고 물었더니, 얼굴 무섭게 생긴 교수랑 상대적으로 평범하게 생긴 교수 둘 다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충격적일 가능성도 있다고만 했다.

물론 뒤에 말은 직접 해 준 건 아니고, 자기들끼리 떠들던 것을 엿들은 참이었다.

‘뭔 일이여, 이게.’

충격적이라니.

대체 뭘까.

일단 분위기로 미뤄 보면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닌 거 같은데…….

“다시 주무시네. 일단 우리는 센터로 갈까?”

“네.”

“아니, 아니. 밥부터 먹자. 인터뷰하고 이것저것 하다가 벌써 점심때도 지났어.”

“아, 네. 그럴까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자각하지도 못할 만큼 막대한 졸음이 밀려왔다.

그래서 잠이 들었고, 수혁은 이현종과 더불어 밥 먹으러 갔다.

기자는 추후 그 사실을 전해 듣고는 일단 결과를 본 다음에 기사를 내기로 결정했다.

얼개는 대강 다 써 놔서 진짜 결과만 보면 바로 낼 수 있었다.

-태화 통합진료센터 진단 맛집인 이유가 있었네!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였다.

원래 같으면 편집장이나 하다못해 병원에서도 ‘이건 좀……’ 하며 우려했을 텐데.

자초지종을 듣고 나자, 왜 너는 이렇게밖에 어그로를 못 끄냐는 핀잔을 들었다.

환장하겠는 건, 자책이 든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날이었다.

‘뒈지게 혼나는 것도 보고 말이야.’

수술이 어찌나 깔끔하게 되었는지, 반차 쓰고 온 형수는 딱 보자마자 걱정 어린 말 몇 마디만 하곤 곧장 정관 떼기로 한 날 어디 갔었는지부터 물었다.

촬영 감독은 떼는 게 아니라 묶는 거라는 눈치 없는 답을 해서 더 혼났고.

하여간 이러한 연유로, 환자의 정식 진단은 비단 통합진료센터나 김승규 등만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부우웅.

그렇게 약조한 이틀이 지나고, 수혁의 전화기가 울렸다.

마침 통합진료센터팀이 모여 있었다.

사실 센터에서 거의 모든 일을 하다 보니 흩어질 일도 거의 없긴 했다.

아무튼, 수혁은 전화를 받았다.

“네,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이수혁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병리과입니다. 결과 나와서요. 교수님이 꼭 빨리 전달하라고 하셔서.”

“아아. 네. 어떻게 나왔죠?”

“네. 말씀드리겠습니다. CK7과 에스트로겐 수용체에 대해서는 강하게 양성으로 염색되었습니다. CD10 염색은 양성, CD15 염색은 국소적으로 양성 소견을 보입니다.”

“그럼…….”

“네, 자궁내막증이 맞습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지는…….”

수혁이 아니면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시작되긴 했지만, 끝까지 들어 보니 확실히 자궁내막증이었다.

이현종과 안대훈은 이제 이수혁이 진짜 사람이 아니란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뭐? 정말로?”

“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김승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리듬 게임에 진단 능력까지…… 이러다 진짜 내 생전에 태화가 미국 잡는 거 보는 거 아냐?’

더 나아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가 젊었던 시절엔 진짜로 말도 안 되는 망상이었더랬다.

당시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도 그랬지만, 이런 응용과학 분야에 있어서는 거의 불모지라서 그랬다.

재벌들 중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가는 사람들이 흔하던 시절이지 않나.

허나 이제는?

많이 따라잡았다.

그렇다고 해도 역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수혁을 보고 있자니 마냥 꿈도 아닌 것 같았다.

‘저런 천재 하나가 일반 사람 수천 명보다 낫지. 이거 이럴 게 아니라.’

김승규는 무릎을 탁 치고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케이스 내놔, 이 새끼들아.”

애꿎은 제자들이 봉변을 당하기 시작했다.

물론 전화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 역시.”

한석준은 속으로 수멘을 외치며 전화를 받았다.

남자에게서 자궁내막증이라니.

상상도 못 했던 진단명이지 않나?

이론까지 덧붙여 설명하는데, 솔직히 그거까지 따라붙지는 못했다.

그냥 수혁이 하는 말이니까 그런갑다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 네. 그럼 그 내용까지 더해서 제가 기사 쓰겠습니다. 이거 진짜 대박 나겠는데요?”

마지막은 기자였다.

그는 이미 써 놓은 내용에 더해, 촬영 감독 얘기도 적어 넣었다.

동의는 한참 전에 벌써 다 구해 둔 터라 망설일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프레스된 인터넷 기사는 곧 태화 홍보팀의 활약에 의해 국내 유수의 커뮤니티로 번져 나갔다.

그중에는 의대생이나 군의관들이 주로 가는 곳도 끼어 있었는데, 좀 있으면 통합진료센터에 들어가게 될 이들도 빠짐없이 기사를 읽을 수 있었다.

-구라 아니냐? 말이 됨?

다른 커뮤니티는 찬양 일색이었지만 의사들이나 의대생들은 냉소적이었다.

원래 좀 이런 분위기다 보니 다들 그러려니 했는데, 화가 나는 이들도 있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곳임.

-내가 장담함.

김인수와 장종우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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